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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부녀자들이 다듬잇돌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앉아 누가 다듬이질을 더 잘하는가를 겨루던 놀이. 마루나 방 등 집안에서 하는 놀이다. 다듬이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다듬잇돌과 방망이 그리고 다듬이질을 하게 될 옷이나 빨래가 있어야 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다듬이질을 하는 것이다. 다듬이질을 하는 동안 장단과 음의 고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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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북도 남원시에서 행해지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건너다니는 놀이. 마을 안이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큰 다리를 주로 이용하며 다리를 밟고 건너는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놀이이지만 다리가 약한 어린이나 노인들이 주로 하였다. 다리밟기를 하면 한 해 동안 다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천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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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와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의 경계에 있는 산. 금강산(金剛山)처럼 경관이 아름다워 이름을 풍악산(楓岳山)이라 하였으며 단풍나무산이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교룡산(蛟龍山)[518.9m], 남쪽으로는 곡성군의 동악산(東嶽山)[735m]·통명산(通明山)[764m], 북쪽으로는 팔공산이 바라보인다. 응봉~풍악산~노적봉(露積峯)으로 이어지며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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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장례식 때 관을 묻고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는 상여 소리의 하나. 달구질은 매장한 관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장사를 지낸 후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분묘의 형태가 변하거나 뭉개지지 말라고 차곡차곡 다져 주는 장례식 행위의 하나이다. 흙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석회를 흙에 섞어서 다져 주기도 하기 때문에 ‘회다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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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만수천에 있는 계곡. 기원 전 350년 마한의 별궁을 짓고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보거나, 『용성지』에 의하면 진한의 내습을 막고자 정령치와 황령재에 성을 쌓아 71년간 성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달궁은 달의 궁전이라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궁이 나온다는 의미의 달궁(達宮)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수천은 전라남도 구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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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달궁리는 법정리인 덕동리가 행정편의를 위해 덕동리와 달궁리로 분리된 것이다. 지리산 달궁계곡이 있는 산악 지역이다. 달궁은 삼한시대 때 마한(馬韓)의 별궁(別宮)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 기원전 84년(마한의 효왕 30)에 마한과 진한 간의 싸움이 있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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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달궁리는 법정리인 덕동리가 행정편의를 위해 덕동리와 달궁리로 분리된 것이다. 지리산 달궁계곡이 있는 산악 지역이다. 달궁은 삼한시대 때 마한(馬韓)의 별궁(別宮)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하고 있다. 기원전 84년(마한의 효왕 30)에 마한과 진한 간의 싸움이 있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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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에 있는 마한시대 소국의 궁터. 숙종 때 쓰여진 『용성지(龍城誌)』에서는 서산대사가 쓴 『황룡기』를 인용하면서, 한나라 소제 때 마한의 왕이 진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도성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당시에 무너진 성이 남아 있어 그곳을 달궁터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세전리 유적이 요천을 둘러싸고 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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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정월 보름에 달을 가장 먼저 보기 위하여 동산에 올라가 달을 기다리는 풍습. 정월 보름에는 달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초저녁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산이나 뒷산에 올라가 달을 기다렸다. 달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달 봐라”고 외침으로써 자기가 가장 먼저 보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동쪽에 달이 솟아오르면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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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발표된 소설가 최정주의 장편소설. 『달아달아 달메달아』는 남원 출신 소설가 최정주가 『전북일보』에 ‘달빛그림자’란 제목으로 연재했다가 상하 두 권으로 출판한 장편소설이다. 남원을 배경으로 달메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의 민족적 정서와 삶의 질곡을 탁월한 구성과 문체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달아달아 달메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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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달원(達源).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유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587년(선조 2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계 양대박(梁大樸)의 종사관이 되어 군량을 공급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뒤에 아버지 김익복이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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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덕동리 만수천에 있는 계곡. 기원 전 350년 마한의 별궁을 짓고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보거나, 『용성지』에 의하면 진한의 내습을 막고자 정령치와 황령재에 성을 쌓아 71년간 성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달궁은 달의 궁전이라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궁이 나온다는 의미의 달궁(達宮)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수천은 전라남도 구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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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달을 보며 부르는 신세타령조의 민요. 「달의 노래」는 『남원지』에만 채록되어 소개되고 있는 민요여서 비교 고찰이나 음악적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민요는 고정된 선율이나 가사에 얽매일 필요 없이, 가창자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를 즉흥적으로 부를 수 있는 양식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이나 놀이, 혹은 노동을 하면서 누구나 창조적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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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노경식이 쓴 희곡 작품. 「달집」은 남원 출신의 희곡작가 노경식이 쓴 작품으로 1971년에 국립극단에서 첫 공연을 하였다. 한국의 토착적인 인간상의 부각에 힘을 써 농촌의 평범한 인물의 전형화에 성공하였고, 전라도 사투리 대사가 작중 인물의 생활과 의지에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문제작으로 꼽힌다. 제1막--1951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틀 전, 지리산에서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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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정월 대보름에 짚으로 집을 짓고 달이 뜨면 그것을 태우던 놀이. 정월 보름 오후에는 청년과 장년들이 짚과 소나무 가지 그리고 나무 가지 등을 준비하고 달이 잘 보이는 곳에 달집을 지었다. 달집은 가능하면 크게 지었으며 달이 뜨는 방향을 향하여 문을 만들어 두어 달빛이 직접 달집 안으로 비췰 수 있도록 하였다. 남원에서는 달집을 ‘망월이’ 또는 ‘만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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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길쌈할 때 부르는 「베틀가」를 차용하여 부르는 유희요.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되어 있다. 가창자는 금지면 옹정리에 사는 장옹림(여, 53세)으로, 열 서너 살 때 친정인 주생면 반송리에서 노인들한테 배웠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놀았다는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금도끼로 잘 다듬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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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남서쪽에 있는 산. 병풍을 두른 듯한 암봉이 마치 닭벼슬을 닮았다 하여 부쳐진 이름으로 보고 있다. 다른 의미로 보면 계관봉 바로 아래 마을이 계수리인데 계동과 수동을 합친 마을이다. 그전에 계동이라 하여 계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보았으며 그 계수나무의 관, 계관(桂冠)의 의미로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도리 노봉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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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진경(眞卿), 호는 담암(澹庵), 또는 용암(舂岩).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손자이며,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의 아들이다. 김지순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서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행의(行誼)로 천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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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학자 김지백의 유고 시문집. 남원에서 태어난 김지백(金之白)[1623~1670]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평생 명리를 구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한 인물로, 사부일기류인 『유두류산기(遊頭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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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위(士威), 호는 당계(堂溪).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고, 참판 김성진(金聲振)의 아들이다. 김원중은 효성이 지극하고 몸가짐이 간결하며 절의가 있었다. 광해군 때인 1618년(광해군 10)에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사건이 일어나자, 윤리가 무너짐을 슬퍼하고 남원에 은거하였다.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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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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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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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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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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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조산동에서 금동까지 이어지는 소로. 당산은 원래 지방의 토지나 마을에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을 말한다. 당산길은 조산동에 있으며, 조산동은 풍수지리에 의해 만든 수구막이의 산이 있어서 조산이라 하였다. 남원의 지세는 배가 떠나가는 행주형이어서 인물과 재물이 귀하다고 한다. 그래서 배가 떠나가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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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모시는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 남원 지역에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동제·당제·골맥이·동신제로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당산제를 행할 때는 지역에 따라 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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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모시는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 남원 지역에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동제·당제·골맥이·동신제로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당산제를 행할 때는 지역에 따라 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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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자휘(子輝), 호는 당촌(塘村).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손자이며 현령(縣令) 황정열(黃廷說)의 아들이다. 아들중에 학행이 높았던 황신구(黃信龜)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된 황임구(黃任龜)가 있다. 