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시호는 문충(文忠). 증조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할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 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蕃)이다. 작은아버지가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 이지함(李之菡)이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제천...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시 중앙에 있는 중심가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예전에는 아뒤[衙後], 어물전 골목, 황애젓 골목으로 불렸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됨과 아울러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 되었고, 1946년 제천읍 중앙로 2가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천시 중앙동이 되었고, 1995...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시 중앙에 있는 중심가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예전에는 아뒤[衙後], 어물전 골목, 황애젓 골목으로 불렸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됨과 아울러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 되었고, 1946년 제천읍 중앙로 2가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천시 중앙동이 되었고, 1995...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술자리나 흥겨운 놀이판에서 부르는 유희요. 「아라리」는 일반적인 「아라리」보다 약간 길게 부르는 「긴 아라리」로서 술자리나 흥겹게 노는 좌석에서 즐기기 위한 오락 민요이다.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에서 부르기도 하였다. 노동요로서 소리를 할 때는 「아라리」보다 조금 빠른 「자진 아라리」로 부른다. 제천 지역의 「아라리」는 지역적...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 시내 서쪽에 있고 서부시장이 있어 서부동(西部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서정(西町)이 되었다. 1949년 제천읍 서부동이 되었고,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동과 서부동을 통합하여 행정동인 명...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내리와 오티리, 덕산면 성암리에 걸쳐 있는 산. 야미산(夜味山)은 본래 백야산(白夜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백야산은 청풍군 남쪽 33리[13.2㎞]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야산은 한밤의 환한 달과 같이 밝은 산의 뜻이다. 백야산은 아미산(娥媚山), 배미산(培美山), 야미산, 배모산(拜母山), 바미산, 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야미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야미산 정상부에서 북북서쪽 산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에서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는 약수가 흘러나온다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야미산 약수굴은 오티리에 있는 청풍나드리 삼거리에 인접하여 있다. 약수의 효험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한때 계곡에 상탕과 하탕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아사봉과 관아 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사봉의 유래」는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은 칠성봉(七星峯)의 하나인 탐랑봉(貪狼峯), 즉 아사봉(衙舍峯) 동쪽에 있는 관아 터에서 태어나면 큰 인물이 된다는 풍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현재 제천 시내에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다. 그 가운데 탐랑봉을 아사봉이라고도 한...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아세아시멘트공업의 생산 공장.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과 산업화가 추진됨에 따라 시멘트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 원료 공급지로서 국내의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였던 제천 지역은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중앙선이 1935년에 개통되고 이후 충북선과 태백선이 교차하게 되면서 수송에 적합한 교통...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아세아시멘트공업의 생산 공장. 1960년대부터 경제 개발과 산업화가 추진됨에 따라 시멘트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 원료 공급지로서 국내의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였던 제천 지역은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중앙선이 1935년에 개통되고 이후 충북선과 태백선이 교차하게 되면서 수송에 적합한 교통...
-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아파트는 각 세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각각 독립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주택이다. 공동 주택은 주택으로 쓰이는 층수가 5층 이상인 주택을 말하며, 주택으로 쓰는 1개동의 바닥 면적 합계가 660㎡를 초과하고 4층 이하인 주택은 연립 주택으로 분류되며, 주택으로 쓰는 1개동의 바닥 면적 합계가 660㎡ 이하...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있던 수산역(壽山驛) 안쪽 마을이므로 안골, 내곡, 안말 또는 내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내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내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수산...
-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성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신라 말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은 본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 권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크게 번성하여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338명,...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있던 수산역(壽山驛) 안쪽 마을이므로 안골, 내곡, 안말 또는 내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내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내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수산...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의림지 안쪽에 있어 못안이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모산이 되었다. 안모산과 바깥모산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북면 신담리(新潭里) 일부를 편입하여 제천군 읍내면 모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군 제천읍 모산리가 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시 모...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안성해(安成海)는 권관(權管) 출신의 전직 관료로,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의병으로 소모된 농민들을 훈련시키는 조련장을 하다가, 곧 우군장을 맡았다. 지역에서 개화 정책을 독려하던 충주관찰부를 공략하고 호좌의진이 기세를 올릴 때 참가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안숙(晏叔), 호는 부익자(孚翼子)·포옹(抱翁). 할아버지는 정철(鄭澈)이고, 아버지는 강릉 부사를 역임한 정종명(鄭宗溟)이다. 정양(鄭瀁)[1600~1668]은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 삼척에서 은거 생활을 하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菴)·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 시호는 문숙(文肅). 할아버지는 예조 참의 안서우(安瑞雨)이고, 아버지는 오위도총부 부총관 안극(安極)이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할아버지가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제천 유원(楡院)에 있던 친척 윤훈갑의 집에 머물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 아들로 의병 운동을 펼친 안승우(安承禹)가 있다. 안종응(安鍾應)[1845~1906]은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으며, 척사론을 주장하는 화서학파와 일찍부터 교류하였다. 단발령 이후 지평 고을에서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
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국빈(國賓), 호는 회와(悔窩)·가주(可洲). 아버지는 호조 참의 안안후(安安厚)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아들로 삽교(霅橋) 안석경(安錫儆)[1718~1774]이 있다. 충주 가흥(可興)에 거주하였으며 청풍 김씨(淸風金氏)와 혼인하였다. 안중관(安重觀)[1683~1752]은 1702년(숙종...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안춘흥(安春興)[1883~?]은 지금의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던 때 다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합류하여 종군하였다. 새로 들어온 병사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교련관(敎鍊官)으로 활동하였는데, 주로 이강년 부대의 후군장인 신태원(辛泰元)의 휘하에 있었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집안의 안녕을 비는 의례. 안택고사는 각 가정에서 음력 정월 또는 시월에 날을 잡아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올리는 가정의례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안택고사를 주로 “집안떡 해 먹는다.” 또는 “집안 한다.”, “안택 한다.”라고 표현한다. 이 지역에서는 정월 보다는 주로 시월에 안택을 하는 편이다. 한 해의 수확을 마쳤기 때...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집안에 위치하는 신적 존재인 집의 신에게 가정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신앙. 가정 신앙은 가내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의례이다. 이를 가신 신앙(家神信仰) 또는 안택 신앙(安宅信仰) 등이라고도 한다. 가신(家神)은 집안 곳곳에 상주하며 가족의 무사태평함을 돕고, 외부에서...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집안의 안녕을 비는 의례. 안택고사는 각 가정에서 음력 정월 또는 시월에 날을 잡아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올리는 가정의례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안택고사를 주로 “집안떡 해 먹는다.” 또는 “집안 한다.”, “안택 한다.”라고 표현한다. 이 지역에서는 정월 보다는 주로 시월에 안택을 하는 편이다. 한 해의 수확을 마쳤기 때...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고아원을 설립하고 활동한 신부. 봉희만(奉喜萬)[1916~1986]은 성심대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서울 영등포와 인천 답동 천주교회에서 보좌 신부로 근무하였다. 1943년 말 제천 본당에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10년 동안 근무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고, 미군 부대의 지원을 받아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술래를 피하려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노는 놀이. 앉은뱅이 놀이는 제천 지역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 하는 신체단련형 민속놀이이다.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수가 되면 무리 중 한 아이의 제안으로 놀이가 시작된다. 앉은뱅이 놀이는 아이들의 순발력과 판단력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일정 공간 안에서 놀이를 하게 되므로 공간 인지...
-
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
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산. 조선 태종 때 제천현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 뒤에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아후봉(衙後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뒤산, 애뒤산, 아사봉이라고도 한다. 달리 북두칠성의 6번째 별 이름을 차용하여 무곡봉(武曲峰)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아후봉이 제천시에 있는 칠성봉(七星峰) 일곱 개 봉우리 중 제6봉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어서 애련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원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금리(長琴里)·길현리(吉峴里)·대티리[大峙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백운면 애련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 애련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시인 홍석하의 시집. 홍석하는 1935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태어나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제천에서 터를 잡고 『제천문학』을 창간하였다. 1980년에 『충청일보』 신춘문예와 198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제천문학회 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제천 지부장, 한국문인협회 충청북도 부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라리류의 민요. 「애아랑가」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채록되어 전승되고 있는 아라리류의 비기능요이다. 당시에 「아랑가(我嫏歌)」라고 불리는 노래군이 조사되었는데, 그 근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아라리」나 「아리랑」으로 보고 있다. 1912년에 보고된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俚謠·俚諺及通俗的讀物等調査)」에 의하면 제...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소량 발견되는 광물질 한약재. 곱돌은 활석(滑石), 액석(液石), 탈석(脫石)이라고도 하며, 규산염류(硅酸鹽類)의 광물질 덩어리로서 한약재로 쓰이고 있다.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방광에 염증이 있거나 몸 안에 열 기운이 있을 때 열을 식혀 주면서 노폐물을 배설시키는 성질이 있다. 주로 방광염, 요도염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차가운 성질은 습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내리와 오티리, 덕산면 성암리에 걸쳐 있는 산. 야미산(夜味山)은 본래 백야산(白夜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백야산은 청풍군 남쪽 33리[13.2㎞]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야산은 한밤의 환한 달과 같이 밝은 산의 뜻이다. 백야산은 아미산(娥媚山), 배미산(培美山), 야미산, 배모산(拜母山), 바미산, 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야미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야미산 정상부에서 북북서쪽 산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에서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는 약수가 흘러나온다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야미산 약수굴은 오티리에 있는 청풍나드리 삼거리에 인접하여 있다. 약수의 효험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한때 계곡에 상탕과 하탕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제천 용하계곡에 있는 영운담을 노닐며 그 위에 비친 달의 모습을 노래한 오언 절구의 한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관직에 나아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제천 지역에 있는 칠성봉의 유래와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관직으로 나아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에서 생애의...
-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한약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장. 약령시는 한약재의 유통과 관련하여 보건·의료적 기능과 지역 경제를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서 경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약령시가 다수 개설되었는데, 이미 조선 효종 때 개설되었다가 성쇠를 계속한 대구, 원주, 전주를 비롯하여 제천, 개성, 평양, 진주, 대전, 함흥 등에 약령시가 개설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오리고기에 한약재를 넣어 끓인 향토 음식. 오리고기는 새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며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급 식품 재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 추위가 심한 제천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오리고기가 재료로 많이 쓰여 왔다. 한약재와 함께 섞어 기능성을 보강한 제천의 약선약오리 음식은 찜, 구이, 탕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오리고기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야미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야미산 정상부에서 북북서쪽 산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에서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는 약수가 흘러나온다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야미산 약수굴은 오티리에 있는 청풍나드리 삼거리에 인접하여 있다. 약수의 효험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한때 계곡에 상탕과 하탕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야미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야미산 정상부에서 북북서쪽 산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에서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는 약수가 흘러나온다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야미산 약수굴은 오티리에 있는 청풍나드리 삼거리에 인접하여 있다. 약수의 효험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한때 계곡에 상탕과 하탕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나는 약초와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 막국수의 어원은 원료인 메밀을 껍질까지 막 갈아서 국수를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제천은 여름철에 30℃를 오르내리는 고온의 날씨가 지속되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시원한 음식을 선호하였다. 그래서 막국수에 얼음을 갈아 얹어 먹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고 메밀의 찬 성분과 한약재 성분의 궁합이 잘 맞아 건강식으로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돼지 창자 속에 갖은 재료를 넣어 삶은 향토 음식. 약초순대는 약초로 만든 소스를 채소, 육류, 곡류 등과 버무려 순대 속을 만들어 돼지 내장에 집어넣은 음식으로, 순대 특유의 역한 냄새가 나지 않으며 맛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황기, 당귀, 천궁 등 20여 가지를 섞은 약초 추출액과 신선한 채소가 어우러져 누린내가 전혀 없고 그윽한 약초 향과 부드러운...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쌀가루와 각종 한약재를 섞어 찐 떡. 일명 약초떡이라고도 하는데 기능성 떡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집 안에서 간식 또는 별식으로 떡을 쪄 먹었다. 가정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일상적으로 떡을 해 놓고 먹기도 하였다. 제천 지방에서는 약초의 고장답게 한약재를 넣은 각종 떡이 많이 개발되었다. 주로 떡의 색을 곱게 하거나 건강을 보조할 목적으로 약재...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하천리에 있는 한방 제품 생산 업체.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를 응용한 한방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약초와 천연 염료를 이용한 천연 염색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 염색 제품은 제천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약초를 이용하여 전통 염색 기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한 자연 색감과 심미성을 가지며, 약리 작용으로...
