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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하간. 제학(提學) 김신민(金新民)의 후손이자 선무량 김영진의 증손이다. 김재백은 어려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문하에 나아가 유학과 예론 등을 공부했으며, 1682년(숙종 8)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스승 송시열이 유배될 때 스승의 무죄를 상소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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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사진(士眞), 호는 청계(靑溪)·송암(松巖)·죽암(竹巖)·하곡(荷谷). 아버지는 목사 양의(梁艤)이다. 양대박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배웠다. 1572년(선조 5)에는 학관(學官)에서 제술관(製述官)으로 기용되고 이어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에 올랐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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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노경식이 쓴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연극. 극작가 노경식은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국민학교, 용성중학교, 남원농업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철새」의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달집」, 「징비록」, 「소작지」, 「정읍사」, 「하늘만큼 먼나라」, 「만인의총(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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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전리는 마을에 연못이 있어 그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용소촌 또는 용연촌이라 하였다. 하도리는 폭우만 내리면 사면이 침수되어 마을이 섬처럼 우뚝 솟아 보이고 남원시의 제일 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아래 하(下)’자와 ‘섬 도(島)’자를 합하여 하도(下島)라 칭하게 되었다. 본래 남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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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유원(流遠). 하연해(河漣海)의 아들이며, 양진당(養眞堂) 하만리(河萬里)와는 칠촌 간이다. 하득도는 성품이 우아하고 지조가 있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당숙 및 같은 고을의 의병들과 밤낮으로 북진하여 청주에 이르렀다. 화의(和議)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돌아와서 동지 8명과 단구(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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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일대의 신라 때 행정구역.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비롯된 남원에 신라의 모산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조선 후기인 1864년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까지도 동일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른 기록이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남원시와 남원군의 일부 지역이 신라의 땅이었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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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長), 호는 양진(養眞). 안렴사(按廉使) 하중용(河仲龍)의 후손이며, 도사(都事) 하극윤(河克潤)의 아들이다. 하만리는 학행이 뛰어나고 언 강에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할 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폄재(砭齋) 최온(崔蘊), 당촌(塘村) 황위(黃暐)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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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일대의 신라 때 행정구역.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비롯된 남원에 신라의 모산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조선 후기인 1864년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까지도 동일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른 기록이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남원시와 남원군의 일부 지역이 신라의 땅이었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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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상우리에 속하는 행정리. 하우리는 법정리 상우리가 2개 행정리, 즉 상우리와 하우리로 나뉘어 생기게 되었다. 인월면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500m 가량 떨어져 있고,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도 1084호선은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특히 특산물 전시판매장이 마을 앞에 있다. 마을에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마을 입구에 거대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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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상우리에 속하는 행정리. 하우리는 법정리 상우리가 2개 행정리, 즉 상우리와 하우리로 나뉘어 생기게 되었다. 인월면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500m 가량 떨어져 있고,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도 1084호선은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특히 특산물 전시판매장이 마을 앞에 있다. 마을에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마을 입구에 거대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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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투사. 이병희의 아버지 이두용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치열한 항일 독립 운동을 했던 언론인 투사였다. 남원의 『조선일보』 지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6년 남원의 형평사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고, 남원 신간회, 청년동맹 등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체포되어 3년 4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출감하였으나 일제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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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洲). 하인채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어머니를 봉양하여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정신성(昏定晨省)하여 좌우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봉양할 것이 없으면 품팔이도 하고 혹은 나가서 밥을 빌어다 먹이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함에 이르렀을 때 앵두를 먹기를 원하였으나, 구하지 못하여 애를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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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남원시의 상가, 은행, 공공기관, 각종 단체 등이 밀집된 중심동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통동 신흥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여, 하정동은 구 도심 지역이 되어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야간에는 인구 이동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관청인 동헌의 샘 밑의 마을이라 하여 명칭이 생겨났다. 하정동은 남원성이 건재할 때까지 성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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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는 육지 표면에서 대체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유수의 계통. 이 지역의 하천들을 동일한 하구로 흐르는 수계별로 구분하면 크게 두 수계로 나눌 수 있다. 운봉읍·산내면·아영면·인월면은 낙동강 수계에 속하고, 남원의 나머지 지역은 섬진강 수계에 속한다.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의 분수계는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 운봉읍과 장수군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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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극지(克智), 호는 하천(下川).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방덕일(房德馹)의 아들이다. 방처인은 한강(寒崗)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천거로 참봉(參奉)과 수령(守令)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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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뒷산 백운산(白雲山)[902.7m]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라는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6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와 복치혈을 따서 황치(黃雉)라 하였다. 하황리는 황치의 제일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황리·중황리·하황리를 통틀어 황치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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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학산재(學山齋)는 임진왜란 이후 남원에 정착하게 된 진주소씨(晉州蘇氏) 가문의 소종혁에 의해 설립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1921년에 최초로 건립되었고 1936년까지 운영된 초당(草堂) 건물의 서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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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문화와 역사 등을 연구하는 단체. 전라북도 남원시의 정치·경제·산업·환경·문화·관광·역사 등 여러 분야를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단체를 말한다. 남원 지역에는 1991년에 개교한 4년제 대학인 서남대학교만 있어 아직 지역학·향토학에 대한 인프라가 미약한 상황이다. 서남대학교 내부 연구단체로 남원·춘향문화연구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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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천문·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하였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다. 안지(安止)·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음으로써 국어·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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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고종 28) 통사랑(通仕郞)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박석규는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일본군 헌병대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빼앗은 무기로 무장하고 그 길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히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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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학이재(學而齋)는 일제강점기에 지역 유지인 이종택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학이재는 1923년에 설립되었으며, 1953년까지 운영되었다. 호산 김사관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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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문양공(文襄公) 한계미(韓繼美)의 후손이며, 승지(承旨)에 증직(贈職)된 한언윤(韓彦胤)의 손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公州)로 달려가 인조의 어가를 호위하였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후 진무원종공신(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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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상지(常之).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손자이다. 한계상은 음사(蔭仕)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야수(野叟) 채홍국(蔡弘國)과 함께 흥덕(興德)·남당(南塘)에서 뭉쳐서 호남을 지켰다. 또 정유재란 때에는 부안 호벌치(胡伐峙)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중상을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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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준향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창의적·진취적인 호스맨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 아래 첫째, 바른 생활 실천 중심의 인성 교육 둘째, 특성화 교육을 통한 호스맨 양성 셋째,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 넷째,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이라는 하위 목표를 두고 있다. 1969년 10월 18일 3학급 운봉축산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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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농민 육성 단체. 급격한 산업화로 농업의 위기 상황 속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선진 농어촌을 만들려고 애쓰는 농민들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한국농업경영인전라북도연합회 남원시연합회는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생산기술의 과학화, 경영의 합리화, 유통의 선진화, 농어민의 권익 신장, 향토 문화의 계승·발전과 복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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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농민 육성 단체. 급격한 산업화로 농업의 위기 상황 속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선진 농어촌을 만들려고 애쓰는 농민들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한국농업경영인전라북도연합회 남원시연합회는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생산기술의 과학화, 경영의 합리화, 유통의 선진화, 농어민의 권익 신장, 향토 문화의 계승·발전과 복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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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농어촌 지역 개발 사업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산하 기관.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 남원지사는 농어촌 정비 사업과 농업 기반 시설 관리, 그리고 농어촌 지역 개발 사업을 실시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의 지사이다. 농어촌 정비 사업을 시행하고, 농업 기반 시설을 종합 관리하며, 농업인의 영농 규모 적정화를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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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월락동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전남본부의 남원도로관리소. 한국도로공사 전남본부 남원도로관리소는 도로를 정비하고, 도로 교통을 발달시키기 위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한국도로공사법」(법률 제2083호)에 따라 1969년 2월 15일 도로의 건설과 유지관리, 그리고 이에 부대되는 사업을 통해 도로 교통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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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한국사진작가협회 남원지부. 1986년, 한국사진작가협회 남원지부는 1970년대의 침체기에서 벗어나 다시 탄생하였다. 