황휘는 어려서부터 시 쓰기를 좋아하였으며, 기암(畸菴)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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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황위(黃暐)[1605~1664]의 유고 시문집. 황위는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한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후손이다. 사마(司馬) 문과(文科)를 거쳐 기성서윤(箕城庶尹)에 이르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원에서 창의한 지사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남원 풍계사(楓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역대 충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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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읍·면·동의 하나로 전라남도와 도계(道界)를 이루는 지역이다. 섬진강의 좌안(左岸)으로 동·북·서부는 해발고도 350m 정도의 산지이고, 해발고도 100m 정도의 분지와 남부 섬진강 연안에는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직할 하천인 섬진강이 인근 순창군 및 전라남도 곡성군 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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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대강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남원군 견소곡면, 생조벌면, 초랑면이 남원군 대강면으로 통폐합되면서, 사석리 502번지에 면사무소가 설립되었다. 1981년 7월 1일 사촌리를 사촌1구·2구로 방동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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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고 애국 애족의 국민정신을 기르며, 세계화를 지향한 외국어 능력 및 자주적 학습 능력을 기른다. 또한 근검 절약하고 협동, 봉사하는 생활 태도를 기르고, 탐구하는 생활 태도로 관찰력, 창의력, 사고력을 기르며, 기초 체력의 신장으로 건강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을 기른다. 1952년 7월 7일 고등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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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긍정적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시키는 어린이, 기초 체력을 연마하는 어린이를 기른다. 1925년 5월 1일 대강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53년 10월 20일 대강국민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1년 3월 10일 대강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1991년 3월 1일에는 문창국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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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곡리란 마을 이름은 이곳이 원래 대나무가 많아 대실, 대곡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이 마을은 상대마을과 하대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하대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 여 년 전에 장수황씨가 이주하고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고, 상대마을은 함안조씨, 화순최씨, 나주진씨 등이 이주,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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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하대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계의 고분군. 대곡리 고분군은 대곡마을의 동쪽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 500m 지점에는 동서로 뻗어 있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지나간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노출된 고분 1기를 포함하여 30여 기의 고분군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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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에 그린 그림. 대곡리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김광(金洸)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1992년 장명수(張明洙)에 의해 암각화는 두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송화섭은 1992년 이 근처에서 동이(臼)형 확과 성혈군(性穴群)을 발견하였다. 1988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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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노산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삼국시대·고려시대의 유적. 유적의 주변에는 서북쪽으로 펼쳐진 풍악산의 지류인 곡간천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 곡간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곡간 대지에는 대부분 밭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유적은 대산면 대곡리 폐기물 처리 시설 조성에 따른 유적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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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복사 내의 조선 후기 사찰 전각. 대복사는 893년(진성여왕 7)에 도선국사가 남원 고을 터의 기가 강하여 이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한다. 원래 절의 이름을 대곡암이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 조선 철종 때 남원 부사청에 근무하던 관리 강대복이 극락전을 짓고 대복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대복사 경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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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응봉산[579m]에서 발원하여 주생면 제천리의 요천에 합류하는 하천. 대곡천은 최상류 골짜기의 물을 모아 물길을 이룬 후 계속해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쉼뱅이천·상대천·버들골천·제천천 등 여러 지류의 물을 더한 다음 주생면 제천리에서 요천과 합류한다. 대곡천은 대산면 동부 남북 방향으로 길게 솟아있는 산지와 구릉에서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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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촌리와 신기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 세조 때인 1460년경 능성구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뒤 부안김씨, 서산유씨가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산동면 지역으로 큰말 또는 대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등구리·선촌리·신기리·대촌리·대치리의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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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최승범이 쓴 현대시조. 최승범은 1931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호는 고하(古河). 1958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 시집 『후조(候鳥)의 노래』·『난(蘭) 앞에서』·『천지에서』와 수필집 『수필 ABC』·『남원의 향기』 등이 있다. 「대나무에게」는 시조 전문지 『시조월드』에 실린 작품으로, 2007년에 ‘한국시조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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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 대동단 남원지부는 1920년 7월 중순 강경진과 한태현의 주도로 남원 지역에 조직된 비밀독립 단체이다. 대동단은 1919년 김가진·전협·최익환 등이 주동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귀족·관료·유림·학생·의병·승려·여자·보부상 등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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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 대동단 남원지부는 1920년 7월 중순 강경진과 한태현의 주도로 남원 지역에 조직된 비밀독립 단체이다. 대동단은 1919년 김가진·전협·최익환 등이 주동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귀족·관료·유림·학생·의병·승려·여자·보부상 등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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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이희량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에 활약한 무신이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영교위를 거쳐 선전관, 절충장군(折衝將軍), 덕만보권관(德萬堡權官)에 제수되었다. 그는 말년에는 운봉(雲峰)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 본관은 영천(寧川), 자는 형재(馨哉), 호는 대명거사(大明居士)이다. 시중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이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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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주천리 샘터마을과 하주마을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샘터마을과 하주마을 일대의 주천천 주변에서 각각 1기씩 확인되었다. 마을 주민의 전언에 의하면 예전에 3개의 큰 바위가 있어 ‘삼바위’로 불렸으나 경지 정리 중 훼손되었다고 한다. 샘터마을은 어현동에서 하주교를 건너 주천리 방향으로 가다가 왼편 강자락 옆에 있다.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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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魏)나라가 삼국시대에 남원에 두었다고 추정되는 옛 행정 구역. 『삼국유사』에 중국의 후한(後漢)이 남원에 대방군(帶方郡)을 두었고, 위나라가 이를 남대방군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중국 후한 건안(建安) 연간에 남원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떠한 이유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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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魏)나라가 삼국시대에 남원에 두었다고 추정되는 옛 행정 구역. 『삼국유사』에 중국의 후한(後漢)이 남원에 대방군(帶方郡)을 두었고, 위나라가 이를 남대방군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중국 후한 건안(建安) 연간에 남원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떠한 이유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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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남원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명칭. 고려는 삼국을 완전하게 통일한 5년 후인 서기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 구획을 재정비하면서 신라 때 남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남원소경을 없애고 대신 남원부를 설치하여 2개 군(임실, 순창)과 7개 현(장계, 적성, 거령, 구고, 장수, 운봉, 구례)을 관할하게 하였다. 남원부는 이후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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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魏)나라가 삼국시대에 남원에 두었다고 추정되는 옛 행정 구역. 『삼국유사』에 중국의 후한(後漢)이 남원에 대방군(帶方郡)을 두었고, 위나라가 이를 남대방군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중국 후한 건안(建安) 연간에 남원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떠한 이유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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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삭녕최씨(朔寧崔氏) 5인의 시문 합철집. 『대방세고(帶方世稿)』는 최익효(崔翊孝)가 최상중의 『미능재집(未能齋集)』과 최연의 『성만집(星灣集)』, 최온의 『폄재집(砭齋集)』, 최휘지의 『오주집(鰲洲集)』, 최유지의 『간호집(艮湖集)』 등 남원에 세거한 최씨 일가의 시문집을 합철하여 편차한 것이다. 최연과 최온은 최상중의 아들이며, 최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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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魏)나라가 삼국시대에 남원에 두었다고 추정되는 옛 행정 구역. 『삼국유사』에 중국의 후한(後漢)이 남원에 대방군(帶方郡)을 두었고, 위나라가 이를 남대방군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중국 후한 건안(建安) 연간에 남원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떠한 이유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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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음력 정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정월대보름은 상원일이라고도 하며 설 다음에 오는 큰 명절로 인식되어 있다. 대보름이라고 하는 것은 정월에 보름달의 크기가 일년 중 가장 크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에는 다양한 민속놀이가 실시되며 특히 저녁에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달맞이 하는 풍습이 특징이다. 남원의 정월대보름 행사도 전국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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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남원 교룡산과 성원고등학교 사이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사찰로 비구니 승려들의 수행 정진 도량이다. 893년(진성여왕 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너무 강하다고 여겨 이를 누르기 위해 대곡암(大谷庵)이란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에 절이 불에 타 소실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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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복사 내의 조선 후기 사찰 전각. 대복사는 893년(진성여왕 7)에 도선국사가 남원 고을 터의 기가 강하여 이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한다. 