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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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健 |
영어음역 | An Geon |
이칭/별칭 | 여옥,모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옥(汝玉), 호는 모와(慕窩).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안호덕의 아들이다.
안건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당하자 9년간 시묘를 살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이흥발(李興發)의 격문에 발하여 가산을 털어 군량과 병장기를 갖추고, 두 아들 안시적과 안시설을 군관으로 삼고 싸움터로 나아갔다. 이때 따르는 의병이 백여 명이나 되었다.
출정하면서 시를 지어 말하기를. “삼십명의 가동과 두아이/이 행차의 뜻을 흰 물결은 알리라/서생의 허리에는 오히려 칼이 있으니/돛대를 치며 석양에 북쪽으로 건너가네”라고 하였다.
이후 여러 고을의 제현과 함께 여산을 거쳐 청주로 나아가 적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적의 군량을 빼앗고 다시 과천으로 달려가서 밤 삼경에 적진을 습격하여 5,6백 명의 적을 베었다. 그러나 강화도가 무너지고 갑자기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온 뒤 얼마 후 울분을 참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참봉 이문규가 묘지명을 지었다.
1859년(철종 11)에 호조좌랑의 증직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