-
조선 후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아들로 이경억(李慶億)이 있다. 이시발(李時發)[1569~1626]은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사마시와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양동환(梁東煥)은 본관이 나주(羅州)이며, 을미 의병 당시 이강년(李康秊)과 의병을 일으켜 제천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1909년(순종 3) 다시 의병을 일으켜 나주 어등산(魚登山)에서 일본군을 습격하여 대파하고 황룡강(黃龍江) 유역에서도 분전하였다. 그 후 만주로 건너가 병사하였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흥(義興).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종(朴承宗)이며, 할아버지는 박문헌(朴文獻)이고, 아버지는 박경심(朴景諶)이다. 어머니는 김난언(金蘭彦)의 딸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박수검(朴守儉)[1629~1698)은 조석윤(趙錫胤)의 문인이며, 뒤에 송시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만지곡(晩知谷)[현 제천시...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좋은 경치를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민요. 「양산도」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채록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경치 좋은 자연을 소재로 부르는 비기능요이다. 1912년에 보고된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俚謠·俚諺及通俗的讀物等調査)」에 실려 있다. 원래 「양산도」는 경기 민요의 특징이 두드러진 소리로 자연을 노래한 격조 있는 내용의 사설이...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쪽 들 옆에 터를 잡았으므로 양지편 또는 양평말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양평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양평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쪽 들 옆에 터를 잡았으므로 양지편 또는 양평말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양평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양평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 있던 삼국~고려 시대의 고분. 양평리 고분은 한수면소재지에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가다가 청풍초중학교 직전 제천시 청풍면 신리(新里) 방면으로 들어서면서 계산리를 지나 접근할 수 있다. 비봉산[531m]의 서쪽 하안에 해당하나 현재 수몰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비슷한 양식의 계산리 고분과는 1㎞...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수몰 이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양평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의 신당(神堂)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양평리 동제는 산고사(산신제, 산천고사)와 서낭제 순으로 진행된다. 양평리마을에서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제당에서 매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뱀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양평리 뱀바위」는 일제 강점기에 충주와 청풍 간 도로 공사를 할 때 사용한 화약의 폭발 때문에 토막토막난 이무기가 떨어진 바위에 대한 암석유래담이다. ‘뱀바위’는 양평리에서 충주로 빠지는 길로 가다 보면 남한강변에 있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수몰 이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양평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의 신당(神堂)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양평리 동제는 산고사(산신제, 산천고사)와 서낭제 순으로 진행된다. 양평리마을에서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제당에서 매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수몰 이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양평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의 신당(神堂)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양평리 동제는 산고사(산신제, 산천고사)와 서낭제 순으로 진행된다. 양평리마을에서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제당에서 매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수몰 이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양평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의 신당(神堂)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양평리 동제는 산고사(산신제, 산천고사)와 서낭제 순으로 진행된다. 양평리마을에서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제당에서 매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쪽 들 옆에 터를 잡았으므로 양지편 또는 양평말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양평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양평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은 사리방리(沙里防里)의 모음 변이형인 사린뱅이였는데 살인과 소리가 같고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자주 일어나 양화리로 고쳤다. 조선 말 제천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심곡리·양지말·음지말 등을 통합하여 성산면 양화리가 되었고, 1917년 금수면과 통합되어 금성면 양화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양화리 동제는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서낭제]이다. 이외에도 지프실은 서낭제를 별도로 지냈고, 미륵대이, 하양지말, 선녀골 등이 함께 서낭제를 지냈으며, 큰말, 날기실, 윗양지말, 길마재 등도 같이 서낭제를 지냈다. 현재...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제천에서 청풍 방향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륵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며, 도로와 들판 사이를 흐르는 고교천을 따라 200m쯤 가면 들판 가운데에 도도록하게 솟아 있는 대지 위에 양화리 선돌 2기가 4.9m를 사이에 두고 쌍을 이루며 서 있다, 양화리...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제천에서 청풍 방향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륵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며, 도로와 들판 사이를 흐르는 고교천을 따라 200m쯤 가면 들판 가운데에 도도록하게 솟아 있는 대지 위에 양화리 선돌 2기가 4.9m를 사이에 두고 쌍을 이루며 서 있다, 양화리...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아버지는 전부장(前部將) 어수혼(魚守渾)이고, 동생으로 어득황(魚得滉)이 있다. 어득해(魚得海)는 16세기 중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1573년(선조 6)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목사에 이르렀는데 임진왜란 때 전사하였다. 묘소는 제천시 모산동에 있다....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여용(汝容). 아버지는 전부장(前部將) 어수혼(魚守渾)이고, 형으로 어득해가 있다. 어득황(魚得滉)[1551~?]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훈련원 정을 거쳐 1603년(선조 36) 구례 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어랑 어랑’하는 후렴을 갖고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어랑타령」은 후렴에 ‘어랑 어랑’을 사용하여 받는 사설이 주를 이루는 유희요이다. 이를 「신고산 타령」이라고도 한다. 「어랑타령」의 사설은 고달픈 생활 속에서 살아온 시골 처녀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는 내용이 많다. 소박한 향토색을 구성지게 소리로 풀어낸다. 조금 빠른 장단에 맞추어...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와 도전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 임금이 피난을 한 산이기 때문에 어래산(御來山)이라 하였다. 앞으로 임금이 오거나 나갈 산이라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한편 산 북쪽의 도전리 달롱실[月弄谷]이 풍수상 옥녀가 달을 희롱하는 형국을 띄고 있기 때문에 어래산을 달맞이하는 산으로 여긴다. 어래산은 높이 814.5m인데, 덕산면 성...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와 도전리에 걸쳐 있는 산. 옛날 임금이 피난을 한 산이기 때문에 어래산(御來山)이라 하였다. 앞으로 임금이 오거나 나갈 산이라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한편 산 북쪽의 도전리 달롱실[月弄谷]이 풍수상 옥녀가 달을 희롱하는 형국을 띄고 있기 때문에 어래산을 달맞이하는 산으로 여긴다. 어래산은 높이 814.5m인데, 덕산면 성...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어르렁 고개’라는 가사를 갖고 전해 내려오는 민요. 「어르렁 타령」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채록되어 전승되고 있는 비기능요이다. 1912년에 보고된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俚謠·俚諺及通俗的讀物等調査)」에 실려 있으며, 사설 도입부에 ‘어르렁 고개’라는 가사가 있어서 「어르렁 타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12년 조선총독부에...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한양지에 있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구멍. 한양지(寒陽地)는 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워 찰 한(寒)자가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명 ‘얼음골’로 불린다. 한양지는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형도에 처음으로 ‘한양지(漢陽地)’로 기록된 이후 『제천군지』, 『한국지명총람』에 계속해서 언급되었다. 본래는 ‘한양지(漢...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시 중앙에 있는 중심가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예전에는 아뒤[衙後], 어물전 골목, 황애젓 골목으로 불렸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됨과 아울러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 되었고, 1946년 제천읍 중앙로 2가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천시 중앙동이 되었고, 1995...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제천시 중앙에 있는 중심가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예전에는 아뒤[衙後], 어물전 골목, 황애젓 골목으로 불렸다. 1940년 제천면이 제천읍으로 승격됨과 아울러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 되었고, 1946년 제천읍 중앙로 2가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천시 중앙동이 되었고, 1995...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서 어씨 오형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어씨 오장사」는 맏형인 어득황(魚得滉)을 비롯한 어씨오형제 모두 힘이 장사여서 사람들은 이들을 ‘어씨 오장사’라고 부른다는 인물담이자, 제천의 의림지(義林池)에 가끔 나타나서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큰 이무기를 잡았다는 괴물퇴치담이다.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를 중심으로 어씨오형제 이야기가...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 및 출판 활동의 총칭. 언론은 정치·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 수단으로 말이나 글을 통해 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의 역할을 하는 행위를, 출판은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판매·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을 각각 통칭한다. 제천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소사는 각 언론매체에서 방송, 신문,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하여 음성·영...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한글의 말머리를 노랫말의 첫마디로 가져와 부르는 유희요. 「언문뒤풀이 소리」는 한글 순서에 따라 소리를 차례로 결합하여 그 소리에 이어 붙여서 부르는 문자 유희요이다. 이를 「한글뒤풀이 소리」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여자 아이들이 한글을 익히기 위해서 「언문뒤풀이 소리」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말놀이와 말장난으로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독자적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기원적으로 한 언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사투리[방언]라고 말하는데, 특정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종(變種)이자 변이체(變異體)를 일컫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특정 지역의 언어...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나무 막대기를 이용해서 공을 치며 즐기는 놀이. 장치기는 청년들이 나무 막대기와 공을 만들어 편을 갈라 공을 치며 노는 신체단련형 민속놀이이다. 지역에 따라 이를 ‘봉희(俸戱)’, ‘공치기’, ‘얼레공치기’, ‘타구놀이’, ‘장채놀이’ 등이라고도 한다. 겨울철에 남자들이 주로 놀던 장치기는 세 가지의 놀이 방식이 있다. 첫째 장대로 공을 쳐서 구멍...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한양지에 있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구멍. 한양지(寒陽地)는 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워 찰 한(寒)자가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명 ‘얼음골’로 불린다. 한양지는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형도에 처음으로 ‘한양지(漢陽地)’로 기록된 이후 『제천군지』, 『한국지명총람』에 계속해서 언급되었다. 본래는 ‘한양지(漢...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엄기섭(嚴基燮)은 영춘 사람으로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유인석(柳麟錫)이 이끈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역의 의병을 독려하고 연대를 추진하기 위하여 파견한 소토장 서상렬(徐相烈)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나중에 호좌의진이 근거지인 제천을 관군에게 빼앗기고 서북 지역에서 재기하려고 부대를...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집안의 재물을 지켜 주는 수호신. 업은 각 가정에서 그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령으로 흔히 구렁이, 족제비 등으로 상징된다. 집안에 이런 동물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있어야 가업이 번창한다고 믿고 있다. 대개는 구렁이 업이 일반적이며, 집안에서 업이 나가면 가운(家運)이 쇠퇴한다. 경기도 권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업의 신체와 이에 대한 특별한...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塾)이고, 어머니는 군수 송현(宋鉉)의 딸이다. 반남 박씨 박세훈의 딸과 혼인하였다. 첫째 아들은 현감을 지낸 이시현(李蓍顯)이고, 둘째 아들은 이시선(李蓍先), 셋째 아들은 이시정(李蓍定), 넷째 아들은 이시성(李蓍聖)이다. 딸은...
-
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 초명은 반우석(潘瑀錫), 자는 여규(汝圭), 호는 우극(雨屐). 반규석(潘圭錫)은 제천에 살던 한의사로 의술이 뛰어나 편작(扁鵲)이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90세 어머니를 모시면서 항상 음식과 약을 친히 돌보았고, 하룻밤에 대구까지 드나들면서 약을 구하여 병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주변에서 약을 묻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
-
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명(汝明)·여순(汝順). 할아버지는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청풍 부사 최후량(崔後亮)이다. 부인은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최석진(崔錫晋)[1640~1690]은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벼슬에 나아갔...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제천에서 청풍 방향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륵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며, 도로와 들판 사이를 흐르는 고교천을 따라 200m쯤 가면 들판 가운데에 도도록하게 솟아 있는 대지 위에 양화리 선돌 2기가 4.9m를 사이에 두고 쌍을 이루며 서 있다, 양화리...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제천에서 청풍 방향으로 지방도 8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륵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며, 도로와 들판 사이를 흐르는 고교천을 따라 200m쯤 가면 들판 가운데에 도도록하게 솟아 있는 대지 위에 양화리 선돌 2기가 4.9m를 사이에 두고 쌍을 이루며 서 있다, 양화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성(呂聲), 호는 퇴앙(退央). 아들로 의병 운동을 펼친 안승우(安承禹)가 있다. 안종응(安鍾應)[1845~1906]은 경기도 지평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에 두루 뛰어난 학자였으며, 척사론을 주장하는 화서학파와 일찍부터 교류하였다. 단발령 이후 지평 고을에서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금산(錦山). 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고, 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들로 통덕랑 이시진(李時振)이 있고, 동생으로 사마시에 입격한 이대건(李大建)과 이대적(李大迪)이 있다. 이대수(李大遂)[1547~1603]는 제천시 진야리(陳夜里)[현 신월동]에서 태어나 제천시 장락동에서 세상...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시호는 문충(文忠). 증조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할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 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蕃)이다. 작은아버지가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 이지함(李之菡)이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제천...
