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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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동안 가장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감귤이 진상되면 중앙 정부에서는 과거 시험의 일종인 황감제(黃柑製)를 실시하여 경축했을 만큼 귀하디귀한 과실이었다. 그러나 감귤 진상은 제주도민에게는 크나큰 노역과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제주민에게 감귤의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진상으로 인한 노역과 부담의 존재가 아니라, 제주도민 특히 제주 농가의 가장 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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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출신으로 중앙 관리를 역임한 문신. 고성겸은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본 것을 한으로 여겨 어머니와 상의하여 아버지의 묘를 옮기고 3년상을 치르니 모두 지극한 효자라 일컬었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극진하여 어머니가 70세로 노쇠해지자 성균관 교수를 사임하였다. 본관은 제주. 자는 원위(元撝), 호는 능봉(菱峰)이다. 아버지는 고응식(高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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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 자는 자유(自由), 호는 죽암(竹岩). 아버지는 성균관 교수였던 능봉(菱峰) 고성겸(高性謙)[1856~1899]이며,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고경흠(高景欽)[1910~?]의 8촌 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 23-1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고순흠의 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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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김만덕 묘 앞에서 열리는 제의. 조선시대에 기아에 허덕이던 제주도민들을 구휼한 김만덕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고 있는 제의이다. 김만덕제는 김만덕봉사상 시상 첫해인 1980년부터 매년 탐라문화제(구 한라문화제) 개막일에 제주시 사라봉 모충사 의녀반수(醫女班首) 김만덕 묘 앞에서 여성 제관의 집전 하에 유교식으로 봉행된다. 김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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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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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조선 중기 김진용(金晋鎔)의 교육 진흥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진용은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여 과거에 급제한 뒤 성균관에 유학, 경학과 전강에 합격하였다. 이후 숙녕전(肅寧殿)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사퇴하고 제주에 머물렀다. 김진용이 제주에 은거하면서 훈학에 힘쓰는 한편 1659년에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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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성균관의 이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유교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의 제주 지부. 성균관유도회 총본부는 1945년 한국의 유림 대표들이 성균관에 모여 결성한 유림 단체로, 초대 위원장에는 김창숙(金昌淑)을 추대하고 부위원장에 김성규(金成圭)·이기원(李基元), 감찰위원장에 이재억(李載億)을 추대하였다. 성균관유도회에서는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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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아명은 송성뢰(宋聖賚)이다.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후일 경종)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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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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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조광조가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실시한 현량과에 천거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무죄를 호소하다 1520년(중종 15) 제주도에 유배되어 대정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 중 제주 유생들을 가르치는 일로 나날을 보냈는데, 7년 동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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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840년(헌종 6) 성균관 유생에게 황감(黃柑)을 주면서 치른 과거 시험인 황감제에서 부(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을 거쳐 승정원부승지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6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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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 자는 숙빈(叔賓)이다. 아버지는 임섬(任暹)이며 어머니는 송필훈(宋必勳)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67년(영조 43) 정언 재임 중 언론의 중요성, 『어제유곤록(御製裕昆錄)』의 불합리한 서술, 재상의 잦은 교체, 제술(製述) 시험 때 성균관 유생을 모독한 도승지 송영중(宋瑩中)의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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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동석·동주석·동제상·애기동자·자석 등으로 지역에 따라 약간 다르게 부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동자석이라고 부른다. 제주의 민묘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담으로 둘러져 있고, 그 속에 동그란 봉분이 있고 묘주의 심부름꾼이라 할 수 있는 소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보고 있다. 현무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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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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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순녀(順汝). 아버지는 포도대장 채학승(蔡學承)이다. 음보(蔭補)로 무관직에 기용되어 내외 관직을 거쳤다. 1855년(철종 6) 8월 목인배(睦仁培)[1794~?]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856년(철종 7) 봄에 귤림서원(橘林書院) 모현암(慕賢岩) 편액을 썼고, 제주성 동성문(東城門)에 있는 연상루(延祥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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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 초명은 최기남(崔奇男)이다.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며,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1855년(철종 6년) 유학(幼學)으로 도기과(到記科: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식년 문과 초시)에 강(講)이 뛰어나 문과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어 그 해 정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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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제주도의 귤과 전복 같은 특산물은 고려 시대부터 진상되었다. 특히 귤은 조선조에 들어와 말과 함께 공물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의 진상 귤이 궁중에 도착하면 왕이 그 중의 일부를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황감시(黃柑試)라는 과거 시험까지 치르게 한 것으로 보아 제주 귤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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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음사는 1924년 창설된 한시를 연구하는 단체였는데, 지금은 사단법인으로 운영하며 오현단에 자리하고 있다. 현용필은 1981년 영주음사 사원으로 가입하여 한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4·3사건과 보릿고개 등의 어려운 농촌 생활을 거치면서도 어려서 배웠던 한시 창작에 더욱 힘쓴 그는 한라문화제, 공부자 탄강 기념 한시 백일장 등에 참가하여 다수 입상을 하였다. 영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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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나누어주고 치르게 했던 과거 제도. 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시험은 주로 감귤이 진상되는 10~2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예로부터 제주목에서는 귤·유자·귤감을 진상해왔다. 그러면 종묘에 진상하고 각궁의 하인들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에게 이를 바쳤는데, 이를 치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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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양백(良伯). 아버지는 황수태(黃壽泰)이며,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735년(영조 11)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3월 유혁(柳爀)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778년(정조 2) 12월에 떠났다.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김광현(金光鉉)[1722~?], 경내운(慶來運)[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