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인물. 1613년(광해군 5) 인목대비의 부친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를 받고 역모죄로 사사(賜死)되었으며, 3년 후인 1616년(광해군 8) 부관참시되었다. 김제남의 아들 김래·김규·김선도 목숨을 잃었다. 김제남의 가족 중 손자 김천석(金天錫)과 노씨부인만 화를 면하였다. 그러나 1616년(광해군 8)에 유생 이공헌·박몽준 등이 노씨부인을...
조선 중기 정의현감과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02년(선조 35) 12월 이연경(李延慶)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여 1605년(선조 38) 4월까지 재임하였다.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1560~1623] 등과 결탁하여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9년(광해군 11) 10월 홍걸(洪傑)[?~1619]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탐학이 극도로 심...
조선 중기 대정현감·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22년(광해군 14)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할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𥙿)[1581~1633]의 권유로 광해군[1575~1642]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여, 1623년(광해군 15) 3월에 일어난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