-
조선 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명(汝明)·여순(汝順). 할아버지는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청풍 부사 최후량(崔後亮)이다. 부인은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최석진(崔錫晋)[1640~1690]은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벼슬에 나아갔...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여용(汝容). 아버지는 전부장(前部將) 어수혼(魚守渾)이고, 형으로 어득해가 있다. 어득황(魚得滉)[1551~?]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훈련원 정을 거쳐 1603년(선조 36) 구례 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들로 주현구(朱鉉九)와 주현삼(朱鉉三)을 두었다. 주용규(朱庸奎)[1845~1896]는 1845년(헌종 11)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이다. 스승이 장담으로 이주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제천으로 이주하여 장담의 선비들을 이끌었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靜), 호는 지암(止菴)·여호(驪湖).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金信謙)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좌의정 이명(頤命)의 딸이다. 김양행(金亮行)[1715~1779]은 민우수(閔愚洙)의 문인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낙론(洛論)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1754년...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소속의 지역 회관. 한국에서는 1912년 미국 선교인 로버트 R. 홀리스터가 내한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리를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전도용 서적을 번역하던 강범식이 한국에서 첫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기관지 『파수대』를 발간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일단의 증인들로 이루어진 1,400여 개의 회중이 있다. 여호와의...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정묵재(靜默齋)·용암(龍巖).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번(李有蕃)이며,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민선(李敏善)이다. 어머니는 노사성(盧思聖)의 딸이다. 부인은 신달(愼達)의 딸 거창 신씨(居昌愼氏)와 이의(李檥)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다. 이상일(李尙逸)[16...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강역이 있었으므로 역말, 역촌, 역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한수면 역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한수면 역리가 되었다. 1991년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한수면 역리가 되었고, 1995년 시·군 통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의천(義泉), 곧 의림지의 남쪽이 되므로 천남(泉南)이라 하였다. 지역 주민들은 저남 또는 즈남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 조선 시대에 천남역이 있었으므로 역촌 또는 역말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고지동(古智洞)·사리동리(沙里洞里)[사리골리]와 현우면 하소리(下所里) 일부를 통합하여...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역사와 문화. 전통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과 청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지역 사회는 삼국 시대 이래 정치·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 1980년 제천시로 통합되면서 지역 사회는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면서 활동 무대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제천 지역은 강줄기를 따라 혹은 점말동굴로 알려진...
-
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재래시장. 역전시장은 1960년 철도 교통의 요충지인 제천역 광장 앞쪽에 상점가 형태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중앙시장과 더불어 제천 지역의 상거래를 주도해 오고 있다. 2004년 아케이드 공사를 하고 차광막을 설치하였다. 2005년 6월 인정 시장으로 정식 등록하였으며, 2007년에는 골목 포장, 2007~2010년에는 고객 지원...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디 모라내[沙川] 옆에 있어서 마을을 모라내, 모랏내 또는 사천리(沙川里)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영정(榮町)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영천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화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영정이 되었다. 1949년 제천읍 영천동이 되었고, 1973년 영천1동·영천2동으로 나...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디 모라내[沙川] 옆에 있어서 마을을 모라내, 모랏내 또는 사천리(沙川里)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영정(榮町)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영천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화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영정이 되었다. 1949년 제천읍 영천동이 되었고, 1973년 영천1동·영천2동으로 나...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의천(義泉), 곧 의림지의 남쪽이 되므로 천남(泉南)이라 하였다. 지역 주민들은 저남 또는 즈남이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한다. 조선 시대에 천남역이 있었으므로 역촌 또는 역말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고지동(古智洞)·사리동리(沙里洞里)[사리골리]와 현우면 하소리(下所里) 일부를 통합하여...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지일(漬一), 호는 연계(延溪). 윤하박(尹河博)[1864~?]은 1864년(고종 1) 6월 28일 제천 봉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와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1세 때인 1874년(고종 11)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하게 통곡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할머니가 병들었을 때 정성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한복판 늪지에 연꽃이 많이 피어 연곡(蓮谷)[일명 연골]이라 하였다가 점차 늪지가 없어지면서 조선 중기에 연론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연론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못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연리(淵里)라고도 한다. 1906년 청풍군 읍내면 연곡리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읍내면 상리로서 못 안쪽에 있었으므로 지내(池內)라 하였다. 이후 우리말로 못안으로 바뀌었고 발음이 변하여 모단이 되었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연곡리가 되었고,...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곡리에 있던 삼국 시대의 고분. 연곡리 고분은 한수면 소재지에서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지방도 597호선을 따라 가다가 청풍초중학교 직전 제천시 청풍면 신리(新里) 방면으로 들어서면서 광의리에 이르기 직전 오른쪽 강 쪽에 해당한다. 비봉산[531m]의 북쪽 하안에 해당하나 현재 수몰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연곡리 고분은...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제천 지역 연극의 시작은 박육경(朴六慶)·김학근(金學根)·한마당·강이원(姜履遠) 등에 의해 구성된 화성단(火星團)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1910년대 전국적으로 신극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제천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0년 8월 제천청년회 임시총회에서 조혼의 폐해를 계몽하는 신파극...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 한복판 늪지에 연꽃이 많이 피어 연곡(蓮谷)[일명 연골]이라 하였다가 점차 늪지가 없어지면서 조선 중기에 연론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연론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론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 호무실마을의 중앙에 있는 수목과 돌무더기에서 음력 정월 초순 중에 길일을 택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이를 연론리 호무실 서낭제, 연론리 서낭고사 등이라고도 한다. 연론리는 수몰 전에 동제[마을고사]를 서낭제와 당고사로...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론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 호무실마을의 중앙에 있는 수목과 돌무더기에서 음력 정월 초순 중에 길일을 택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이를 연론리 호무실 서낭제, 연론리 서낭고사 등이라고도 한다. 연론리는 수몰 전에 동제[마을고사]를 서낭제와 당고사로...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론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 호무실마을의 중앙에 있는 수목과 돌무더기에서 음력 정월 초순 중에 길일을 택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이를 연론리 호무실 서낭제, 연론리 서낭고사 등이라고도 한다. 연론리는 수몰 전에 동제[마을고사]를 서낭제와 당고사로...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연못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연리(淵里)라고도 한다. 1906년 청풍군 읍내면 연곡리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읍내면 상리로서 못 안쪽에 있었으므로 지내(池內)라 하였다. 이후 우리말로 못안으로 바뀌었고 발음이 변하여 모단이 되었다. 조선 말 청풍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연곡리가 되었고,...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박달재 동쪽 산기슭에 터를 잡아 박달재로 넘어가는 벼랑길에 있으므로 벼루박달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어로 옮긴 연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신대리·오전리·오리동[일명 오릿골] 등을 통합하여 연박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에서 용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연박리의 용바위」는 봉양읍 연박리에 있는 용바위에 대한 기자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용바위 아래를 몸이 닿지 않게 통과한 뒤에 부부 관계를 가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또한 가뭄이 들었을 때 개를 잡아 기우제를 지내면 당일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조(公造), 호는 연봉(蓮峯).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이계장(李繼長)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이언침(李彥忱)이며, 아버지는 영응선생(永膺先生) 이지남(李至男)이다. 어머니는 승지 정원(鄭源)의 딸이다. 이기설(李基卨)[1556~1622]은 박지화(朴枝華)[1513~1592]...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신팽령(申彭齡), 자는 희조(希祖), 호는 연서(蓮西). 아버지는 신우순(申遇順)이며, 신우제(申遇濟)에게 입양되었다. 신석균(申奭均)[1824~?]은 1855년(철종 6)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다. 정선 군수와 노성 현감을 지낸 뒤 1866년(고종 3) 밀양 부사를 역임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저술로 『도...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겸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안 이씨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그는 당 고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 소정방(蘇定方)의 부장으로 신라에 왔다. 백제를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졌고, 그 후 신라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
개항기 제천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연약(淵若), 호는 퇴금(退琴). 민영복(閔泳復)[1859~1939]은 1885년(고종 22)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고, 내직으로 비서승, 외직으로 무주·금산·장성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1895년 을미의병에 가당하였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1909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흥명학교...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할아버지는 김상헌(金尙憲)이며, 아버지는 제천 현감과 청풍 군수를 역임한 김광찬(金光燦)이다. 김수항(金壽恒)이 동생이다.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1652년(효종 3)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그...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제월(霽月). 묵재(黙齋) 오백령(吳百齡)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오정벽(吳挺璧)이고, 아버지는 황주 판관(黃州判官) 오시적(吳始績)이다. 어머니는 윤매(尹梅)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오시수(吳始壽)이다. 형으로 오상함(吳尙涵)이 있고, 누이는 선조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오상렴의 문집. 오상렴(吳尙濂)[1680~1707]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이다. 아버지는 판관을 역임했던 오시적(吳始績)이며, 외조부는 윤매(尹梅)이다. 『연초재유고(燕超齋遺稿)』는 1745년(영조 21) 오상렴의 생질인 이익정(李益炡)이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였...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증조할아버지는 남규로(南奎老)이며, 할아버지는 남리우(南履佑)이고, 아버지는 남탄교(南坦敎)이다. 백부인 남상교(南相敎)[아우구스티노]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이세관(李世瓘)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며, 부인은 신행권(申行權)의 딸 고령 신씨(高靈申...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에 대한 사전적 개념을 보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는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몹시 우악스럽고 사나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에 항거하는 미혼녀라고 하였고, 열부(烈婦)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는 부인 및 목숨을 끊음으로써...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긴 골짜기 안에 터를 잡은 마을이므로 장선이라 하였다. 긴 골짜기에 크고 작은 열두 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으므로 열두장선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이곳 주민들이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청풍군 수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수하면 장선리가 되었고, 1929년 10월 14일 청풍면에 편...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 아들로 단양 민병장과 장의진의 중군을 역임한 장익환(張益煥)이 있다. 장충식(張忠植)[1836~1901]은 단양 출신이다. 임오군란 때 민겸호가 피살되자, 그의 집에 출입하던 의리를 지켜 홀로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선공감 감역관, 사헌부 감찰 등의 직책을 받았으나...
-
충청북도 제천 의병에 참가한 의병장 장충식의 문집. 장충식(張忠植)[1836~1901]의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이다. 충청북도 단양 출신으로, 이필희(李弼熙)와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1992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후손에 전해 오던 장충식 관련 문건들을 모두 모아서 1982년에 『열은공행장급문집(洌...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열경(悅卿), 호는 도암(島菴). 신태식(申泰植)[1864~1932]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내부 주사(內部主事)와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질 때 문경의 농암 장터에서 일본군 밀정을 총살하면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96년(고종 33)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의병을 해산하라는...
-
청풍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공보(公輔), 호는 염헌(恬軒).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증직된 임중(任重)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이갱생(李更生)의 딸이다. 임상원(任相元)[1638~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평안도 도사를 지냈으며, 1671년(현종 12) 사간...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엿을 가지고 하는 놀이. 엿치기는 주로 남자들이 가래엿을 먹을 때 심심풀이로 하거나, 엿을 공짜로 먹기 위하여 내기를 하면서 즐기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가래엿은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엿가락의 안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엿치기는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엿의 겉모양만 살펴 안의 구멍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자른 후 서로 비교를 하는...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란 산 능선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부분이다. 이를 영(嶺), 현(峴), 재, 치(峙), 티 등의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보 시대의 사람들은 비교적 넘기 쉬운 고개를 통하여 단거리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 매우 중요한...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청풍의 황강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후에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연산(連山...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영삼(靈三·英三), 호는 모양(慕陽). 신지수(申芝秀)[1854~1904]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제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붕괴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영월에서 출범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신지수가 제천 인근 지역에서 모아 온...
-
충청북도 제천시 신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사지(寺誌)』에는 “영수암은 조선 숙종 때 권옥소(權玉所)가 창사(創寺)하고 조선 시대 말엽에 폐사하였다”고 전하며,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도 예전부터 이곳에 영수암이 있었다고 한다. 제천시청에서 충주 방면으로 1㎞ 정도 진행하다 산모퉁이를 돌면 오른쪽에 전원마을비가 나타난다. 마을로 진입하는 시멘트...
-
정극유을 시조로 하고 정보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의 원조는 신라 육촌(六村)의 하나인 자산진지부(觜山珍支部)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 지백호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양육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으며, 정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족보 및 종친회를 각각 다르게 하는 두 파가 있다. 고려 의종 대의...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디 모라내[沙川] 옆에 있어서 마을을 모라내, 모랏내 또는 사천리(沙川里)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영정(榮町)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영천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화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영정이 되었다. 1949년 제천읍 영천동이 되었고, 1973년 영천1동·영천2동으로 나...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디 모라내[沙川] 옆에 있어서 마을을 모라내, 모랏내 또는 사천리(沙川里)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영정(榮町)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영천이 되었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화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영정이 되었다. 1949년 제천읍 영천동이 되었고, 1973년 영천1동·영천2동으로 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의 농업 관개용 저수지. 영호저수지는 의림지(義林池)의 다른 이름으로 서류상 관리 이름이다. 해방 이후 17세기부터 불리던 영호라는 이름을 따서 저수지 이름을 붙였으나 아직까지도 일반적으로는 의림지라 불린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영호저수지와 제천 시가지 사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남쪽 제방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삼한 시대에 축조된 의림지 주변으로는 호수와 어우러진 노송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1807년(순조 7)에 세운 영호정과 1948년에 세운 경호루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영호정은 정미 의병 창의 당시 제천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대장 이강년(李康年)이 제천 천남 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음력 7월에 이...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수도권과 대도시로 집중되고 있는 문화 산업이 지방에서 활성화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천 역시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 제작 관련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제천 지역은 영화 산업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청풍 산하(山河)의 아름다운...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수도권과 대도시로 집중되고 있는 문화 산업이 지방에서 활성화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천 역시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 제작 관련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제천 지역은 영화 산업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청풍 산하(山河)의 아름다운...
