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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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琳 |
영어음역 | Jo Rim |
이칭/별칭 | 강소(康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활동사항]
조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다. 은천군(銀川君)에 봉해진 뒤 1386년(우왕 12)에 한양 도원수 겸 한양 부윤이 되었다. 1388년(우왕 14)에 밀직사사로 왕의 조근을 청하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에 의하여 최영과 함께 요동을 친 죄로 풍주에 유배되었다가, 1392년 조선이 개국된 후에 풀려나왔다. 이후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어 책봉주청사(冊封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태조를 고려권지국사(高麗權知國事)로 봉한다는 명제(明帝)의 조서를 받아 돌아왔다.
그 후 중추원사(中樞院事)에 이어 1394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거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과전을 더 받은 실수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서 파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