당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부장을 맡게 된 김기동의 노력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남원지부는 다시 부활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남원의 사진문화는 발전하게 되었다. 사진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창작활동으로 회원들의 예술적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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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한국예술인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지부. 한국예술인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예총)의 전라북도 산하 지부 중의 하나이다. 남원 지역 문화·예술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의 권익을 옹호하며, 향토 예술의 창달로 지역 사회의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83년 4월 문학·국악·미술·사진·연예·음악협회 이사 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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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전기재해 예방과 전기 안전관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한국전기안전공사 산하 기관. 한국전기안전공사 전북지원본부 남원순창지사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47개 지사 가운데 하나로, 전기재해 예방과 전기 안전관리를 통해 국민의 안전과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전북지원본부 남원순창지사는 전기재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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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남원 지부. 한국전력공사는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세계적인 전력 회사로, ‘변화와 도전으로 세계속의 한전 구현’을 경영 방침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남원지점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역에 양질의 전력 공급 및 고객 서비스 향상을 위해 개설되었다. 1925년 11월 25일 남선전기주식회사 남원영업소를 개설하였다.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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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용정동에 있는 공공 직업 훈련을 전담하기 위한 인재 양성 전문 기관. 정예의 다기능을 겸비한 참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1987년 7월 한국직업훈련관리공단 전북직업훈련원을 개원하였고, 1991년 4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94년 7월에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전북직업전문학교로 명칭을 재변경하였다. 1999년 3월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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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까지의 한국의 유명 문인들의 시를 모아 1964년 남원향교에서 편찬한 시집. 『한국풍아집(韓國風雅集)』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詩)」에서부터 순종조까지 1031명의 한시를 편찬한 시집이다. 비교적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지역 문인들의 시가 많은 편이다. 월성(月城) 김종가(金種嘉)는 서문에서, “(개략하여)공자가 시(詩)를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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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기팔(起八), 호는 율촌(栗村). 참판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후손이며 한범기(韓範箕)의 아들이다. 한동섭은 1728년(영조 4)에 향교의 책임자로 있었다. 이인좌의 반란이 일어나 고개 너머에서 반군들의 세력이 크게 떨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우 한동헌(韓東憲)과 집안의 노비 6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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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가정, 사회, 그리고 기성 교회로부터도 소외되어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여, 장애인들도 사회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6월 4일 동북교회에서 장애인들을 선교할 목적으로 남원 벧엘장애인선교회가 발족하여 남원시 지역 장애인을 대상으로 매년 수련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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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가정, 사회, 그리고 기성 교회로부터도 소외되어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여, 장애인들도 사회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6년 6월 4일 동북교회에서 장애인들을 선교할 목적으로 남원 벧엘장애인선교회가 발족하여 남원시 지역 장애인을 대상으로 매년 수련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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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남원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흥(大興). 평장사(平章事) 한유충(韓惟忠)의 아들이다. 한문준은 인종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재주 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외직으로 나가 장주(長州)·장흥(長興)·남원(南原) 세 고을의 부사(副使)와 남경부유수(南京副留守)를 역임하면서 자비로운 정치를 베풀었다. 그의 제자 오세재(吳世材)가 시를 지어 “남녘에서는 세 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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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근의 지리산 지역에 분포하는 다양한 야생화에서 채취되는 토종꿀. 한봉은 남원시 주천면 일대, 용궁리 용궁마을, 호기리 호곡마을, 호기리 신곡마을, 호기리 인곡마을 등 지리산 주변에 위치하고 깊은 골짜기를 형성한 산간 마을에서 생산된다. 이 마을들은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물이 맑은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토종꿀 한봉은 유명한 특산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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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고(士高), 호는 수석정(漱石亭).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후손이며 한흥보(韓興補)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청주와 영남에서 적이 세력을 크게 떨친다는 말을 듣고 남원부로 달려갔다. 남원부사 심정붕(沈廷鵬)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격문을 지어 전주감영으로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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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에 있는 생명 살림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불교계 사회 단체.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를 근간으로 하여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통한 조화로운 삶을 실현하고자 한다. 더불어 사는 지역 사회, 자연과의 연계 사업을 통한 생명을 살리는 농업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이다. 우주 만물이 한 몸, 한 생명이라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기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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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이능화가 「춘향전」을 한문본으로 개찬한 작품. 「춘몽연」은 한국학 연구자 이능화가 개찬한 한문본 「춘향전」으로 제목에 괄호를 치고 ‘한시춘향가’라 부기하였다. 같은 제목으로 1756년 양주익이 지은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능화는 책에서 “원각사 가극 극본으로 「춘향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언문본은 이설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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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한여(漢汝). 아버지는 증좌윤(贈左尹) 모득익(牟得益)이다. 모한추는 대대로 국가의 은혜를 입는 것에 감사하여 제단을 만들어 놓고 북두칠성에게 임금이 장수하기를 기도하였다. 숙종이 승하했을 때는 부모가 상을 당했을 때처럼 소복을 입고 삼년상을 지냈으며, 흉년에 곡식 백 석을 바쳐 국가의 쓰임에 보탬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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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김해김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때는 연화리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에 가뭄에도 변함없이 솟아나는 샘이 있어 한우물이라 불렀으며, 한우물에서 교룡산(蛟龍山)의 정기가 뭉쳐 솟아난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한우물로 바꾸었다고 한다. 1625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으며 현재까지 김씨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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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도로. 한우물길은 한우물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연화리(蓮花里)라 했다. 마을에 가뭄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마을 앞 논을 관개할 만큼 수량이 풍부하여 큰 우물이란 뜻의 한우물로 불렀다고 한다. 뒤에 이 샘이 교룡산의 정기가 뭉쳐 솟아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한우물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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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상오(相五). 증조부는 승지(承旨) 한복(韓輹), 조부는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한응문(韓應文), 아버지는 수운판관(水運判官) 한경생(韓庚生)이며, 외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조효원(趙孝元) 장인은 병조참판(兵曹參判) 이경헌(李景憲)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정산현감(定山縣監)으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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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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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한재마을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한재마을 당산제는 해방 전까지 계속되다가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 그 뒤 마을에 우환이 끊이지 않자 1984년부터 다시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이때 마을의 당산나무가 죽고 없어서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를 당산으로 하고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당산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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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이(士爾). 삼중대광(三重大匡) 한난(韓蘭)의 후손이며, 통정대부(通政大夫) 한신재(韓信栽)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나이 20세였던 한팔기는 숙부 한신필(韓信弼)과 함께 좌영장(左營將) 손명대(孫命大)를 찾아갔다. 손명대는 그를 장하게 여기고 부장으로 삼아 군졸 100여 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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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이(受而). 안양공(安襄公) 한종손(韓終孫)의 6세손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 한응록(韓應祿)의 아들이다. 아저씨뻘인 한경생(韓慶生)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어버이의 병환에 살을 베어 구환하여 고을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적병에게 포위된 상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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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와 주천면 덕치리의 경계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성.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의 북동쪽에는 운봉면과 접하는 해발 740m 산봉우리가 있고, 북서쪽에는 해발 720m의 산봉우리가 보인다. 북서쪽에 해당하는 이 봉우리에서 남으로 100m 정도 내려오면 해발 728.2m의 봉우리에 할미성 보(堡)가 자리하며, 이 곳에서 서쪽으로 약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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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와 주천면 덕치리의 경계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성.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의 북동쪽에는 운봉면과 접하는 해발 740m 산봉우리가 있고, 북서쪽에는 해발 720m의 산봉우리가 보인다. 북서쪽에 해당하는 이 봉우리에서 남으로 100m 정도 내려오면 해발 728.2m의 봉우리에 할미성 보(堡)가 자리하며, 이 곳에서 서쪽으로 약 2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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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성의 북면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산능선으로 문덕봉을 향하여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며,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을 이용하여 성벽의 내·외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다. 내탁법으로 쌓아 올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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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깬돌 또는 냇돌과 판돌을 섞어 네 벽을 쌓아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돌덧널무덤은 해발 50m 이하의 낮은 구릉 지대에 주로 분포하며, 돌덧널 안에 나무널을 넣은 구조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청동기시대부터 하나의 독립된 무덤 양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초기국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러 널리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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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혼례를 앞두고 함진아비와 일행이 함을 팔 때 부르는 노래. 「함 팔 때 노래」는 『남원지』에만 채록되어 소개되고 있는 민요여서 비교 고찰이나 음악적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사설만으로 볼 때 앞소리는 “두루 두루 함이요”와 “두루 두루 함사세요”만 반복하고, 뒷소리는 “오헤 오헤”의 반복이다. 메기고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선율 놀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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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사묘. 조선 전기 문신인 금남(錦南) 오응(吳凝)이 자신의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 세운 별장이다.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응의 호가 금남이라 금남재(錦南齋)라 불렀다. 오응의 할아버지 오상덕(吳尙德)은 고려 후기의 충신으로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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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함파우는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인데 ‘물결을 머금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와 관련된 지명으로 추측된다. 본래 노암동 주촌면 함파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주천면 노암리에 편입되었다. 