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초 ‘방뫼(매)’로 불렀으며 이를 ‘꽃 방(芳)’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터가 바구니(속칭 소쿠리)처럼 생겼다하여 바구니터로 전해진다. 1660년경 광산김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고 하며, 1710년경 밀양박씨와 문화류씨(文化柳氏)가 이주하여 왔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견소곡면 지역으로 방메...
-
전라북도 남원에서 여성들이 바느질할 때 심심풀이로 부르는 민요. 남원 지역에서 채록된 「바느질 노래」는 여성들이 하는 집안일로서의 바느질이란 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노래이다. 다만 바느질을 하면서 불렀다는 이유로 제목을 「바느질 노래」라고 정한 것뿐이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창자는 아영면 월산리에 사는 김순임(여, 48세)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阿英面) 인풍리(引風里)에 속하는 행정리. 내인리는 매산리·외인리와 함께 법정리인 인풍리에 속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며, 아영면의 관문이다. 고려 1380년(우왕 6)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이 곳의 바람을 끌어와 그 바람을 이용하여 왜장 아키바쓰[阿只拔都]를 물...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阿英面) 인풍리(引風里)에 속하는 행정리. 내인리는 매산리·외인리와 함께 법정리인 인풍리에 속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하며, 아영면의 관문이다. 고려 1380년(우왕 6)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이 곳의 바람을 끌어와 그 바람을 이용하여 왜장 아키바쓰[阿只拔都]를 물...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용산리, 인월면 중군리, 산내면 내령리의 경계에 있는 산. 바리봉을 운봉사람들은 산 모양새가 마치 ‘삿갓’처럼 보인다 하여 삿갓봉으로 부른다. 또한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는 의미의 바리봉인데 음이 변하여 바래봉으로 불리우고 있다. 백두대간 맥에서 보면 고남산과 노치마을의 수정봉을 지나 평지분수계...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 바래봉에서 매년 4월 말부터 5월 중순경 개최되는 생태 자연 축제. 지리산 바래봉은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다. 바래봉은 ‘발산(鉢山)’이라고도 하며 봉우리 모양이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속칭 ‘삿갓봉’이라고도 하는데, 삿갓봉은 승려들이 쓰고 다니던 삿갓 모양...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용산리, 인월면 중군리, 산내면 내령리의 경계에 있는 산. 바리봉을 운봉사람들은 산 모양새가 마치 ‘삿갓’처럼 보인다 하여 삿갓봉으로 부른다. 또한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는 의미의 바리봉인데 음이 변하여 바래봉으로 불리우고 있다. 백두대간 맥에서 보면 고남산과 노치마을의 수정봉을 지나 평지분수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술(而述), 호는 초곡(草谷). 관찰사(觀察使) 행촌(杏村) 박자량(朴子良)의 후예로 참의(參議) 박숭조(朴崇祖)의 손자이다. 박계성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예(禮)로써 몸을 다스려 당세에 이름을 떨쳤으며, 관직은 사직(司直)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털어 병기를 주...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박권영은 형 박기영과 함께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지휘, 지도하였다. 산서면의 독립 만세 운동에는 박정주, 이길선, 정봉수, 정호현, 이상일 등이 가담, 주동을 하였는데, 박권영은 이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보내주면서 거사를 지도하였다. 3월 23일 남원 천도교가 주최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孫)의 후손이며, 밀산군(密山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기수는 힘이 세고 병서를 두루 읽어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형 박흥남(朴興男)과 함께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적을 세웠다. 박기수는...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장터에서 유생 박정주, 안성섭 등의 주동으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해 8월경 서울에서 이충모, 김형준, 양재명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박기영은 장병준을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여 국내의 제반 정세를 보고하게 하고, 상호 연락을 갖...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성(密城). 호는 백헌(栢軒). 증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조부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박이(朴頤), 부는 박경(朴慶)이다. 박기화는 성품이 굳세고 절개가 꿋꿋하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학식이 깊었다. 농암(聾庵) 이현보(李賢輔)와 교제하였다.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중옥(仲玉). 송암(松菴) 충현공(忠顯公) 박문수(朴門壽)의 10세손이고,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贈職)된 초곡(草谷) 박계성(朴繼成)의 증손이며, 처사(處士) 박유양(朴惟讓)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찬성(贊成) 박건(朴楗)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에 경상도 밀양부 동강방에서 출생하였으며, 뒤에 부모를 따라 남원부 보현방 벌촌마을로 이거(移居)하였다 9살 때 부친이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병석에 누워 있자 그는 밤낮으로 옆에서 간병하면서 자신을 대신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친의 병세가...
-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안선(朴安瑄)이다. 박말선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마을 뒷산에 초막을 지어 3년간을 그곳에서 살면서 국상을 슬퍼하여 마치 부모상을 당한 것과 같이 예절을 갖추었다. 또한 동료나 친구의 죽음에도 3일간을 소식하며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1566년(명종 21) 명나라 황제 세종(世宗)이 승하하자 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회경. 전적 방원정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는데, 이때 아버지 방원정도 문과에 함께 합격하였다. 평소 뜻을 배움에 두고, 옛것을 믿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였다. 효행과 우의를 아울러 다하였는데, 상제(喪祭)에 이르러서는 옛날의 예의를 한결같이 지키고자 하였다. 향리(鄕里)의 크고 작은 일...
-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송암, 시호는 충현. 남원에서 세거한 죽산박씨의 조상이다. 박문수는 고려 말에 우정승을 지냈으나, 조선 개국 후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절개를 지켰다. 조선 개국 후 아들 박포가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대항하다가 참수당했다. 당시 박문수의 손자인 박자량이 전라관찰사였는데, 숙부 박포...
-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숙(仁淑). 승지(承旨) 강수(江叟) 박훈(朴薰)의 후손이며, 박태성(朴泰成)의 아들이다. 박상채는 천성이 굳세고 무예가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태정(朴泰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진사(進士) 오상복(吳尙福)을 찾아가 “적이 팔량치(八良峙)를 넘어오면 남원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춘향전」의 근원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색터 설화」는 남원에 있는 박석고개에 얽힌 이야기이다. 「지리산녀 설화」, 「노진 설화」와 함께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의 근원 설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박색터 설화」는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와 차정언(車鼎言)의 『해동염사(海東艶史)』에 실려 있는데...
-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과 사매면 대율리 사이의 고개. 박석치는 비포장 시절에 고갯마루가 지표유출에 의한 토양침식으로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아놓은 데서 유래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옛 시·군의 경계를 했던 춘향터널을 지나면 박석치가 있다. 여기서 좀 지나면 고대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오리정이 있다. 지금은 19번 국도가 남북 방향...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춘향전」의 근원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색터 설화」는 남원에 있는 박석고개에 얽힌 이야기이다. 「지리산녀 설화」, 「노진 설화」와 함께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의 근원 설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박색터 설화」는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와 차정언(車鼎言)의 『해동염사(海東艶史)』에 실려 있는데...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고종 28) 통사랑(通仕郞)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박석규는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일본군 헌병대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빼앗은 무기로 무장하고 그 길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히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에...
-
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과 사매면 대율리 사이의 고개. 박석치는 비포장 시절에 고갯마루가 지표유출에 의한 토양침식으로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아놓은 데서 유래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옛 시·군의 경계를 했던 춘향터널을 지나면 박석치가 있다. 여기서 좀 지나면 고대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오리정이 있다. 지금은 19번 국도가 남북 방향...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춘향전」의 근원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박색터 설화」는 남원에 있는 박석고개에 얽힌 이야기이다. 「지리산녀 설화」, 「노진 설화」와 함께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의 근원 설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박색터 설화」는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와 차정언(車鼎言)의 『해동염사(海東艶史)』에 실려 있는데...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군극(君極). 부원군(府院君)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된 박검종(朴檢宗)의 아들이다. 박세중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용기가 있었으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
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집안 전래의 고문서. 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의 고문서이다. 첫째, 공신녹권(功臣錄券) 2건과 둘째 교지(敎旨, 1623~1647) 11건, 셋째 완문(完文, 1846~1857) 3건, 넷째 호적단자(戶籍單子, 1747~1801) 7건,...
