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안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후손으로, 송나라 때 병부 상서를 지낸 유전(劉荃)이 고려 문종(文宗) 때인 1082년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유전의 맏아들 유견규(劉堅規)의 후손들은 거창 유씨가 되었다. 한편 유전의...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경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 중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인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며, 다른 이씨 중에서도 이알평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묘지(墓誌)를 지으면서 신라 말 소...
-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
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 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 학교를 처음 접했을 때 조선의 민중들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서구적인 신식학교가 19세기 후반 우리 사회에 도입된 이후 갑오교육개혁, 대한제국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주도적인 학교 체제로 정착해 나가게 된다. 신식 학교를 처음 접했을 때 조선의 민중들의 시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식 학교는 외세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 학교에 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곡(檀谷). 증조할아버지는 김윤안(金胤安)이며, 할아버지는 김득선(金得善)이고,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다. 어머니는 권극해(權克諧)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은진(李殷鎭)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김해일(金海一)[1640~1691]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입격(...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향토 문화 단체. 내제문화연구회는 제천 지역 문화 연구에 대한 조사 수집 및 발표를 통하여 지역 향토사를 정립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법인 단체이다. 1987년 3월 14일에 회원 11명이 모여 내제문화연구회를 발족하였고, 2002년 11월 29일에 사단 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그 후 대표자 및...
-
충청북도 제천시 서부동과 하소동 사이에 있는 넋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넋고개 유래」는 효성이 지극한 정혼(鄭渾)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천미라는 약초를 만지는 순간 죽게 되자 염라대왕이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되살렸다는 효행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제천시 서부동에 위치한 제천중학교와 하소동 사이의 고개를 넋고개라고 부른다. 1988년...
-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시가지 북쪽 4㎞ 부근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시내를 관통한 뒤 용두산 끝자락으로...
-
일제 강점기에 충청북도 제천에 있던 공립 보통학교의 전단계적 성격의 교육 기관. 모범서당은 제천에 봉양모범서당과 수산모범서당이 있었으며 이를 모태로 봉양공립보통학교와 수산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또 제천간이학교 역시 모범서당을 모태로 출발하였다. 제천에서 모범서당과 관련된 기록은 1919년의 봉양공립보통학교와 1922년의 수산공립보통학교에 관한 것들...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에서 왕박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무도리 왕박시루 유래」는 고려 왕족이 왕(王)씨에서 박(朴)씨로 성을 바꾸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유래담이다.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만지실 뒷산을 왕박산(王朴山) 또는 왕박시루라고 한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무당을 중심으로 민간에 전승되는 습속. 무속 신앙은 외래 종교인 불교·유교·개신교 등의 상대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샤머니즘을 무속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는 샤머니즘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종교적 현상으로 전래해 왔기 때문이다. 제천 지역의 무속 신앙은 굿과 독경(讀經)으로 나뉜다. 굿은 각 거리마다 신을 불러 들여 즐겁게 달...
-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희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문화 유씨 시조는 고려 삼한공신으로 알려진 유차달(柳車達)로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5대조인 유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 구월산(九月山)에 은거한 이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6세손은 문간공(文簡公)...
-
고려 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왕족. 본관은 의흥(義興). 의흥 박씨의 시조로, 『의흥박씨세보(義興朴氏世譜)』에 따르면 본성은 왕씨(王氏)였으나 조선 개국 후 화를 피하기 위해 외가의 성을 따라 박씨가 되었다. 가계는 형 박갑규(朴甲規)와 의흥 박씨인 어머니가 파악된다. 박갑규는 고려가 망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박을규(朴乙規)는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
-
고려 후기 이첨(李詹)이 청풍 한벽루(淸風 寒碧樓)의 풍광을 노래한 칠언 절구의 경물시(景物詩). 호서(湖西)[충청도] 제일의 누각이라 불리는 청풍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인 1317년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청풍현 출신 승려이자 왕사인 청공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1406년(태종 6) 군수 정수홍이 중수하고 하륜(河崙)에게 「한벽루기...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보존 또는 증식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고 있는 나무. 보호수는 천연기념물이나 지방 기념물 이외의 풍치 보존이나 학술 참고 또는 번식 등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지정해서 보호하는 나무이다. 보호수의 지정권자는 시장, 도지사 또는 지방 산림관리청장이며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중에서 보존 또는 증식의 가치가 있는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보존 또는 증식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고 있는 나무. 보호수는 천연기념물이나 지방 기념물 이외의 풍치 보존이나 학술 참고 또는 번식 등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지정해서 보호하는 나무이다. 보호수의 지정권자는 시장, 도지사 또는 지방 산림관리청장이며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중에서 보존 또는 증식의 가치가 있는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봉황산(鳳凰山) 남쪽에 터를 잡았으므로 봉양리라 하였다. 