1956년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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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도로. 함파우길은 어현동의 고유지명인 함파우를 살린 길로 어현동 422-1번지에서 어현동 산 43번지까지의 작은 길이다. 함파우길은 함파우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함파우는 함파(含波)라고도 한다. 함파는 마을이 호리병 속에 갇힌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함파우는 어현동의 으뜸되는 마을로 남원광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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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추어탕 전문 음식점. 합리식당은 약 10여 년 전에 창업하였다. 추어탕에 쓰이는 미꾸라지는 자연산과 보절면에서 양식되는 양식 미꾸라지를 사용한다. 시래기는 고랭지에서 난 것을 쓰는데 겨울철에는 말린 것을 쓰고,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무청을 데쳐서 사용한다. 음식 식단표는 추어탕, 추어숙회, 추어전골, 추어튀김이 있다.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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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성의 북면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산능선으로 문덕봉을 향하여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며,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을 이용하여 성벽의 내·외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다. 내탁법으로 쌓아 올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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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농촌 및 산촌 지역의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5년 10월 5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북노회 소속 교회로 설립을 승인 받았다. 1916년 12월 7일 미국인 선교사인 위인사의 집례로 운봉교회 창립 예배를 갖게 되었다. 1941년 10월 15일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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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서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1940년대에 인월면 성우리 744번지에 인월교회가 설립되었다. 1950년 12월 1일 인월중앙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12월 1일 차광훈 전도사가 부임하였고, 1953년 11월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1990년 9월 16일 교회 명칭을 인월화평교회로 변경하였다. 1996년 4월 21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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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인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농촌 지역인 사매면 인화리와 대율리 지역의 주민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5년 12월 15일 이춘희 외 세 명이 사매면 인화리 마을회관을 빌려 이경호 전도사 인도로 창립 예배를 보았다. 1969년 6월에 정부월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86년 12월 17일 남원시 인화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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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황벌리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4년 12월 고정교회(현 덕과교회)에 다니던 보절면 교인들이 김석주의 인도로 남원군 보절면 도룡리 용동에서 설립 예배를 보면서 황벌교회가 시작되었다. 1945년 처음으로 교회당 건물을 지었으며, 1971년 9월에는 구 교회당 건물을 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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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남원 지역에서 거둔 조세미(租稅米)를 보관하던 창고. 해룡창은 사비포(沙飛浦) 또는 조양포(潮陽浦)로 불렸다. 조창(漕倉)이 설치되기 전부터 세곡(稅穀)을 수납하던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순천도호부 남쪽 10리 지점 해룡산 부근으로 나와 있다. 지금의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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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오정길의 시문집. 오정길(吳廷吉)[1558~1607]은 전라북도 남원부 출신이다. 자는 형보(亨甫), 호는 해서(海西)이고,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문과 급제하였고 노봉서원(魯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오연상(吳淵常) 서문을 붙여 정서해 놓았다. 필사본 1책이다. 문집의 내용은 시(詩)·부(賦)·제가만장(諸家挽狀)·잡저(雜著)·제문(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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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스킨스쿠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해성잠수회를 모태로 하여 발족한 단체이다. 스킨스쿠버 다이빙에 관한 교육, 안전 관리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통하여 국민 체력을 향상시키고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4년 5월 남원 해성잠수회가 창설이 되었다. 1994년부터 매년 남원시 요천수 정화 작업 및 캠페인을 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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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려 전기의 행정구역. 고려 전기인 995년(성종 14) 9월에 전국을 10도로 분류, 개편하였다. 10도는 관내도, 중원도, 하남도, 강남도, 영남도, 영동도, 산남도, 해양도, 삭방도, 패서도였다. 해양도는 14주 62현을 관할했다. 해양도가 관할하던 주현은 나주(羅州), 광주(光州), 정주(靜州)[현 영광], 낭주(朗州)[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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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동천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오누이가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전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일월 신화가 민담의 형태로 변이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해님 달님」·「하늘에 올라간 오누이」·「해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일월 전설」 등의 동화로 개작되어 읽히고 있다. 1979년 2월 5일 전라북도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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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의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정부의 활동. 행정은 입법, 사법과 더불어 한 국가의 주요 골격을 이루는 3권 분립 요소 중 하나이다. 행정은 경영 즉 사행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나 이윤의 극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사행정과 달리 국민 전체의 공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요 차별성을 내재하고 있다. 21세기 지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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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서 영역을 국가 행정상의 목적에 따라 구획한 행정 단위. 남원군 지역은 백제시대에는 고룡군 또는 대방군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남원부로서 2군(순창군, 임실군), 7현(운봉현, 장수현, 장계현, 적성현, 거령현, 구고현, 구례현)을 관할 지역으로 했다.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서 담양부와 순창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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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行政里). 행정리가 형성될 초기에 마을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은 이곳을 은행마을 또는 은행골이라 하였다. 그 후 은행골을 한자로 옮기면서 은행리가 되었는데, 이를 행정으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 엄계리는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선비 엄씨가 낚시하던 시냇가라 하여, ‘엄할 엄(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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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 있는 가야와 고려의 고분군. 유적은 백두대간의 정상에 위치한 수정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동쪽 경사면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은 행정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하천을 가로지른 곳에 자리한다. 1993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널무덤 1기와 구덩식 돌덧널무덤 12기, 고려시대의 앞트기식 돌덧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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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 있는 가야와 고려의 고분군. 유적은 백두대간의 정상에 위치한 수정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동쪽 경사면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은 행정리 마을에서 서쪽으로 하천을 가로지른 곳에 자리한다. 1993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널무덤 1기와 구덩식 돌덧널무덤 12기, 고려시대의 앞트기식 돌덧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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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박자량은 어린 시절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마을 아이들과 놀 때에도 경사에 있는 말을 외워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주역(周易)』을 연구하여 천문과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서삼경과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독하여, 독서를 시작하면 침식을 잊었다.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을 지냈고, 이어서 전라관찰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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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남원 지역에 존재했던 특수촌락집단. 향은 소나 부곡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구역이었다.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촌락 집단이다. 같은 성격의 소와 부곡을 함께 일컬어 흔히 향·소·부곡으로 불린다. 이러한 사람들이 발생한 배경으로는 국가의 발생을 들고 있다. 즉, 정복전쟁에 패배하면서 생긴 예속민 집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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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 우리나라 각 지방에 관학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이다. 고려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3경(京) 12목(牧)을 비롯한 군현에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향학(鄕學)의 시초이다. 남원 지역에 향교가 들어선 것은 조선 초기인 1410년(태종 1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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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도로. 향교오거리는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보조 간선 거리 이름으로, 남원시 시내 교통의 중추 지역이다. 향교오거리는 충정로, 동림길, 동문길이 만나는 남원시의 교통 요지이다. 충정로는 순창, 곡성 방향과 시청, 장수 방향으로 나 있고, 동림길은 향교 방향과 요천 방향으로 나 있다. 동문길은 현대아파트,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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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원향교(南原鄕校)가 위치한 데서 향교동(鄕校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향교동 교촌은 1443년(세종 25) 남원향교가 덕음봉(관덕정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에 향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향교가 있어 교촌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용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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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 용정마을에 있는 수령 175년의 느티나무. 높이 13m, 흉고둘레 4.6m, 근원둘레 3.9m, 수관폭 18m이다. 지상 1.5m 정도에서 여러 가지로 고루 퍼져 수형이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건강한 느티나무이다. 나무의 나이는 175년 정도로 추정된다. 마을 주민들이 뒷동산에 나무를 심고 정성드려 가꾸었고, 백중날 마을에 액을 몰아내고 풍년을 기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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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향교동의 행정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공공기관. 1914년 남원군의 서봉면, 통한면, 왕지전면을 통합하여 남원군 남원면을 향교리와 옹정리로, 왕치면을 내척리와 산곡리로 통폐합하였다. 1930년에 남원읍 향교리가 되었으며, 1956년에는 왕치면이 남원읍으로 통합되었다. 1981년에는 남원시 승격으로 향교동, 용정동, 광치동, 내척동, 산곡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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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십수정 삼거리에서 구 남원역에 이르는 보조 간선 도로. 향단길은 춘향전의 등장 인물인 향단을 의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시청을 지나 남원대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1㎞ 정도 가면 우측에 십수정 삼거리가 있다. 십수정 삼거리 우측은 광한루원이며, 요천변 십수정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춘향교, 우측으로 승월교와 승사교가 있고 요천 일대의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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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기후·지세 등 자연 환경에 순응하면서 독특하게 개발된 음식. 남원 지역의 자연 지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변천의 영향을 받으면서 남원 지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으로서 타 지역의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 맛과 형태를 지닌 음식을 말한다. 특히 요즘 남원이 허브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허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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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중구(仲久), 호는 고산(孤山). 별좌(別坐) 허사익(許思益)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 34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 의영고봉사(義盈庫奉事),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 등을 역임했다. 1616년(광해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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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헌가(獻可), 호는 눌헌(訥軒). 이조참의 진준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참봉 진해수(陳海壽)이다. 진성유는 1612년(광해군 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고 학문이 깊고 넓었다. 부모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구환하고,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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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헌보(獻寶).