-
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집안 전래의 고문서. 전라북도 남원시의 밀양박씨 무은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의 고문서이다. 첫째, 공신녹권(功臣錄券) 2건과 둘째 교지(敎旨, 1623~1647) 11건, 셋째 완문(完文, 1846~1857) 3건, 넷째 호적단자(戶籍單子, 1747~1801) 7건,...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화(尙和), 시호는 충정(忠靖). 밀성군(密城君) 박언침(朴彦沈)의 고손자이고, 예조참판(禮曹參判) 박광영(朴光榮)의 손자이며. 군수(郡守) 박난(朴蘭)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나성령(羅城令) 이지(李漬)이고, 처부(妻父)는 조언국(趙彦國)이다. 박숭원은 1564년(명종 19)에 문과(별시 병과)에 급제하...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효녀. 양씨는 무인(武人) 박승선(朴承善)의 아내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지병인 풍병(風病)을 앓고 있었는데,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출가한 그녀에게 와서 의지하였다. 양씨는 손과 발이 불편한 어머니를 항상 보살폈으며, 추운 계절이건 더운 계절이건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였다. 또한 자신은 거친 무명으로 만든 짧은 옷을 입으면서도 어...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성빈(聖彬), 호는 지은당(智隱堂). 정유재란 때 순절한 박계성(朴繼成)의 후손이며, 박사현(朴思賢)의 아들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박시채는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동 수십 명을 거느리고 사재를 털어 군량을 마련하여 남원성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같은 고을의 의사 70여 명...
-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안선(朴安瑄)이다. 박말선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마을 뒷산에 초막을 지어 3년간을 그곳에서 살면서 국상을 슬퍼하여 마치 부모상을 당한 것과 같이 예절을 갖추었다. 또한 동료나 친구의 죽음에도 3일간을 소식하며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1566년(명종 21) 명나라 황제 세종(世宗)이 승하하자 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엽(慶燁). 이조판서 난계 박연의 후손이며, 박성신(朴聖臣)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을 당하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숙부 박성재, 사촌 동생 박상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사 오상복을 따라서 팔량치에 나아가 같은 고...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부(敬夫).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9촌 조카인 사간(司諫) 박린(朴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고향에 돌아와 벼슬길을 단념하며 살았다. 세상에서는 박유홍과 박린을 ‘일문의 쌍절’이라 칭송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사칙(士則). 헌납(獻納) 박증영(朴增榮)의 고손자이며, 이조판서에 증직된 박훈(朴薰)의 증손이다. 박은종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장(部將)에 이르렀다. 이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적이 하동으로 침입해오자, 장사 300명을 모아 무기를 갖추고 구례 석주(石柱)로 나아가 막았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박자량은 어린 시절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마을 아이들과 놀 때에도 경사에 있는 말을 외워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주역(周易)』을 연구하여 천문과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서삼경과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독하여, 독서를 시작하면 침식을 잊었다.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을 지냈고, 이어서 전라관찰사에 제수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석은 박기영과 함께 대한국민회 전주지부를 부활시켜 비밀리에 지주들을 상대로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전경도를 통하여 전달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그들은 먼저 모금 대상 지주들에게 모금의 취지를 안내하는 서한을 보낸 뒤, 지주들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로 하였다. 그 내용은 먼저 친일 행동의 부당성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승문원교리를 지낸 박양(朴良)의 13대손으로, 진사 박홍규(朴洪奎)의 아들이다. 1919년 3월 19일 산서면 동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안성섭(安成燮)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해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예경(禮卿). 정국공신(靖國功臣) 좌찬성(左贊成) 밀원부원군(密原府院君) 박건(朴楗)의 7세손이고, 진사(進士) 박용현(朴庸賢)의 증손이다. 대동찰방(大同察訪) 박석봉(朴碩鳳)의 손자이며, 훈련부장(訓練部將) 박응사(朴應士)의 아들이다. 아들 박우춘(朴遇春)은 공조좌랑(工曹佐郞)이었고, 손자 박승원(朴昇元)은 생원(...
-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한 마당. 「흥보가」는 「박타령」이라고도 불리는데, 「방이 설화」와 같은 옛이야기가 소리꾼들에 의해 노래로 불리면서 판소리화되었다고 보여지는 작품이다. 「흥보가」는 해학성이 두드러지며, 소리(노래)보다는 아니리(말)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판소리에 비해 큰 특징을 보인다. 판소리 「흥보가」와 관련한 최초의 기...
-
『흥부전』은 판소리 「박타령」(「흥보가」)의 사설이 정착되어 이루어진 판소리계 소설이며, 흥부마을은 남원군 아영면 성리와 인월면 성산리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지역에는 지금도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작가와 연대 미상의 고소설이며 고대로부터 전승되던 설화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의 사설로 창화(唱化)되다가 대본의 정착 단계에서 소설로 기록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시인.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수지중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낸 뒤 원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일생을 보냈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에 「눈」이 당선된 이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 시조 「노고단」과 「문장대」가 각각 당선되어 문학적 역량을 널리 떨쳤다. 그는 원광대학교 내에 ‘만경강’, ‘원광문학회’ 등의 학생 문학...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석윤(錫胤), 호는 구암(龜巖). 절도사(節度使) 박대손(朴大遜)의 후손이며, 밀양군(密陽君) 박춘성(朴春成)의 손자이다. 박흥남은 어려서부터 담력이 있고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장군을 따라 이치(梨峙) 싸움에 나아가 많은 공을 세웠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공연된 아내의 헌신적인 가족애를 다룬 연극. 「반녀의 봄」은 극단 둥지의 열두 번째 정기 공연으로 기획에는 김영수, 작가는 남정희가 참여하여 1990년 10월 둥지 아트홀에서 일주일간 공연되었다. 주요 배우로는 조윤미·안승우·마신자·하수진·지영배·김구영·최미희 등이 출연하였으며 공연 시간은 약 90분 정도였다. 둥지 아트홀 개관 이후 두 번...
