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사당. 진주하씨의 사우로서, 하즙(河楫)·하윤원(河允源)·하자종(河自宗)·하계종(河啓宗) 등 4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하즙은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고, 진천군(晋川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를 원정(元正)이라 하였다. 그 아들인 하윤원은 충혜왕 말년에 등제하여 경상, 서해의 안찰사를 지내고 원주와 상주의 목사를 역임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명...
진주목 관아의 기녀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던 계사년(1593) 6월 29일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의암, 義巖)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죽은 순국의 여인. 논개의 사실을 맨 먼저 기록한 이는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그는 인조반정 후 양주 서산에 숨어 지내다 광해군 복위를 꾀한다는 무고에 얽혀서 아들과 함께 서인 정권의 손에 죽임을...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찬성사로 치사(致仕)하고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가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돌보았으며, ‘잘못된 것을 알고서 그릇 판단한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놓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별세로 3년 동안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을 때 우왕이 ‘효를 옮겨 충으로서 삼고 그 애통함을 억제하고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