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의 후손이며, 문효공(文孝公) 윤효손(尹孝孫)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윤대이(尹大頤)이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남원부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이 군량이 모자라 곤란을 당한다는 말을 듣고, 당숙인 윤대표와 종형 윤정반과 함께 집안 살림을 털어서 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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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쌍교동에 있는 현대식 영화관. 메가박스 남원는 남원지역의 유일한 영화관으로 매년 약 12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관람객은 주로 청소년층과 노년층이다. 메가박스 남원는 영화를 상영하고, 남원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헐리우드시네마는 남원지역의 영화관들이 모두 문을 닫은 뒤인 2004년에 현대식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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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서만(西巒)·소옹(素翁).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자, 조옥(趙玉)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조유한(趙維韓)의 아우이다. 조위한은 1601년(선조 34)에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수찬을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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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중(士重), 호는 현산(見山). 고려시대의 좌복야 정목(鄭穆)의 후손이며,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고손자, 현령 정한용(鄭漢龍)의 증손자, 사직서령 정순복(鄭純福)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내산부원군 정상신(鄭象信),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영천부정 이경(李璟)의 딸이다. 정기원은 24세가 되던 해 진사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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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 조양정(趙揚正)의 아들이다. 1601년(선조 34)에 생원이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學諭)가 되었다. 1611년(광해군 3) 부사과로서 한때 파직당했다가 낭관과 사간원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이어 영암군수를 거쳐 1617년 영천군수로 있을 때 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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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이덕순(李德順)의 아들이다. 현휘는 영각산사(靈覺山寺) 심광(深光)에게 출가하여, 898년(효공왕 2)에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 그의 계행이 청정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그가 10여 명과 함께 난리를 피하여 무주에 이르렀는데, 도둑떼의 습격을 받아 함께 간 동행이 차례로 죽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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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의 남천내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고려 후기인 1380년(우왕 6)에 왜구가 남부 지방으로 쳐들어왔는데, 그 괴수 이름이 아지발도(阿只拔都)였다. 아지발도는 18세 정도였으나, 키가 7척이 넘었고 힘이 장사였으며, 철갑으로 무장하여 화살을 맞아도 살을 뚫지 못하였다. 아지발도의 괴력은 아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지발도가 장차 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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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동단 남원지부는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지부의 활동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항일 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 본부를 통해서 상해임시정부에 헌금하였다. 대동단 전라북도지부에서도 단원들과 지역 유지들로부터 헌금을 받아 독립 자금으로 본부에 납부하기도 하였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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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晋陽), 형억동(邢億東)의 아들이다. 형국윤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다르고 학문에 뛰어나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18세에 이르러 청주한씨(淸州韓氏) 청원군(淸原君)의 후손인 지평(持平) 한상기(韓尙箕)의 증손녀를 아내로 맞았다. 부부가 함께 지성으로 부모를 봉양했는데, 아버지가 40세에 이르러 눈이 멀어 출입조차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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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옥(大玉). 판서(判書) 형규(邢珪)의 후손이며, 진사(進士) 형우안(邢友顔)의 증손이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남원성이 포위당하자 입고 있던 비단옷에 “죽어도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 된 직분(死不避亂 臣子職分)”이라는 여덟 글자와 이름을 혈서로 쓴 뒤 성으로 달려갔다. 남원부사 임현(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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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이희량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에 활약한 무신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영교위를 거쳐 선전관, 절충장군(折衝將軍), 덕만보권관(德萬堡權官)에 제수되었다. 그는 말년에는 운봉(雲峰)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 본관은 영천(寧川), 자는 형재(馨哉), 호는 대명거사(大明居士)이다. 시중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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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형중(亨中), 호는 매천(梅川). 진무원종공신 태상문(太尙文)의 후손이며, 통덕랑(通德郎) 태처화(太處華)의 아들이다. 태윤주는 어려서부터 말을 잘 탔고 활을 잘 쏘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마을 장정 50여 명을 거느리고 운봉(남원의 옛 이름)으로 달려갔다.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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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7월 28일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설치한 형평사의 분사. 형평사 남원분사는 인권 해방, 형평 운동, 합리적인 사회 건설 등의 강령을 내걸고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하부 단체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처음 설립된 형평사는 대중적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남원에서는 1926년 7월 28일 최영석을 주도로 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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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리산의 육모정과 구룡계곡의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라 하여 호정리의 ‘호수 호’와 ‘빛 경’자의 한자를 써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원래 이름은 지리산 속에 있다하여 내촌으로 불리었다. 1680년(숙종 6)에 경주정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에 연안김씨와 풍천노씨 그리고 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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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곡리는 외호곡리, 내호곡리, 신덕리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호곡리, 내호곡리, 양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호곡리라 하였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가 되었다. 호곡리의 처음 이름은 호음실이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견두산 자락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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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백제계의 고분군. 호곡리(외곡리 또는 밖홈실)에서 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지점에는 소 외양간을 갖춘 독립가옥이 있는 각골마을이 위치한다. 유적은 이 가옥 주변에 축사가 있는 계곡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펼쳐진 야산 밭에 분포한다. 유적의 북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서는 송동면 사촌리와 접경을 이룬다. 198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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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기리는 호곡리(마을)·안곡리(마을)·신기리(마을)의 3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지방도 730호선을 따라 4㎞ 지점 해발 200m의 중산간 지대의 구릉지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마을 형상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여 범실 또는 호곡이라 불렸던 호곡리와, 생활하기 편한 곳을 의미하는 안의실 또는 안곡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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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신기리에 있는 호기리 석장승에 얽힌 이야기. ‘호기리 석장승’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장승이다. 미륵석불이라고도 하는데, 이 석장승의 유래가 실명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처럼 믿고 있다.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이 호기리 석장승에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 온다.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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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에 있는 돌장승. 미륵 불상 모양과 비슷해서 이곳 사람들은 미륵정이라고 부른다. 김기수의 자손들이 장승을 보호하고 칠월 칠석이면 여기에 모여 제사를 지내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나, 전설에 의하면 아들을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의 꿈에 미륵이 나타나 아들을 낳도록 해줄 테니 집 한 채 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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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에 있는 마애불. 호기리 마애여래좌상은 본래 남원과 주천 간 도로변, 소위 불우치, 또는 부처모퉁이라 불리던 곳에 있었으나 2001년 남원과 주천 간 도로 4차선 확·포장 공사를 시행하면서 마애불이 있는 부처모퉁이 바위 일부분만 남기고 산허리를 절개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현재의 크기로 잘라내어 약 50m 남쪽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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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신기리에 있는 호기리 석장승에 얽힌 이야기. ‘호기리 석장승’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장승이다. 미륵석불이라고도 하는데, 이 석장승의 유래가 실명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처럼 믿고 있다.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이 호기리 석장승에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 온다.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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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에 있는 돌장승. 미륵 불상 모양과 비슷해서 이곳 사람들은 미륵정이라고 부른다. 김기수의 자손들이 장승을 보호하고 칠월 칠석이면 여기에 모여 제사를 지내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나, 전설에 의하면 아들을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의 꿈에 미륵이 나타나 아들을 낳도록 해줄 테니 집 한 채 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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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기리에 있는 돌장승. 미륵 불상 모양과 비슷해서 이곳 사람들은 미륵정이라고 부른다. 김기수의 자손들이 장승을 보호하고 칠월 칠석이면 여기에 모여 제사를 지내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나, 전설에 의하면 아들을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의 꿈에 미륵이 나타나 아들을 낳도록 해줄 테니 집 한 채 지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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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신기리에 있는 호기리 석장승에 얽힌 이야기. ‘호기리 석장승’은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장승이다. 미륵석불이라고도 하는데, 이 석장승의 유래가 실명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처럼 믿고 있다.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이 호기리 석장승에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 온다.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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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조경 건물. 남원 광한루는 조선 전기 명재상 황희의 6대조인 황감평이 고려 때 무인난(武人亂)을 피해 남원에 낙향하여 ‘일재(逸齋)’라고 하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데서 비롯했다. 이후 황희(黃喜)가 양녕대군의 폐출 불가를 주장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원으로 내려왔다. 황희는 1419년(세종 1) 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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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에게 자식을 내어준 효부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효가 인륜의 가장 근본이 되는 덕목이었다. 이 때문에 효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지역을 불문하고 다양한 형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부모를 위해 자식의 희생까지도 감내하는 효자와 효부 이야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를 잘 봉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점에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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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벼농사의 김매기가 끝나는 시기인 6월·7월에 농군들을 위로하는 잔치. 주로 소작을 주거나 머슴을 두고 있는 대농의 집에서 호미씻기를 주관하였으나 마을 단위에서 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호미씻기를 하면 소나 돼지를 잡아 온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나누어 먹고 술을 마시면서 농군들을 위로하였다. 고기값은 마을 공동 작업인 두레에서 받은 돈으로 하고 술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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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 동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아영면 소재지에서 인월 방면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계마을의 북쪽에 자리한다. 동계 마을 입구를 지나 좌측에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동계마을 북쪽의 낮은 구릉이 남쪽과 동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하단부에는 풍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주변은 대부분 논과 밭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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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서(李舒)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심구령, 안성, 소연, 소산복, 이당 등 6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1789년(정조 13)에 건립되었다. 