-
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는 곰과에 속하는 동물. 우리나라. 동부 시베리아, 중국, 캄보디아, 태국과 히말라야, 대만, 일본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부근, 설악산, 지리산 등지에 분포하며, 대개 1,500m 이상의 높은 산악 지대에서 생활한다. 짙은 검은색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지만 가슴에 뚜렷한 반달 모양의 흰 무늬가 있어서 반달가슴곰이라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반선(半仙)은 본래 반산(半山)이었으며 일명 금포정(錦袍亭)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반선 입구인 지금의 전적기념관 위치쯤에 송림사(松林寺)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 불심이 가장 두터운 스님 한 사람이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실제로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송림사...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 반야봉의 지명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선유(善由), 호는 삼괴(三槐). 봉사(奉事) 방덕이(房德駬)의 아들이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는 담양 출신으로 등재되어 있다. 『호남절의록』에는 천계(天啓) 갑술년에 무과에 급제한 것으로 되어 있다. 1624년(인조 2)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우후(虞候)로서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을 따라...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양동서당은 1903년(고종 40) 남원진씨(南原晉氏) 가문 내의 시설로서, 당시 진기완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친 지역 사회 초등 교육의 요람이었다. 양동서당은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연동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방귀 잘 뀌는 며느리 이야기. 1979년 8월 1일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연동리에서 최래옥과 강현모가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박태희(여, 55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방구를 잘 뀌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처녀가 방구를 어찌나 잘 뀌던지 혼인하겠다고...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 증조부는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방계문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효행으로 천거되어 현량과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정언·수찬 등을 지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방극용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형갑수 등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일본 군경의 무차별 사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殉國)하였다. 1968년에 대통령 표...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호는 둔세옹(遯世翁). 아버지는 방덕준(房德峻)이다. 방대순의 아버지는 수족이 저리는 병에 걸려 거의 치료 불가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효자인 그는 수소문 끝에 명의(名醫)를 찾아가 그 증세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을 배워 마침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그 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한결같이 옛 예절을 준수하면서 상을 치렀다. 그...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방골[芳洞]과 닥밭골[楮洞]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마을의 서쪽에 꽃을 상징하는 꽃봉[花峯]이 있고, 남쪽에는 매화꽃을 상징하는 매산등[梅山嶝]이 있으며, 마을 주변의 산세가 마치 피어나는 연꽃처럼 보인다 하여 꽃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꽃다울 방(芳)’자와 ‘골을 동(洞)’자를 쓴 방동(방골)이라 한 것이다. 마을의...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 방골마을에 있었던 서당. 1800년에 진순응이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 방골마을에 사숙(私塾)의 형태로 서당을 처음 열었다. 진정표와 진우복 등이 차례로 방동서당의 훈장을 지냈다. 배출한 제자로는 1849년(철종 즉위년) 생원진사과 초시에 합격한 진경복과 1860년(철종 11) 문과 을과에 급제한 진창복이 유명하다. 뒤에 진순응의 후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방로(邦老). 홍문관교리 이척의 증손이며, 한성우윤 이광업(李光業)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정치·이유형·김원중 등과 함께 창의하여 과천에 이르렀으나,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며 돌아왔다. 그후 영달에의 뜻을 끊은 채 산중에서 남은 생애를 마쳤다....
-
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인. 수남방옹(水南放翁) 정훈(鄭勳)[1563~1640]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 연간에 주로 활동했던 문인이다.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모친을 모시고 남원으로 피란하였다가 그곳에 우거하며 생을 마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방로(邦老), 호는 수남방옹(水南放翁). 남...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거(公擧).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주부(主簿) 방후령(房後齡)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진 현감 방복령(房復齡)이 백부이다. 사촌 동생인 방명달(房明達)은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방명선은 1627년(인조 5) 무과에 급제하였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전적(典籍) 방원정(房元井)이다. 방명흡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에도 우애가 깊었다. 그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여 기(氣)가 막히게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어머니에게 드려 목숨을 소생케 했다. 뒤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서는 죽만 먹었고 잠자는 것조차 괴로워하면서 온 정성을 다하여 상례(喪禮)를...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중(興仲), 호는 구일(九一).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좌승지에 증직된 방덕린(房德驎)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자원하여 호위하였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備邊郞)에 제수되었다. 이후 선전청선전관(宣傳廳宣傳官)을 지내고, 훈련원습독(訓練院習...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초 ‘방뫼(매)’로 불렀으며 이를 ‘꽃 방(芳)’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터가 바구니(속칭 소쿠리)처럼 생겼다하여 바구니터로 전해진다. 1660년경 광산김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고 하며, 1710년경 밀양박씨와 문화류씨(文化柳氏)가 이주하여 왔다고 한다. 본래 남원군 견소곡면 지역으로 방메...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열녀. 본관은 반남(潘南). 사인(士人) 방세정(房世挺)의 아내이자, 참판(參判) 박동망(朴東望)의 손녀이다. 방세정의 처 박씨는 혼인한 뒤 몇 개월 되지 않아 남편이 요절(夭折)하였다. 그녀는 손을 가슴에 모은 채 피눈물 속에 하루 밤을 시체를 끌어안고, 음식 한 점을 입에 넣지 않고 죽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다가 목을 매어 죽고자 했으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전파를 통해 공중(시청자)에게 전파하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KBS 남원방송국과 군소 유선방송국이 있다. KBS 남원방송국은 1952년 10월 25일 대통령 제649호에 따라 남원군 남원읍 동충리 305번지에서 최초로 개국했다. 1986년에 지금의 남원시 향교동에 연건평 1,355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청사를 마련...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통속 민요의 하나.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불리는 「방아 타령」에는 경기민요의 하나인 「방아 타령」과 판소리 심청가의 「방아 타령」, 논매는 소리의 하나인 「방아 타령」 등 세 유형이 전해지고 있다.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방아 타령」은 이 가운데 첫 번째 유형인 경기민요에 속한다. 본래 경기민요 방아 타령」은 전문 예능인들에 의해 세련되고 유...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는데, 일 군경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방극용, 방명숙, 방진형 등과 함께 순국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쓰이는 토박이 언어를 통칭하는 말. 방언이란 공통어나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만의 특유한 단어나 언어 사용법을 말한다. 보통 사투리라고도 불리나 이 단어는 규범적인 면에서 다소 비하된 개념이므로 언어학 용어로는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언어학적 방언이란 한 언어가 분지적으로 발달하여 몇몇 개의 지역적으로 다른 언어 체계로 분화되었을 때...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후잠(后潛),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方貴溫)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참판에 증직된 방덕유(房德騟)의 아들이다. 방원량은 조찬한(趙讚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겸(仲謙).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고,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며, 방덕화(房德驊)의 아들이다. 방원익은 관직이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과 1624년(인조 2)의 이괄의 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형 방원진(房元辰)과 아우...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으로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房貴溫)의 증손이며,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방원정은 해서(海西) 오정길(吳廷吉)의 문인으로, 문장과 행의(行誼)로 이름을 떨쳤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현감(縣監) 방구성(房九成)의 후손이며,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방원진은 오정길(吳廷吉)·장경세(張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16세의 나이로 양대박(梁大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가 아버지 상을 당하여 중지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다. 일찍부터 무예에 뛰어났던 방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사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扈從)하였다. 방응언은 난이 끝난 뒤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방귀화(房貴和)이고 아버지는 방한걸(房漢傑)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房元震)이 손자이다. 일찍이 조식(曺植)·이항(李恒)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는 나가지 않았다.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사계천 위에 집을 짓고 송시(誦詩...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운봉읍·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산청군에 걸쳐 있는 산.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하동군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다. 