흔히 산의 남쪽을 양(陽)이라 부르므로 봉황산의 ‘봉’과 ‘양’을 붙인 것이다. 봉황산은 봉양리 북쪽에 있던 산으로 산세가 순하고 아름다웠으나 길을 내기 위하여 헐었다고 한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내소리·외소리·오산리 등을 통합하여...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설에 따르면 조선 선조 때 해주 오씨 오주해(吳柱海)가 단양 부사로 부임하였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금의 금성면 활산리로 피난 가던 중 사오리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오주해는 증조부의 호인 사오당(査伍堂)을 따서 마을 이름을 사오륜(査伍倫)이라 하였고, 여기에서 사오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서곡리 남쪽 옛 남한강 연안에 솟아 있는 절벽. 서곡단애는 청풍팔경의 제8경, 제천십경의 제10경에 속한다. 서곡단애는 청풍팔경이라고 하지만 행정 구역상으로는 수산면에 속해 있다. 옛날 서곡리는 청풍군 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지형이 호미실[서곡(鋤谷)]이라서 1941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곡리라 하여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팽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선고리 팽개바위 유래」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신립(申砬)[1546~1592]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바위 멀리 던지기로 내기를 하여 우리 편이 던진 바위가 지금의 선고리 고목고개까지 날아와서 조선이 이겼는데, 그때 던진 바위가 ‘팽개바위[投石]’라는 암석유래담이다. 현재...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성곽(城郭)이란 보통 성(城)을 뜻하지만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성안의 인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시설을 말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성벽뿐만 아니라 성벽 밖에 설치된 해자 등의 시설, 성벽에 설치된 각종 시...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위치한 배론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초기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황사영(黃嗣永)[세례명 알렉산데르]이 백서를 쓴 곳이며, 한국 천주교 신학교의 요람인 성 요셉 신학당이 있던 곳이다. 또한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세례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자, 한국 천주교의 103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은암성 아래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성리, 성골, 성곡, 성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금수면 성리가 되었고, 1929년 10월 14일 수산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성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서 ‘송계리’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송계리와 가등청정」은 지명 때문에 왜군이 마을로 들어오지 않아 야간 공격을 통해 왜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는 승전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송계리는 한수면 소재지를 지나 사자빈신사지(獅子頻迅寺址)로 가는 곳에 있는 마을인데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말 또는 신리(新里)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석우리(石隅里)와 동막곡(東幕谷)을 통합하여 신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제천시 신동이 되었다. 2003년 7월 7일 행정동인 서부영천동 관할이 되었으며, 2011년 1월 행정동인 영...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1960년에 법당인 극락전을 중수하면서 쓰인 「월악산 신륵사 중수기」에 의하면 신륵사는 582년(진평왕 4)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이후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년] 때에는 원효대사가 고쳐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또한 고려 공민왕 때에는 무학대사가 고쳐 지었고,...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신륵사의 고탑을 소재로 쓴 칠언 절구의 한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벼슬길로 나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에서 생애의 대부...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나는 약초와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 막국수의 어원은 원료인 메밀을 껍질까지 막 갈아서 국수를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천은 여름철에 30℃를 오르내리는 고온의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시원한 음식을 선호하였다. 그래서 막국수에 얼음을 갈아 얹어 먹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고 메밀의 찬 성분과 한약재 성분의 궁합이 잘 맞아 건강식으로도...
-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역사와 문화. 전통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과 청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지역 사회는 삼국 시대 이래 정치·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 1980년 제천시로 통합되면서 지역 사회는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면서 활동 무대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제천 지역은 강줄기를 따라 혹은 점말동굴로 알려진...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오상렴의 문집. 오상렴(吳尙濂)[1680~1707]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이다. 아버지는 판관을 역임했던 오시적(吳始績)이며, 외조부는 윤매(尹梅)이다. 『연초재유고(燕超齋遺稿)』는 1745년(영조 21) 오상렴의 생질인 이익정(李益炡)이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에 대한 사전적 개념을 보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는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몹시 우악스럽고 사나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에 항거하는 미혼녀라고 하였고, 열부(烈婦)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 부인 및 목숨을 끊음으로써...
-
충청북도 제천시 신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사지(寺誌)』에는 “영수암은 조선 숙종 때 권옥소(權玉所)가 창사(創寺)하고 조선 시대 말엽에 폐사하였다”고 전하며,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도 예전부터 이곳에 영수암이 있었다고 한다. 제천시청에서 충주 방면으로 1㎞ 정도 진행하다 산모퉁이를 돌면 오른쪽에 전원마을비가 나타난다. 마을로 진입하는 시멘트...