송강 이서는 자는 양백(陽伯), 호는 당옹(戇翁), 본관은 홍주(洪州), 시호는 문간(文簡), 봉호는 안평군(安平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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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서(李舒)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심구령, 안성, 소연, 소산복, 이당 등 6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1789년(정조 13)에 건립되었다. 송강 이서는 자는 양백(陽伯), 호는 당옹(戇翁), 본관은 홍주(洪州), 시호는 문간(文簡), 봉호는 안평군(安平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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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시인.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수지중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낸 뒤 원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일생을 보냈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에 「눈」이 당선된 이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 시조 「노고단」과 「문장대」가 각각 당선되어 문학적 역량을 널리 떨쳤다. 그는 원광대학교 내에 ‘만경강’, ‘원광문학회’ 등의 학생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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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설립되어 운영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내촌서당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서 풍천노씨(豊川盧氏) 가문에 의해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친 사립 초등 교육 시설이다. 1600년대부터 남원에서는 풍천노씨 일가의 정착에 의한 유림의 등장과 더불어 주변의 용호서원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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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호원(浩遠), 호는 이촌(李村). 고려의 금오위 상호군 소희철의 후손이며, 7도병사를 지낸 소후(蘇後)의 7세손이다. 병마절도사 소기동의 고손자이며, 군자감정 소인세(蘇仁世)의 아들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주부 소제(蘇濟)의 동생이기도 하다. 소호는 지극한 효성심을 가지고 부모를 섬겼다. 부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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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호는 호은(湖隱). 충숙왕 때 참지정사를 지낸 문인공(文仁公) 양일(梁溢)의 후손이다. 양사철은 고려시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평리(門下評理) 삼중대광(三重大匡)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 등에서 그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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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호이(浩而), 호는 낙와(樂窩) 또는 독락와(獨樂窩)이다. 참판에 증직(贈職)된 장우익(張宇翼)의 아들이다. 장석은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고모부인 통제사 이석관(李碩寬)으로부터 무술을 익혔다. 1714년(숙종 40)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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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 있는 도로. 호치길은 광치동 781-47번지에서 광치동 산 31-2번지까지의 작은 길이다. 호치길은 호치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호치는 여우(여시)고개라고 하는데, 여우가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치길은 춘향로로부터 광석길로 들어서 광치농공1단지와 2단지를 지나 1㎞ 지점에 이르면 우측으로 호치길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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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행해지는 혼인과 관련된 일련의 의례. 남원은 유교적 전통이 강하여 혼인의 절차가 주자가례를 따라 진행된다. 혼인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허혼(許婚)’이다. 혼담이 오고 가면 서로 상대방의 가풍과 부모의 인품, 당사자의 조건 등을 알아보고 양가가 혼인할 것을 서로 약속한다. 이를 허혼이라고 한다. 허혼이 끝나면 정식으로 사주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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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혼례 때 차려지는 음식. 혼례에는 사례(四禮)라 하여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절차가 있고, 여기에 문명(問名), 납길(納吉)을 더하여 육례(六禮)의 의례로 이루어져 있다. 봉치떡의 시루에서부터 생애 처음 받게 되는 큰상차림까지 혼례를 치루는 과정에는 많은 음식이 필요하게 된다. 혼례음식은 납폐, 초례(醮禮), 구고(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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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 일대에 조성된 문학 시설. 혼불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 기행 코스를 개발하여 혼불을 널리 알리고 있다. 혼불문학관에서는 소설 『혼불』에 나타난 한국인의 정서와 사투리, 전통 생활 습관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해마다 관광객 약 5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소설 『혼불』의 배경인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 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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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의 『혼불』은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인 1932년부터 1938년까지의 매안이씨 양반가의 이야기를 서술한 소설이다. 민속학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로 칭송받고 있으며, 특히 종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자연 환경을 세밀히 묘사하여 생태 문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노봉마을은 소설 『혼불』의 무대이다. 고전 문학의 고장인 남원은 현대 문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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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에 있는 지역 문화 단체. 2003년 1월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설립한 문화단체로, 2006년 12월 28일 사단법인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하였다. 매년 혼불 시집과 독후감, 혼불 마을 답사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매년 10월 초에 혼불문화제를 개최한다. 혼불정신선양회는 민족 혼과 근원을 찾기 위해 온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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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도깨비 중매로 혼인한 홀아비 이야기. 도깨비와 관련한 민담은 우리 라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많이 전해진다. 남원 지역에서도 도깨비와 경쟁하는 인간, 도깨비를 속여 이익을 본 사람, 도깨비와 싸워 이겨서 행운을 쟁취한 사람 등의 이야기가 여러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79년 8월 2일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서 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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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1810년(순조 10)에 남원도호부 수지방의 호곡마을에서 죽산박씨(竹山朴氏) 가문의 박규문가 세운 사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 호남 최고의 명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호곡마을에서는 모든 학동들이 한문과 서예를 익혀야 했을 정도로 학문 지향적 마을이었다. 따라서 청룡재의 설립자인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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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 선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법고(法鼓). 법고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중 하나로서 북의 지름이 대개 1m 이상이며 큰 것은 180㎝를 넘는다. 북통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긴 것이 특징이며 대체로 40㎝쯤 되는 북채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나누어 쥐고, 북면과 북통의 모서리 부분을 치기도 하고, 북통의 모서리에 박힌 못을 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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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농악인. 홍유봉이 농악을 처음 접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 때나 ‘술맥이’ 때에 흥겨운 대로 두드리고 노는 소박한 마을굿을 통해서였다. 그러다가 8·15해방 이후, 스무 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전국적으로 열린 농악 대회를 보면서 전문적인 농악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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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유몽인이 채록하여 『어우야담』에 수록한 짧은 이야기. 유몽인은 53세 때 남원부사가 되었는데, 그 해에 벼슬을 사직하고 고흥에 은거하였다. 당시 남원에서는 ‘홍도 이야기’가 실화로서 널리 유포되어 있었는데, 이때 유몽인에 의해 수합되어 「홍도전(紅桃傳)」이란 이름으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린 것으로 생각된다. 「홍도전」은 소설 「최척전(崔陟傳)」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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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은 판소리 「박타령」(「흥보가」)의 사설이 정착되어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이며, 흥부마을은 남원군 아영면 성리와 인월면 성산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지역에는 지금도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작가와 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며 고대로부터 전승되던 설화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의 사설로 창화(唱化)되다가 대본의 정착 단계에서 소설로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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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입암리에 있는 동제를 지내던 제단 터. 이 마을에서 제일 높은 동당골이라고 부르는 곳에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갑오농민혁명이 있기 전까지 이곳에서 홍북단(洪北檀)이라는 단을 세우고 당산제를 성대하게 지냈다고 한다. 갑오농민혁명 이후 배를 만들기 위해서 당산나무를 베어낸 뒤에는 당산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홍북단이 있었던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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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연거사(紅蓮居士). 아버지는 홍문관부수찬 이수정(李守貞)이다. 황효헌과 이연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22년(중종 17)에 생원, 1531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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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농악인. 홍유봉이 농악을 처음 접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 때나 ‘술맥이’ 때에 흥겨운 대로 두드리고 노는 소박한 마을굿을 통해서였다. 그러다가 8·15해방 이후, 스무 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전국적으로 열린 농악 대회를 보면서 전문적인 농악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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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입부(立夫), 호는 홍재(弘齋). 참판(參判) 노숙동(盧叔同)의 고손자이며,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촌 아우인 진사(進士) 노사상(盧士尙)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0여 명을 모았다. 팔량치에서 왜적 수십 명을 참살한 후 의병장 김면(金沔)을 좇아 지례(知禮)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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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남원에 실상사를 세우고 실상산문을 개창한 승려. 호는 홍직(洪直), 시호는 증각(證覺). 실상화상(實相和尙), 혹은 남한조사(南韓祖師)라고도 한다. 홍척은 헌덕왕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당(西堂) 지장(智藏)의 불법을 배워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였다. 그는 남악(지금의 지리산)에 머물러 수도하면서 실상사실상사(實相寺)를 세우고, 우리나라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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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전라북도 남원에 실상사를 세우고 실상산문을 개창한 승려. 호는 홍직(洪直), 시호는 증각(證覺). 실상화상(實相和尙), 혹은 남한조사(南韓祖師)라고도 한다. 홍척은 헌덕왕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당(西堂) 지장(智藏)의 불법을 배워 826년(흥덕왕 1)에 귀국하였다. 그는 남악(지금의 지리산)에 머물러 수도하면서 실상사실상사(實相寺)를 세우고, 우리나라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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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가(和可), 호는 만은(晩隱). 문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이며, 김순례(金順禮)의 아들이다. 김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4년(중종 29)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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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도로. 화산당길은 화정동의 고유지명인 화산당(花山堂)을 살린 길로 화정동 815-2에서 화정동 90-1까지의 골목길이다. 화산당길은 화산당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산당 마을은 나비와 벌이 꽃을 찾아드는 연화봉접(蓮花蜂蝶) 형국이다. 마을 앞산이 벌을 상징하는 벌봉이고, 마을 양쪽의 산이 나비봉이고,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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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권집의 시문집. 권집(權潗)[1655~1716]은 경상도 안음(安陰)[옛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으나,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 서림촌에서 살았다. 처음 이름은 권숙(權璹)이었는데, 자는 유방(孺方) 또는 수옥(壽玉)을 사용하였다. 호는 화산(華山)·극복재(克復齋)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행실이 고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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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권집의 시문집. 권집(權潗)[1655~1716]은 경상도 안음(安陰)[옛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으나,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 서림촌에서 살았다. 처음 이름은 권숙(權璹)이었는데, 자는 유방(孺方) 또는 수옥(壽玉)을 사용하였다. 