항목 ID | GC0060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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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暉 |
영어음역 | Hyeonhwi |
이칭/별칭 | 법경대사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강정만 |
[정의]
고려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가계]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이덕순(李德順)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현휘는 영각산사(靈覺山寺) 심광(深光)에게 출가하여, 898년(효공왕 2)에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 그의 계행이 청정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그가 10여 명과 함께 난리를 피하여 무주에 이르렀는데, 도둑떼의 습격을 받아 함께 간 동행이 차례로 죽었다. 그의 차례가 되었는데도 죽음 앞에서 얼굴빛이 태연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자, 도둑의 우두머리가 칼을 던지고 엎드려 절하면서 그를 스승으로 섬기기를 자원하였다고 한다.
907년(효공왕 11) 그는 당나라로 가서 구봉산(九峰山)의 도건(道乾)을 만나고 입실을 허락받아 참선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심요(心要)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중국을 돌면서 성지들을 참배하고 선지식을 찾아보았다.
사명에 이르렀을 때 고려가 개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려 924년(태조 7) 귀국하여 태조로부터 국사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 그는 충주 정토사에 머물면서 모여드는 학인들을 지도하여 종지를 선양하였다.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조정과 지방의 유명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그의 시호는 법경대사(法鏡大師)이고, 탑호는 자등(慈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