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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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행한『진도읍지』의 증보편.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지동리(池洞里)에 사는 김종열(金鍾烈) 인쇄본이다. 당시 판매 가격은 3원이었다. 1923년 4월 전라남도 나주에 있던 도지간행소(道誌刊行所)에서 간행하였다.『중증진도읍지』 간행의 도유사는 박진원(朴晉遠)이 맡았고, 교정은 소양삼(蘇良三)·박봉우(朴鳳瑀)가 맡았다. 당시 이 읍지를 중증이라 함은 김몽규의 『옥주지』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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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 육지화하여 농토나 기타 산업부지로 만드는 일. 간척은 농경지 또는 염전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방조제 공사를 시행하여 일정 수역을 설정하고 방조제 내부의 물을 배제시켜 토지로 조성하여 사용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결국, 간척이란 근해(近海)의 간석지 또는 호수에 제방의 축조 등 제반 공사를 한 다음 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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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미적 요구에 따라 건축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 고대 사회의 움집으로부터 현재의 최첨단 고층빌딩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인간의 모든 역사, 즉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어우러진 하나의 구성체이다. 시멘트, 철, 유리 등 근대화 이후 새롭게 도입된 재료로 현대생활에 맞게 꾸며진 집이 현대건축이라면, 나무와 흙 등 자연 소재를 주로 하여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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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入島祖). 도강김씨(道康金氏) 조사공파 파조 김일(金鎰)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척강(金陟岡)이다. 부인은 조복명(曺腹明)의 딸이며 아들은 김분(金盆)[1497~1569]이다.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에서 진도군 고군면 향동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후손 김몽규가『옥주지(沃州誌)』를 지었다. 진도군 고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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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문계(文啓), 호는 삼호재(三乎齋). 아버지는 진도 입향조 김경의(金敬義)의 8세손 김봉명(金鳳鳴)이다. 부인은 오이태(吳以泰)의 딸이며, 4남 5녀를 두었다. 1694년(숙종 19)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에서 태어났으며, 외가인 고군면 고성에서 성장하였고, 1775년(영조 31)에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외가인 고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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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도강은 오늘날 전라남도 강진군의 북부에 있던 고려 때 고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남쪽 고을 탐진과 합해 강진군이 되었기 때문에 도강김씨를 강진김씨라고도 한다. 도강김씨 집안은 경순왕의 7대손 김희조(金希祖)를 시조로 하고 그로부터 5세인 김일(金鎰)을 기일세조(起一世祖)로 한다. 김경의(金敬義)는 오늘날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당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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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한 나루. 벽파나루는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진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로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와 해남군 황산면 옥동 삼지원(三持院) 사이 2.8㎞를 연결하고 있다.『옥주지(沃州志)』에 의하면 벽파나루에서 해남군 화산(花山), 영암군 송지(松枝), 제주도 등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272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항전할 때 벽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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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진도의 불교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민들의 신앙이 되어왔으나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폐찰되었다. 해방 이전에 건립된 사찰로는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쌍계사(雙溪寺)가 유일하고, 그 외에는 폐사지에 남아 있는 유구(遺構)와 암벽에 조각된 불상을 통해서 흔적만이 확인되고 있다. 1.쌍계사 쌍계사는 진도군 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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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지역에 있는 선현이나 조상의 신주,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 한말 이전에 사원(祠院)을 설립하려면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엄중하게 다스렸다. 다만 가문의 선조의 신위를 모시는 가묘(家廟) 형태의 사당은 둘 수 있었고,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묘소 주변에 재각(齋閣)을 둘 수 있었다. 가묘식 사당은 위패를 모시는 곳이고 재각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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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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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성씨가 대대로 세거한 지역. 고려조는 940년(태조 23)에 지방 구역과 명칭을 새로 정하고 그 지역 공무를 맡을 토성(土姓)을 정했다. 당시 정부는 지방 토호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토호를 호장(戶長) 또는 상대등(上大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지방 업무를 관할하게 했다. 이들은 그 지역의 토박이 성인 토성을 썼다. 조선조 초엽까지도 고을마다 토박이 성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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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찰. 『범우고(梵宇攷)』·『여지도서(輿地圖書)』·『옥주지(沃州誌)』 등에 쌍계사는 진도의 유일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진도 불우조에 죽림사(竹林寺)·봉성암(鳳城庵)·사나사(舍那寺)가 기재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의 지리지류(地理誌類)에 모두 폐사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쌍계사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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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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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용장사지는『옥주지』의 기록에서 그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1985년에 나온『진도용장성지표조사보고서(珍島龍藏城地表調査報告書)』에 따르면 용장성지는 258만평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조사된 건물지 유구 가운데 초석의 형식 등으로 보아 삼별초군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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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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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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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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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 1378년 전라도도순문사로 장흥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88년에는 요동(遼東) 정벌에 안주도부원수로 참가했다가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편을 들어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389년(공양왕 1)에는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운 공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되었으며, 중흥공신녹권(中興功臣錄券)을 받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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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 철마산에는 산성터가 있는데 옛날 『옥주지』 산천조에 의하면 “진도의 주산으로서 진도의 북쪽 2리 지점에 있는데 옛날 뇌산현(군) 때 산성을 쌓아서 관방처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곳은 지형이 북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으며 하단으로는 암벽이 곧추서 있다. 여기에서는 신안군의 여러 섬들뿐만이 아니라 진도군과 해남군의 북쪽 해안지역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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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와 군내면 월가리의 경계를 이루는 철마산에 있는 산성. 진도읍의 진산(鎭山)은 본래 북산(北山) 또는 망적산(望敵山)이지만, 주민들은 철마산이라 한다. 이 산에서 고을 수령이 매년 정한 날짜에 철마신상(神像)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마조단(馬祖壇)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철마산성은 그 성의 규모나 중앙단으로 보아 마조단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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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을 이용하여 문서, 회화, 사진 등의 저작물을 복제하여 다수 독자에게 발매 또는 배포하는 일. 출판인쇄는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본질적인 기능으로 하며, 문화의 보호와 전승 및 발전과 새로운 문화의 창조과정에서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출판인쇄는 저작물의 복제가 대부분 인쇄술에 의하여 행해진다는 점에서 인쇄 미디어라고 한다. 진도는 출판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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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별로 없는 넓은 땅. 진도는 대체로 산지나 구릉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산지의 고도는 200~400m 정도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산지에 의한 대규모의 하천은 발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지방 2급 하천들이다. 이들 곡저를 따라서 소규모의 범람원과 충적지가 나타나고 이를 기반으로 마을이 규모에 맞게 들어서 있다. 평탄한 평지이면서 관개가 가능한 곳은 일찍부터 논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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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서 한자(漢字)로 창작된 시. 전라남도 진도군은 여러 전란을 겪었던 불운의 섬이기도 했으나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섬 자체가 문화유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상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 사람들의 문집과 한시작품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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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풍속, 물산, 고적, 인물, 산악, 지리 등의 내용이 담긴 책. 진도군과 관련된 향토지로는 『옥주지(沃州誌)』, 『전라남도 진도부읍지(全羅南道 珍島府邑誌)』, 『진도읍지(珍島邑誌)』, 『중증진도읍지(重增珍島邑誌)』 등이 있다. 『옥주지』는 1761년(영조 37) 김몽규가 편찬하였다. 진도군의 가장 상세한 읍지이면서 현존하는 진도군의 가장 오래된 개별 읍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