호는 화산(華山)·극복재(克復齋)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행실이 고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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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소석리는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을 때 주위가 큰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소나무에 싸인 작은 마을이라 하여 소송리(小松里)라 하였다가, 후에 마을 뒷산에 잔돌이 많아 소석리(小石里)로 개칭하였다. 전촌리는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가 세워져 있는 앞 마을이라 하여 앞마을 또는 앞몰이라 하였다가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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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화수재(花樹齋)는 전주최씨 가문의 문중을 중심으로 하여 재실에서 설립되었다. 인근 산동면 여러 마을의 학동들에게까지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화수재는 1920년에서 1950년까지 운영되었다. 조선 선조 때 전주최씨와 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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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화암(和庵).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생원 채원상(蔡元祥)이다. 활쏘기 솜씨가 뛰어났던 채희연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출전하였다. 채희연은 만약 자신이 전사하면 시체를 거둘 때 신원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늘 푸른색 도포를 입었다고 한다. 채희연은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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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한 마당. 「적벽가」는 중국의 위나라와 한나라, 오나라가 각축을 벌이는 삼국시대에 조조와 유비와 손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 가운데 적벽강에서의 싸움과, 그 앞과 뒤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남원시 운봉읍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은 「적벽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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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수(士秀), 호는 화우당(華憂堂).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며, 판서 김인손(金麟孫)의 고손자이고, 충의위 김광보의 아들이다. 김원준은 일찍부터 가정의 가르침을 받아 효성과 충의의 마음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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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견(景見), 호는 만은(灣隱). 할아버지는 영상 이준경(李浚慶)이고, 아버지는 도승지 이덕열(李德悅)이다. 1633년(인조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집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정진했다. 형인 이사성(李士星)과 함께 남원시 주포(周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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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봄철에 산이나 들에서 진달래 꽃잎을 따서 붙임 떡을 만들어 먹으면서 노는 놀이. 화전(花煎)은 진달래 꽃잎을 놓아서 부친 전을 말하는 것으로서 진달래가 만개하는 음력 3월~4월에 화전놀이를 하였다. 날을 잡아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산이나 들로 나가서 화전을 부쳐 먹으면서 하루를 즐겼다. 특히 음력 3월 3일에 화전놀이를 많이 하였다. 이 날은 3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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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부 화정동은 173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본래 이름은 화산당(花山堂)이다. 화산당은 나비와 벌이 꽃을 찾아드는 연화봉접(蓮花蜂蝶) 형국으로 마을 앞산이 벌을 상징하는 벌봉이며 마을 양쪽의 산이 나비봉이고, 마을이 꽃에 해당되어 마을 이름을 화산당이라 했다고 한다. 서부 화정동은 처음에 연화리(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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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화정동에 있는 수령 355년의 느티나무. 높이 10m, 흉고둘레 3.2m, 근원둘레 3.9m, 수관폭 18m이다. 지상 1.5m 정도에서 다섯 가지로 퍼져 수형이 기이하다. 나무가 많이 부패되어 두 번째 외과 수술을 했다. 나무의 나이는 355년 정도로 추정된다. 1625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때는 연화리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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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의 지세가 꽃봉오리 속의 가장 큰 꽃술인 화심(花心)과 같은 화심명당이라 하여 화정리(花亭里)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일설에는 옛날 유명한 대사가 따뜻한 봄날 노적봉을 산책하다가 멀리 한 정자가 보이는데 정자를 둘러싼 주변의 아름다운 정기가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지라 마을 이름을 ‘꽃정이’라 지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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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환갑잔치 때 환갑을 맞은 주인공이 가족과 축하객들 앞에서 부르는 유희요. 환갑잔치가 열리면 가족과 친척, 동네 친구들이 축하하러 찾아온다. 이날 남원 지역에서는 환갑을 맞은 주인공이 하객들로부터 축수잔을 다 받은 후에는 환갑상을 물리고 놀이판을 펼치는데, 이때 당사자가 축하객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환갑노래」이다. 4·4조 사설 진행이며, 독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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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진극순의 시문집. 진극순(陳克淳)[1620~1657]은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죽곡 출신이다. 자는 사수(士粹), 호는 환성암(喚醒庵)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효행과 우애가 극진하였다. 유고는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1759~1838]의 서와 9세손 진봉섭(陳鳳燮)의 발문을 붙여 1923년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되었다. 3권 1책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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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이대유의 시문집. 이대유(李大유)[1540~1609]는 전라북도 남원군 출신으로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후손이다.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만헌 정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러 번 천거되어 조정에서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이이근(李頤根)의 서를 붙여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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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재배되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배나무. 국내 육성품종으로 중생종이다. 1967년에 신고(新高)에 이십세기(二十世紀)를 교배하여 만든 품종으로, 1977년 1차, 1982년 2차, 1984년에 최종 선발하여 황금배라고 이름을 붙였다. 과실이 큰 편으로 무게가 400~450g이다. 모양은 원형에 가깝다. 껍질이 매우 얇고 황금색이며, 과육은 투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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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여원(汝願). 세종 때 재상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된 황경구(黃慶龜)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형 황함(黃諴)과 조카 황익계(黃翼繼), 동지 장우정(張于井)·최여대(崔輿垈) 및 의사 70여 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원성을 지켰다. 17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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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정숙(正叔). 양정공(良靖公)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다. 황대중은 효성이 지극하여 효건(孝蹇)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참봉(參奉)에 천거되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壯士)로 뽑혀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병사(兵使) 황진(黃進)을 따라 진주성 싸움에도 참가하였다. 성이 함락되면서 겨우 빠져나온 그는 통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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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황벌리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4년 12월 고정교회(현 덕과교회)에 다니던 보절면 교인들이 김석주의 인도로 남원군 보절면 도룡리 용동에서 설립 예배를 보면서 황벌교회가 시작되었다. 1945년 처음으로 교회당 건물을 지었으며, 1971년 9월에는 구 교회당 건물을 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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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천리는 사방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여 시내 가운데 숨어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내황리는 풍수지리적으로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하여 거미줄을 치고 있는 형태인 지주설망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연유하여 처음에 ‘느린데(거미가 느리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일 가능성이 있음)’라 부르던 것이 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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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 율촌마을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이 위치한 황벌리는 남원시 보절면과 백두대간의 지류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자연 분지를 이루고 있다. 율천을 따라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주변에는 구릉 지대가 발달되어 있다. 유적은 율촌마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1999년 곽장근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원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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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아영면, 인월면의 경계에 있는 산. 예전부터 운봉은 교통의 요충지로 전략적으로 중요했는데 특히 황산은 마주한 덕두산 자락과 함께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외적이나 세력을 막았던 목이었다. 황산의 남사면 부층탑이 있는 덕두산 자락의 옥계동 화수교 사이는 폭이 겨우 75m 정도로 좁은 동시에 남천이 흐르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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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인 1380년 9월 이성계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의 황산에서 왜구와 싸워 크게 승리한 전투. 황산대첩은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 격파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싸움이다. 이를 계기로 왜구의 발호가 쇠퇴하여, 1577년(선조 10)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황산대첩비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花水里)에 세워졌다. 1376년(우왕 2) 홍산에서 최영(崔瑩)에게 대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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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화수리에 있는 승전비. 1380년 이성계(李成桂), 이두란(李豆蘭) 장군이 황산에서 왜적 아지발도(阿只拔都)군을 물리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비이다. 남원 황산대첩비는 김귀영(金貴榮)이 비문을 짓고, 송인(宋寅)이 글을 쓰고, 남응운(南應雲)이 글을 새겼다. 비각은 1667년(현종 8)에 현감 허제(許濟)가 건립하였으나 일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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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勝戰碑)가 있던 자리. 고려 후기에는 왜구가 국경과 변방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는 일이 잦았다. 왜구가 지리산 방면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삼도통사 이성계를 보내어 왜구를 토벌케 하였다. 이성계는 의제(義弟) 이두란과 더불어 왜구와 싸워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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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勝戰碑)가 있던 자리. 고려 후기에는 왜구가 국경과 변방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는 일이 잦았다. 왜구가 지리산 방면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삼도통사 이성계를 보내어 왜구를 토벌케 하였다. 이성계는 의제(義弟) 이두란과 더불어 왜구와 싸워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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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에서 있었던 황산대첩(荒山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8월 15일에 열리는 화합 행사. 황산대첩은 고려시대 말기 1380년(우왕 6)에 왜구가 경상남도 함양을 거쳐 전라북도 남원으로 진격했을 때 삼도순찰사였던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왜장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끄는 왜군 20만여 명을 운봉 황산으로 유인하여 섬멸시킨 전투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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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성. 황산토성은 해발 697m인 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자락 해발 460m 지점에 있는 성이다. 이 능선은 황산 아래의 광천과 24번 국도를 건너 덕두봉 능선과 연결되고, 운봉 평원과 아영의 동면 평원을 차단하고 있다. 가산산성과 황산토성 사이에는 명석치라는 고개가 있으며, 계곡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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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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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석여(錫汝), 호는 운계(雲溪), 무민공(武敏公) 황진(黃進)의 증손이며, 당촌(塘村) 황위(黃暐)의 아들이다. 황신구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탁월했고, 소년이 되자 이미 옛 선인들의 학문을 이해하였다. 벼슬에 뜻이 없어 은거하여 후진을 교육하였는데 많은 선비가 모였고, 고관대작들이 그의 높은 절의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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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공예가. 국가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白銅煙竹匠)의 기능 보유자인 죽전(竹田) 황영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아버지 황용구의 도제로 들어가 배우면서 할아버지 황찬서로부터 3대째 기능을 전수받아 백동연죽장을 제작해 오고 있다. 백동연죽장은 민담뱃대와 오동상감(烏銅象嵌) 담뱃대로 나뉜다. 오동상감 연죽은 설대에 인두로 소나무와 두루미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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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자휘(子輝), 호는 당촌(塘村).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손자이며 현령(縣令) 황정열(黃廷說)의 아들이다. 아들중에 학행이 높았던 황신구(黃信龜)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된 황임구(黃任龜)가 있다. 황휘는 어려서부터 시 쓰기를 좋아하였으며, 기암(畸菴)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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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빨치산 지휘관. 