-
청풍 출신으로, 조선 시대 제22대 왕인 정조의 비. 본관은 청풍(淸風). 아버지는 좌참찬 김시묵(金時默)[1722~1772]이고, 어머니는 당성부부인(唐城府夫人) 남양 홍씨(南陽洪氏)로 찬성에 증직된 홍상언(洪尙彦)의 딸이다. 김시묵은 딸이 왕비로 진봉(進封)되면서 영의정과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에 추증되었다. 효의왕후(孝懿王后)[1753~1821]는 175...
-
충청북도 제천시 자작동에 있는 생활 친화적인 문화 공간. 두학초등학교 자작분교장은 1993년에 폐교된 학교이다. 2007년 문화관광부 소속으로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한 ‘2007년도 주민 밀집 지역 및 문화 소외 지역 대상 생활 친화적 문화 공간 조성 희망 기관 모집 공고’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천지부가 선정되면서 자작분교장[예빛마을 소유, 대표 윤재근]...
-
충청북도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요양 병원. 예성요양병원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병원, 정직을 원칙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설립 이념을 세우고 지역 주민들의 질병을 예방 치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 증진시키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자 설립하였다. 2008년 5월 1일 개원하였다. 내과, 신장내과, 재활의학과, 외과,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일본군에 귀순한 인물. 오경묵(吳敬默)은 오정묵(吳正默)이라고 기록된 경우도 많다.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횡성 관아의 수순교 겸 포수계장(首巡校兼砲手契長)이었다. 1907년(순종 1) 여름 원주 진위대가 해산을 거부하고 봉기할 때 20여 명의 포수와 함께 민긍호 부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민긍호 부대, 정대무 부대 등 여러 의병 부대와 함께...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는 명절이다. 정월 대보름은 세시 풍속 전체에 있어서 그 비중이 가장 크고, 지역 분포를 살펴보아도 이를 쇠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를 오기일(烏忌日), 상원(上元), 원석절(元夕節), 원야(元夜) 등이라고도 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상원이라 하여 중원(中元...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오덕문(吳德文)[1886~?]은 청풍의 수산면에 살았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 김운선(金雲仙)이 이끄는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김운선 및 여러 동지들과 함께 경상북도 순흥의 소천시장에서 심삼성을 구타하고 군수 물자를 빼앗았다. 1909년(순종 3) 체포된 후 강도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며,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의 딸 풍양 조씨(豐壤趙氏)와 혼인하였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1673년(현종 14) 춘당대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680년...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오두재는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오두치(烏頭峙), 오두티 등이라고도 한다. 오두재 밑에 위치하고 있는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의 자연 마을인 오두리는 고개 이름 그대로 일명 ‘오두티’라고 부른다. 오두재에서 이어진 산봉우리는 ‘오두봉’이라...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오두재는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오두치(烏頭峙), 오두티 등이라고도 한다. 오두재 밑에 위치하고 있는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의 자연 마을인 오두리는 고개 이름 그대로 일명 ‘오두티’라고 부른다. 오두재에서 이어진 산봉우리는 ‘오두봉’이라...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오두재는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오두치(烏頭峙), 오두티 등이라고도 한다. 오두재 밑에 위치하고 있는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의 자연 마을인 오두리는 고개 이름 그대로 일명 ‘오두티’라고 부른다. 오두재에서 이어진 산봉우리는 ‘오두봉’이라...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오문룡(吳文龍)[?~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포수로 종군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보로 가는 장고개[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미자가 많이 나는 고을이므로 오미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송학면 오미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송학면 오미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송학면 오미리가 되었고, 1995년 시·군 통합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 있는 체험 마을. 산촌의 청정한 자연 환경과 그 속에서의 삶을 체험하는 마을을 조성하면서 소재지인 오미리의 지명을 따 오미리 산촌체험마을이라 이름지었다. 오미리 마을은 고추, 잡곡, 오미자 등을 생산하는 전형적인 마을이었다. 이곳에 2005~2006년 국비와 도비 13억 80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산촌 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 마을로...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를 지나는 하천. 오미자가 많이 생산되어 오미리라고 하였으며, 이 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오미천이라 부른다. 용두산의 북서 사면과 석기암산의 동쪽 사면을 흐르는 여러 계곡의 물이 오미리 평촌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곡저 평야를 만들고 오미저수지로 유입된다. 오미저수지 아래 나막신골부터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속하는 황둔천이 된다. 석...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 옥천 전씨(沃川全氏)가 터를 잡고 오산(伍山)[일명 오봉(伍峰)]이 있어 경관이 빼어나므로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뒤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매 또는 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디 진목리를 아랫오미, 오산리를 웃오미라 하였는데 인구가 늘어나 분리하여 웃오미에 있는 오산...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제월(霽月). 묵재(黙齋) 오백령(吳百齡)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오정벽(吳挺璧)이고, 아버지는 황주 판관(黃州判官) 오시적(吳始績)이다. 어머니는 윤매(尹梅)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오시수(吳始壽)이다. 형으로 오상함(吳尙涵)이 있고, 누이는 선조의...
-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건중(建中), 호는 오애(浯涯).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金瑬)이며,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김경징(金慶徵)이다. 김진표(金震標)[1614~1671]는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도 검찰사(江都檢察使)인 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허(景虛), 호는 남악(南岳)·경암(敬菴). 아버지는 부윤 오운(吳澐)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생원 허사렴(許士廉)의 딸이다. 큰아버지 오진(吳溍)에게 입양되었다. 오여벌(吳汝橃)[1579~1635]은 1601년(선조 34) 생원진사시를 거쳐 1603년(선조 36) 문과에 급제하였다. 종부시 직장, 승문원 정...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원(子元). 오인용(吳仁庸)은 칠대 독자로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천성이 성실하고 공손하여 어머니 송씨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어머니가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데도 정성껏 시중을 들었다. 때때로 어머니를 업고서 바깥나들이를 하면서 구경을 시켜 기운을 북...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원(子元). 오인용(吳仁庸)은 칠대 독자로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천성이 성실하고 공손하여 어머니 송씨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어머니가 중풍으로 병석에 누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데도 정성껏 시중을 들었다. 때때로 어머니를 업고서 바깥나들이를 하면서 구경을 시켜 기운을 북...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일본군에 귀순한 인물. 오경묵(吳敬默)은 오정묵(吳正默)이라고 기록된 경우도 많다.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횡성 관아의 수순교 겸 포수계장(首巡校兼砲手契長)이었다. 1907년(순종 1) 여름 원주 진위대가 해산을 거부하고 봉기할 때 20여 명의 포수와 함께 민긍호 부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민긍호 부대, 정대무 부대 등 여러 의병 부대와 함께...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미암(亹巖). 고려 말 문신인 정양(定襄) 오방우(吳邦祐)의 후손이다. 오진호(吳鎭鎬)는 밤중에 침입한 도적이 아버지를 해치려 하자 가로막으면서 흉기를 빼앗다가 손가락 세 개를 잃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술과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공양하였으며, 아버지가 병을 얻어 여러 해 동안 고통을 겪자 제단을 모으고 백일기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 있는 약수터.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동쪽의 야미산[525.7m, 일명 아미산·배미산·배모산] 동쪽 중턱에 약수굴이라는 바위굴이 뚫려 있다. 바위굴 안에는 겨울철에도 얼지 않고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사시사철 일정한 양으로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이 물은 물맛이 좋고 맑은데다가 속병에 좋다고 한다. 제천시 수산면...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티고개의 이름을 따서 오티, 오현 또는 의티라 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웃을 오티라 하는 바 이를 마을 이름에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달리 우티라고도 한다. 한편 마을에 봉화재[일명 봉수티, 오티, 의티, 오현, 봉의재], 하너물재[일명 한천티, 287m], 흰티재, 구실재[일명 구곡재], 구리재 등 다섯 개의 고개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한수면 덕곡리, 덕산면 신현리에 걸쳐 있는 고개. 본디 이름은 오티[吾峙]였으나 오티봉수가 있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봉화재[烽火峙] 또는 봉우재로 불리게 되었다. 오티삼거리는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의 접경 지역으로 일명 봉화재 삼거리 또는 봉우재 삼거리라고 부른다. 봉화재는 높이 315m로 동북동쪽으로 금수산[1,015.8m]...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티고개의 이름을 따서 오티, 오현 또는 의티라 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웃을 오티라 하는 바 이를 마을 이름에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달리 우티라고도 한다. 한편 마을에 봉화재[일명 봉수티, 오티, 의티, 오현, 봉의재], 하너물재[일명 한천티, 287m], 흰티재, 구실재[일명 구곡재], 구리재 등 다섯 개의 고개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서 옥녀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녀봉에 얽힌 이야기들」은 제천시 강제동과 금성면 동막리에 걸쳐 있는 옥녀봉에 대한 지명유래담이자, 총각은 선녀의 손을 잡고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신이담이며, 열을 지키려고 왜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옥녀(玉女)의 정절담이다. 옥녀봉은 그 주봉의 꼭대기가 바위로 되어 있고, 거기에 서...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기름진 밭이 많으므로 옥밭 또는 옥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노목리를 통합하여 옥전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옥전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됨...
-
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치심(致心), 호는 항재(恒齋)·옥산(玉山). 이정규(李正奎)[1865~1945]는 본래 소론 집안인 탓에 송시열의 학문을 대단하지 않게 보았는데, 우연히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보고 감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는 화서학파에 입문하게 되었다. 안승우(安承禹)와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매년 옥소 권섭을 기리기 위하여 개최되는 예술제. 조선 후기 문인 옥소(玉所) 권섭(權燮)[1671~1759]은 당시의 주된 학문인 성리학의 논리에서 벗어난 문인이었다. 제천 주변의 절경을 읊은 연시조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는 권섭의 국문 시조 중 절창으로 평가되고 있다.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의 제3곡은 다음과 같다. “삼곡(三曲)은 어디메오...
-
조선 후기 제천에서 문필 활동을 한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추증된 권상명(權尙明)이다.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이며, 작은아버지는 이조 판서 권상유(...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권섭의 문집. 권섭(權燮)[1671~1759]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월(百越)이다. 본래 한양에 거주하다가 정치에 환멸을 느껴 1714년 당시 큰아버지 권상하(權尙夏)가 있는 청풍 황강리로 낙향하였고, 말년에는 제천 봉양에 거주하였다. 여기에서 권상하의 학풍을 시풍으로 계승하였다. 산수 유람과...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괴곡리를 연결하는 다리.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는 제천 옥순봉[286m]의 이름을 따서 옥순대교라 이름 붙였다. 왕복 2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450m, 총 폭은 10.5m, 유효 폭은 7.5m이다. 높이는 11m, 경간 수는 6개, 최대 지간장은 76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43.2톤이다. 상부 구조...
-
조선 후기 김창협(金昌協)이 단양팔경의 하나인 옥순봉을 노래한 오언 절구와 오언 율시의 한시. 옥순봉은 봉우리가 죽순처럼 서 있는 모양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단양산수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여러 봉우리가 깎아질러 죽순처럼 섰는데, 높이는 수백 길이 될 만하다. 우뚝 솟아 떠받치는 기둥 같고 그 빛깔은 혹은 비취색이고 혹은 희다. 푸른 넝쿨과...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기름진 밭이 많으므로 옥밭 또는 옥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노목리를 통합하여 옥전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옥전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됨...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에 있는 통일 신라~조선 시대 절터.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48번지 일원의 탑골[탑거리들]에 있는 절터로 사역의 범위가 넓고 통일 신라 때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지(寺誌)』에서는 황학사지(黃鶴寺址)라 하였고, 마을 주민인 김군문에 의하면 ‘진적사’라고 한다. 수습되는 유물의 시대상을 볼 때 통일 신...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성문(聖文), 호는 옥파(玉坡). 원규상(元圭常)[1868~?]은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 부대 중 하나인 좌군을 이끄는 좌군장으로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충주에서 돌아와 제천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던 1896년(...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서 옻마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옻마루 유래」는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옻마루[漆宗]’라는 마을에 대한 약수전설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지금은 ‘옻마루’를 ‘원마루’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 속병을 앓는 한 선비가 약을 찾아 전국을 다니다가 시곡리를 지나게 되었다. 바위 아래서 흐르는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속병이 깨끗...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의 경승지인 송계팔경의 하나. 송계계곡은 신 제천십경 가운데 제7경으로서 와룡대를 위시하여 월악영봉, 자연대, 월광폭포, 수경대, 학소대, 망폭대, 팔랑소 등 소위 송계팔경이라는 아름다운 8개의 경승지가 있는 곳이다. 와룡대는 용이 누워 있다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일명 용초(龍礁)라고도 한다....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의 경승지인 청풍팔경의 하나인 기암괴석. 취적대는 복숭아꽃이 만발한다는 경승지 도화동천(桃花洞天)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구비 전승에 한 선인이 금수산에 내려와 그곳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주변에 복숭아나무 군락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도화동(桃花洞)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취적대는 ‘푸...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의 경승지인 청풍팔경의 하나인 기암괴석. 취적대는 복숭아꽃이 만발한다는 경승지 도화동천(桃花洞天)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구비 전승에 한 선인이 금수산에 내려와 그곳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칭하였다고 하며, 주변에 복숭아나무 군락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도화동(桃花洞)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취적대는 ‘푸...