원래 절의 이름을 대곡암이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다. 조선 철종 때 남원 부사청에 근무하던 관리 강대복이 극락전을 짓고 대복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대복사 경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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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 대복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범종. 대복사 동종은 1635년(인조 13)에 조성되었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대복사 동종은 전체 높이 99㎝, 입구의 지름이 58㎝에 달하는 중종(中鐘)으로, 쌍뉴(雙紐)에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유곽(乳廓)과 유두(乳頭) 등을 갖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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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 대복사에 있는 철제 불상. 대복사는 교룡산성 남쪽 산자락에 있는 사찰로 893년(진성여왕 7)에 도선 국사가 남원이 기가 강하여 이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대곡암(大谷庵)이라고 불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중건되었다. 철종 때 남원 부사청(南原府使廳)에 근무하던 강대복(姜大福)이라는 사람이 법당을 중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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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대복사(大福寺)로 진입하는 소로. 대복사는 교룡산성(蛟龍山城)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아래에 있으며 893년(진성여왕 7)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남원 고을의 교룡산(蛟龍山)이 강세이므로 이를 누르기 위하여 대복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도선국사가 본 풍수 상으로 남원의 지세는 행주형(行舟形)이다. 교룡산이 객산이고 백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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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남원노회에 소속된 교회. 대산교회는 55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고, 지역 사회에서 성경에 근거한 예배, 교육, 봉사, 선교, 교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2년 4월에 남원동북교회의 윤성만 장로가 남원노회 개척 전도 총무로 일하면서 대산교회를 개척했다.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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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대곡면과 시라산면(정산면)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합되었는데, 이 때 대곡면과 시라산면의 두 지역 면의 이름을 따서 대산면이라 하였다. 본래 남원군 지역으로서 시라산이 있으므로 시라군방 또는 시산면이라 하여 노촌, 신계, 운교, 옥전, 율정, 심곡, 왈길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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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운교리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대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대곡면의 16개 리(里)와 성내면과 주포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대산면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산면을 12개 리로 개편하고 운교리에 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1995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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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상리는 산동면 소재지로부터 북동쪽으로 5.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대성산, 서쪽으로는 천황봉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최근 상신리에 만행산 천문체험관이 설립되었다. 대상리는 대치(大峙)와 상점(上占)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상신리는 상점과 신기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상리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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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요골마을 일대에 있는 도요지. 대상리 요골 도요지는 기존 지표 조사 보고에 의하면, 100m 이상의 범위에 걸쳐 유물이 출토되었던 것으로 보아 비교적 대규모의 도요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골마을에서 귀정사 방면으로 500여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도로변 오른쪽 밭의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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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월석리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산. 옛날 삼한시대에 어느 임금이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에서 삼 일간 정치를 하면서 천황봉에 비해 성인격이라 하여 대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을 둘러싼 산이 반달형으로 생겨 마치 솟아오른 달을 맞이하는 형상이어서 대성산을 ‘큰달뫼’, 영월산을 ‘작은달뫼’라 불렀다. 산 아래의 마을은 큰달뫼와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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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향교 건물. 남원향교는1410년(태종 10)에 창건하였다가 1428년(세종 10)에 덕음암 부근으로 옮겼으나, 홍수를 만나 요천이 범람할 때면 유생들이 물을 건너올 수가 없어 통행이 불편하자 1443년(세종 25)에 지금의 자리로 향교를 옮겼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향교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599년 지방 부호 진사 유인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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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신리는 2개의 행정리, 즉 대산리(大山里)·상신리(上新里)로 나뉘어 있다. 혼불의 고장인 사매면의 면소재지로부터 남동쪽 3㎞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보절면과 광치동의 경계이다. 대신리는 원매안(元梅岸)·여의(如意)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매안은 당초 ‘구내방(丘內坊)’이었는데, 약 300년 전 공자(孔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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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죽곡서당은 1880년(고종 17) 남원도호부 대곡방 관내에서 장수황씨(長水黃氏) 가문 문중에서 설립했으며, 약 70년 이상 운영되었다. 일명 대실서당으로도 불렸다. 죽곡서당에서는 구한말까지 대곡방의 중심 마을이었던 대실마을(상대, 하대 마을)을 기반으로 주변의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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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대여(代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수성재(守性齋) 김정(金定)의 아들이다. 김용려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일찍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행의(行誼)가 고매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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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옥(大玉). 판서(判書) 형규(邢珪)의 후손이며, 진사(進士) 형우안(邢友顔)의 증손이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남원성이 포위당하자 입고 있던 비단옷에 “죽어도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 된 직분(死不避亂 臣子職分)”이라는 여덟 글자와 이름을 혈서로 쓴 뒤 성으로 달려갔다. 남원부사 임현(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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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을 대율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마을의 뒷산에 밤혈[栗穴] 명당이 있고, 마을 서편의 서촌마을 그 밑의 골짜기 마을을 모굴, 남원을 가는 길목에 있는 쌍거리(삼거리), 박석치 등을 통칭하여 한밤(큰밤)·한배미[栗峙] 등으로 불리어오다가 1860년경 큰대(大) 밤율(栗)을 따서 ‘대율’이라 고쳐 불렀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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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법정리로서의 대정리에는 중기리(마을)·대정리(마을)·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산내면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중기리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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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주의 문화. 남원시에서는 여러 문화단체가 주축이 되어 대중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단체로는 춘향문화선양회·한국예총 남원지부·남원문화원 등이 있으며, 문화행사로는 춘향제가 대표적이다. 1. 대중문화단체 춘향문화선양회에서는 남원 지역의 유일한 향토 축제인 ‘춘향제전’을 주관하고, 민속 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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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는 남원 지역 주민들의 법적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관할하는 남원 지역 출장소. 사회 발전과 더불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진 법률 제도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모르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72년 대한법률구조협회가 설립되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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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한국사진작가협회 남원지부 소속의 사진 동호회. 남원, 순창, 구례, 곡성, 순천, 장수 등 6개 지역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단체이다. 사진 예술 연구와 활동을 통하여 사진 예술을 연마하고 사진 인구 저변 확대와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7년 11월 10일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소속의 지부로 창립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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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남원노회에 소속된 교회. 1972년 5월 14일 남원동북교회에서 서남교회 설립을 결의하고 교회 설립을 추진하여, 선교사 조요섭 목사의 원조금으로 500㎡의 대지를 구입하여 교회를 건축했다. 1973년 7월 22일에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94년 12월 4일에 현재 위치로 이전을 했다. 선교를 위해 4개의 남선교회, 7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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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대한적십자 봉사회 소속 남원지구협의회 사회 봉사 단체. 수익 사업을 하지 않는 비영리 법인으로 남원 지역의 사회 봉사 및 재해·재난 구호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0년 8월 15일 대한적십자사 남원부녀봉사대로 설립되었다가 1992년 3월 2일 대한적십자사 남원지구협의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구호 및 안전 사업으로 재해, 재난 구호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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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지적 측량과 지적 제도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국가 고유 업무인 지적 측량을 대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8년 1월 24일 조선지적협회가 창설되었다. 1949년 5월 1일 대한지적협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77년 7월 1일 재단법인 대한지적공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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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승려. 무기의 출생지는 미상으로, 호는 대혼자(大昏子)이다. 지리산에 숨어 있으면서 30여 년 동안 누더기 옷 한 벌로 지냈다고 한다. 겨울과 여름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봄과 가을에만 세속에 나와 70여 곳의 암자를 찾아다니면서 한번 머물면 10여 일이 지나야 그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 곳에 머물 때는 서너 말의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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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어린이들이 대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고 말을 타는 모습을 하면서 노는 놀이. 댓말은 죽마(竹馬)라고도 한다. 대나무가 나는 지역에서 10살 이하의 아이들은 댓말을 타면서 논다. 마당 또는 마을 골목에서 굵은 대나무를 2~3m 정도로 잘라 일렬로 선 아이들이 가랑이 사이에 그것을 넣으면 마치 말을 탄 모습처럼 된다. 맨 앞에 선 아이가 이끌어 가는대로 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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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여성들이 친구들과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 「댕기노래」는 머리를 장식하는 댕기를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민요이다. 여자들이 머리를 묶거나 장식한 댕기를 소재로 한 유희요이나, 일정한 인물과 일정한 사건이 있는 이야기식 노래여서 ‘서사 민요’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되어 있다. 가창자는 운봉면 동천리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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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189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고방(德古坊)과 적과방(迪果坊) 2개의 방을 하나로 합쳐 덕과면으로 바꾸어 부른데서 유래한다. 