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建築)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전통 건축은 동양 사상으로 집 우(宇)와 집 주(宙)의 우주관으로 성주괴멸(成住壞滅)하는 자연관의 결정체이다. 전통 건축은 시공간적으로 빈 공간의 허(虛)에서 우주와 합일하는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가 충만한 건축물을 추구하였다...
-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기수(權夔洙)[?~1896]는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교관(敎官) 출신이다. 호좌의진이 1896년(고종 33) 5월 제천의 남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 유인석(柳麟錫)을 따라 서북 지방으로 이동하는 서행(西行)에 참여하였다. 이때 서행하려던 의병 측은 화서학파의 중요한 근거지인 서북 지역에 미리 유치경(兪致敬)과 이필희(...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북진리와 교리에 걸쳐 있는 산. 금병산(錦屛山)은 한벽루 북쪽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단 병풍을 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병풍산(屛風山), 병산(屛山)이라고도 불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금병산은 청풍부 북쪽으로 강 건너 서로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한 떨기의 잔안...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 김태원(金泰元)[1863~1932]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출사하여 별군직과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직후 김하락·구연영·조성학·신용희 등과 함께 이천에서 봉기할 때 선봉장을 맡았다. 백현(魄峴)·이현(梨峴) 등지에서 접전하여 몇...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 남산에 있는 개항기 때 의병과 관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 곳. 제천 남산은 제천 의병의 항일 정신이 깃든 격전지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 의병은 유인석(柳麟錫)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1896년(고종 33) 2월 17일에 충주성을 함락하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가흥과 수안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와 관군의 공세로...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적덕리에 있는 약수터. 남산 약물계가 있는 마을을 약물개마을이라 부르는데, 마을에 있는 샘이 약물의 효험을 갖고 있다 하여 약물개[약물게, 약물계, 약물께]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물개마을은 일명 약수동이라고도 부른다. 약물개마을이 자리한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적덕리는 동북쪽 및 동남쪽으로는 구룡리와 맞닿아 있고, 서북쪽...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곡리와 읍리에 걸쳐 있는 산. 청풍부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산이라 하였다. 남산은 청풍부 주산의 진산이자 안산인 명산이며 사직단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남산은 곧 청풍부의 안산으로 소백산에서 온 산맥으로 비봉산 동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산은 높이 187.6m로 북북서쪽에 대덕산[580m...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산. 제천현 관아의 남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72년 간행된 『제천현지도(堤川縣地圖)』에 따르면, 제천현 관아 동헌의 아후봉에서 남쪽으로 제7남산(第七南山)을 표기하여 제7봉이 남산(南山)이었음을 알 수 있고, 산봉우리 앞 북쪽으로 홍살문을 세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봉우리를 관아 밖의 남산으로 인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천...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환곡을 보관하던 사창(社倉)이 있었기 때문에 사창골 또는 사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금수면 사곡리가 되었고,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금성면 사곡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못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연리(淵里)라고도 한다. 1906년 청풍군 읍내면 연곡리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읍내면 상리로서 못 안쪽에 있었으므로 지내(池內)라 하였다. 이후 우리말로 못안으로 바뀌었고 발음이 변하여 모단이 되었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연곡리가 되었고,...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윤성호(尹聖鎬)[?~1896]는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을 때 중군장 안승우(安承禹)의 막하에서 우익장으로 활약하였다. 선봉장이던 김백선(金伯善)이 군기 문란죄로 처형된 이후에 지평 출신의 포군 지도자 서석화, 선봉장 종사관 민의식 등이 반발하여 의진을 이탈하여 김백선의 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청풍 지역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여서 읍내 또는 읍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3년 12월 29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청풍군이 제천군에 통합되고 읍내면과 근서면이 합쳐져 비봉면으로 개칭되고 상리·중리·하리 등이 합쳐져 읍리로 개편됨으로써 제천군 비봉면 읍리가 되었다. 1918년 비봉면이 청풍면으...
-
개항기 박세화(朴世和)가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제천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의병장이자 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일찍부터 화서학파의 유중교와 교유를 가졌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고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다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05년...
-
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섭(士攝), 호는 택옥(澤玉).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후손이다. 호좌의진에서 전군장·중군장으로 활약한 안승우(安承禹)가 사위이다. 이민정(李敏政)[1845~?]은 제천의 신월리에 살던 진사로, 단발령 이후 의병 운동에 적극 나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을 시종 도왔다. 의병 운동...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약(文若)·명칠(命七), 호는 소산(小山). 이완하(李完夏)는 단양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 장의장에서 활동하였다. 장의장은 단양 지역의 의병으로 조직된 의병 부대를 일컫는데, 장림(長林)에 주둔하여 적을 방어하였다. 호좌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의진을 이...
-
개항기 제천에서 말년을 보낸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총선(總仙). 아버지는 병조 판서 이규철(李圭徹)이며, 이규남(李圭男)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은 군부 대신 이종건(李鍾健)이다. 이종승(李鍾承)[1828~?]은 1858년(철종 9) 황해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에 의해 황해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군권을 종실이 장악하여 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희두(李熙斗)는 단발령이 내려진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천에서 봉기한 김하락 의진에서 좌군장을 맡았다. 후에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활동한 호좌의진에서 분의장·좌군장·호위장 등 전투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이후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이 청풍의 서창까지 이르자 홍대석(...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 마을에서 붉은 흙이 많이 났다고 하여 적덕(赤德)이라 하였다가 뒤에 적덕(積德)으로 바뀌었다. 1914년 경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적덕(積德)’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을이 주변 골짜기 넓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골말[일명 곡촌]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소상팔경」을 본 떠 제천의 평야 지대인 청전(靑田)의 팔경을 노래한 오언 절구의 연작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벼슬길로 나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
-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최중봉(崔中奉)은 호는 중봉(重峰)이며, 을미 의병 기간에 민용호를 중심으로 한 강릉 의병진에서 중군으로 활동하였다. 호좌의진이 남산 전투에서 패하고 서북행을 단행할 때 참여하였다가, 철원에서 적에게 체포된 뒤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산수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집터인 양택(陽宅)과 묘지인 음택(陰宅)으로 사용하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최적의 조건으로 삼는다. 즉 흘러가는 물줄기에 넓은 들판과 산세의 지맥이 끊어지지 않고 모래흙에 찬샘이 솟으며,...
-
구한말 유인석(柳麟錫)이 조직하여 충청북도 제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조직. 호좌의진은 단발령 이듬해인 1896년 초에 강원도 영월에서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의병 조직이다.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화서학파 선비와 지평 출신의 포군이 주축이 되었으며 제천 지역을 근거지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여 제천 의병이라고도 한다.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고, 제천을 비롯한 충청북도·강원...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이고, 호는 하포(下浦).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가 별세한 이후에 비로소 장담에 나아갔고, 안승우(安承禹)에게서 주로 배웠다. 1894년(고종 31) 여름 스승인 안승우를 모시고 제천의 백련사에서 글을 읽다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음을...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 시내 남쪽 화산[일명 남산, 곰배산, 갈매, 곶매]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화산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에 진달래꽃이 많아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서당리와 사천리 등이 통합되어 읍내면 화산리가 되었다. 1940년 제천읍에 편입되었고 사천리는 영천동으로 동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