-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숙(李俶)과 이정희(李廷熙)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의 사공(司功) 이한으로, 전주 이씨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고 한다. 22세손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전주 이씨는 왕성이 되었다. 전주 이씨는 122...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 월악산에 있는 석회암 자연 동굴. 신라 시대 왕리조사가 이곳에서 도를 닦아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다 하여 왕리굴(王利窟)이라 불리게 되었다. 후대에 관세음보살의 명호 중 하나인 보덕(寶德)을 딴 보덕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현재 왕리굴은 보덕암의 절 구역 안에 있다. 왕리굴의 해발 고도는 428m이며, 좌표는 북위 36°53′,...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선학원 소속 사찰. 보덕암(寶德庵)의 연원은 신라 시대 왕리조사(王利祖師)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통일 의지를 함양하는 애국인,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하는 능력인, 기초 체력을 향상하고 보건 위생에 힘쓰는 건강인,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정서인,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실천하고 공중도덕과 준법정신을 함양하는 근면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슬기롭고 예절 바르며 능...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통일 의지를 함양하는 애국인,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하는 능력인, 기초 체력을 향상하고 보건 위생에 힘쓰는 건강인,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정서인,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실천하고 공중도덕과 준법정신을 함양하는 근면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슬기롭고 예절 바르며 능...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와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 왕박산(王朴山)은 왕씨에서 박씨로 성을 고친 의흥 박씨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의흥박씨세보』에 따르면 시조 박을규(朴乙規)는 본래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 상서를 지낸 인물인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멸족의 화를 피해 단양의 영춘 차의곡[지금의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에...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왕암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보조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왕암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44년 착공하여 1945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50만 ㎡, 만수 면적은 2,000㎡, 홍수 면적은 2,500㎡이다. 관개 면적과 인가 면적, 수혜 면...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과 제천 IC를 연결하는 제천북로 상의 다리.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 새터마을에서 남쪽 미당천 하류로 약 870m 지점의 제천북로에 있는 4차선의 교량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의 지명을 따서 왕암교라 이름 붙였다. 제천대로 노선 3~6의 4차선에 총연장은 66m, 총 폭은 21m, 유효 폭은 19.5m이다. 높이는...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아랫소새에 있는 바위인 왕암(旺巖)에서 따 온 이름이다. 왕암은 1894년 시작된 갑오개혁 때 세 쪽으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각각 왕바위[王巖], 마고할미바위[麻姑巖], 염불바위[念佛巖]로 불린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묵지리(墨只里)·소사리(所沙里)·한의동(閑儀洞)을 통합하여 왕암리가 되...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왕암동 고인돌은 발굴 전에 제천시 왕암동 소새마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유적 바로 앞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마을 사람들이 ‘복바위’라고 부르는 개석식 고인돌 2기가 있었다. 2001년 왕암지방산업단지 건설 때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하였다. 발굴 조사 후에는 이전하여 현재 외부순환도로...
-
고려 말 왜구가 충청북도 제천 일대에 침입한 사건. 일찍부터 한반도의 연안 지역을 간헐적으로 약탈하던 왜구의 침입은 고려 말에 이르러 그 규모와 강도가 더해졌다. 14세기 중엽에는 100~500척의 선단을 이끌고 내륙 지역까지 쳐들어와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우왕(禑王) 재위 때는 제천·단양·영월 등지까지 들어와서 고려군과 접전을 벌였다. 고려 후기에 일본은 중앙 권력이 지방...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효백(孝伯), 호는 외당(畏堂). 유인석(柳麟錫)의 육촌 형이다. 유홍석(柳弘錫)[1841~1913]은 단발령 이후인 1896년(고종 33) 초 춘천에서 이소응(李昭應)·유중락·유봉석 등과 봉기하여 가평과 춘천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춘천 의진이 무너진 후로는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 휘하에서 서무를 관장하...
-
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추월헌(秋月軒).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이태정(李泰貞)이며, 부호군 이태형(李泰亨)에게 입적되었다. 이간(李柬)[1677~1727]은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팔학사(八學士) 중 한 사람이다. 1710년(숙종 36) 천거되어 장릉 참봉(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증조할아버지는 남규로(南奎老)이며, 할아버지는 남리우(南履佑)이고, 아버지는 남탄교(南坦敎)이다. 백부인 남상교(南相敎)[아우구스티노]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이세관(李世瓘)의 딸 연안 이씨(延安李氏)이며, 부인은 신행권(申行權)의 딸 고령 신씨(高靈申...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4월 8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석가 출가일[음력 2월 8일]과 열반일[음력 2월 15일], 성도일[음력 12월 8일] 등과 함께 불교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이를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석가 탄신일, 불탄일(佛誕日), 욕불일(浴佛日) 등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가에서 하던 행사였으나 불교가 전...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세 한탄류의 민요. 「용타령」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에 채록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부르는 비기능요이다. 이를 「창부 타령」이라고도 한다. 1912년에 보고된 「이요·이언급통속적독물등조사(俚謠·俚諺及通俗的讀物等調査)」에 실려 있는 「용타령」은 술자리나 흥겨운 자리에서 자주 불리었다. 1912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겸(用謙), 호는 국포(菊圃). 경창군(慶昌君)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다. 아들로 충민공 이도철이 있다. 이덕초(李悳初)[1803~1885]는 음사로 진잠 현감과 금구 현감, 보성 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관직은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이르렀다....
-
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송헌(松軒) 김약시(金若時)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영동 현감(永同縣監)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인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용복리와 진곡리를 통합하면서 용복리의 ‘용(龍)’자와 진곡리의 ‘곡(谷)’자를 따서 용곡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근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비봉면 용곡리가 되었고, 1918년 청풍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청풍면 용곡리...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야미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 야미산 정상부에서 북북서쪽 산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이곳에서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는 약수가 흘러나온다 하여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야미산 약수굴은 오티리에 있는 청풍나드리 삼거리에 인접하여 있다. 약수의 효험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늘어 한때 계곡에 상탕과 하탕을 조성하여 입장료를...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예의 바른 생활 태도를 기르는 자율인,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자율인, 개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는 탐구인, 첨단 산업 기술과 지식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창조인,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고 심신을 단련하여 건강한 생활을...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과 청전동을 연결하는 다리. 교량이 위치한 지역의 행정동명인 용두동의 지명을 따서 용두교라 이름 붙였다. 제천 대로 노선 1~3번의 6차선으로 총연장은 55m, 총 폭은 35m, 유효 폭은 25m이다. 높이는 4.4m, 경간 수는 4개, 최대 지간장은 14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이다. 상부 구조는 강화콘크리트 슬래브교이며, 하부...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신월동·왕암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용두동 관할 법정동인 신월동 하소천 변에 있는 용두암(龍頭巖)에서 따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 지역으로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행정동으로 신설되어 법정동인 하소동·신월동을 관할하였고, 1983년 법정동인 왕암동을 편입하여 관할한 이래 오늘에 이른다. 동쪽에 용...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도화리·포전리·오미리에 걸쳐 있는 산. 용두산이라는 명칭은 산 모양이 용의 머리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용 신앙과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용두산이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용두산은 감악산의 줄기이다. 현의 북쪽 1...
-
충청북도 제천시 청전동에서 발원하여 영천동에서 장평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용두천은 용두산 남쪽에 있는 제천 시내를 흐르는 하천으로 산 이름을 따 명명하였다. 의림지 남쪽의 선상지성 하안 단구 청전동에서 발원하여 계속해서 계단상으로 낮아지는 제천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길이는 3.0㎞이고, 유역 면적은 14.11㎢이다. 제천 시내...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예의 바른 생활 태도를 기르는 자율인,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자율인, 개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는 탐구인, 첨단 산업 기술과 지식 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창조인,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고 심신을 단련하여 건강한 생활을...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정묵재(靜默齋)·용암(龍巖).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번(李有蕃)이며,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민선(李敏善)이다. 어머니는 노사성(盧思聖)의 딸이다. 부인은 신달(愼達)의 딸 거창 신씨(居昌愼氏)와 이의(李檥)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다. 이상일(李尙逸)[16...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에서 용초와 용초폭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에게 딸을 빼앗긴 양씨부인」은 산신에게 치성을 드린 후 세쌍둥이를 낳다가 부인이 목숨을 잃고, 세 딸마저 용에게 빼앗기자 양씨가 자살하려고 뛰어내린 자리에 용초와 용초폭포가 생겼다는 기자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
-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각 가정에서 집안의 화평을 위해 모시는 신령.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인 용왕은 제천 지역에서 가정을 돌보는 많은 신령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져 왔다. 용(龍)의 순수 우리말인 ‘미르’는 그 어근이 ‘밀-’로 이는 물[水]의 어원과 같다. 결국 용왕은 물의 어원인 ‘미르’에 접미사 왕(王)이 붙어 ‘물의 으뜸’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명칭 자체에서...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의 경승지인 송계팔경의 하나. 송계계곡은 신 제천십경 가운데 제7경으로서 와룡대를 위시하여 월악영봉, 자연대, 월광폭포, 수경대, 학소대, 망폭대, 팔랑소 등 소위 송계팔경이라는 아름다운 8개의 경승지가 있는 곳이다. 와룡대는 용이 누워 있다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일명 용초(龍礁)라고도 한다....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에서 널리 알려진 아홉 군데의 명승지. 용하계곡은 대미산[1,145m]에서 발원한 광천[일명 너부내]이 월악영봉[1,094m]과 문수봉[1,162m], 매두막산[1,099.5m], 하설산[1,027.7m] 등의 산지 사이를 흘러가면서 만들어 낸 계곡으로 일명 억수계곡이라고도 한다. 한편 용하계곡은 억수리 용하구곡 상류에서...
-
충청북도 제천시 산곡동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용하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산곡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52년 착공하여 1959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80만 ㎡, 만수 면적은 3만 ㎡이고, 홍수 면적은 3만 3,000㎡, 구역 면적은 28만 ㎡이다. 관개...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용하계곡의 경치를 노래한 오언 절구의 한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관직에 나아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계곡의 경승지인 용하구곡의 하나. 용하구곡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월악산 동쪽의 깊은 골짜기에 펼쳐진 길이 16㎞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십경 가운데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용하구곡은 제1곡 수문동폭포, 제2곡 수곡용담, 제3곡 관폭대, 제4곡 청벽대, 제5곡 선미대, 제6곡 수룡담, 제7곡 활래담, 제8곡 강서대, 제9곡 수렴선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수문동에 있는 폭포. 수렴폭포(睡簾瀑布)는 마치 발을 드리운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악산의 골짜기인 수문동에 있는 폭포로 석벽 위로 떨어지는 물이 시원한 절경을 이룬다. 월악산을 비롯한 월악 능선인 960봉, 852봉과 함께 동쪽으로는 어래산, 하설산 등과 월악리를 포함하는 용하구곡이 어우러져 깊은 계곡과...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규하(禹圭夏)[?~1896]는 단발령 이후에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포수로 종군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과 함께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수안보로 가는 장고개[현...