경위도상으로 이 산은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극지(克智), 호는 하천(下川).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방덕일(房德馹)의 아들이다. 방처인은 한강(寒崗)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천거로 참봉(參奉)과 수령(守令)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 유배된 문신. 황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전후해서 조선 건국이 왕권 정통대업의 원칙에 벗어난다 하여 한때 두문동 깊은 골짜기에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관문에 발탁되면서 태조·정종·태종·세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조를 섬겼다. 그는 조선왕조의 확고한 기틀을...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 산록의 꾸지뽕나무에 꽃이 다발지어 있는 것을 보고 ‘꽃다울 방(芳)’자와 ‘마을 촌(村)’자를 써서 방촌(芳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1168년경 예조 판서의 관직을 그만두고 한양에서 내려온 나주박씨(羅州朴氏)가 산록의 꾸지뽕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터를 잡아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나주박씨는 떠나고 금성나씨·밀...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산림이 우거진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전통 주택. 통나무를 ‘井(정)’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어서 층층이 얹고 틈만 흙으로 메워 지은 집이다. 강원도, 울릉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남원의 지리산 일대에도 있었다. 방틀집·말집 혹은 정한식(井韓式)집이라고도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삼한시대에 이런 귀틀집이...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들이 밭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밭농사 소리. 밭매기는 주로 여성들이 힘을 비교적 적게 들이며 오랜 시간 쉬엄쉬엄 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힘을 내거나 동작을 맞추기 위한 여음이 필요하지 않으며, 일하는 사람의 처지나 생활에 공감되는 서정적·서사적 계열의 비기능요가 흔히 불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콩밭매는 소리」라고도 불렀다. 『한국...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 배촌리와 덕촌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650년경에 남평문씨가 처음 이주,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후에 이씨와 문씨 등이 이주해와 오늘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주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촌리·배촌리·상주리·하주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배덕리라 하여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도금양목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원산지는 중국이며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정원수로 심어 길렀다. 겨울 추위에 약하므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많이 심었지만 요즘에는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도 심어 가꿀 수 있다.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백일홍나무라 하며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명칭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꽃 하나하나가 백일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군보(君甫). 판서(判書) 배흥립(裵興立)의 후손이며, 포도대장(捕盜大將) 배시량(裵時亮)의 고손자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함양에 본거지를 두고 남원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이 때에 남원의 진장(鎭將) 손명대(孫命大)는 정치(釘峙)를 지키다가 팔량치(八良峙)로 옮겨 적의 공격에...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칙(士則), 호는 백강(栢岡). 아버지는 첨추(僉樞) 안숙(安橚)이다. 안극효는 1741년(영조 17)의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사헌부의 지평, 장령, 헌납 등 주로 언관직에서 근무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활발한 언론을 펼쳤다. 일찍이 영조와 8촌간인 여천군(驪...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면숙(勉叔), 호는 백계(白溪). 아버지는 주부(主簿) 안삼석(安三錫)이다. 안재도는 학문적으로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다. 그는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방장산(方丈山) 밑 요호(蓼湖)에 은둔하여 일생을 마쳤다. 문헌공(文獻公) 박성원(朴聖源)이 그의 묘비명을 지어 백계처사(白溪處士)라...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산. 덕유산 줄기가 보절면 만행산으로 이어지고, 그 줄기가 도통동 백공산에서 끝난다. 낮은 산이지만 남원의 주산이라 한다. 남원용성고등학교(구 남원농업고등학교) 뒷산으로 남원의 주산이 객산인 교룡산보다 낮아 그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비보 사찰로 도통동의 선원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원용성고등학교와 남원고속버스터미널, 창주서...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사거리. 이전에는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있어 고속 사거리라 하였는데 백공산사거리로 바뀌었다. 백공산은 남원의 주산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그 힘이 객산인 교룡산보다 약하여 허약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선원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 고장에서는 예부터 백공산을 소중히 관리하였으며, 이 지명을 따서 백공산사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백동으로 된 담뱃대를 만드는 기술, 혹은 그 기술을 가진 사람. 연죽(煙竹)이란 일반적으로 담뱃대를 말하며, 백동연죽은 백동으로 만든 담뱃대를 일컫는다. 따라서 백동연죽장이란 백동담뱃대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백동연죽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연죽을 제작하는 장인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남...
-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기운이 높디높은 지리산을 형성하였다. 우리나라의 끝에 지리산이 있고,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지리산이다. 신령스럽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산, 남쪽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산이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은 넓고 장대한 만큼 잘 개척된 주요 등산로만 50여 개 이상에 이른다. 지리산 서쪽의 최고봉 노고단에서 정상인 천왕봉까지 45㎞에 걸친 장...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백암(柏庵). 이강의 아들이다. 성총은 13세인 1646년(인조 24)에 출가하여 전라북도 순창군 취암사에 나아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648년(인조 26)에 방장산으로 들어가 9년 동안 수초(守初) 취미(翠微)에게서 불경을 배웠다. 이후 송광사·징광사·쌍계사 등을 유력하면서 후진을...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의 여원치에서 발원하여 이백면 척문리에서 요천(蓼川)으로 유입되는 지방2급 하천. 백암천은 말봉[334m] 능선을 분수계로 북쪽의 강기천 유역을 제외한 이백면 전체를 유역으로 한다. 북쪽으로는 말봉과 여원치를 오르는 국도 24호선의 왼쪽 능선을, 동쪽으로는 수정봉(水晶峰)[804.7m]을 정점으로 한 운봉분지의 외벽을, 남쪽으로는...
-
전라북도 남원시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도금양목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원산지는 중국이며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정원수로 심어 길렀다. 겨울 추위에 약하므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많이 심었지만 요즘에는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도 심어 가꿀 수 있다.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백일홍나무라 하며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명칭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꽃 하나하나가 백일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고승. 본관은 수원(水原). 법명은 진종(震鍾), 속명은 상규(相奎), 법호는 용성(龍城).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손씨이다. 백용성은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며 심신을 수련하였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한용운과 함께 불교 대표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백우(百友). 절효재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며, 호군 김업상(金業相)의 아들이다. 김만광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러 나선 남원부사가 군좌영에 왔을 때 부장에 임명되었다. 남원부사가 경내에 군사를 거느릴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묻자 모두가 김만광을 추대하였다고 한다. 김만광은 김상...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전에는 산내면의 소재지였으나 지금은 실상사 입구의 마을로 관광객의 탐방이 잦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통혼권, 경제권이 하나여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 없는 동서 문화의 대표적인 융합 지역이었다. 마을 뒤로는 백운산(白雲山)[902.7m]이 있고,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
-
전라북도 남원시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도금양목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원산지는 중국이며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정원수로 심어 길렀다. 겨울 추위에 약하므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많이 심었지만 요즘에는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도 심어 가꿀 수 있다.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백일홍나무라 하며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로 명칭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꽃 하나하나가 백일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마을에 있는 백제의 고분. 유적은 인월면에서 실상사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산내면 대정리 백장마을로 올라가는 진입로에서 동남쪽으로 있는 산의 능선에 위치한다. 이 진입로에서 동남쪽으로 200여 m 떨어진 지점의 산등성이에 또 하나의 고분군이 확인되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불교 암자. 백장암은 실상사 소속의 암자로, 이곳의 백장선원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가장 먼저 문파를 이루어 한국 선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다. 백장(百丈)이라는 이름은 ‘평상심이 도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8세기경 활동했던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 백장 선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에 있는 금동 불상. 백장암은 실상사와 같은 시대인 9세기 초에 창건된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실상사가 폐허가 되었을 때는 약 200년 동안 실상사의 승려들이 이 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백장암 보살좌상은 원래 실상사 백장암 안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997년 5월에 도난당했다가 같은 해 9월에 회수되어 현재 실상...