-
정극유을 시조로 하고 정보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의 원조는 신라 육촌(六村)의 하나인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 지백호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으며, 정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족보 및 종친회를 각각 다르게 하는 두 파가 있다. 고려 의종 대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권섭의 문집. 권섭(權燮)[1671~175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월(百越)이다. 본래 한양에 거주하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껴 1714년 당시 큰아버지 권상하(權尙夏)가 있는 청풍 황강리로 낙향하였고, 말년에는 제천 봉양에 거주하였다. 여기에서 권상하의 학풍을 시풍으로 계승하였다. 산수 유람과...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 왕박산(王朴山)은 왕씨에서 박씨로 성을 고친 의흥 박씨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의흥박씨세보』에 따르면 시조 박을규(朴乙規)는 본래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 상서를 지낸 인물인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멸족의 화를 피해 단양의 영춘 차의곡[지금의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우륵을 배향한 조선 후기 사당 터. 1871년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우륵당은 의림지 동쪽 석봉에 있다. 그 위에 우륵이 와서 거처하였던 곳이다[于勒堂在義林池東石峯之上于勒來居之所]”라고 기록하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혹은 말하기를 우륵이 의림지를 처음으로 쌓았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우륵을 제사지내 그 공을 보답하는 곳이다”라는 기록...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공자의 사상을 존경하고 숭앙하는 가르침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사상으로서 유가(儒家), 유도(儒道), 유학(儒學)이라고도 한다. 유교는 공자의 도의 사상을 종지(宗旨)로 하는 인본주의적 윤리의 가르침이다. 즉, 유교란 자신의 내적 수양을 쌓은 유자(儒者)들의 올바른 가르침, 또는 그...
-
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
박을규를 시조로 하고 박수검의 후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의흥 박씨의 관향조인 박을규(朴乙規)의 본성은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화(禍)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春城)[현재 단양군 영춘면] 거의동(車衣洞)에 둔거하였다가 조선 태종(太宗) 때 외가(外家)의 성(姓)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
-
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면(李柱冕)[1900~1947]은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의 역량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주면은 1919년 12월 서울 인사동에 거주하...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지역에서는 항일적인 색깔이 분명한 이범우(李範雨) 등이 주도한 3·1 운동,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 김학간·김정호 등이 주도한 제천청년회...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북도 제천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합을 공고히 하고 지방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 진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부산포 침입으로 개시된 임진왜란은 초기...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제천시에서 국도 38호선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박달재 터널 못미처 왼편으로 제천 자양영당 표시판이 있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 정도 가면 장담마을이 나오고, 마을 끝에 제천 자양영당(紫陽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柳重...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在地士族)은 상경종사(上京從士)하였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다. 중앙 정계의 정치적 격변기에 지역 사회로 들어온 성씨 집단이 많은데, 그 가운데 제천의 재지 사족은 대부분 조선 시대 이후에 형성되었다. 정치적 배경으로 보면 다양한 분...
-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숙(李俶)과 이정희(李廷熙)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의 사공(司功) 이한으로, 전주 이씨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고 한다. 22세손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전주 이씨는 왕성이 되었다. 전주 이씨는 122...