-
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 초명은 반우석(潘瑀錫), 자는 여규(汝圭), 호는 우극(雨屐). 반규석(潘圭錫)은 제천에 살던 한의사로 의술이 뛰어나 편작(扁鵲)이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90세 어머니를 모시면서 항상 음식과 약을 친히 돌보았고, 하룻밤에 대구까지 드나들면서 약을 구하여 병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주변에서 약을 묻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단양(端陽). 자는 이존(而尊). 우기정(禹冀鼎)은 제천의 백평(柏坪)[현 제천시 동현동 백배미]에서 살았다. 무과에 급제한 후 무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여 제천을 장악하고 충주를 공략하러 나섰을 때 제천의 민군 3...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端陽). 호는 단운(檀雲), 이명은 우연준(禹連俊). 아들로 우대영(禹大榮)을 두었다. 우덕순(禹德淳)[1879~1950]은 어려서 상경하여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독립 협회 등 애국 계몽 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04년(고종 41)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연초 행상을 하다가 안중근·이범윤 등과 만났다. 그곳에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
삼국 시대 제천에서 활동한 음악가. 우륵(于勒)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志)에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 이르기를 가야국(加耶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唐)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달라 성음을 어찌 일정하게 하는가 하며 이에 성열현(省熱縣) 사람 악사 우륵(于勒 )에게 12곡을 만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륵은...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우륵을 배향한 조선 후기 사당 터. 1871년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우륵당은 의림지 동쪽 석봉에 있다. 그 위에 우륵이 와서 거처하였던 곳이다[于勒堂在義林池東石峯之上于勒來居之所]”라고 기록하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혹은 말하기를 우륵이 의림지를 처음으로 쌓았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우륵을 제사지내 그 공을 보답하는 곳이다”라는 기록...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주윤(李柱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이명하(李命夏)[1878~1921]는 경기도 광주에서 왕실의 후예로 태어났다. 위정척사론(衞正斥邪論)을 견지하던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근대 교육 기관으로 변신 중이던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학...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위곡리와 월림리를 통합하면서 위곡리의 ‘위(渭)’자와 월림리의 ‘림(林)’자를 따서 위림리라 하였다. 달리 우실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위곡리와 월림리 일부를 병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위림리가 되었고,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
-
청풍의 황강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후에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연산(連山...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춘혁(柳春赫), 자는 우양(禹陽)·홍일(弘一), 호는 임당(任堂). 유흥이(柳興彛)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유의혁(柳毅赫)[1863~1905]은 의당 박세화(朴世和)의 문인으로, 박세화의 명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정사를 지어 일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임당유고(任堂遺稿)』가 있다. 『임당유고』는 3권...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단양(端陽). 호는 단운(檀雲), 이명은 우연준(禹連俊). 아들로 우대영(禹大榮)을 두었다. 우덕순(禹德淳)[1879~1950]은 어려서 상경하여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독립 협회 등 애국 계몽 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04년(고종 41)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연초 행상을 하다가 안중근·이범윤 등과 만났다. 그곳에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이고, 호는 하포(下浦).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가 별세한 이후에 비로소 장담에 나아갔고, 안승우(安承禹)에게서 주로 배웠다. 1894년(고종 31) 여름 스승인 안승우를 모시고 제천의 백련사에서 글을 읽다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음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菴)·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 시호는 문숙(文肅). 할아버지는 예조 참의 안서우(安瑞雨)이고, 아버지는 오위도총부 부총관 안극(安極)이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할아버지가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제천 유원(楡院)에 있던 친척 윤훈갑의 집에 머물던...
-
청풍의 황강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후에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연산(連山...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재봉(禹在鳳)[?~1896]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포수로 종군하였다. 의진의 전군장 홍대석(洪大錫)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1896년(고종 33) 4월 조령에서 작전을 벌이던 이강년(李康秊)의 유격군에 호응하여 수안보를 공략하기 위하여 작전에 나섰다가 청풍의 서창(西倉)에서...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제천의 풍토에 대하여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두 수.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관직에 나아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는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 민순호(閔舜鎬)[1880~1965]는 경상북도 문경군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강년(李康秊)을 따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민순호는 전 재산을 기울여 군자금을 마련하며 의병을 규합하였다. 문경에서 패전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우필규(禹弼圭)는 평창에 살았으며,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여 좌익장에 임명되었다. 충주성을 점령하였던 호좌의진이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 충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하여 파랑령[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마을 서쪽의 조백석골에서 백운면 쪽으로...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제이(濟而)·제경(濟卿), 호는 우헌(愚軒). 증조할아버지는 이장영(李長英)이며, 할아버지는 이구성(李九成)이고, 아버지는 이문정(李聞政)이다. 어머니는 김하석(金夏錫)의 딸 상주 김씨(尙州金氏)이다. 부인은 유덕옥(柳德玉)의 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최후진(崔後進)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이광세(...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우현(禹玄), 호는 석거(石居). 선조는 명나라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 휘하로 조선에 출정하여 여러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도 전공을 세우고 귀화한 천만리(千萬里)이다. 천인봉(千仁鳳)은 청풍문화재단지에 세워진 자선비에 의하면 관직은 의관(議官)이었다. 의관은 1895년(고종 32) 중추원...
-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재건하여 정미의병을 이끈 의병장 이강년의 문집. 이강년(李康秊)[1858~1908]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岡)이다. 문경군 가은면[현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재건하여 정미의병을 이끈 의병장 이강년의 문집. 이강년(李康秊)[1858~1908]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岡)이다. 문경군 가은면[현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재배되는 한약재. 복신은 운령(雲苓), 복토(茯菟)라고도 하며, 복령[다공균과 식물 복령의 건조한 균핵]과 동일한 약재이나, 채취 과정에서 소나무 뿌리에서 기생하면서 뿌리가 복령을 관통하여 있는 것을 복신이라 칭한다. 제조 과정에서 뿌리가 있는 부분을 정방형의 얇은 조각 모양으로 썰면 복신이 된다. 복령에 비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심장을 강하게 하는 효...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재배되는 다공균과의 식물. 복령은 운령(雲苓), 복토(茯菟)라고도 하며, 소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의 일종이다. 대표적인 이뇨제로서 몸 안에 있는 습기를 제거하고 수분을 배출시키며 소화 기능을 돕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 수종, 창만, 설사, 유정, 경계, 건망 등을 치료한다. 대개는 불규칙한 덩이 모양, 공 모양, 편평한 모양...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남수(南壽), 호는 운암(雲庵). 백남규(白南奎)[1884~1970]는 충주시 금가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무관 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고, 안동 분견대의 부위(副尉)로 있다가 부대를 이탈하여 의병 봉기를 꾀하던 이강년(李康秊)에게 의탁하여 의병 항쟁에 몸을 던졌다. 1907년(순종 1)...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운산[1,087m]과 구학산[971m] 아래 터를 잡았으므로 백운의 ‘운’자와 구학의 ‘학’자를 따서 운학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원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차도리(次道里)·용산리(龍山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백운면 운학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 운학리...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 구륵재에서 발원하여 도곡리에서 화당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운학은 구학산과 백운산 아래가 되므로 백운과 구학의 이름을 따서 운학리 또는 운학동이라 하는데 이곳을 흐르는 하천이라 운학천으로 부른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도계에 있는 구륵재에서 발원한 운학천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백운산 남동사면을 흘러내리는 운학천의 본류와 운학...
-
1948년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박달재를 배경으로 하여 반야월이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한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는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가요로 1948년 박재홍이 불렀다. 작사가 반야월은 제천시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담고 있는 의미도 그렇지만 지난 2008년 제천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
-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여서 대외 항쟁사 등 역사의 중요할 길목마다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주변의 역사성 때문에 교통로가 아닌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달재는 흔히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박달재는 정확히 말해서 구학...
-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 원각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관음보살 좌상. 원각사는 제천시 남천동 수도산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종 사찰로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경내에는 고식의 석탑이 1기 있었다고 조사된 적이 있어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원각사에는 대웅전, 관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원덕상(元德常)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며,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에서 살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친척인 보산에 살던 의병론자 원도상(元道常)과 왕래하면서 기맥을 통하였다. 의병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름을 원건상(原建常)으로 고쳤다고 한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이름은 원공전으로, 조선 시대 국가 소유의 밭[公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소시랑리와 장담리 등을 통합하여 공전리가 되었고, 1920년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공전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성문(聖文), 호는 옥파(玉坡). 원규상(元圭常)[1868~?]은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 부대 중 하나인 좌군을 이끄는 좌군장으로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충주에서 돌아와 제천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던 1896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원기(元起), 호는 청수(廳水). 영의정 유척기(兪拓基)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장환(兪章煥)이다. 유치희(兪致喜)[1820~?]는 1846년(헌종 12)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의빈부도사, 공조 좌랑, 한성부 주부 등을 거쳐 과천·황주·진주·광주 등의 목사를 지내고 공조 참의, 승정원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성품...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을 지내는 명절. 설날은 새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정월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달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달보다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집안 식구의 무병장수와 한 해의 풍년 등을 기원한다. 특히 1월 1일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등으로도 불리는데, 새해의 첫날을 강조...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이 있던 곳이므로 원터 또는 원대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다. 원터 동쪽...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에 있던 고려 시대~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 터. 권일원이 있었던 곳은 단양과 청풍의 접경 지역으로, 계란치[230m]에서 서쪽 청풍강과 함께 육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죽령대로는 수산역과 황강역을 경유하여 충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금의 국도 36호선이 통행하는 큰길가에 목조와가를...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원덕상(元德常)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며,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에서 살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친척인 보산에 살던 의병론자 원도상(元道常)과 왕래하면서 기맥을 통하였다. 의병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름을 원건상(原建常)으로 고쳤다고 한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을 지원한 의병론자.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운거(雲居), 호는 치당(恥堂). 원용갑, 원용대, 원용일, 원용현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의병 운동을 펼쳤다. 원도상(元道常)[1848~1937]은 영춘의 보발마을에 살던 유학자이다. 재산가이었지만 배일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근의 의병 지도자인 정운경(鄭雲慶)·장익환(張益煥...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룡(元龍). 증조할아버지는 이응복(李應福)이고, 할아버지는 이동열(李東說)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시욱(李時煜)이다. 어머니는 이행(李荇)의 후손으로 덕수 이씨(德水李氏)이다. 이동로(李東老)[1628~1683]는 1654년(효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로 출사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시대에 원림부곡(員林部曲)이 있던 곳이므로 원리, 원림부곡 또는 월림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생김새가 ‘월(月)’자형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중시조가 영일 정씨 월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영일 정씨 시조 포옹(抱翁) 정양(鄭瀁)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때 꿈에 달이 숲으로 떨어졌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말...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시대에 원림부곡(員林部曲)이 있던 곳이므로 원리, 원림부곡 또는 월림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생김새가 ‘월(月)’자형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중시조가 영일 정씨 월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영일 정씨 시조 포옹(抱翁) 정양(鄭瀁)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때 꿈에 달이 숲으로 떨어졌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말...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속하는 법정리. 박달재에 있던 박달원(朴達院)의 이름을 따서 원박리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근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삼성동을 통합하여 원박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봉양읍 원박리가 되었고,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시랑산 동쪽에서 발원하여 공전리를 거쳐 주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박달원(朴達院)의 이름을 따서 원박이라고 한 곳이 원박리인데 이곳을 흐르는 하천을 원박천이라 한다. 시랑산[691m] 동사면에서 발원한 여러 갈래의 하천이 소시랭이[소시랑리]에 이르러 하천 주변 지역이 넓어지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산기슭을 이루며 공전까...
-
충청북도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원불교 충북교구의 14개 본당 중 하나.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시한 신종교이다.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즉 O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교조 박중빈은 전라남...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3월 3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삼짇날은 봄철에 3이란 양의 수가 겹치는 길일(吉日)이다. 음력 3월 3일은 봄기운이 만연하여 새싹과 꽃이 피기 시작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나비가 날아드는 시기이다. 이날은 따뜻해진 날씨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장을 담아 다시 한 해를 새롭게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또 집밖으로 나가 꽃구경을 하며...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시인 오탁번이 설립·운영하는 문학관. 원서문학관은 제천 출신인 시인 오탁번이 30여 년간 지낸 서울을 떠나 고향인 백운면 애련리에 정착하여 자기 자신을 찾고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원서는 먼 서쪽을 의미하며 백운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오탁번은 2002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백운초등학교 애련...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역원 터. 조선 시대에 제천과 충주로 통하는 관로의 둔지천 변에 원(院)을 설치하여 여객을 위한 숙식을 제공했던 둔지원은 물물 교역의 요충지로 관창(官倉)인 원서창으로 변천하였다. 원서창은 원서면에서 따온 명칭으로 지금의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백운농협 일대의 창고에는 백운평야 등지에서 수확한 세곡을 보관한 것으...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에 있는 백운산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봉양읍 구곡리와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의 경계 지역에서 제천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제천현 북쪽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원서면을 남류하는 하천이 ‘고제천(古堤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원서면의 북쪽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충주와의 경계 지역을...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는 명절이다. 정월 대보름은 세시 풍속 전체에 있어서 그 비중이 가장 크고, 지역 분포를 살펴보아도 이를 쇠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를 오기일(烏忌日), 상원(上元), 원석절(元夕節), 원야(元夜) 등이라고도 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상원이라 하여 중원(中元...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원세철(元世澈)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다. 19세기 말엽에 활동한 사람으로 벼슬은 용진 현감, 전주 판관, 임실 현감 등을 거쳐 밀양 부사를 역임하였다. 주로 지방 수령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실(元實). 중종 대의 문신인 민세량(閔世良)의 14세손이다. 민정현(閔鼎顯)은 8세 때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태롭게 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며 병구완을 하여 사람들이 놀라워하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더욱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와 함께 약물을 드려 결국 회생하게 하였다. 기력을 회복한 아버지가 자라를...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는 명절이다. 정월 대보름은 세시 풍속 전체에 있어서 그 비중이 가장 크고, 지역 분포를 살펴보아도 이를 쇠지 않는 곳이 없다. 이를 오기일(烏忌日), 상원(上元), 원석절(元夕節), 원야(元夜) 등이라고도 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상원이라 하여 중원(中元...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치화(致和·穉和), 호는 서암(恕菴). 의병 운동을 한 원용팔(元容八)이 육촌 동생이다. 원용정(元容正)[1860~1905]은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며,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마을에 출입하면서 화서학파와 인연을 맺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처신을 의논할 때 유인석...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원우규(元友珪)는 단발령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제천의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던 인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단양군수, 청풍군수 등 친일 내각의 지시만을 받드는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1896년(고종 33) 2월 충주성을 공략한 이후 관찰사를 베고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호시탐탐 충주성...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원서리(院西里)의 ‘원’자와 소월리(小月里)의 ‘월’자를 따서 원월리라 하였다. 조선 말 충주군 산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원서리(院西里)·매촌리(梅村里)·가정리(佳亭里)·소월리(小月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백운면 원월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백운...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을 지내는 명절. 설날은 새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정월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달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달보다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집안 식구의 무병장수와 한 해의 풍년 등을 기원한다. 특히 1월 1일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등으로도 불리는데, 새해의 첫날을 강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형백(瀅伯), 호는 하정(荷汀)·민와(敏窩). 원철상(元哲常)[1877~?]은 제천의 대미[현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또는 동산(銅山)에 살았다고 한다. 장담에 출입하던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화서학파 학자들과 시국관을 공유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지도자로 하는...