덕과면은 덕고방(德古坊)과 적과방(迪果坊) 등 2개의 방이 있었던 지역이다.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으로 바뀌었고, 덕고면이 덕과면의 중심이 되었다. 본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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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 만동마을에 있는 수령 300년의 소나무. 높이 8m, 흉고둘레 2.5m, 근원둘레 3m이다. 형상은 사방으로 뒤틀려 비스듬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수형은 수려하며 표피가 거북등처럼 아름답다.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매헌 소삼복 선생이 모친상으로 인해 진주성 싸움에 참가하지 못하고 홀로 살아남은 원통한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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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고정리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덕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덕고면의 10개 리(里)와 적과면의 9개 리, 고절면, 지사면, 임실군 둔덕면, 장수군 외진전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덕과면이라 하였다. 이와 동시에 만도, 신양, 사율, 고정,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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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고정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고 참된 튼튼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다. 1940년 4월 27일 덕과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81년 3월 1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1일 덕과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99년 9월 1일 덕과북분교장을 통폐합하였다. 2013년 3월 1일 제25대 채영희 교장이 부임하였다.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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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에 있는 가야계의 고분군.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남원 지역의 북쪽 끝이며, 장수군 산서면 봉서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유적은 덕촌리 덕동마을에서 동북쪽으로 70여 m 지점에 있는 흥수 이씨 선산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넓지 않은 농경지가 있다. 1987년과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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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덕동마을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성시산에서 서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부근 농로 옆에 자리한다. 이 유적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는 덕동 고분군이 있다.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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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덕동마을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성시산에서 서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부근 농로 옆에 자리한다. 이 유적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는 덕동 고분군이 있다.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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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덕동리는 지리산 서북부의 산악 지역이다. 법정동으로서의 덕동리는 덕동리(마을)와 달궁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는 지리산의 오지마을이었으나 요즘은 지리산과 뱀사골 계곡·달궁계곡을 찾는 휴양촌으로 각광받고 있다. 덕동마을은 1800년경 동래정씨 일가가 속세를 떠나 산 좋고 물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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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덕동리는 지리산 서북부의 산악 지역이다. 법정동으로서의 덕동리는 덕동리(마을)와 달궁리(마을)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예전에는 지리산의 오지마을이었으나 요즘은 지리산과 뱀사골 계곡·달궁계곡을 찾는 휴양촌으로 각광받고 있다. 덕동마을은 1800년경 동래정씨 일가가 속세를 떠나 산 좋고 물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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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와 인월면 중군리 경계에 있는 산. 일명 흥덕산(興德山)으로 불리는 덕두봉은 전설에 따르면 산기슭에 있는 ‘용마름산’이 옛적에 자꾸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산을 갈라서 석축을 쌓고 산을 못 움직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을 갈라놓아서 용이 멈추어 형성된 산을 용산(龍山)이라 이름하였고, 현재 축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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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보(德甫), 호는 춘파(春坡).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으로,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활계 이대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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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마을은 처음엔 삼면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움막같은 집 한 두 채만 있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외로울 독(獨)자의 독산(獨山)이라 하였다. 그 뒤 마을 선비 중에 덕이 많은 어른이 서당을 세우고 2세 아동들을 가르쳐 마을 계몽의 큰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해 마을이름을 덕산(德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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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에 있는 저수지. 덕산저수지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1945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남원시에서 사업 시행과 조사 측량 설계, 공사 감독 등을 맡았다. 1995~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덕산저수지 바닥에 있는 모래와 암석을 파내는 준설 작업을 시행하였으며 2003~2006년에 걸쳐 수리 시설을 개·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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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선(德先), 호는 천묵재(天黙齋). 효령대군의 7대손이며, 춘성군 이담손(李聃孫)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욱(李昱)이며, 어머니는 임대영(任大英)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25년(인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에 들어가 1628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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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1750년(영조 26)에 세운 서당으로, 남원부 이언방의 지당마을에서 남양방씨(南陽房氏) 가문의 방경제에 의해 설립되었다. 덕양재는 1960년대 초까지 유지된 서당이었다. 건물도 현재 현존하고 있으며, 특히 소지마을 차원에서 서당계가 아직도 운용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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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1750년(영조 26)에 세운 서당으로, 남원부 이언방의 지당마을에서 남양방씨(南陽房氏) 가문의 방경제에 의해 설립되었다. 덕양재는 1960년대 초까지 유지된 서당이었다. 건물도 현재 현존하고 있으며, 특히 소지마을 차원에서 서당계가 아직도 운용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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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옹(德翁), 호는 송헌(松軒), 진취(陳就)의 후예이며, 진몽일(陳夢日)의 아들이다. 진대수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자 형 진희수(陳稀壽)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구환(救患)하였다. 초시(初試)를 치르러 갔다가 장내가 혼란함을 보고 부끄럽게 여겨 과거보기를 단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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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우(德雨). 충경공(忠景公) 유양(柳亮)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많은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이인좌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양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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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과 주천면 용담리의 경계에 있는 산. 남원시내에서 마주 보이는 봉우리로 요천 건너편에 있다. 높이는 288.6m로 남원시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산이다. 덕음봉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 보절면 천황봉, 동으로 고남산과 만복대, 남으로는 견두산과 천마산을 볼 수 있다. 서북의 교룡산이 남원시내를 더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나 가파르기 때문에 덕음봉의 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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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1920년 승려 응수와 노영준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자 경내의 원통전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규모의 팔각지붕 건물로 1929년에 건립한 뒤 1980년대에 약간 늘려 중수했다. 1949년에 미륵전을, 1970년에는 산신각을, 1986년에는 칠성각을 각각 지었다. 현재 조계종 소속의 비구니 승려 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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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노암동에 있는 덕음암의 불상. 덕음암 석불좌상은 광배(光背)와 몸을 한 장의 돌로 제작하였다. 원형의 두광과 거신광(擧身光)을 조각하였는데, 두광은 2조선으로 조각하였고 그 안에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신광은 마멸이 심하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구름문과 같은 문양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가 크고 길며 낮은 육계를 지녔고 민머리이다. 얼굴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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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장(德章), 호는 내성재(內省齋).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이며, 형은 춘파(春坡) 이유형(李惟馨)이다.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광해조 때인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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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시 덕과면에 속한 법정리로, 덕동리와 수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으로는 사매면, 북으로는 보절면, 그리고 오수면·지사면과 인접해 있다. 인물로는 진주영장을 지낸 김종록이 있고, 신태의의 효자정려가 마을 앞에 세워져 있다. 덕촌리는 본래 남원군 덕고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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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에 있는 수령 650년의 느티나무. 높이 28m, 흉고둘레 7.40m, 근원둘레 8.4m, 수관폭 28m, 지하고 2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굵은 가지가 웅장하게 뻗어 있다. 나무의 나이는 6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덕촌리의 당산나무로 7월 백중에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제사를 지낸다. 덕과면 소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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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덕동마을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성시산에서 서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부근 농로 옆에 자리한다. 이 유적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는 덕동 고분군이 있다. 200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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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회덕리와 노치리를 병합하고, 회덕과 노치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가 되었다. 회덕마을의 이름은 마을 주변에 있는 덕두산과 덕음산의 덕을 한 곳에 모아 마을을 이루었다 해서 한자 표기로 회덕이라 하였다. 노치마을은 덕음산·지리산·만복대 등의 산줄기의 높은 곳에 갈대가 많아 갈재라고 하다가 ‘갈대 노’자를 사용하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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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에 있는 수령 500년의 소나무. 높이 17m, 흉고둘레 2.6m, 수관폭 10m, 지하고 2.5m이다. 마을 뒤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란히 서있으며 보는 사람마다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한다. 나무 상태는 건강하다. 이 소나무 숲은 조선 초 경주정씨가 터를 잡고 경주이씨가 들어와 노치마을을 형성하면서 지리적 산세가 너무 좋아 마을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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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조선 시대 형식의 억새풀로 이은 초가집. 1895년 박창규가 처음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 1951년 다시 지었다. 