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논개 순국담의 하나. 논개의 순국 사실은 구전되어오다가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부터 문자화되었다.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시기의 일로 전해진다. 이후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루 논개사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김개(金介)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안의(安義)의 정희량이 무신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전사했다. 1826년(순조 26)에 증직을 내렸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
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728년(영조 4) 정희량이 안의(安義)에서 무신란을 일으키자 삼촌인 김필만, 김필락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진주영장 이석복과 연합하여 인근의 수령들과 더불어 역도들을 협공하다가 모두 전사했다. 후에 양무공신에 오르고 1890년(고종 28)에는 김여삼, 김필만, 김필락의 공을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
조선 후기 무신란(戊申亂) 때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일찍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병법을 공부하였다. 1728년(영조 4) 무신란이 인근 고을 안의에서 일어나자 진주영장 이석복의 막하에 의병으로 들어가 반도들과 싸우다가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양무공신 2등에 기록되고 참판에 증직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충의조(忠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오(聖五)·경오(景五), 호는 신암(愼菴). 아버지는 노이선(盧以善)이며, 어머니는 팔계정씨이다. 1861년(철종 12) 거창에서 노이선의 차남으로 태어나 안의에서 성장하였다. 기호(畿湖) 유림의 거장 성재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송근수(宋近洙) 등을 사사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
-
조선 말기의 의병. 본관은 밀양. 자는 원숙(元淑). 본명은 준옥(準玉)이며, 부인은 하서리(河舒里)[1889~1970]이다. 1872년(고종 9)에 함양군 안의에서 출생하여 15세의 나이에 임시 관례를 치르고 의병장 노응규(盧應奎) 문하에서 항일의병에 참여하였다. 노응규가 1896년 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안의를 출발할 때부터 동행하여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생산자로부터 재화를 구입하여 ‘최종 소비자 또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할 자’에게 재화를 판매하는 사업. 경제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상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개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업은 경제발전단계에 조응하여 변화·발전하여 온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개념에 대한 완전한 정립은 명확하지...
-
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
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청주. 자는 천뢰(天賚), 호는 유계(柳溪).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의 증손이다. 성품이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극진히 모셨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때 정희량(鄭希亮)이 안의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토벌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상중이었으므로 이를 통분히 여겨 “늙은 신하는 임금의 욕됨에 놀라 적개심에 불타는 마음 나라...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민영 방송국. 생동감 있고 깨어있는 방송을 통해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방송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60년대 초부터 당시 로타리 클럽 회장이던 정영수와 상공회의소 회장 최병주, 지역인사인 문해술, 부산 MBC 사장인 안성수 등이 주축이 되어 민간상업방송을 추진하여, 1967년 11월 10일 호출부호 HLAK, 주파수 1,320KHZ, 출력 10Kw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