-
전라남도 남원시 신내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실상사 백장암에서 사용된 청동에 은사(銀絲)를 넣어 만든 향로(香爐). 절에서는 통상적으로 조석 예불(朝夕禮佛)과 사시예불(巳時禮佛) 때에, 그리고 불공을 드릴 때,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의미로 부처님 전(前)에 향을 올려 피우는데, 이때 사용되는 기구가 향로로 향완(香椀)이라고도 한다. 향완은 밥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
-
1882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선의 유고 시문집. 김선(金宣)[1564~1614]의 자는 성시(聖始), 호는 백졸(百拙)·최락당(最樂堂)이며,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백졸집(百拙集)』은 김선의 손자들인 김익환(金益煥)·김익래(金益來)·김태기(金兌淇)가 편집하여 1882년(고종 19)에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
삼동굿 놀이는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의 삼동굿 놀이 보존위원회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지네가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일 년에 한 번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삼성(양촌마을·음촌마을·개신마을)의 세 동자를 앞세우고 입신양명 및 마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삼동마을 기세배, 당산제, 우물굿, 삼동서기, 지네밟기, 합굿(마당밟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삭령(朔寧). 자는 백첨(伯瞻), 호는 매와(梅窩). 영의정 최항(崔恒)의 후손이며, 통덕랑(通德郎) 최명기(崔命基)의 아들이다. 최여대는 강직하고 굳세며 문행이 있었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영남과 호남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요충지가 되는 남원의 안전을 걱정하여 바로 남원부로 들어갔다. 그는 남원부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열녀. 17세에 오익한의 첩이 되었는데, 결혼 후 남편이 병을 얻게 되자 그녀는 지성을 다하여 병을 구완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남편이 죽자 시체를 끌어안고 3일 밤낮을 지냈으며, 복상 3년을 하는 동안 내내 울부짖었다. 남편의 적자(嫡子)를 사랑으로 길렀으며 남편이 살아있을 때처럼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대하였다. 주위에서는 나이가 어려서 혼자 살 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성(密城). 호는 백헌(栢軒). 증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조부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박이(朴頤), 부는 박경(朴慶)이다. 박기화는 성품이 굳세고 절개가 꿋꿋하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학식이 깊었다. 농암(聾庵) 이현보(李賢輔)와 교제하였다.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성이 위험에 처하...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현(伯顯). 할아버지는 참봉 오몽인(吳夢仁)이고 아버지는 참봉 오기복(吳麒福)이다. 어머니는 금산김씨(錦山金氏)로 김성원(金聲遠)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적에게 포위되자 성 안에서 군량 보급을 맡으며 접반사 정기원 등과 힘을 합하여 성을 지켰다. 틈을 내어 집으로 돌아가서 늙은 아...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백형(伯亨). 영의정 양운(梁運)의 후손이며 참봉 양대충(梁大冲)의 아들이다. 행의로 천거되어 찰방에 제수되었고, 이어서 문과에 급제하여 양덕현감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을 따라서 금산으로 나아가 병사들의 앞에 서서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금산전투의 공을...
-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천문·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하였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다. 안지(安止)·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음으로써 국어·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하...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렁이로 변신하여 복수를 하는 사람 이야기. 1979년 최래옥이 채록하였으며, 『한국구비문학대계』(전라북도 남원군편) 5-1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산에 갔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소변을 보았다. 그런데 산에 갔다 온 뒤로는 저녁만 되면 어떤 청년이 창문으로 넘어와서 여자를 괴롭혔다. 마침내 임신을 한...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계곡.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반선(半仙)은 본래 반산(半山)이었으며 일명 금포정(錦袍亭)이라고도 하였다. 옛날 반선 입구인 지금의 전적기념관 위치쯤에 송림사(松林寺)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는 매년 칠월 백중날 불심이 가장 두터운 스님 한 사람이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실제로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송림사...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뱀사골에서 매년 10월 중순 이후 열리는 단풍 축제. 수목이 화려하고 계곡이 깊은 뱀사골의 단풍은 지리산의 다양한 수종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뱀사골만의 오묘한 풍취를 자아낸다. 지리산 뱀사골 단풍제는 매년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지리산 뱀사골의 단풍을 관광 자원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1977년 10월 대한산악연맹 전북연맹 남...
-
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국립공원에 있는 숙박 시설. 지리산을 등반하는 등산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대피소 기능을 하기 위해 1978년 10월 8일에 반야봉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초기에는 조립식 철제 건물로 지었으나 1985년에 보수, 개축하였다. 면적은 149㎡이며, 8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500원이며, 침낭과 모포를 대여해 주고...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반선과 뱀사골의 지명유래담 지리산이 걸쳐 있는 경상남도 함양과 전라남도 구례, 전라북도 남원에는 이성계와 관련한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뱀사골의 유래」는 이성계의 개국을 반대하던 지리산 산신령이 이성계가 등극한 뒤 귀양을 가게 되면서 전개되는 신이담이면서 변신담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1979년 5월...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에 속하는 행정리. 벌촌리는 낮은 야산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방향으로 1.5㎞ 지점에 위치해 있다. 조선 중엽 명감도사가 벌촌리를 지나다가 지형이 뗏목(배)처럼 생겼다 하여 뗏목마을, 뗏몰이, 뗏말로 불렀다고 한다. 차츰 시간이 흘러 뗏목 벌(筏)자를 써서 벌말, 벌촌으로 바뀌었다. 고려 말 최영 장...
-
조선 중기 노진이 가을 국화를 보며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작품. 노진(盧禛)[1518~1578]의 『옥계집(玉溪集)』 권1에 전한다. 黃菊開時晩 嚴霜尙未萎 空庭步凉月 憑爾付心期 (황국은 피는 시기도 늦은데/찬 서리 속에서도 시들지 않네/차가운 달빛 아래 텅 빈 뜰을 거닐다/너에게 마음을 주어 볼까 하노라) 먼저 첫째 구와 둘째 구에서는 늦가을에 피어서 서리를 맞으면서도...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일부종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유희요. 「범벅 타령」은 경기 잡가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불리는 유희요이다. 창부 타령조와 비슷한 곡으로 곡조의 변화가 적고 같은 선율이 반복되고 있다. 외간 남자가 잘 먹는 범벅을 만들어 바친다면서 달마다 만들 수 있는 범벅의 이름을 차례대로 늘어놓는다고 해서 「범벅 타령」으로 불린다.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
고려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승려. 속성은 이씨, 본관은 남원(南原). 이덕순(李德順)의 아들이다. 현휘는 영각산사(靈覺山寺) 심광(深光)에게 출가하여, 898년(효공왕 2)에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 그의 계행이 청정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그가 10여 명과 함께 난리를 피하여 무주에 이르렀는데, 도둑떼의 습격을 받아 함께 간 동행이 차례로 죽었다. 그의...
-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 선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법고(法鼓). 법고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중 하나로서 북의 지름이 대개 1m 이상이며 큰 것은 180㎝를 넘는다. 북통의 길이가 지름보다 더 긴 것이 특징이며 대체로 40㎝쯤 되는 북채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나누어 쥐고, 북면과 북통의 모서리 부분을 치기도 하고, 북통의 모서리에 박힌 못을 돌려가...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사거리. 동충동에 위치한 남원법원의 이름을 따서 법원사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용성로와 향단로가 교차하는 사거리로 남원법원 정문 왼편에 위치한 십자형 교차로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여성들이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동요.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는 두 편의 「베틀가」가 수록되어 있다. 한 편은 최래옥과 강현모가 산동면 대기리에 사는 소원순(여, 69세)으로부터 채록하였고, 또 한 편은 최래옥과 김호선이 산동면 대촌리에 사는 황판애(여, 82세)로부터 채록하였다. 「베틀가」는 이야기가 담긴 서사 민요로 분류된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수확기에 벼를 베면서 부르는 논농사 소리. 전라북도에서 벼를 벨 때 부르는 민요로 유명한 노래는 군산과 익산, 김제 지역에서 불리는 「벼 베는 산야」이다.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벼 베는 소리」는 경기민요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불리는 통속 민요인 「풍년가」로 보인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창자는 대산면 풍촌리 독산마을에...
-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송(碧松). 고려 숙종 때의 윤관(尹瓘)의 손자로, 남원부사를 지낸 윤언순(尹彦純)의 아들이다. 1176년(명종 6)에 겨우 1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국자감박사가 되어 국사를 편찬하는 임무를 맡았다. 신종대에 전국 도처에서 민란이 잦아 남원부도 경내가 소란스러웠다. 이때 신종이 윤위로 하여금 남원의 반란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계곡에 있는 공원. 백장골은 「변강쇠 타령」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지역으로, 변강쇠가 옹녀를 만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좁고 기다란 백장골계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옹녀의 옥문을 연상하게 된다. 변강쇠 백장공원은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편인 「변강쇠 타령」을 상징화한 공원이다....