원래는 마을 전체가 샛집이었는데 현재는 2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다른 한 채는 뼈대만 남아 있으며, 벽체와 창호는 현대식으로 고쳤다. 조선 시대 일반 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등으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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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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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소재지로부터 국도 24호선에서 군도 8호선 2㎞ 지점 고남산 기슭에 위치하고, 산동면 부절리와 인접한 마을이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리인 권포리와 가동리로 나뉘어 있다. 가동리라 하여 ‘더할 가(加)’ 자를 쓰게 된 것은 권포리와 장교리(연동) 두 마을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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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에서 도깨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땅이름 이야기. 남원시 운봉읍에서 편찬한 『신운성지(新雲城誌)』에 수록되어 있다. 운성(雲城)이란 운봉현의 옛 지명으로,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운봉읍과 동면·아영면·산내면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신운성지』는 이 4개 지역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하고 있다.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마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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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간행된 박항식의 세 번째 시집 『방호산 구름』에 수록된 현대시. 지리산의 서북방 자락인 남원군 수지면 홈실에서 태어난 박항식은 1949년에 『한성일보』에 시 「눈」이 당선되었고, 1962년에는 『경향신문』에 시조 「노고단」이 가작으로 입선되면서 시는 물론이고 시조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67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문장대」가 당선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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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도로망 형태는 지형적인 요인으로 남북 축으로 이루어져 있어, 횡축 방향의 교통체계는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현재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광양만의 동북아 대형 중추항만 발전계획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광양~남원~전주 간 고속국도가 건설 중에 있다. 또한 광주~남원~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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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룡리는 보절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2.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도촌마을, 용평마을, 안평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쌀과 보리 위주의 농사를 지으며, 일부는 축산과 양잠업에 종사한다. 도촌마을은 천황봉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하천이 오고가는 길손의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하여 똘촌이라 불리다가 도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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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 용평마을에 있는 수령 455년의 느티나무. 높이 18m, 흉고둘레 4.40m, 근원둘레 5.5m, 수관폭 20m, 지하고 2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큰 가지가 세 가지로 갈라졌고 사방으로 고루 퍼져 매우 아름다우며 생육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나무의 나이는 455년 정도로 추정된다. 용평마을은 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방향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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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의 산지에서 형성되어 율천 합류점에 이르는 하천. 도룡천은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산동면과 장수군 번암면 경계부에 솟아있는 삼배재[825m]와 천황산[909.6m] 산지에 형성되어 있는 여러 계곡의 물을 모으는 하천이다. 도룡천은 용평~도촌저수지~도촌을 지나 벌촌에서 쑥뱅이천물을 더한 다음 율천에 합류한다. 도룡천은 보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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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도백(度伯), 호는 지족당(知足堂).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낙우당 김촬(金撮)의 아들이다. 김만익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성리의 학문을 닦아 세상에서 존경을 받았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적을 치는 것이 자기의 소임이라 생각하고 의병을 일으켜 노비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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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앞산 도산을 가운데 두고 상도리와 하도리로 구분되었으나, 병합하여 주생면 도산리가 되었다. 법정리로서의 도산리는 상도리와 도산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상도리와 하도리가 있어 상도리는 웃말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도리는 1994년 이전까지는 하도(下道)로 불렀다. 그런데 주생면과 인접한 금지면 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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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도암(島岩). 상호군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며, 현감 소연(蘇沿)의 6세손이다. 소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소제(蘇濟)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 100석을 모아서 관에 보냈다.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이 그 공을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해줄 것을 청했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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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광의적 정의로 가마터란 각종 토기, 도기, 자기, 벽돌, 기와 등을 고온에서 소성하던 구조물을 말한다. 또 목탄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목탄가마, 또는 탄요(炭窯)라 하여 같은 범주에 넣는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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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도원(道源), 호는 재간당(在澗堂).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화는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며, 천거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갔으나,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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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의 사찰. 1967년 승려 도암이 신도들의 공양을 받아 도인사를 창건했다. 창건 당시 화주 김해 김씨로부터 대원각 건립의 물질적 지원을 받았다. 이후에도 많은 신도들의 공양으로 관음전과 칠성각 등이 추가로 건립되면서 현재와 같은 규모의 도인사가 완성되었다. 2007년 4월 현재 도암의 아들인 도정이 주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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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행정리. 동복오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더니 마을이 안정되고 가족들이 날로 건강해지자, 정신 수양의 도장이라는 뜻으로 도장(道庄)이라 불렀다고 한다 1852년 동복오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그후 동복오씨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본래 운봉군 동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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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의 남원 출신 의병.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장원(長源), 호는 도촌(陶村).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이며,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김연(金沇)[1587~1651]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조에 폐모사건이 일어나자 문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형인 재간당 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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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 도촌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은 도촌마을 동쪽에 위치하며, 도촌마을에서 용동마을로 가는 길목의 도로변에 인접하여 자리한다. 이 도로변 바로 옆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있다. 냇가에는 도촌마을과 들판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본래 도촌마을에서 동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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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 도촌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은 도촌마을 동쪽에 위치하며, 도촌마을에서 용동마을로 가는 길목의 도로변에 인접하여 자리한다. 이 도로변 바로 옆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있다. 냇가에는 도촌마을과 들판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다. 1987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본래 도촌마을에서 동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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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에 간행된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인 변사정의 유고 시문집. 변사정(邊士貞)[1529~1596]은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83년(선조 16)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병 2천 여 명을 사살하고, 그 공으로 1595년 첨정(僉正)으로 승진되었으나 벼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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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의 중심지(시청 소재)이며, 주택지가 많고 다가구 주택이 있어 인구 밀집도가 높다. 산림이 많고, 전답이 많아 3차 산업 위주이다. 통한면의 통기리·동도리 일부와 갈치면의 월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도와 통기의 이름을 따 도통리라 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한 도사가 도와 통을 합치면 인재가 많이 날 것이라 하여 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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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수령 286년의 팽나무. 높이 17m, 흉고둘레 3.4m, 수관폭 16m, 지하고 2.3m이다. 나무의 몸통은 울퉁불퉁하게 뒤틀려서 지상 2m 부분에서 세 가지로 뻗혀있어 수세는 양호한 편이다. 나무의 나이는 286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가 자라는 곳은 남원시에서 19번 국도로 가다보면 도통동 고개에서 좌측에 2m 높이의 옹벽 계단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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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한국천주교 전주교구 소속의 성당. 1990년 남원성당(현 남원쌍교동성당)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남원 지역을 두 개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하여 전교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90년 7월 15일 도통동성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유영도 신부가 부임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제3대 한기호 신부는 수녀원을 설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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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도통동 지역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1년 7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도통동사무소가 설립되면서 초대 이주환 통장이 취임하였다. 1981년 관할 행정 구역이 9개 통 31개 반이었으나 2002년 2월에는 38개 통 194개 반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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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한국천주교 전주교구 소속의 성당. 1990년 남원성당(현 남원쌍교동성당)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남원 지역을 두 개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하여 전교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90년 7월 15일 도통동성당이 설립되어 초대 주임으로 유영도 신부가 부임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었다. 제3대 한기호 신부는 수녀원을 설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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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호이(浩而), 호는 낙와(樂窩) 또는 독락와(獨樂窩)이다. 참판에 증직(贈職)된 장우익(張宇翼)의 아들이다. 