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강씨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
근대의 유학자 박태형의 문집. 박태형(朴泰亨)[1864~1925]의 휘는 태충(泰充)이며 자는 문행(文幸), 태정(泰亭), 윤상(允常)이고 호는 간암(艮嵒)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아버지 박덕성(朴德成)과 어머니 진양강씨(晋陽姜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인 송병선(宋秉璿)[1836~1905]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글을 수합한 『간암문집』은 11권...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에 있는 강권수의 효행을 기리는 비. 손가락을 잘라 병든 아버지를 간호한 강권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가산리 진산마을 가마고개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6㎝, 너비 39㎝, 두께 18㎝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글자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비의 제목은「처사진양강공...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어귀에 검바위 또는 검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본래 진주군 송곡면과 금동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곡동(松谷洞), 홍정동(鴻亭洞), 검암동(儉岩洞), 가토동(佳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검암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엄정(嚴亭), 운문(雲門), 차현(車峴), 신담(新潭)의 4개...
-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
·장재(長財) : ‘부자마을’이라는 뜻에서 장재실이라고 불린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장지(長智)라고도 불렀는데, 서기(瑞氣)로운 징조가 비친다, 선하고 신비함이 많다는 뜻이 있는 지초 지(芝)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에 마을 이름을 바꾸면서 마을 총의에 의하여 다시 옛날 이름인 장재실로 부르게 되었다. ·천금산(千金山) : 장재마을을 감싸...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전설에 의하면 수성동에 속하는 칠성마을이 양달과 음달로 되어 있었고, 들판 곳곳에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바위 돌이 일곱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길성(吉星)이란 명칭도 이 바위 돌을 가리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의 길성동(吉星洞), 둔두동(屯頭洞), 계룡동(溪龍洞) 일부를 통합하여 길성리(吉星里)라 하...
-
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강씨의 시어머니가 학질을 앓아 고통이 심하여 거의 실신할 지경에 처하자 강씨가 울면서 하늘에 빌고, 또한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약을 지어 올리는 등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였다. 강씨의 정성으로 병이 나은 시어머니는 천수를 누린 후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
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김승택(金昇澤)이고, 아버지는 강호운(姜浩運)이다. 진주 미천에 살았다. 진양강씨는 남편 김승택이 중한 병에 걸려 수개월간 자리에 누워있자, 지극 정성으로 간병을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약을 마시고 자진하니 집안 식구들이 서둘러 구하고자 하였으나 숨을 거두었다. 얼마 후 남편이 회복되어 쾌차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지...
-
조선 후기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강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잘 섬겼는데, 시집간 후로는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친지들에게 예로써 접하니 모든 사람들이 감복하였다. 남편 김중철이 오랫동안 학질로 고생하였는데, 사람의 살이 효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을 지어 올렸다. 이후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는...
-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분묘. 진양강씨인 강보충(姜輔忠)의 묘이다. 강보충은 고려 말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관련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냉정리와 장흥리의 경계가 되는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비교적 큰 봉토를 가지는 고려시대 방형분묘이다. 묘 앞쪽은 대형의 석재로 단을 만들었으며, 분묘 주위에는 후대에 세운 비석이 있다. 진양강...
-
밀양사람 박효근의 효행을 정려(旌閭)하고자 임금께 올린 조선시대의 상서문(上書文). 이 문서는 밀양 사람 박효근의 효행이 뛰어나 어머니의 병환을 낳게 하여 진주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유생들이 정려해 줄 것을 요청한 상서문이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상서문과 완문, 입안, 교지는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호구단자는 그냥 접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배접이나 보관용 상자...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에 있는 진양강씨 분묘군. 진양강씨인 강우덕(姜友德)[1385~1439]과 그 후손들의 집단 묘로, 조선시대의 분묘군이다. 강우덕의 자는 자보(子輔)이다. 1400년(정종 2) 감문위산원(監門衛散員), 1415년(태종 15) 승사랑 의영고 주부, 그해 가을에 선무랑으로 예안현감(禮安縣監), 사온서령, 의영고사(義盈庫使), 한성판관을 역임하고 1434년(...