-
조선 말기에 신재효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하나로 연행되던 「변강쇠가」를 판소리 사설로 정착한 작품.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이나 「가루지기타령」, 「송장가」, 「횡부가(橫負歌)」라고 불리기도 한다. 「변강쇠가」는 원래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곡으로,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백장암 계곡이 주요 무대이다...
-
조선 말기에 신재효가 판소리 열두 마당 중 하나로 연행되던 「변강쇠가」를 판소리 사설로 정착한 작품.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이나 「가루지기타령」, 「송장가」, 「횡부가(橫負歌)」라고 불리기도 한다. 「변강쇠가」는 원래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곡으로,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있는 백장암 계곡이 주요 무대이다...
-
전라도 남원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본관은 장연(長淵), 자는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참판(參判)을 지낸 수정(水亭) 변처후( 邊處厚)의 5세손이며, 생원(生員) 변호(邊灝)의 아들로 1529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남원의 운봉(雲峰) 도탄(桃灘)에 살았으므로 도탄선생이라 칭하였다.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옥계(玉溪) 노진(盧禛)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한 마당. 「수궁가」는 지역에 따라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토별가」 등으로 불리는 판소리이다. 남원이 배출한 걸출한 소리꾼이었던 조선 후기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인 송광록과, 철종 때의 명창인 송광록의 아들 송우룡, 고종 때의 명창인 송우룡의 아들 송만갑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 신앙 대상물. 대개 솟대는 마을 입구에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장승이나 선돌, 탑(조산), 신목 등과 함께 세워져 마을의 하당산이나 상당산의 주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동제 모실 때에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해서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남원에는...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된 이야기. 「병아리 하나로 부자 된 이야기」에는 특별한 공간이나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31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수(奇叟), 호는 병암(屛巖). 만육(晩六) 최양(崔養)의 후손이며, 교수(敎授) 최경선의 아들이다. 최담령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용장(忠勇將) 김덕령(金德齡)과 함께 일어나 격문(檄文)을 돌려 의병 수천 명을 모았다. 또한 집안의 재산을 털어서 군수 물자를 보급하였다. 그리고...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에 있었던 서당. 1890년에 유환익이 마을 유지들과 뜻을 모아 남원시 운봉면 가산리에 병암재를 설립하였다. 오백지가 훈장으로 부임하여 학동들을 가르쳤으나, 1930년 2월 일제가 수차례에 걸쳐 서당의 해산을 요구하고, 오 훈장을 납치하려 하자 훈장이 피신하면서 서당이 폐설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질병의 예방과 재활(再活)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 「의료법」제3조 4항에 의하면 ‘병원, 치과병원 또는 한방병원이라 함은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각각 그 의료 행위를 행하는 곳으로서, 입원 환자 2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의료 기관을 말한다. 의원은 통상 병상 수가 20개 미만인 병원을 말하며, 일상적...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견(景見), 호는 만은(灣隱). 할아버지는 영상 이준경(李浚慶)이고, 아버지는 도승지 이덕열(李德悅)이다. 1633년(인조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였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집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정진했다. 형인 이사성(李士星)과 함께 남원시 주포(周浦...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남원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여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보다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거나 증진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활동. 남원 지역의 보건의료는 남원시 조산동에 있는 남원시 보건소와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남원의료원이 그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남원시 보건소는 1999년 9월 1일 신축,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약 2,223㎡...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보국(補國), 호는 청세정(淸洗亭). 문충공 오효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찬성 오협종이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태어났다. 오연경은 성품이 우아하고 행실이 단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렸다. 자라서는 학문에 힘써 경서와 사기를 두루 익히어 큰 뜻을 통달했다. 1600년(선조...
-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1976년경 남원시 왕정동의 대복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당시까지 대복사의 주지였던 승려 월호와 보살 견성화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한국불교 천태종을 종단으로 하는 보문사를 창건하였다. 지리산과 남원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은 보문사는 아직 대웅전도 없을 정도로...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보일(輔日), 호는 삼봉. 순창군 팔덕면 사정리 출신으로, 문량공 강희맹(姜希孟)의 6세손이며, 성균관 생원 와서별좌 강덕인(姜德麟)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인 강대한과 함께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의군진이 있는 금산으로 가서 싸웠으나, 7월 10일 중과부적으로 전세가 불리...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보절면에서도 특히 천황골은 친환경 농업 체험과 허브 웰빙 농산물을 생산하는 친환경 농업 지역이다. 또한 전통 농촌문화 체험 테마마을인 추어마을에서는 최상의 추어요리와 미꾸라지잡기, 밤따기, 고구마캐기, 황토길 걷기, 천황봉 등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남원군(南原郡) 보현면(寶玄面)과 고절면(高節面)에서 한...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보절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고절면의 13개 리(里)와 적과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보절면이라 하였다. 이와 동시에 9개 리로 개편하였고 황벌리에 면사무소를 두었다가 신파리 상신으로 옮겼다. 1995년 1월 1...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에 있는 석재 가공 단지. 석재는 건축·토목 및 기타 제작에 사용되는 돌로, 구조용으로보다는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외관이 장중·미려하고 마모·풍화에 강하며 최근 가공 기계의 발달에 따라 점차 그 이용이 증가되고 있다. 남원 지역의 석재업체는 영세성으로 인해 자생력이 부족하고 소규모 업체의 난립으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에 어...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사제와 동행하는 교원과 활기차고 깨끗한 학교를 기반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미래 사회를 주도할 슬기로운 인간을 육성한다. 1971년 12월 27일 보절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72년 3월 10일 초대 김봉만 교장의 취임과 더불어 3월 11일 개교하였다. 1979년 12월 26일 12학급으로 증설 인가를 받아 운영되...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가꾸는 어린이,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고운 품성을 지니고 아름다움을 가꾸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궁리하는 어린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를 기른다. 1922년 5월 1일 사립 보통학교로 설립되어 1923년 9월 1일 보절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91년 3월 1일 보절국...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행해지는 우연한 사고 발생에 대한 상호 부조 성격의 경제 제도. 보험제도란 사망, 부상, 화재 같은 우연한 사고 발생의 위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미리 일정한 부금, 곧 보험료를 갹출하여 두었다가 그 적립금으로써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이다. 보험회사는 다수의 보험 계약자를 상대로 보험료를 받아 이를 대출, 유가증...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와 보절면 신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일명 보현봉, 천황봉, 만행산(萬行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천황산의 옛 이름은 만행산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귀정사(歸政寺)의 옛 이름도 만행사였으나, 고려 말 이성계가 고남산에서 운봉 황산벌에 침범하는 왜장 아지발도와 왜구를 멸하고 회군길에 이곳 만행사에서 삼 일 동안 머물다 돌아갔다가, 임금이...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1306년(충렬왕 32) 승려 만항이 짓기 시작하여 1314년(충숙왕 1)에 완공했다. 본래 만항이 머무르던 작은 암자였으나, 꿈에 그 자리가 평생 수도할 곳이라는 계시를 받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로는 법당과 나한전, 약사전, 문수전, 조사전, 시왕전, 정루, 승당 등이 있었고, 소속 암자만도...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복 많은 아내 덕에 부자로 산 남편 이야기. 1979년 8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안윤보(남, 69세)이다. 옛날에 서울에 사는 정승이 있었는데, 정승네 집은 하루에 소금 서 말을 먹을 정도로 큰살...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복 많은 아내 덕에 부자로 산 남편 이야기. 1979년 8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안윤보(남, 69세)이다. 옛날에 서울에 사는 정승이 있었는데, 정승네 집은 하루에 소금 서 말을 먹을 정도로 큰살...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면천(沔川).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의 후손이며 한림(翰林) 복오(卜俉)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목사가 되었다. 외할아버지인 판서 태응신(太應辰)의 농장이 남원부의 시라산에 있어서 남원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
1977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권투의 보급 및 발전을 위해 설립한 단체. 남원복싱연맹은 지역의 복싱을 활성화하고, 우수 선수를 발굴·육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남원복싱연맹은 1977년에 고문 강용준, 회장 이석우, 부회장 윤영근, 전무 김재봉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체육관은 그 이전인 1967년 남원경찰서장 백인기의 후원으로 구소방서 본관에 개관하였다....