장석은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고모부인 통제사 이석관(李碩寬)으로부터 무술을 익혔다. 1714년(숙종 40)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28년(영조 4)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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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일본 제국주의는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며 조선 식민지 지배를 노골화했고, 결국 조선은 1910년 주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 양반 사대부 사회의 중심축이었던 남원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여 일제에 항거하고 국권 회복과 민족 자주성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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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1840년(헌종 6)에 남원도호부 보현방의 양평진사 양독영에 의해 설립된 학당이다. 남원양씨 문중을 비롯한 인근 마을의 학동들에게 학문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상신마을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 떨어진 해발 150m의 완만한 경사면 마을 안쪽 산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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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의 학자 김인식의 유고 시문집. 김인식(金仁植)[1864~1939]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흥(士興), 호는 독수재(篤守齋), 초명(初名)은 복경(復經)이다. 김성진(金聲辰)의 후손으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독수재유고(篤守齋遺稿)』는 1958년 김인식의 손자 김영기(金永基)가 발문을 붙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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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평촌서당은 천안전씨(天安全氏) 가문의 전용석에 의해 설립되었다. 전용석이 직접 훈장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집안 내에 있던 독영서재와 서실을 개방하여 대강면 일대의 주민 자제들을 훈육시켰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설립 이후 약 2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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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판소리 「흥부가」에 나오는 「돈타령」을 차용하여 부르는 민요. 「흥부가」에서는 「돈타령」이 두 군데서 불린다. 하나는 박흥보가 죄지은 좌수 대신 매품을 팔기로 약조하고 돈 닷 냥을 미리 받아 집으로 와서 부르는 「돈타령」이고, 다른 하나는 박흥보가 제비다리를 고쳐 준 덕으로 박을 타자 박 속에서 돈궤가 쏟아지자 부르는 「돈타령」이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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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깬돌 또는 냇돌과 판돌을 섞어 네 벽을 쌓아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돌덧널무덤은 해발 50m 이하의 낮은 구릉 지대에 주로 분포하며, 돌덧널 안에 나무널을 넣은 구조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은 청동기시대부터 하나의 독립된 무덤 양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초기국가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러 널리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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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계곡.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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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판상석이나 할석을 사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든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무덤. 돌방무덤은 구덩식과는 다른 굴식으로 된 매장 시설로서 무덤방의 측면을 통해 추가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한반도의 돌방무덤은 중국 묘제의 영향으로 축조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유행하였다. 백제의 돌방무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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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이에 돌을 던지면서 싸움을 하던 풍습. 돌싸움은 횃불놀이가 발전하면서 일어난다. 대보름날 저녁 아이들이 횃불놀이를 하다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패배할 기미가 보이면 청년과 장정들이 합세하여 돌을 던져 응원한다. 이것이 발전하면 두 마을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진다. 마을의 남자들이 마을 경계 부근에 모여 하천이나 들판을 사이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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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돌이나 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새기고 마을이나 절 입구에 세운 푯말. 장승은 지역간의 경계나 이정표 구실은 물론이고 마을의 수호신 역할도 담당하였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표시도 없고 천하대장군류의 표시도 없었다.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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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칡 갈(葛)’자와 ‘시내 계(溪)’자를 써서 갈계(葛溪)라 하였다가 갈계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갈이 되었다. 1150년경 창원정씨(昌原丁氏) 일가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형씨(邢氏)가 들어왔고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옮겨와 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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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인. 최시옹은 천성적으로 영특하여 부모가 이를 염려하여 늦게 가르쳤다. 여러 스승 아래 공부하여 학문에 대성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여러 번 천거한 관직도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일생을 초야에 묻혀 시문(詩文)과 벗하여 지냈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한신(漢臣), 호는 동강(東岡). 영의정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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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학자 최시옹의 유고 시문집. 최시옹(崔是翁)[1646~1730]의 자는 한신(漢臣), 호는 동강(東岡)이다.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의 후손으로 임실(현재의 남원시) 출신이다. 최시옹의 사후 1백여 년이 지난 1858년경, 후학들이 공의 유고를 모아 서유훈(徐有薰)의 서(序)를 붙여 간행하였다. 전남대학교 도서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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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연거사(紅蓮居士). 아버지는 홍문관부수찬 이수정(李守貞)이다. 황효헌과 이연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22년(중종 17)에 생원, 1531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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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물들의 모습을 인간사에 비유하여 부르는 유희요. 「동그랑땡」은 주로 잔치판이나 놀이판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전국적으로 불리는 유희요로서, 아이들이 동요처럼 부르기도 한다. 서로 손을 잡고 뱅뱅 돌면서 앞사람이 메기고 후렴은 모두가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린다.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되어 있다. 가창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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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내심(乃心), 호는 동량(㠉梁). 한성부 우윤 최연(崔葕)이 손자이며, 최휘지(崔徽之)의 아들이다. 최계옹은 1681년(숙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설서(設書)를 지냈다. 1695년 지평으로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고, 그 후 정언을 지냈다. 1704년 장령으로서 앞서 단종이 폐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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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과 신촌동을 연결하는 요천 위의 다리. 동림이란 지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전에 큰 숲이 있어 동림 또는 장림(長林), 숲정이라고 했다. 남원의 비보사찰인 선원사에서 괘불을 걸고 대법회를 열고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의 동림교에서 광한루원 앞 십수정까지는 숲이 있었으며 남원의 허한 기를 보충하기위해 인위적으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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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동림사의 초대 신도 회장이었던 양창현 옹은 『나의 70평생』에서 동림사의 창건 취지에 대해 썼다. “첫째, 영원한 세계의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체득함으로써 유한한 인간계를 넘어선 경지에 돌입하고, 둘째, 죽음으로써 마음이 아울러 인간계로부터 해방되어 영원 자체의 세계에 들어가며, 셋째, 우리가 인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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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 있던 숲. 동림숲은 동부 죽항동, 곧 성밖 마을 요천강변에 있었던 곳으로, 남원부의 기우제가 행해지던 곳이다. 십여 리에 달하는 기다란 숲으로 숲젱이라고도 하였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서울로 떠나는 이도령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곳이기도 하다. 동림숲이 있던 죽항동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한산한 주택지로 조용하였으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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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순의 유고 시문집. 이이순(李以恂)[1567~?]의 자는 희지(熙之), 호는 동림(東林)이며, 활계(活溪) 이대유(李大유)의 아들이다. 『동림유고』는 이대유의 문집인 『활계유고(活溪遺稿)』 뒤에 합철되어 있다. 『동림유고』는 김상현(金尙鉉)·이교영(李喬榮)의 발(跋)을 붙여 1940년 부친 이대유의 문집 뒤에 합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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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에 있는 옛 남원성(南原城)의 동문(東門)이 있던 곳에 위치해 있는 교차로. 사거리란 도로와 도로가 서로 엇갈린 교차로 중에서 십자형으로 갈린 교차로 유형을 말한다. 남원성은 신라 신문왕(神文王)[?~692] 때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1597년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다시 크게 쌓고 수리하여 담을 높였다. 남원성 안에는 남북과 동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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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전체 동물의 종류. 동물상은 일정한 환경이나 사는 조건에 따라 분류된 전체 동물의 종류를 말한다. 특정 동물군에 대해서는 곤충상·연체동물상 등으로,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물상·남극의 동물상 등으로, 환경에 대해서는 삼림동물상·토양동물상·호소동물상 등으로,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부유동물상·유영동물상 등으로 구분한다. 지구상의 특징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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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삼천갑자 동방삭 이야기. 1979년 5월 2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백일리에서 최래옥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김용규(남, 68세)로, 총각 시절 동네 할아버지한테서 들었다고 한다. 동방삭이 서른 살을 먹었을 때 저승차사가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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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 동상마을에서 음력 1월 2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동상마을 당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마을이 형성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몇 년 전부터는 동하마을과 함께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동상마을에는 원래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 작은할머니 당산이 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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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모시는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 남원 지역에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동제·당제·골맥이·동신제로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당산제를 행할 때는 지역에 따라 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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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발(子發), 호는 동애(東崖). 용성군 양주운(梁朱雲)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집의 양의(梁艤)이고, 아버지는 청계 양대박(梁大撲)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아버지 양대박이 의병을 일으켜 출전하자, 19세의 나이에 불과하였으나 종군하여 운암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603년(선조 36)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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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시민 운동가. 