-
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 시호는 문정(文貞)에서 문간(文簡)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호조 정랑 김효정(金孝貞)이고,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판관 허윤공(許允恭)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여익(宋汝翼)의 딸이다. 김정(金淨)[1486~1521]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옹암(甕巖) 원천상(元天常)의 후손이다. 원탁(元倬)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 명과 후금의 전쟁 중, 명에 조선군 원병이 출전할 때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였다. 부차(富車)[현 랴오닝성 무순(撫順) 일대] 싸움에서 패전하고서 강홍립은 항복하였으나 원탁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이 있던 곳이므로 원터 또는 원대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가 되었다. 원터 동쪽...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허(子虛), 호는 무항(霧巷)·관란(觀瀾), 시호는 정간(貞簡). 시중 원홍필(元弘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별장(別將) 원헌(元憲)이다. 원호(元昊)는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문종 때에는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게 되자, 사직하고 고향 원...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과 정자. 관란정(觀瀾亭)이 자리한 곳은, 조선 전기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는 원호(元昊)[1397~1463]가 단을 쌓고 단종이 유배된 영월의 청령포(淸泠浦)를 향하여 조석(朝夕)으로 눈물을 흘리며 문안을 드리던 장소이다. 관란정은 1845년(헌종 11) 원호의 호인 ‘관란(觀瀾)’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절터. 월광사는 효소왕 때에 도증(道證)[?~702] 에 의해 창건되어 조선 전기까지 존속했던 사찰이다. 절터 내에는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가 있었던 터와 여러 부도 석재, 석축이 남아 있고, 각종 기와편, 토기편, 자기편이 수습된다. 월광사는 법상종 계열로 존속하다가 경문왕 때에 원랑...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에 있는 폭포. 신라 시대 창건되었다는 월광사가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 터만 남아 있으나, 그 절 이름을 따서 폭포에 월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월광폭포는 3단 폭포로 암벽에 두 개의 물줄기는 30m 정도 된다. 갈수기에는 수량이 적어 폭포의 진면목을 볼 수 없지만 우기에는 3단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제천 월광사지에 있던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월광사 터에 전해오던 탑비로,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되었다. 1963년에 보물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원랑선사[816~883]는 성은 박씨이며 자는 태융(太融), 시호는 원랑(圓朗)이다.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로 856년에 당에 유학하여 앙산에 징...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굴리 중심 마을인 송내[일명 송천] 북쪽에 있는 법개의 지형이 달 모양이고 마을 입구에 동굴이 있어 ‘달 월(月)’자와 ‘굴 굴(窟)’자를 써서 월굴리라 하였다. 법개 뒷산에는 법개사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높은다리·배나무들·석동골 등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월굴리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월굴리에서는 마을 단위로 각각 동제를 지냈다. 법개마을과 송천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에 각각의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냈고, 높은다리, 배나무들, 절매마을 등에서도 각각 동제를 지냈다. 또한 석동골에서는 땅고개 서낭제와 대덕산 산신제를 지냈다. 월굴리 법개마...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선돌. 월굴리 선돌은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선돌백이마을 어귀에 서낭목과 함께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충주댐 때문에 물에 잠기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선돌은 두께가 일정한 판석형의 손질되지 않은 자연석이며, 앞에서 볼 때 위쪽의 끝이 평평한 긴 네모꼴 형태이다. 선돌 형태로 보아 여성 선돌...
-
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 국제 구호 개발 기구인 월드비전에서는 2006년부터 사회 복지 환경이 열악한 도시 빈민 지역이나 농어촌 지역의 저소득 계층과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가정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가정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월드비전이 제천 지역에 월드비전 충북지부 제천가정개발센터를 설립하고 제천 지역의...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하는 의례적인 생활 풍속. 세시 풍속은 1년을 주기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행하는 의례적인 생활 양식이나 규범, 연중행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시 풍속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날이 정해지는 24절기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농사력(農事曆)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각종 명절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의 세...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장선리와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를 연결하는 고개. 달랑고개는 장선령(長善嶺)·장선치(長善峙)·장선현(長善峴)·월령(月嶺)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 시대 때에 수하면 지역이었던 제천시 청풍면 장선리의 ‘장선령로(長善嶺路)’는 청풍에서 충주, 목계를 지나 서울로 통행하던 지름길이었다. 특히 달랑고개는 청풍·충주·제천·원주로 통하는 교통의...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월림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금성면 월림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52년 착공하여 1959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190만 ㎡, 만수 면적 6만 ㎡이고, 홍수 면적은 6만 5,000㎡, 구역 면적은 46만...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월림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금성면 월림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52년 착공하여 1959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190만 ㎡, 만수 면적 6만 ㎡이고, 홍수 면적은 6만 5,000㎡, 구역 면적은 46만...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림리 동제는 제천시 금성면 월림1리와 월림2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림1리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지내고, 이어서 서낭제를 지냈다. 월림2리 새터, 골말에서도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서낭제를...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림리 동제는 제천시 금성면 월림1리와 월림2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림1리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지내고, 이어서 서낭제를 지냈다. 월림2리 새터, 골말에서도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서낭제를...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시대에 원림부곡(員林部曲)이 있던 곳이므로 원리, 원림부곡 또는 월림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생김새가 ‘월(月)’자형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중시조가 영일 정씨 월림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영일 정씨 시조 포옹(抱翁) 정양(鄭瀁)이 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때 꿈에 달이 숲으로 떨어졌다는 설도 전한다. 조선 말...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림리 동제는 제천시 금성면 월림1리와 월림2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림1리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지내고, 이어서 서낭제를 지냈다. 월림2리 새터, 골말에서도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를 먼저 지내고 서낭제를...
-
조선 후기 김이만(金履萬)이 월악산의 모습을 34구로 형상화한 오언 고시. 제천시 봉양에서 태어난 학고(鶴皐) 김이만[1683~1758]은 집안이 남인이었던 관계로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달하지 못하고 42세 이후에나 관직에 나아가 무안현감, 양산군수, 서산군수 등 지방의 외직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는 벼슬살이보다 고향인 제천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문...
-
조선 후기 권상하(權尙夏)가 월악산 서방대의 풍광과 그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시인의 모습을 노래한 오언 율시의 한시. 권상하[1641~1721]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월악산을 자주 찾았고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소요하기를 즐겨하였다. 「월악서방대(月嶽西方臺)」는 월악산 서방대의 암자에서 고승과 마주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 일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련과 함련에서는 월...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악산[1,094m]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월악리(月岳里)라 하였다. 조선 말 충주군 덕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너부내·대판리(大板里)·불억(佛億)·억수동(億水洞)·용하(用夏)를 통합하여 제천군 덕산면 월악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덕산면 월악리가 되었다. 1991...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악리 동제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자정 무렵부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악리 동제는 국사제, 산신제, 서낭제의 순으로 올린다. 산신당은 바랑골 뒷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섯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사당은 마을...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돌탑. 제천에서 충주 쪽으로 국도 36호선을 따라가다 덕산면 소재지로 들어와서 1.5㎞ 못 미쳐 오른쪽으로 성내교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덕산면 월악리에 이른다. 월악리 가운데에 있는 월악민속학교에서 신륵사 쪽으로 약 100m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시멘트로 만든 배수로가 보이는데, 그 옆에 돌...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돌탑. 제천에서 충주 쪽으로 국도 36호선을 따라가다 덕산면 소재지로 들어와서 1.5㎞ 못 미쳐 오른쪽으로 성내교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덕산면 월악리에 이른다. 월악리 가운데에 있는 월악민속학교에서 신륵사 쪽으로 약 100m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시멘트로 만든 배수로가 보이는데, 그 옆에 돌...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악리 동제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자정 무렵부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악리 동제는 국사제, 산신제, 서낭제의 순으로 올린다. 산신당은 바랑골 뒷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섯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사당은 마을...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악리 동제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자정 무렵부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악리 동제는 국사제, 산신제, 서낭제의 순으로 올린다. 산신당은 바랑골 뒷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섯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사당은 마을...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악리 동제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자정 무렵부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악리 동제는 국사제, 산신제, 서낭제의 순으로 올린다. 산신당은 바랑골 뒷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섯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국사당은 마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덕산면, 충주시, 단양군,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고 하여 월악산이라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월형산이라 하였고, 후백제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명산은 월악이요[신라에서는 월형산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서 나는 고본(藁本)이라는 약초로 담근 술. 가을에 뿌리를 캐서 말린 고본은 두통·관절통·치통·복통·설사·습진 등에 효과가 있어 널리 이용되어 왔다. 제천 지역, 특히 월악산 근처 한수면 일대에서는 약효를 높이고 이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말린 고본으로 술을 담가 음용해 왔다. 고본이 많이 생산되는 제천시 한수면 일대에서는 고본 뿌리의 독특하고 자극...
-
충청북도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국립 공원. 월악산 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행정 구역상으로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문경시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그중에서도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1966년 6월 24일 사적...
-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 일대에서 재배되는 초롱꽃과에 속한 식물. 더덕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덩굴 식물로 학명은 ‘Codonopsis Lanceolata’이며, 뿌리에서 나오는 진액은 인삼의 사포닌 성분과 같은 약효가 있다. 월악산 더덕은 산에서 자생하는 산더덕의 씨앗을 재배한 것으로, 진한 향기에 육질이 아삭아삭하고 부드러우면서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수령 약 30년의 낙엽 활엽 교목. 모감주나무는 중국 북부 내륙 지방이 원산지로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 지방에서 자라는데, 충청남도 안면도에서와 같이 바닷가에서 군총을 이루면서 서식한다. 씨앗은 금강자(金剛子)라 하는데, ‘금강’은 금강석의 단단하고 변치 않는 특성에서 유래되었겠으나 불가에서...
-
6·25 전쟁 전후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월악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 해방 이후 6·25 전쟁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남한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좌우 갈등이었다. 이러한 좌우 갈등이 가장 격렬하게 표출된 것이 빨치산 문제였다. 제천 지역에서는 1946년 가을부터 좌익 세력이 모험 노선으로 치닫게 되고, 제천이나 충주에서 미군정에 반대하여 봉기했던 이들이 경찰의...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서 월악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송계리 동제는 제천시 한수면 송계1리, 송계2리, 송계3리, 송계4리 등 송계리 전체에서 매년 음력 정월과 시월상달에 택일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송계리 산신제, 월악산 산신제 등이라고도 한다. 한수면이 수몰되기 전부터 송계리에서는 ‘월...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월악산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 우리나라의 산양은 외국산 산양과 속(屬)이 전혀 달라 안선(顔腺)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몸길이 129㎝, 꼬리 길이 15㎝ 내외이다. 암수 모두 뿔이 있다. 겨울털은 회황색이고, 등 쪽의 정중선은 암색이며 모피는 방수상이다. 주둥이에서 후두부에 이르는 부분은 흑색을 띠고, 머리 옆과 입술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
근대 이목래(李牧來)가 월악산의 풍광을 읊은 두 구의 한시. 이목래[1854~1935]는 제천 지역의 문인이자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한학을 공부했던 유학자로 보인다. 「월악산외(月岳山外)」는 월악산의 풍광을 읊은 것으로 원래 칠언 절구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두 구밖에 없다. 월악산 봉우리의 모습과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표현했다. 첫 구는 월악...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에 있는 숙박 시설. 유스호스텔이란 여행자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친구를 사귐으로써 진정한 국제우호를 실현할 수 있는 젊음의 숙소를 말한다. 간소하고 깨끗한 공동 침실, 편의 시설, 주방 시설, 화목한 분위기 등은 유스호스텔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유스호스텔에는 체육 시설, 야외...