-
1900년대 초 제천 지역에서 발생한 그리스도교와 반 그리스도교의 사회 분쟁. 천주교의 교세가 확장되는 가운데 각 지역에서 발생한 선교사 및 천주교인과 지방 관리, 토착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을 역사학계에서는 교안(敎案)이라고 한다. 박해로 일관한 조선의 천주교 정책은 1886년(고종 23) 맺어진 한불조약에 따라 사실상 변화를 맞았다. 선교사들은 국내 여행증이라 할 수 있는...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석축 산성. 제천 덕주산성이 있는 월악산은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을 가르는 천연의 분수령으로, 계립령(鷄立嶺), 조령(鳥嶺), 이화령(伊火嶺) 등 고대로부터 이용된 많은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계립령은 제천 덕주산성에서 남쪽으로 경상도와 통하고, 북쪽으로 남한강을 따라 충주와 서울에 이르기...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성지(聖地). 70여 호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배론은 주변의 자연 환경 여건상 인근에서 쉽게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들은 숨을 곳을 찾아 배론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에는 황사영(黃嗣永)이...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에 있는 조선 전기 불전. 제천에서 청풍 방면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 가다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남제천 나들목 입구를 지나 청풍 방면으로 1시간 정도 간다. 수산면을 지나 충주 방면으로 국도 36호선에 진입하여 수산2리 시내버스 정류장 앞에서 좌회전하면 월악리로 진입하는 월악길로 들어서게 된다. 신륵사는 월악리 마을에서...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에 있는 조선 시대 벽화 및 단청. 단청(丹靑)은 청색·적색·녹색·백색·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활용하여 건물의 벽면과 나무에 문양이나 그림을 채색하여 장엄미를 드러내고, 목재를 보호하고 장식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궁전이나 법당 등 특수한 건축물이 장엄하고 엄숙한 권위를 드러내도록 하는 효과를 지닌다. 단청은 다른 말로 오채(五...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저수지와 버드나무 숲.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湖西) 지방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의림지는 용두산[874m]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저수지와 버드나무 숲.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湖西) 지방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의림지는 용두산[874m]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 전기 누각. 제천시 청풍면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삼국 시대부터 수운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하여 1317년(충숙왕 4)에는 군으로 승격되고 1659년(현종 즉위년)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역사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다. 옛 청풍부(淸風...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선현 제사와 지역 향리 자제 교육을 담당하는 관학 기관인 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5)부터 설립되었다.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으로 제 기능을 회복하였고, 조선 개국 후 유교를 치국의 원리로 삼아 유학이 융성하게 됨에 따라 향교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향교가...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지방 국립 교육 기관. 선현 제사와 지역 향리 자제 교육을 담당하는 관학 기관인 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5)부터 설립되었다. 이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으로 제 기능을 회복하였고, 조선 개국 후 유교를 치국의 원리로 삼아 유학이 융성하게 됨에 따라 향교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향교가...
-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 서화첩은 1802~1803년 청풍 부사 안숙(安叔)이 청풍, 제천 등 4군의 명승을 유람하면서 읊은 시문과 화가 기야(箕埜) 이방운(李昉運)[1761~1815]이 그린 그림으로 구성된 서화첩이다. 표제에서 거론된 ‘사군(四郡)’이란 충청북도 내 청풍·제천·단양·영춘을 가리키며, ‘강산(江山)’이란 제천 지역 안에 흩어져 있는 명승들을...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특수 행정 구역이 일부 남아 있었고, 역원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다. 조선 전기에 이미 지배 집단인 토성이 약화되고 새로운 성씨 집단이 동성 마을을 만들며 주도권을 행사했다. 농업 기반은 약했으며 밭농사를 주로 했는데, 경작지에 비해 많은 인...
-
제천 청풍 한벽루는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의 상징이자, 비봉산과 청풍강이 어울려 있는 명당 중에 최고 명당에 자리한 누각이다. 본래 청풍현 출신 승려 청공(淸恭)이 고려 충숙왕 4년인 1317년에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 동쪽에 세운 건물로서,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다. 1983년 청풍호가 만들어지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제천의 불교는 통일 신라 시대에 유행한 화엄종의 영향권 안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제천과 가까운 단양에 화엄 십찰 중의 하나인 비마라사가 있었다. 화엄종이 실질적으로 신라의 국교나 다름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에 제천 지역의 불교도 화엄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신...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에서 주천자묘와 용담폭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주천자묘와 용담폭포」는 주나라 황제가 어렵게 구한 금수산의 절세의 명당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자 금수산의 신룡(神龍)이 산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승천했다는 풍수담이자 신이담이다. 금수산은 수산면 상천리에 있는 명산이다. 문자 그대로 비단으로 수놓은 것처럼 산...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제천시 영천동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이 빙 돌아서 포구를 이루었으므로 주포 또는 추포라 하였다. 이를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주포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지역은 제원군으로 개칭되...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 걸쳐 있는 산. 천등산은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와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으로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691m]이고 천등산은 서남쪽으로 약 8㎞ 떨어진 다릿재와 연결된 산이다. 천등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일직선상에 있는 인등산과 지등산을 일컬어 삼등산이라...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우현(禹玄), 호는 석거(石居). 선조는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 휘하로 조선에 출정하여 여러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도 전공을 세우고 귀화한 천만리(千萬里)이다. 천인봉(千仁鳳)은 청풍문화재단지에 세워진 자선비에 의하면 관직은 의관(議官)이었다. 의관은 1895년(고종 32) 중추원...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제천에는 한국 천주교의 전래와 순교 사화와 관련된 제천 배론성지가 있다. 제천 배론성지는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에서부터 1801년(순조 1)의 황사영(黃嗣永) 백서 사건 이후까지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던 한국 천주교회사의 의미 있는 성지이다. 또한 1855년 조선 교구 직무 대행이었던...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여덟 곳의 향토 명승지. 청풍 지역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곳이다. 동쪽에는 비단을 드리운 제1승경으로 금수산(錦繡山)[1,016m]이 있고, 남쪽에는 충청북도 충주시와 경상북도 문경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맥의 영산으로 월악산(月岳山)[1,094m]이 웅거하고 있다. 이 두 산 사이에 청풍을 동서로 흐르는 남한강...