보절초등학교를 나온 후 한학에 전념하여 유가적 식견과 학식이 뛰어났다. 유교적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품성과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남달라 젊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이 되자 곧바로 남원청년회를 결성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했으나 좌익 세력이 남원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를 만들어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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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마을 주민들이 마을에서 모시는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 남원 지역에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당산제가 행해지고 있다. 동제·당제·골맥이·동신제로도 불리는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당산제를 행할 때는 지역에 따라 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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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음력 11월 또는 양력 12월 22일에 드는 절기(節氣)에 지내는 세시풍속.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을 동지라고 한다. 그리고 동지가 포함되어 있는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지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아세(亞歲)’라고도 한다. 동지에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과 안방 윗목에 먼저 한 그릇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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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우(士祐), 호는 동천(東川).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이희선(李喜善)이다. 1583년(선조 16)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선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좌랑으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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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속하는 법정리. 동천리는 동상리(東上浬), 동하리(東下浬)의 2개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으며, 긴 하천이 마을의 동쪽을 감고 흐른다. 중국 송나라에 운봉이란 고을이 있었다. 그 곳에는 동천·서천·북천이 있었는데 조선의 운봉 지형이 중국의 그 곳과 꼭 닮았으므로, 운봉의 모든 지명과 하천의 이름까지 송나라를 그대로 따온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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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원 출신 이상길의 시문집. 이상길(李尙吉)[1556~1637]은 원래 한양에서 출생하였으나 2세 때 외가를 따라 전라북도 남원부에 내려와 성장하였다. 자는 사우(士佑)이고, 호는 동천(東川) 또는 만사(晩沙)이고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기도 하였다. 병자호란 때에 호종하여 강화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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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동충동은 본래 남원의 서봉면(棲鳳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촌(東村)·창동(倉洞)·양동(楊洞)과 통한면의 충촌(忠村)을 병합하여 동촌과 충촌에서 첫 자를 따 동충리라 하였다. 1930년 남원읍에 편입되어 동부 동충리, 서부 동충리, 북부 동충리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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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용성초등학교에 있는 수령 525년의 느티나무. 높이 9m, 흉고둘레 4.5m, 근원둘레 5m, 수관폭 24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남쪽과 북쪽으로 두 가지가 갈라져서 남쪽 가지는 고사되어 수형이 한쪽으로만 무성하다. 나무의 나이는 525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가 있는 곳은 남원시청에서 농업협동조합 남원시지부를 못가 서문로터리쪽 사거리 인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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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수령 235년의 팽나무. 높이 17m, 흉고둘레 3.30m, 근원둘레 4m, 수관폭 20m, 지하고 2.5m이다. 지상 2.5m 정도에서 큰 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퍼졌으며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235년 정도로 추정된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 방어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남원성 터에 자라고 있던 자생목을 보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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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남원시청의 하부 행정 기관. 동충동 지역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1년 7월 1일 남원읍이 남원시로 승격되면서 3개 마을(동부동충리, 서부동충리, 북부동충리)이 합쳐져서 동충동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동충동사무소가 설립되었다. 1997년 4월 4일 관할 행정 구역이 기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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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상설 재래시장. 시외버스 터미널 옆에 위치하며 교통편이 좋아 남원 지역 주민은 물론 인근 순창, 곡성, 함양, 장수, 구례, 임실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동충아케이트라 부르기도 한다. 남원터미널시장은 1980년 무렵 동충동에 시가지가 조성되고 시내 및 시외버스 터미널이 설치되면서, 남원의 동쪽 방면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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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단지에 있는 거리. 남원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과 아우 송광록, 손자 송만갑은 물론 김정문, 강도근과 여류 명창인 이화중선, 박초월, 안숙선, 강정숙 등이 태어나 소리를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악을 바탕으로 국내 유일의 국립민속국악원을 비롯해 가왕 송흥록 선생 생가의 판소리 탯자리와 동편제거리가 있으며 동편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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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유희요. 「동풍가」는 본래 서도소리인 「난봉가」에서 파생한 민요로, 전국적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실실 동풍에 궂은비 줄줄 오는데”라는 노랫말에서 제목이 유래하였다. 앞소리와 후렴으로 구성된 선후창 형식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되어 있다. 가창자는 남원시에 사는 노영현(남, 80세)이다. 「동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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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동호재는 시문에 능한 조문형이 사재를 털어 만든 서당으로서, 그의 아호인 ‘동호(東湖)’를 칭하여 동호재라는 이름을 지었다. 시문에 능하였던 훈장 조문형은 20세에 마을 훈장이 되어 자신이 거주하는 집에 ‘동호재’를 마련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혹독하였던 일제강점기를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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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남원 출신 이수홍의 시문집. 이수홍(李壽烘)[1887~1967]은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 출신으로 자는 윤오(允五),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운봉향교의 전교로 있으면서 유교 진흥에 노력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개국 연호만을 쓸 정도로 배일사상이 강하였다.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1940년에 쓴 김동섭의 서와 1960년에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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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1766년(영조 43)에 창건된 서원으로 두동방의 향촌 사회를 근거로 하여 학문을 펼치던 사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고려 고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던 명암(明庵) 김인경과 고려 말의 충신 두계(杜溪) 김충유(金冲裕), 고려 6은(六隱) 수은(樹隱) 김충한을 주벽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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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 내송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은 내송마을 입구와 마을 안쪽에 있는 내송제 인근에 각각 1기씩 위치한다. 은송리 내송 고인돌1은 내송마을 입구 마을회관에서 오른쪽으로 마을로를 따라 약 30m 떨어진 곳에 있는 오른쪽 첫 번째 집 앞에 자리한다. 은송리 내송 고인돌2는 내송제 동쪽에 있는 계단식 논 사이에 자리한다. 고인돌은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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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애 깊은 두 친구 이야기. 1979년 7월 31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최래옥과 강현모가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임규임(여, 62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이좋게 지내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두꺼비이고 또 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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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두락리는 이동마을을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아영면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가 된다. 인월면 유곡리와의 경계 능선에 가야 고분군 3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마을이어서 남자들이 싸움터에 끌려가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고사를 지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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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 유적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형성하는 연비산에서 아영들 중심부까지 동서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아영면 소재지에서 두락리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우측으로 풍천을 가로지르는 이동교가 나온다. 유적은 이곳에서 약 500여 m 떨어져 있는 우측의 낮은 야산에 위치한다. 유적의 일대에는 비교적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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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에 있는 가야의 유물산포지. 유적은 두락리 고분군 주위의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 Ⅰ은 아영면 소재지에서 두락리 고분군의 좌측 조선 맥주 호프 단지로 가는 작은 소로로 약 200m 들어간 지점에 위치한다. 유적은 갯들과 마주하는 넓은 구릉상의 대지 서사면에 분포한다. 유물산포지 Ⅱ는 두락 마을의 중간쯤에 있는 넓은 밭에 위치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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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었던 단행본 기획 업무를 전문적으로 했던 출판사. 남원 지역의 인쇄 문화를 선도하고, 남원의 디자인 산업을 지역의 현실에 맞게 담아내기 위해서 창립했다. 2000년 7월 두레출판기획으로 출발하여 2006년 3월 17일 두레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3년 현재 운영 중단한 상태이다. 디자인, 편집, 프로세스, 카달로그, 책자, 브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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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었던 단행본 기획 업무를 전문적으로 했던 출판사. 남원 지역의 인쇄 문화를 선도하고, 남원의 디자인 산업을 지역의 현실에 맞게 담아내기 위해서 창립했다. 2000년 7월 두레출판기획으로 출발하여 2006년 3월 17일 두레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3년 현재 운영 중단한 상태이다. 디자인, 편집, 프로세스, 카달로그, 책자, 브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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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운봉읍·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하동군·산청군에 걸쳐 있는 산.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하동군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산이다. 경위도상으로 이 산은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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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평촌리에 있는 산. 말봉은 한자로 두봉(斗峰)이라 하는데, 산의 형세가 말[斗]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남원시 이백면 평촌리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시 내에서 이백면 소재지 방향으로 이동할 때 왼쪽에 있다. 평촌리, 내동리, 서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34.3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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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신리는 행정리인 신촌리와 두곡리의 2개 행정리로 나뉘어 있다. 남원시에서 1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요천수를 경계로 금지면과 인접하고 있다. 