-
1977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권투의 보급 및 발전을 위해 설립한 단체. 남원복싱연맹은 지역의 복싱을 활성화하고, 우수 선수를 발굴·육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남원복싱연맹은 1977년에 고문 강용준, 회장 이석우, 부회장 윤영근, 전무 김재봉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체육관은 그 이전인 1967년 남원경찰서장 백인기의 후원으로 구소방서 본관에 개관하였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면천(沔川). 자는 시경(時慶), 호는 고남(高南).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의 후손이며, 구암(久菴) 복한(卜僩)의 6세손이다. 후손들은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세거하고 있다. 복응길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봉 조헌(趙憲)의 종사관이 되어 금산으로 달려가서 중봉과 함께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 봉대마을에 있는 고인돌. 유적은 봉대마을에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낮은 야산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즉, 광주 대구 고속 도로에서 북쪽으로 10m 정도 떨어져 있는 밭에 위치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일부는 땅 속에 묻혀 있어...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 봉대마을에 있는 고인돌. 유적은 봉대마을에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낮은 야산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즉, 광주 대구 고속 도로에서 북쪽으로 10m 정도 떨어져 있는 밭에 위치한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의 일부는 땅 속에 묻혀 있어...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원래는 운봉의 북상면 지역으로 처음에는 ‘쑥대’, ‘쑥띄’로 불렸다. 이후 ‘쑥 봉(蓬)’자를 써서 봉대(蓬臺)라고 부르다가, 풍수지리상 새[鳥]의 형국이라 하여 봉대(鳳臺)라 하였고, 1941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쓰기에 편하도록 봉대(奉大)로 고쳤다. 백두대간의 시리봉 자락에 형성된 마을로, 북으로는 아막...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계의 고분군. 유적은 아영면 봉대리 봉대마을에서 서북쪽으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굴다리를 지나 나오는 봉대제의 서쪽 야산 능선에 위치한다. 유적은 광주 대구 고속 도로에 의해 두 구역으로 구분되나 본래는 한 능선에 위치해 있었다.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8기 정...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아영면 봉대마을에서 당동마을로 가는 솔고개의 남쪽 낮은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은 봉대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약 7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야산에 분포한다. 이곳은 광주 대구 고속 도로의 지리산 휴게소에서 동으로 약 2㎞ 떨어져 있다. 유적이 위치한 구릉은 본래 봉대 고분군이 위치한 능선과 한 능선이었...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 봉대마을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봉대마을은 고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로서 유명한 곳이다. 마을이 번창할 무렵에는 하천·중촌·상촌·임곡 등 4개의 마을로 형성되었으나, 지금은 중촌[奉大]과 숲실[林谷]만 남았다. 처음에는 중촌의 속명인 쑥대에서 쑥 봉(蓬)자를 따와 봉대(蓬臺)로 표기...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장교리에 속하는 신설 자연 마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장교리 장동마을 뒤편에 위치하며, 황토 건축물 등 주로 황토를 연구하는 산간 마을이다. 봉송황토마을의 최초 건립자인 신정희 부부의 조부 호가 ‘봉송’인데, 이 호를 따서 봉송황토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봉송황토마을은 황토 매장량이 많은 남원, 지리산 국립공원...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현은 남원 지역에서의 거사일을 3월 23일로 잡고, 천도교인들을 지도하여 거사의 계획을 짜는 한편 유림들과 접촉하여 이에 합세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3월 23일 첫번째 거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음날을 기약하고 동지들과 비밀리에 준비를 서둘렀다. 4월 4일 장날을 기하여 많은 장꾼들과 함께 밤사이에 연락받은 덕과...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산. 봉화산은 북쪽으로 월경산, 백운산의 연봉이 남쪽으로 매봉, 그리고 모산의 연봉이 이어진다. 봄철에는 아름답게 붉게 핀 철쭉 군락이 있으며, 가을에는 억새가 아름답다. 이 외에도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봉화산 철쭉제는 매년 4월 하순에서 5월 중순에 열리며 부대 행사로는 산신제, 백일장,...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 봉화산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생태 자연 축제. 봉화산(烽火山)[920m]은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전라북도 남원시와 전라북도 장수군,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명칭은 예전에 봉화(烽火)를 피운 데서 유래했다. 봉화산 철쭉은 산림 정비 사업을 하면서 인위적으로...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에 그린 그림. 대곡리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김광(金洸)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1992년 장명수(張明洙)에 의해 암각화는 두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송화섭은 1992년 이 근처에서 동이(臼)형 확과 성혈군(性穴群)을 발견하였다. 1988년 1...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봉황대라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1979년 8월 3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서 최래옥과 김준각·이태효가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양해도(남, 64세)이다. 대산면 대곡리에는 ‘봉황대(鳳凰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이 마을...
-
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설치되었던 특수행정구역.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지방 행정의 말단 단위로, 군현 밑에 있는 하부 조직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양민과 달리 그 신분이 노비·천민에 가까운 열등 계급이었다. 군현의 사람들이 부곡민과 혼인하면 그 소생 또한 부곡민에 편입시켰다. 부곡은 향과 더불어 호장과 같은 토착 관리들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일대리 부동마을에 있는 가야계의 고분군. 유적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과 장수군 번암면과 접경을 이루는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아영면 일대리 동쪽 야산의 능선을 따라 약 200여 m 범위 내에 분포한다. 유적의 북쪽은 비교적 험준한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1차...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화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과 같이 생겼고, 윗다리[上橋]는 솥의 뒤 이마, 아래다리[下橋]는 솥의 앞이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형국을 따서 가마마을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가마말’이라고도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마말이 변하여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꾸어 부동(釜洞)이라 하였다. 1460년경...