본관은 장수. 호는 회당(悔堂).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에서 아버지 황달주(黃達周)와 어머니 슬하에서 1923년 9월 10일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의지의 집안은 중농 정도의 살림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민족 의식이 대단하여 사재를 털어 마을에 명신재(明新齋)라는 사립 학교를 만들고 선생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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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사술(士述).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황함(黃諴)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숙부 황대(黃戴)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집안의 노비를 이끌고 남원성으로 달려가 여러 의사들과 함께 동문과 북문을 지켰다. 고종 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追贈)되었고, 충신의 정려(旌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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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군익(君翊).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아들이다. 황정직은 음직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무과에 급제하여 1606년(선조 39) 수의부위(修義副尉)가 되었다. 1607년(선조 40) 전주병마절제도위(全州兵馬節制都尉), 1608년(선조 41)에 옥구현감(沃溝縣監), 1611년(광해 3) 제주목판관(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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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소로. 누른대길은 누른대, 즉 황죽(黃竹)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대나무가 괴로워한다’는 뜻에서 고죽리(苦竹里)라 하였으나, 나중에 황죽 또는 누른대라는 말로 불렀다. 원래 이곳은 조선의 권신으로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킨 무령군 유자광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유자광이 태어날 때 천마봉 아래의 지운(地運)을 흡수하여 대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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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황죽서재는 영광유씨 가문의 강당에서 설립되었으며, 인근 백파방과 백암방의 학동들에게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황죽서재는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으로, 훈장 우호정과 김사헌이 지도를 하였으며 100여 명의 후학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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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무민공(武愍公).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황위(黃暐)는 황진의 손자이다. 1576년(선조 9) 2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이듬해 종계변무(宗系辨誣) 일로 사신 황림(黃琳)을 보좌하여 군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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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인 황진의 집안에서 간직해 온 고문서. ‘황진가 고문서’는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와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세거하는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1550~1593]의 후손인 황호연(黃鎬淵)과 황맹연(黃孟淵)의 집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는 장수황씨(長水黃氏) 문중의 고문서이다. 고문서는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임진공신으로 유명한 무민공 황진 장군과 그의 아들·손자가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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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황진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 정충사는 무민공(武愍公) 황진 장군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있으며, 고득뢰, 안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정충사 경내에는 현재 황진 장군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현재의 정충사는 옛 건물이 있던 자리를 확대하여 복원하였으며, 사우(祠宇)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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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찬서는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해 방극용 등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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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녹두를 맷돌에 갈고 체로 거른 후 가라앉은 앙금을 모아서 쑨 노란색 묵. 녹두묵을 만들 때 치자로 물을 들여 색이 노랗게 된 것을 황포묵 또는 노랑묵이라고 하고 물을 들이지 않은 것은 청포묵이라 한다. 노랑묵은 완산팔미(完山八味) 중의 하나로 전주비빔밥에 빠져서는 안 될 재료이다. 원래 녹두는 해독식품으로 간장과 신장에 그 효능이 널리 알려져 있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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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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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정월대보름에 아이들이 이웃 마을과 횃불을 만들어 싸움을 하던 놀이. 정월대보름 며칠 전부터 대나무 빗자루나 싸리 빗자루를 이용하여 홰를 만든다. 정월대보름 저녁에는 홰에 불을 붙여 두 손으로 잡고 횃불을 돌리면서 마을 경계에 있는 들판이나 하천으로 나간다. 횃불을 돌리면서 상대 마을에 욕을 하기도 하고 약을 올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웃마을과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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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회가(晦可), 호는 간송(澗松). 도제조 무안군 정남만의 후손이며, 정산택(丁山澤)의 아들이다. 정사달은 효성이 지극하고 문행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정사진과 함께 조경남과 김완을 따라 궁장동으로 들어가서 많은 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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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회경. 전적 방원정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이때 아버지 방원정도 문과에 함께 합격하였다. 평소 뜻을 배움에 두고, 옛것을 믿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였다. 효행과 우의를 아울러 다하였는데, 상제(喪祭)에 이르러서는 옛날의 예의를 한결같이 지키고자 하였다. 향리(鄕里)의 크고 작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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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장례식 때 관을 묻고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상여 소리의 하나. 달구질은 매장한 관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장사를 지낸 후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분묘의 형태가 변하거나 뭉개지지 말라고 차곡차곡 다져 주는 장례식 행위의 하나이다. 흙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석회를 흙에 섞어서 다져 주기도 하기 때문에 ‘회다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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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빨치산 지휘관. 본관은 장수. 호는 회당(悔堂).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에서 아버지 황달주(黃達周)와 어머니 슬하에서 1923년 9월 10일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의지의 집안은 중농 정도의 살림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민족 의식이 대단하여 사재를 털어 마을에 명신재(明新齋)라는 사립 학교를 만들고 선생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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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 출신 박동눌의 시문집. 박동눌(朴東訥)[1734~1799]은 전라북도 남원군 수지면 호곡 출신으로 송암 박문수의 후손이다. 자는 민보(敏甫), 호는 회만재(悔晩齋)이고,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1722~1791]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학행으로 알려졌다. 이세서(李世瑞)의 서와 5세손 박광식(朴光植)의 발문을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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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용회(用晦), 호는 회산(檜山). 아버지는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 정세명(丁世明)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전적(承文院典籍)이 되었다. 성균관전적·호조좌랑을 거쳐 1537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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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회중(晦仲), 호는 회산(晦山). 세종의 왕자 영해군 당의 5세손이며, 구성의 수령을 지낸 이성의 손자이다. 돈용교위(敦勇校尉) 이경하의 아들이다. 이휘는 타고난 재주가 뛰어났고 남달리 용기가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잘하여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1611년(광해군 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성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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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회산마을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 유적은 회산마을의 북쪽에 동서로 뻗어 있는 야산에 자리한다. 능선의 정상부를 기준으로 덕과면 만도리 산수동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적은 주로 산의 남쪽 사면에 분포하며, 동서 200m, 남북 50m 내외의 범위에서 확인되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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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남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회중(晦仲), 호는 회산(晦山). 세종의 왕자 영해군 당의 5세손이며, 구성의 수령을 지낸 이성의 손자이다. 돈용교위(敦勇校尉) 이경하의 아들이다. 이휘는 타고난 재주가 뛰어났고 남달리 용기가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잘하여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1611년(광해군 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성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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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신재효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하나로 연행되던 「변강쇠가」를 판소리 사설로 정착한 작품.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이나 「가루지기타령」, 「송장가」, 「횡부가(橫負歌)」라고 불리기도 한다. 「변강쇠가」는 원래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곡으로,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백장암 계곡이 주요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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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효촌리는 조정에서 최시옹(崔是翁)의 며느리에게 효부상을 내린 이후, 효부가 난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효촌과 신기의 이름을 따서 효기리라 하였다. 본래 남원군 백암면 지역으로 효기리는 신기리에, 효촌마을은 효촌리에 속했던 지역이다. 새터 또는 응령역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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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 유적은 효기리의 동쪽 효기 저수지 북쪽에 있는 야산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은 험준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3.5㎞ 떨어진 지점에는 초촌리 고분군 이 있으며, 남쪽으로 2㎞ 떨어진 지점에는 효촌 고분군이 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유적은 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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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 문수동 마을에 있는 가야계로 추정되는 고분군. 유적은 문수동 마을 뒤쪽 계단식 논을 건너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동쪽의 해발 고도 490m의 옥녀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으로 문수동 마을에 이르러 문수동골(소동골)이라는 곡간을 형성한다. 유적은 이 곡간의 북쪽을 감싸고 있는 구릉의 남사면에 분포한다. 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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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에 있는 저수지. 효기저수지는 1962년 1월 1일에 준공되었으며, 사업 시행과 조사 측량 설계와 공사 감독은 남원군에서 맡았다. 효기저수지는 이백면 효기리 효촌마을 북동쪽 귀목골에 위치하고 있다. 수계는 섬진강이며 유로 연장 3.5㎞, 제체 형식은 토언제중심점토형이다. 총저수량 225천㎥, 유효 저수량 223천㎥,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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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왕족.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示+甫)[1396~1486]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모두에게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또한 효령대군은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한 까닭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본관은 전주. 초명은 이호(李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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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방진영의 시문집. 방진영(房鎭瑩)[1891~1918]은 전라북도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 출신이다. 자는 성학, 호는 효산(曉山)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하궤 윤영철의 문인으로 재명이 높았다. 엄명섭(嚴命涉)·김우정(金遇正)의 서문에 아들 방인원(房仁源)의 발을 붙여 1991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하였다. 필사본을 영인한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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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에 있는 노인 전문 요양원. 가정과 사회에서 방치된 노인들과 치매, 뇌졸중 등 중증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가정의 어려움과 이로 인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합니다’라는 원훈을 정하여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가정 복지 증진을 통한 지역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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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예(禮)에 어긋나지 않게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아들을 일컫는 말. 효(孝)는 전통 시대에 인륜의 가장 근본이 되는 항목으로 여겼다. 