본래 남원군 두동면 두곡리 지역으로 두실, 망골 또는 두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촌리·두곡리를 병합하여 두곡과 신촌의 이름을 따서 두신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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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두신리에 있는 수령 305년의 느티나무. 높이 10m, 흉고둘레 2.2m, 근원둘레 6.3m, 수관폭 20m, 지하고 2m이다. 지상 2m 정도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으며 지상의 뿌리 부분에서 크게 구멍이 나 불에 탄 흔적이 있다. 많이 상해서 2006년 남원시 산림과에서 외과수술을 하였으며, 그 모양은 울퉁불퉁 뒤틀려서 귀이하다. 나무의 나이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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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설립된 사립 중등 교육 기관. 1766년(영조 43)에 창건된 서원으로 두동방의 향촌 사회를 근거로 하여 학문을 펼치던 사립 중등 교육 기관이다. 고려 고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던 명암(明庵) 김인경과 고려 말의 충신 두계(杜溪) 김충유(金冲裕), 고려 6은(六隱) 수은(樹隱) 김충한을 주벽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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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있는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근거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등동재는 1860년(철종 11)에 설립된 남원도호부 수지방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 마을 유림 김택주가 설립하였다. 등동재는 많은 후진 양성을 한 서당으로, 서당과 관련한 많은 한서(漢書)가 있었다고 전한다. 경주김씨 가문의 김택주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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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호는 둔세옹(遯世翁). 아버지는 방덕준(房德峻)이다. 방대순의 아버지는 수족이 저리는 병에 걸려 거의 치료 불가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효자인 그는 수소문 끝에 명의(名醫)를 찾아가 그 증세를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을 배워 마침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그 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한결같이 옛 예절을 준수하면서 상을 치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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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유희요의 하나. 「등가 타령」은 남원산성에 올라가서 보는 풍경을 사설로 그렸다고 하여 「남원산성」이라고도 불리며, 뒷소리에 나오는 ‘둥가’라는 말을 따서 「둥가타령」이라고도 한다. 「등가 타령」은 뒷소리가 딸리는 장절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중중몰이 장단에 맞추며, 대개는 「까투리타령」에 잇대어 부른다. 앞소리는 길이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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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광치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율치마을은 옛날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부근 산에 야생하는 밤나무가 많았기에 밤재라고 했다. 고개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사용하였으며 한자로 율치라 했다. 율치리는 지리적으로 마을 뒷산이 높아 고개를 넘어가야 했는데, 이곳에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생기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성씨 분포 상황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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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득상(得祥), 호는 우송(友松). 문정공(文貞公) 김자지(金自知)의 9세손이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승경(金承慶)의 손자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조정에서 내려온 5현(五賢)의 격문을 보고 아우 김진웅(金震雄)·김진용(金震龍)·김진표(金震彪)에게 말하기를 “지금은 바로 몸을 버리고 임금의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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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용징의 유고 시문집. 이용징(李龍徵)[1650~1726]의 자는 성오(聖五), 호는 득우정(得寓亭)이며,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득우정선생실기(得寓亭先生實記)』는 이용징의 시문을 모아 3권 1책으로 간행한 책으로, 『득우정선생가고(得寓亭先生家稿)』와 합철되어 있다. 언제 간행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3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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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득운(得運), 호는 명암(明庵). 문정공(文貞公) 김자지(金自知)의 9세손이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승경(金承慶)의 손자이며, 병자호란 의병 김진영(金震英)의 아우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 김진영을 따라서 의병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의병을 이끌고 수원으로 올라갔다. 수원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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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주로 논매기를 하며 부르는 논농사 소리. 「이슬털이」는 남원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노동요의 하나로, 지역에 따라서는 「들노래」, 또는 「문열가」라고도 부르고 있다. 남원시에서는 「이슬털이」 외에도 「그물가」와 「사허 소리」, 「장원질 소리」 등의 노동요가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남원지』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창자는 대강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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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들독놀이는 한국식 역도(力道)로서 농경 사회에서 행해졌던 중요한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일정한 크기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의 여부로 장정처럼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여 머슴의 품삯인 새경을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은 들독놀이가 행해지지 않고 있으나 예전에는 음력 6월 15일 영천이씨 집과 진주강씨 집 머슴들의 새경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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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돌의 영적 힘을 믿었던 민간 신앙이자 민속놀이. 거석신앙은 들돌신앙이라고도 한다. 돌에 영구불변성과 초자연적인 힘[靈驗]이 있다고 믿었던 무속 신앙이다. 거석은 당집이나 당산나무 밑에 존재했는데, 신의(神意)를 알아보거나 진쇠[成人]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 돌(들돌)을 들어보는 행사를 했다. 도서나 해안 지방, 특히 전라남도의 도서나 해안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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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금동에 있는 도로. 들독놀이는 한국식 역도(力道)로서 농경 사회에서 행해졌던 중요한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일정한 크기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의 여부로 장정처럼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여 머슴의 품삯인 새경을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은 들독놀이가 행해지지 않고 있으나 예전에는 음력 6월 15일 영천이씨 집과 진주강씨 집 머슴들의 새경을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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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리는 유희요의 하나. 「등가 타령」은 남원산성에 올라가서 보는 풍경을 사설로 그렸다고 하여 「남원산성」이라고도 불리며, 뒷소리에 나오는 ‘둥가’라는 말을 따서 「둥가타령」이라고도 한다. 「등가 타령」은 뒷소리가 딸리는 장절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중중몰이 장단에 맞추며, 대개는 「까투리타령」에 잇대어 부른다. 앞소리는 길이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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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수지면에서 곡성군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나타나는 등골마을과 초리마을로 가는 갈림길 중에서 초리마을 방향의 길가에 조성되어 있다.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어귀에 5기, 도로 건너 양계장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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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수지면에서 곡성군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나타나는 등골마을과 초리마을로 가는 갈림길 중에서 초리마을 방향의 길가에 조성되어 있다.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어귀에 5기, 도로 건너 양계장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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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경계에 있는 고개. 한자로는 아홉구비를 오르는 의미이며, 함양군 마천면에 고개이름과 같은 등구마을이 있으며 등구마을로 들어서는 입구라 하여 등구재라고도 한다. 높이는 650m 정도이며 북쪽의 삼봉산과 남쪽의 백운산 사이에 있는 말안장과 같은 안부형 능선이다. 두 산봉우리의 사이는 대부분 단층이 통과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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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경계에 있는 고개. 한자로는 아홉구비를 오르는 의미이며, 함양군 마천면에 고개이름과 같은 등구마을이 있으며 등구마을로 들어서는 입구라 하여 등구재라고도 한다. 높이는 650m 정도이며 북쪽의 삼봉산과 남쪽의 백운산 사이에 있는 말안장과 같은 안부형 능선이다. 두 산봉우리의 사이는 대부분 단층이 통과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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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수지면에서 곡성군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나타나는 등골마을과 초리마을로 가는 갈림길 중에서 초리마을 방향의 길가에 조성되어 있다.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어귀에 5기, 도로 건너 양계장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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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 등골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유적은 수지면에서 곡성군 고달면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가 나타나는 등골마을과 초리마을로 가는 갈림길 중에서 초리마을 방향의 길가에 조성되어 있다. 유적은 대형 괴석의 고인돌군으로 1㎞ 내외의 반경 안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어귀에 5기, 도로 건너 양계장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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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있는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근거하여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등동재는 1860년(철종 11)에 설립된 남원도호부 수지방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으로 마을 유림 김택주가 설립하였다. 등동재는 많은 후진 양성을 한 서당으로, 서당과 관련한 많은 한서(漢書)가 있었다고 전한다. 경주김씨 가문의 김택주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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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속하는 행정리. 법정리인 아곡리가 당동리와 아곡리의 2개 행정리로 분리되어 생겨났다. 아영면 소재지(광평)에서 서남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6.5㎞ 지점에 있다. 마을 이름을 땅골·당골·당동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복성동이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개울 상류에는 새목이재·복성이재(일명 두고개)와 장삼이 등이 있는데, 당시는 통칭하여 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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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에서 전하는 가재도구를 때우는 땜장이를 소재로 한 유희요. 「땜쟁이 타령」은 『남원지』에만 채록되어 소개되고 있는 민요여서 비교 고찰이나 음악적 실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노래이다. 대개의 경우 타령 류의 민요는 「방아 타령」처럼 놀이를 즐기는 유희요, 「징거미 타령」처럼 각종 동식물의 특징에 관한 노래, 「엿장수 타령」처럼 특정 직업, 또는 그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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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 주변에서 기르는 토종 꺼먹돼지.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재래돼지의 일종으로 고구려시대에 중국 북부지역에서 사육되던 돼지들 중 몸집이 작은 재래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남원지방의 산내, 아영지방의 토착종을 흑돼지 또는 똥돼지라한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이 좋고. 고기의 질이 우수하고 맛이 좋아 주로 식용으로 사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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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내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뜸물바위의 이름에 얽힌 유래담. 「뜸물바위」는 남원시 주천면 홈페이지의 ‘역사와 전설’란에 실려 있다. 주천면 내기리에는 뜸물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예전에 이 바위 아래에서는 신기하게도 매일같이 뜸물이 쉬지 않고 흘러 나왔다. 이 바위에서 나오는 뜸물로 목욕을 하면 나환자의 병까지도 낫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