-
전라북도 남원에서 여성들이 부르는 민요. 「부요」란 말 그대로 부녀자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부요’는 보통 여성들이 부르는 민요를 총칭하는 의미로 쓰이나,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부요」는 후렴으로 미루어 「진도아리랑」의 변형된 형태로 보인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창자는 금지면 입암리 입동마을에 사는 지광림(여, 70세)이다. 문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기슭에 집들이 띄엄띄엄 몇 호씩 있어 마치 뜬 구름같이 있다 하여 ‘뜰 부(浮)’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부운(浮雲)이라고도 하며, 첩첩산중에 항상 구름이 머물러 있어 구름 속에 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운이라고도 한다. 1650년경 장수황씨가 속세를 떠나 부운에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 후 각처에서 여러 성씨가 들어와...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와 산내면 부운리 경계에 있는 고개. 부운치는 가까운 산내면의 부운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부운은 주로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곡풍의 찬 습기가 태양에 노출된 산 위로 올라오면서 수증기화되어 구름이 피어오르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만큼 해발고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부운치는 덕두산-바래봉-세걸산-고리봉으로 이어지...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내를 업신여겨 내쫓은 남편이 아내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는 이야기. 「상놈 딸의 복덩어리」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겨 내쫓은 남편이 나중에 아내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이야기인데, 대개 ‘여인 발복 설화’ 형태를 띤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함부로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충신 양대박 부자를 추모하기 위한 비와 비각. 양대박(梁大樸)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서 고경명과 함께 금산에서 왜적과 싸웠고, 그의 아들과 진산을 지키다 진중에서 병을 얻어 1592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양경우(梁慶遇)는 군량미를 모아 명나라 군대에 제공하였다. 1796...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동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말이다. 조선조 이서구 대감이 전라감사 시절에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을 가리키며 만 사람을 배불리 할 수 있을 곳이라는 만인호인지상(萬人好人地相)이라 감탄했다. 이에 따라 지세가 가마솥과 같다 하여 처음에는 가마말 또는 가말이라고 했다가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으로 바뀌었다. 중절마을은 가운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중절마을 창덕암에 있는 조선 시대 양식의 석탑. 1933년에 선덕화보살(善德華菩薩) 김여사가 기도 도량으로 창덕암을 건립하였다. 이때 창덕암 내에 3층의 석탑을 조성하였다. 석탑이 위치한 창덕암은 해발 352m에 자리한다. 현대식 3층의 건물이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법당 외에 4동의 부속 건물이 있다. 창덕암 삼층석탑은 창덕암 내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화수재(花樹齋)는 전주최씨 가문의 문중을 중심으로 하여 재실에서 설립되었다. 인근 산동면 여러 마을의 학동들에게까지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화수재는 1920년에서 1950년까지 운영되었다. 조선 선조 때 전주최씨와 밀양박씨,...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북두칠성이 생겨난 이야기. 「북두칠성의 유래」는 계모의 흉계로 인해 죽은 아들들이 죽은 어머니의 인도를 받아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별자리 기원담이다. 1979년 5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최래옥과 강현모가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운봉군 군내면 지역으로, “북쪽 냇가 마을”이란 뜻으로 북천리로 불렸다. 1727년(영조 3) 송씨 일가가 이곳에 입주하였을 때, 북천 천변과 뒷산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한때 벽송동이라 불렀다. 1728년(영조 4년) 운봉현의 객사를 북천리에 세운 후 ‘객사마을’이라 속칭하였다. 객사란 조선시대 상부...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고 일 년 운을 축원하며, 재미있게 소원성취를 축원하다가 헤어진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 데서 분토동이라고 불렸다. 그 뒤 물길을 막기 위해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다고 하여 분토동을 분토(盆土)로 쓰기도 하였다. 이후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용(龍)이 비를 토한다는 전설에 따라 용(龍)자와 지세가 좋은...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남원 지역에 불교가 유입된 것은 백제 성왕 이전으로 보인다. 9세기 초반 신라 흥덕왕 때 지리산에 구산선문 최초의 선종 가람으로서 실상사가 개창한 이래로 신라 말,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혜능의 남종 선종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화엄종과 법상종 계통의 교종도 유포되었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
서울 양재동에 있는 인드라망 교육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귀농 교육 프로그램. 생태 공동체 지향의 올바른 귀농관 정립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98년 2월 제1기 불교귀농학교 개설 이래 연 2회씩(봄, 가을)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1998년 8월 8일부터 9월 21일까지 제2기 불교귀농학교 운영 및 장기 귀농학교 이사회의 설립과 더불어 귀농전문학교로 개칭했다. 2014년...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관련 단체.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 남원 지역의 불교는 신라 헌덕왕 때 출생한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장에게 선법을 배운 뒤 귀국하여 지금의 지리산 산내면 입석리에 실상사를 개창하여 하나의 종파를 이룬 데서 비롯한다. 홍척이 지리산에서 창도한 선풍이 바로 한국 구산선종의 시초가 되었으므로, 남원 지역은 신라 이래 선종...
-
196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동형(朴東衡)[1749~1808]의 유고 시문집. 박동형은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학문에만 정진했던 학자이다.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贈職)을 받았다. 1966년 6세손인 박환준(朴煥俊)이 김윤동(金潤東)의 서(序)와 박중식(朴仲植)의 발(跋)을 붙여 석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국립중...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효하던 며느리가 효부가 된 이야기. 1979년 8월 1일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최래옥과 김호선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김영두(남, 75세)이다. 옛날에 어떤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남편은 보따리장사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집...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효하던 며느리가 효부가 된 이야기. 1979년 8월 1일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서 최래옥과 김호선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김영두(남, 75세)이다. 옛날에 어떤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남편은 보따리장사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집...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세운 사학 위주의 학문 기관. 서원은 최초 중국 당나라 궁중에 설치된 집현전 서원(서재)을 모태로 한 사학(私學)으로 출발한 학문연구 집단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기부터 국가의 학문 중추기관으로 운영되면서부터는, 관학기관(성균관, 향교)의 부진과 학문적 고착화를 극복하는 향촌 교육기관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전국에서 안동...
-
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골목길. 비안정(費眼亭)이 있었던 곳을 지나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안정은 지금의 노암동 승사교 서쪽 금암봉 아래 요천 변에 있었다. 금암봉 남서쪽 마을 이름이 비안정 또는 비오정인데 이 정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뒷산이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국이라 해서 비안정(飛雁亭)이라 하기도 한다. 비안정은 동애(...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비연(斐然). 고려 때 시중을 지낸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이다. 충경공 김경직(金敬直)의 10세손이며, 봉사(奉事) 김중흥(金重興)의 아들이다. 김욱은 그릇이 넓고 지략이 뛰어나 광해군 때 문음(門蔭)으로 직장(直長)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인목대비 폐비사건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리 비전마을에 있는 가야계의 고분군. 유적은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한다. 유적은 비전마을 남서쪽 구릉상에 밀집되어 분포한다. 유적의 남쪽에는 황산대첩비가 있고, 서쪽 가장자리에는 어휘각이 자리하고 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총 10여 기의 구덩식 돌덧...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행정리. 비전(碑前)은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앞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1380년(우왕 6)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577년(선조 10) 황산대첩비가 건립된 이후 참봉과 몇 사람의 관원이 비각을 관리하게 되자 자연 그 가솔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그 후 경주김씨들이 입주하고 뒤이어 박씨, 이씨들이...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있었던 서당. 1800년에 영해군 이당의 후손인 매계 이도가 남원시 덕과면 신양리의 광주 이씨 집성촌이었던 사립안 마을에 이웃 마을의 유지와 협의하여 비촌서당을 열었다. 일명 사립안서당이라고도 하며 매계강당 건립으로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후 1945년까지 계속 운영되었다. 한때 풍양조씨 가문의 조일(趙逸)이 훈장을 지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성의 북면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산능선으로 문덕봉을 향하여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며,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을 이용하여 성벽의 내·외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다. 내탁법으로 쌓아 올린 성...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은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성의 북면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산능선으로 문덕봉을 향하여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며,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을 이용하여 성벽의 내·외면을 맞추고 그 안쪽에는 할석을 채웠다. 내탁법으로 쌓아 올린 성...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장례식에 앞서 상가에서 빈 상여를 둘러매고 장례식 흉내를 내면서 노는 놀이. 호상인 경우 마을의 청장년 남자들은 상가에서 빈상여놀이를 한다. 상두꾼들이 빈상여를 매고 상두꾼 소리를 하면서 상가의 마당에서 놀면 상가에서는 술과 음식으로 대접을 한다. 빈상여 놀이는 상가에서 흥을 돋움으로써 상주와 유족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상여꾼들이...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하는 사진 동호회. 사진 정보의 공유 및 공개를 통하여 사진인의 작품 활동에 기여함은 물론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1월 21일 김귀성, 임영택 등 회원 13명이 사진사랑을 창립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9년 2월 10일 회원 14명이 다시 발기 총회를 가져 빛그림사진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다. 매월...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전라북도 남원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 비정규군.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 빨갱이다. 육지에서의 본...
-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 계열과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를 일컫는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은 민족사의 최대 비극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자행된 살육과 약탈에서 보면, 빨치산이든 국군·경찰이든 모두 피해자였다. 또한 누대로 지리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무고한 주민들이 입은 인적·물적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평화와 용서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