-
임진왜란 때 청풍 지역의 취봉치(鷲峰峙)에서 벌어졌던 전투. 1592년 4월에 왜군이 수만의 병력으로 침공해 오자 오랜 승평(昇平) 세월에 잠겨 있던 조선의 관군이 무너져 버렸다. 이에 향촌 사회에서 성장해 온 재지 사족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섰다. 의병들은 보잘 것 없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도 지리에 밝고 향토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여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에 큰 변수가 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있는 탁사정 주변의 유원지. 탁사정은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갈라져 달리는 남서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탁사정 유원지는 탁사정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를 말한다. 조선 정조 때 제주 목사로 있던 임응룡(林應龍)이 해송 여덟 그루를 심고 세운 팔송정(八松亭)을 후일 원규상(元奎常)이 탁사정(濯斯亭)이라 개명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선조 때 제주 목사를 지낸 임응룡(任應龍)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그 일대를 팔송이라 명명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임응룡의 아들 임희운은 정자를 지어 팔송정(八松亭)이라 칭했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평촌·동오리를 통합하여 팔송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김이만의 문집. 김이만(金履萬)[1683~1758]의 본관은 예안(禮安)이며, 자는 중수(仲綏), 호는 학고(鶴皐)이다. 아버지는 경주부윤 김해일(金海一)이다. 목판 간행본을 1994년 후손가에서 단계 김해일의 『단계집』 등과 합하여 『예안김씨예천파문집』으로 영인하였다. 또 다른 김이만의 저작으로, 규장각에 소장된 필사본 10책의 『...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현 충주시 동량면]의 독바위와 충주시 살미면 문화리의 공암과 용수꾸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함암리 독바위」는 이여송(李如松)[1549~1598]이 조선에서 큰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게 지맥을 끊으려고 혈을 찔렀을 때에 만들어졌다는 공암(孔岩)[구마바위]과 굴에서 뛰쳐나온 용마가 빠져 죽은 늪을 용수꾸리라고 한다는 암석...
-
한계군(韓溪君) 이공기(李公沂)는 선조 대에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저술한 양예수(楊禮壽),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주 저자인 허준(許俊)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조를 진찰한 조선의 저명한 어의이자 의관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수의(首醫)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어의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허준과 같이 호성공...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제천시 청풍면과 금성면의 경계가 되는 국사봉의 동쪽에 자리한 곳이 활산리이다. 활산리는 살미 또는 거산(居山), 활산, 시산(矢山)이라고도 하였다. 활산이라는 지명의 근원형이 되는 우리말은 ‘살미’로 빠르다는 의미의 ‘살’과 산을 의미하는 ‘미’[뫼의 변형]가 결합한 것이다. 마을의 뒤쪽에 위치한 국사봉의 형상이 빠른...
-
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
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
1801년 황사영이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던 밀서.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黃嗣永)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의 내용과 대응 방안에 대해 베이징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던 밀서이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정약종 등 교회 지도자들이 거의 체포되었는데, 황사영은 박해를 피하여 서울을 떠나 제천으로 피신하였다. 이곳에 김한빈과 황심을 통해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을 전해 듣고 음...
-
충청북도 제천 지역 출신이거나 제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효는 동양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사상이다. 공자(孔子)는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인(仁)을 주장하였는데,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며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克己復禮爲仁]”이었다. 그리고 그 인을 실천하는 근본으로서 “효성과...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후선각(候仙閣)이 있던 누각 터. 전 밀양 군수 김봉지(金鳳至)가 이곳에 후선각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임소정기(臨沼亭記)」에서 의림지 뒷편에 있는 ‘후선지각(候仙之閣)’의 존재가 확인된다. 또한 영조 때에는 현감의 주최로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주소 상 위치는 제천시 모산동 산...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에 검은 빛깔의 오석(烏石)이 많고 진주 강씨 세거지에 ‘현암(玄巖)’이라는 글자를 새긴 오석이 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새김글은 조선 명종 때 진주 강씨 후손이 기묘사화 때 모해를 받아 흑석동에 낙향하여 새긴 것으로 전해 온다. 『한국지명총람』에 “흑석리는 검은 빛깔의 돌이 많으므로 검은돌 또는 흑석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