-
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성경철(成慶喆)이고, 아버지는 강기섭(姜岐燮)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강씨는 심성이 효성스러워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중한 병에 들어 자리에 눕자, 3년 동안 하늘에 빌어 마침내 신령스러운 효력을 얻었다. 나이 20여세 때 아들을 낳았는데, 홀로 된 시어머니 때문에 우는 소리도 내지 못하니 보...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리(新基里)는 임진왜란 때에 정선전씨(旌善全氏)가 처음 들어와서 살았는데, 대단한 부자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진양강씨(晋陽姜氏)와 능성구씨(綾城具氏) 등이 들어와 살면서 새마을 또는 새터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에 신기(新基)라고 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명석면 동전동(東田洞), 청계동(淸溪洞), 신기동(新基洞)을 합쳐 신기리라...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대여촌면 용심동의 용(龍) 자와 금산면 월아동의 아(牙) 자를 따서 용아(龍牙)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여촌면(代如村面) 용심동(龍심洞)과 금산면(今山面) 월아동(月牙洞), 중촌동(中村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용아리(龍牙里)라 하였다. 하동정씨(河東鄭氏), 창녕성씨...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 있는 바위. 인근 마을에 사는 성씨들의 족보를 보관하는 바위이다. 이 바위 속에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재령이씨(載寧李氏), 함양박씨(咸陽朴氏), 진양강씨(晋陽姜氏), 곡부공씨(曲阜孔氏), 전주전씨(全州全氏), 금산김씨(錦山金氏), 진양정씨(晋陽鄭氏), 함안이씨(咸安李氏)의 족보가 보관되어 전해지고 있다. 동산리 분매골 앞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도...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바른 골짜기에 매화나무가 많이 있는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자매실’ 또는 ‘자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매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각면 자매동과 대우동, 산청군 파지면 덕동의 각 일부가 합하여 형성되었다. 자매(紫梅)와 월계(月桂) 두 마을이 남북으로 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대여촌면 가방동(加芳洞)과 사동(沙洞), 금산면 중촌동(中村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동의 이름을 따서 장사리라 하였다. 사동은 무제봉 통사바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국이 흡사 가래삽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삽골’ 또는 ‘삿골’로 불리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로는 이 곳 상의마을에 임진...
-
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강씨는 천성이 착하고 효성스러웠는데, 시집가서는 홀로된 시어머니를 부모를 섬기듯이 잘 모셨다. 남편 조용한이 병이 들자, 진양강씨는 자신이 대신 죽기를 하늘에 기원하며 남편을 간호했다. 남편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 가족들이 진양강씨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기원하던 장소에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고 한다....
-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성을산면(省乙山面)의 죽곡동과 장지동(長芝洞), 성산동(省山洞) 일부를 통합하고, 죽곡동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죽곡리라 하였다. 죽곡은 대나무가 많아 붙인 명칭으로 대실이라고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죽곡에는 옛날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대밭에는 봉(鳳)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봉이 앉아 있는...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에 있는, 김진의 처 진양강씨의 정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진양강씨의 남편인 김진이 왜적에게 화를 당하자 왜적 13명을 죽이고 자결한 진양강씨에게 내린 정려로, 1868년(고종 5)에 건립하였다. 맞배지붕의 기와집에 정면과 측면 각각 1칸이다. 좌우와 뒷면은 벽을 설치하고 전면은 목창살벽을 하였다. 내부에는 정려기와 정려판이 걸려 있으...
-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댐과 남강댐에 의해 생긴 인공호수.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근원은 둘이다. 하나는 지리산 북쪽에서 나오는데 경호강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지리산 남쪽에서 나오는데 덕천강으로 부른다. 이 두 강이 진주 시내 서쪽 광탄(光灘)[너우니]에서 합류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이곳에 제방을 쌓고 사천만으로 방수로를 뚫어 남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하자는 주...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 고분군. 고분은 모두 6기로서 조선 태종 때 문신인 문충공(文忠公)인 하륜(河崙)[1347~1416]의 묘를 비롯해서 그의 조부인 문정공 하시원, 조모인 진양 정씨, 부친인 하윤린, 모친인 진양강씨의 묘가 모여 있는 진양 하씨의 문중 묘역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산 166번지에 있다. 1007번 지방도변의...
-
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하(子賀), 호는 단주(丹州). 할아버지는 하숙(河淑)이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진양강씨이다. 부인은 성산이씨이며,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우이다. 1581년(선조 14) 태어났다. 1597년 정유재란 때 17세의 나이로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적이 그의 풍모와 문사가 훌륭하고 예의가 반듯하므로 예(...
-
조선시대의 열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진양강씨는 남편 한진영이 병이 들어 위독한 상황에 처하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 후 진양강씨가 딸을 낳았으나 성장하지 못하고 생을 마치니, 진양강씨는 남편의 묘로 가서 이를 아뢰고, 곧 돌을 안고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남편 한진영은 한진권의 쌍둥이 아우였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