『소학(小學)』에서는 효를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과 “물 뿌리고 걸레질을 스스로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위정」편에는 효를 가리켜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무위(無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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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효기리 문수동 마을에 있는 가야계로 추정되는 고분군. 유적은 문수동 마을 뒤쪽 계단식 논을 건너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동쪽의 해발 고도 490m의 옥녀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으로 문수동 마을에 이르러 문수동골(소동골)이라는 곡간을 형성한다. 유적은 이 곡간의 북쪽을 감싸고 있는 구릉의 남사면에 분포한다. 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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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인 장업의 유고 시문집. 장업(張𢢜)[1633~1702]의 자(字)는 근재(謹哉), 호(號)는 효촌(曉村)으로, 남원시 주생면 유촌(楡村)에서 태어났다. 효우(孝友)에 모범적이었으며, 학문적 재능이 탁월하여 고상한 글을 많이 남겼다. 7대손 장철순(張喆淳)과 장태순(張台淳) 등이 김영한(金甯漢)과 조장섭(趙章燮), 허병(許炳) 등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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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후원(厚源), 호는 풍와(楓窩).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안벽(安璧)이다. 안신손은 뜻이 크고 기개가 있었으며 주부(注簿)를 역임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남원부에서 군사와 군량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兵使: 병마절도사의 이칭) 이복남에게 달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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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후잠(后潛),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方貴溫)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참판에 증직된 방덕유(房德騟)의 아들이다. 방원량은 조찬한(趙讚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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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서학붕의 시문집. 서학붕(徐學鵬)[1804~1868]은 원래 남창 출생이나 전라북도 남원으로 옮겨와 살았다. 자는 남구(南九), 호는 후재(厚齋)이고, 본관은 이천(利川)이다. 학행으로 알려졌다. 유고는 문석린(文錫麟)의 서와 아들 서영환(徐永煥)과 손자 서치동(徐致同)의 발문을 붙여 1949년에 간행하였다.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유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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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노(仲魯), 호는 후천(後川). 용성정(龍城正) 이열(李悅)의 아들이다.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大新里) 상신마을은 영해군 이경여(李景輿)가 정착한 곳으로, 전주이씨 영해군파의 집성촌이다. 어려서부터 풍채가 준수하였고, 도량이 넓고 호방하였으며, 말주변이 훌륭하여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고금을 널리 살펴보아 때에 힘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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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영중(永仲), 호는 후촌(後村).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후손이고, 암계(巖溪) 최연손(崔連孫)의 6세손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부윤(府尹)을 지낸 최엄조(崔淹祖)의 5세손이다. 참의(參議) 최태윤의 증손이며, 처사(處士) 최염의 아들이다. 최계인은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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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숙(輝叔), 호는 폄재(砭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7세손이며, 교리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의 아들이다. 최온은 1583년(선조 16)에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남다르더니 나이 11세에 명나라 장수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 아이는 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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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건강과 오락, 휴식을 위해 지정·조성된 산림. 깊은 산 속에 여러 동의 건물을 세워서 자연 속에서 쉬면서 휴식을 할 수 있다. 삼림욕을 하거나 오락,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남원에 조성된 휴양림으로는 남원시에서 운영하는 흥부골자연휴양림과 개인이 운영하는 남원자연휴양림이 있다.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덕두봉[1,1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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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객사 터. 용성관은 조선시대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된 건축물이다. 그 규모가 웅장하여 남원에서는 광한루, 관왕묘와 더불어 고대 건물의 삼걸(三傑)로 불렀다. 이후 불에 타서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쳤다. 용성관을 처음 건립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691년(신문왕 11)인데, 용성관을 휼민관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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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간행된 남원 출신의 시인인 허소라의 첫 번째 산문집. 허소라는 195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흐느끼는 목마』는 1965년에 발간된 저자의 첫 번째 산문집이면서 동시에 전라북도 최초의 산문집이기도 하다. 책이 절판된 이후 초판본과 저자의 두 번째 산문집의 부록을 합본한 증보판이 1998년 출간되었다. 저자는 첫사랑과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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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주변에서 기르는 토종 꺼먹돼지.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재래돼지의 일종으로 고구려시대에 중국 북부지역에서 사육되던 돼지들 중 몸집이 작은 재래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남원지방의 산내, 아영지방의 토착종을 흑돼지 또는 똥돼지라한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이 좋고. 고기의 질이 우수하고 맛이 좋아 주로 식용으로 사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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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안동리와 척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흑송리라 하였으며 1995년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가 되었다. 안계리는 본래 이름이 안가리였으나 마을의 지형이 요천 변에 위치해 있어 기러기가 날개를 접고 백사장에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이름을 안계로 바꾸었다. 약 50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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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 안계마을에 있는 백제의 고분군. 유적은 흑송리 안계마을 북쪽에 인접한 해발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의 서쪽으로 흑송리 산성을 거쳐 1㎞ 떨어진 지점에는 요천이 흐른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본래는 넓은 규모의 고분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2차 조사에서는 민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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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석 혼축성. 『고적조사자료』에 “흑송면 척동리에 개인 소유의 토석 혼축 누성이 있다. 둘레는 약 500간이며, 산꼭대기와 골짜기 하나를 안고 있다.”고 적혀 있다. 송동면 흑송리 척동 21-2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시로부터 서남방 약 5.5㎞ 지점인 옥율천과 요천의 합류지 부근 해발 131m의 용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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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인월면 중군리 경계에 있는 산. 일명 흥덕산(興德山)으로 불리는 덕두봉은 전설에 따르면 산기슭에 있는 ‘용마름산’이 옛적에 자꾸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산을 갈라서 석축을 쌓고 산을 못 움직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을 갈라놓아서 용이 멈추어 형성된 산을 용산(龍山)이라 이름하였고, 현재 축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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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한 마당. 「흥보가」는 「박타령」이라고도 불리는데, 「방이 설화」와 같은 옛이야기가 소리꾼들에 의해 노래로 불리면서 판소리화되었다고 보여지는 작품이다. 「흥보가」는 해학성이 두드러지며, 소리(노래)보다는 아니리(말)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판소리에 비해 큰 특징을 보인다. 판소리 「흥보가」와 관련한 최초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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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은 판소리 「박타령」(「흥보가」)의 사설이 정착되어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이며, 흥부마을은 남원군 아영면 성리와 인월면 성산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지역에는 지금도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작가와 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며 고대로부터 전승되던 설화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의 사설로 창화(唱化)되다가 대본의 정착 단계에서 소설로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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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 있는 건강·오락·휴식을 위해 지정, 조성된 산림. 자연휴양림이란 자연 생태계를 유지, 보전하면서 임산물과 공익재의 생산 공간으로 질서 있게 개발하여 국민의 보건 휴양, 정서 함양, 산림 소유 지역의 소득 향상과 대국민 산림 교육장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이용하는 산림을 말한다. 흥부골 자연휴양림은 기존의 임업 경영 활동과 결합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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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에 있는 『흥부전』을 소재로 하여 만든 공원. 예로부터 남원 지역에서는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가 실존 인물이라고 전해져 옴에 따라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 고증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은 흥부가 출생한 곳이며,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유랑 끝에 정착하여 복을 누리고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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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나온 작자, 창작 연대 미상의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되었으리라고 여겨지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대체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 소설로서 인과응보적 권선징악의 주제와 사상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유교적 윤리 도덕을 내세우는 것만이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당시의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서 몰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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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은 판소리 「박타령」(「흥보가」)의 사설이 정착되어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이며, 흥부마을은 남원군 아영면 성리와 인월면 성산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지역에는 지금도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작가와 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며 고대로부터 전승되던 설화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의 사설로 창화(唱化)되다가 대본의 정착 단계에서 소설로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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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매년 9월 9일 중양절 전후로 열리는 향토 문화 축제.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실시한 고증 용역에서 흥부의 출생지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이고,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라고 발표하였다. 흥부제(興夫祭)는 흥부를 근간으로 한 민속 문화 행사와 시민 화합 행사들이 펼쳐지는 향토 문화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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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중(興仲), 호는 구일(九一).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좌승지에 증직된 방덕린(房德驎)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자원하여 호위하였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備邊郞)에 제수되었다. 이후 선전청선전관(宣傳廳宣傳官)을 지내고, 훈련원습독(訓練院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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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회경(會卿), 호는 만각재(晩覺齋). 칠도병사 소후(蘇後)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생원 소산복이다. 소설의 아버지 소산복은 임진왜란 때에 김천일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먼저 강화도로 들어가서 서울을 복구하여 임금을 서울로 모셔오려고 하는 계책을 세웠는데 중도에서 병을 얻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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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방두천의 시문집. 방두천(房斗天)[1655~1704]은 전라북도 남원군 지당리 출생으로 방응현의 후손이다. 자는 대여(大汝), 호는 희암(希庵)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유동연·이문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학행으로 알려졌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서문과 족종손 방준기(房濬箕)의 발을 붙여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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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지역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조록나무과의 히어리나무. 히어리는 송광납판화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종으로 지리산 지역에서 자란다. 송광이란 조계산 송광사가 있는 곳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어 불리우고 납판화는 꽃잎이 밀납같다는 말인데 두터워 보이는 꽃잎이 그리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송광꽃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북한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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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용정동에 있는 도로. 히어실길은 용정동의 마을 진입로로 용정동 166-1번지에서 용정동 산 56번지까지의 작은 도로이다. 히어실길은 히어실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히어실은 희어실(希魚失)이 와전된 것이다. 마을의 산 능선이 고기와 같으나 고기는 없다는 의미이다. 히어실은 회어실, 정동(程洞)이라고도 하는데, 구룡다리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