-
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
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에 걸쳐 있는 산. 일명 월악수리봉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며 천지개벽이 일어났을 때 이 봉우리만 물에 잠기지 않고 수리 한 마리가 앉을 정도의 산꼭대기 터가 남아 있었다 하여 수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독수리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수리’는 산을 가리키는 신라 말이다...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시조 시인. 이종훈(李鐘塤)[1931~2003]은 호는 월정(月汀)이며, 제천시 한수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사관으로 참전하였다. 1958년 공무원에 임용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6년 제천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제천 문학에 성심을 기울였다. 198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입선하고, 『시...
-
조선 전기 문신. 김길통(金吉通)[1408~1473]과 관련된 유물로 보물 제716호로 지정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金吉通 佐理功臣敎書)」 1첩이 있다. 1981년 3월 18일 지정되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공신 교서란 공이 있는 신하에게 왕의 명을 받들어 공신도감(功臣都鑑)에서 발행하는 공신 임명 증서를 말하는데, 이 교서는 성종이 자신이 왕위...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를 연결하는 고개. 다릿재는 박달재와 더불어 제천에서 충주로 통하는 관로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개였다. 박달재와 천등산의 안부에 국도 38호선이 개설되어 많은 차량이 이 길을 왕래하였는데, 2007년 국도 38호선의 직선화 사업이 진행되어 다릿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다릿재는 본래의 고개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게...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덕산면, 충주시, 단양군,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고 하여 월악산이라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월형산이라 하였고, 후백제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명산은 월악이요[신라에서는 월형산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위곡리와 월림리를 통합하면서 위곡리의 ‘위(渭)’자와 월림리의 ‘림(林)’자를 따서 위림리라 하였다. 달리 우실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위곡리와 월림리 일부를 병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위림리가 되었고, 1917년 금성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
-
고려 후기 제천에서 거란병을 크게 무찔러 격퇴한 무신.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군(彦陽君) 김선(金鐥)의 후손 예부 시랑(禮部侍郞) 김부(金富)이다. 김취려(金就礪)[1172~1234]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서 태어났다. 음관(蔭官)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뒤 동궁 위(東宮尉)를 거쳐 장군(將軍)으로서 동북계(東北界)...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유계형(柳桂馨)[1877~?]은 제천의 덕산면 선림동(仙林洞)에 살던 상인이다. 군대 해산 이후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조동규의 부하로 종군하여 문경·예천 등 소백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조선 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이헌국(李憲國)[1525~1602]과 관련하여 보물 제1617호 「호성공신교서(李憲國扈聖功臣敎書)」가 전한다. 이는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왕과 세자를 끝까지 호종(扈從)한 신하들에게 1604년(선조 37) 내린 교서로, 가로 155㎝, 세로 36.5㎝이다. 호성공신은 3등으로 나누어 이항복(李恒福) 등 1등 2명, 이원익(李元翼) 등...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는 공자의 사상을 존경하고 숭앙하는 가르침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사상으로서 유가(儒家), 유도(儒道), 유학(儒學)이라고도 한다. 유교는 공자의 도의 사상을 종지(宗旨)로 하는 인본주의적 윤리의 가르침이다. 즉, 유교란 자신의 내적 수양을 쌓은 유자(儒者)들의 올바른 가르침, 또는 그...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유금봉(劉今鳳)은 제천시 수산면에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제천에서 다시 봉기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포군으로 참여하였다. 제천시 수산면의 다불리(多佛里), 두무산(杜舞山) 등지에서 단독으로 일본군 수개 중대와 접전할 만큼 용맹무쌍하였다고 한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유기백(劉基伯)[1869~?]은 충주시 산척면 비석리에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된 뒤 이강년(李康秊)이 다시 봉기하였을 때 중군장을 맡았던 안성해(安成海)의 참모장으로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친일파를 베고 군수 물자를 거두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년 뒤 이강년이 체포된 후에는 여러...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浩). 할아버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이고,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이다. 외할아버지는 박동량(朴東亮)이며,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지촌(芝村) 이희조(李喜朝)가 아들이다. 이단상(李端相)[1628~1...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유덕삼(柳德三)[1878~1909]은 영춘군 가야면 여천리에 살던 인물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던 1907년(순종 1) 여름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주로 이강년(李康秊)과 원건상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는데, 초기에는 총기를 가진 수백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보은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순종 2) 12월 홍...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문(季文)·유도(有道), 호는 구계(癯溪). 증조할아버지는 권주(權霔)이고, 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다. 어머니는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 이초로(李楚老)의 딸이고, 부인은 원만춘(元萬春)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형이고 권혁(權爀)이 아들이다....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 유두는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아 궂은일을 털어 버리고, 음식을 차려 먹으며 놀이를 했던 날로 전해 온다. 유두에는 약수에 머리를 감으면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고 하여 물이 많은 곳에서 물맞이를 하였다. 집안에 따라 새로 나는 음식을 신에게 먼저 올리는 유두천신(流頭薦新)을 하였다. 『동국세시기...
-
충청북도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유등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보조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청전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47년 착공하여 1949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50만 ㎡, 만수 면적은 2만 8,000㎡이고, 홍수 면적은 3만 ㎡, 구역 면적은 9만 ㎡이다. 관개...
-
여말 선초 제천 문화 유씨의 선조. 본관이 문화(文化). 아버지는 삼사판관 유안택(柳安澤), 동생은 하정(夏亭)유관(柳寬)이고, 아들은 문숙공(文肅公) 유사눌(柳思訥)이다. 유림(柳臨)은 전농시 정(典農寺正)을 역임하였다. 세종 대에 병조 판서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
개항기 제천에서 후학을 양성한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초명은 유맹교(柳孟敎),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 아버지는 진사 유구이다. 유중교(柳重敎)[1832~1893]는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평묵(金平黙)을 스승으로 하였다. 1876년(고종 13), 1882년(고종 19)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과 사헌부 지평에 각각 제수되...
-
고려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유반(柳潘), 호는 벽은(僻隱). 고려의 멸망 과정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고, 이때 초명을 버리고 유번(柳蕃)으로 개명하였다. 아버지는 유지택(柳之澤)이다. 후손으로 청풍 출신의 효자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기록된 유자하...
-
조선 시대 이재열(李載烈)이 감악산에 있는 백련사에서 노니는 모습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이재열은 제천 지역의 한학자로 추정된다. 생몰 연대나 작품의 창작 시점은 확실치 않다. 「유백련사(遊白蓮寺)」는 제천시 봉양읍에 있는 백련사의 경치와 그윽한 분위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수련과 함련에서는 백련사의 풍광을 노래하고, 경련에서는 그 그윽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미련에서...
-
고려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유반(柳潘), 호는 벽은(僻隱). 고려의 멸망 과정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고, 이때 초명을 버리고 유번(柳蕃)으로 개명하였다. 아버지는 유지택(柳之澤)이다. 후손으로 청풍 출신의 효자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기록된 유자하...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잡가 「유산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민요. 「유산가」는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면서 부르는 여성 유희요이다. 「유산가」는 12잡가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민요에서는 유산가의 영역이 있다. 제천 지역의 「유산가」는 잡가의 유산가처럼 봄철 화려한 산천의 경치와 새들의 노래를 의성어·의태어를 많이 써서 기발하고 과장되게 나타내고 있다....
-
조선 후기 제천에서 우거한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보(德甫), 호는 개산(皆山). 할아버지는 사간원 정언 유격(柳格)이며, 아버지는 사옹원 시정 유시회(柳時會)이다.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길(權吉)의 딸이다. 유석(柳碩)[1595~1655]은 1613년(광해군 5) 사마시를 거쳐 1625년(인조 2)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사간원 등의...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에서 유선암과 거북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선암과 거북바위」는 선비가 유선암(遊仙岩) 앞 물에 있는 거북바위를 극진히 위한 까닭에 장원 급제를 했다는 암석유래담이다. 또한 기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았다는 기자담이자 거북바위 아래의 구멍을 통과하는 형태로 아들인지 딸인지 점을 쳤다는 기자점담이기도 하다. 1982...
-
근대 제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성재(聖載).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유사눌(柳思訥)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은기(柳溵基)이며, 아버지는 유흥남(柳興南)이며, 어머니는 인동 장씨(仁同張氏)이다. 유순철(柳舜喆)[1872~1949]은 청풍 황석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과 『주역(周易)』을 공부하여 통달하였다. 일제 강점기 서당에서 한학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유시형(柳蓍馨)[1842~1942]은 본관이 진주(晉州)로, 모친의 병들었을 때 맏형인 유지형(柳芝馨)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였으나 끝내 돌아가시자 3년간 무덤을 지켰다. 또한 부친이 병으로 누워 있을 때 한겨울에 갑자기 자라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자라를 구하려고 얼어붙은 강 위를 한없이 헤매다가 뜻밖에 나타난 자라를 잡아...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후산리에서 유씨문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씨문중과 호랑이」는 유씨 형제가 명당을 찾으려고 다니다가 호랑이 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 주는 은혜를 베풀고, 이에 호랑이는 명당을 알려 주는 보은을 했다는 성씨유래담이자 동물보은담이다. 1999년 제천문화원에서 발행한 『제천 마을지』-금성·청풍·수산·덕산·한수면편에 실려 있고, 2...
-
조선 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의보(義甫), 호는 의두헌(倚斗軒). 문희공(文僖公) 유창(劉敞)의 현손이다. 유안례(劉安禮)[1426~1506]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이 되었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이...
-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유암저수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두학동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여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1957년 착공하여 1959년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은 1,380만 ㎡, 만수 면적 11만 ㎡이고, 홍수 면적은 13만 3500㎡, 구역 면적은 97만 ㎡이다....
-
조선 시대 제천 지역의 효부. 본관은 성주(星州). 남편은 사후에 비서승(秘書丞)으로 추증된 유영종(劉英鍾)이다. 성주 배씨(星州裵氏)는 일찍이 청상과부가 된 뒤 남편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가까운 친척이 없어 뒷일을 부탁할 처지가 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예를 다해 남편을 장사 지내고 조상의 제사와 묘소를 받들었는데, 시조부의 묘소 구역에 권세 있는 사람이...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춘혁(柳春赫), 자는 우양(禹陽)·홍일(弘一), 호는 임당(任堂). 유흥이(柳興彛)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유의혁(柳毅赫)[1863~1905]은 의당 박세화(朴世和)의 문인으로, 박세화의 명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정사를 지어 일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임당유고(任堂遺稿)』가 있다. 『임당유고』는 3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할아버지는 밀직사사(密直司事) 청천군(菁川君) 유번(柳藩)이고, 아버지는 유효손이다. 부친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데, 병환이 들어 위독하자 성심으로 치료하여 병을 완쾌시키고 편안하게 봉양하였다고 한다. 복상(服喪)을 입어 지극하게 상례(喪禮)를 다하고,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유자하의 효행 일화와 정려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청풍 군수를 역임한 이현석의 문집. 이현석(李玄錫)[1647~1703]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游齋)이다. 관직에 있는 동안 군학(君學)과 시무(時務)에 관한 여러 소장(疏章)과 저서를 제진(製進)하였다. 탕평책과 중농 정책을 건의하였으며, 경연강의(經筵講義) 교재의 개편을 진언하였다. 『유재선생집(游齋先...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游齋). 시호는 문목(文穆). 증조할아버지는 이수광(李睟光)이고, 아버지는 퇴촌(退村) 이당규(李堂揆)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현석(李玄錫)[1647~1703]은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후학을 양성한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초명은 유맹교(柳孟敎),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 아버지는 진사 유구이다. 유중교(柳重敎)[1832~1893]는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평묵(金平黙)을 스승으로 하였다. 1876년(고종 13), 1882년(고종 19)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과 사헌부 지평에 각각 제수되...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벽파(碧波). 유번(柳藩)의 후손이다. 유진(柳璡)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당하자 의병을 인솔하여 남한산성을 호위하다가, 광주(廣州) 쌍령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벼슬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유청(幼淸), 호는 연초재(燕超齋)·택남(澤南)·제월(霽月). 묵재(黙齋) 오백령(吳百齡)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오정벽(吳挺璧)이고, 아버지는 황주 판관(黃州判官) 오시적(吳始績)이다. 어머니는 윤매(尹梅)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오시수(吳始壽)이다. 형으로 오상함(吳尙涵)이 있고, 누이는 선조의...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춘혁(柳春赫), 자는 우양(禹陽)·홍일(弘一), 호는 임당(任堂). 유흥이(柳興彛)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유의혁(柳毅赫)[1863~1905]은 의당 박세화(朴世和)의 문인으로, 박세화의 명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정사를 지어 일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임당유고(任堂遺稿)』가 있다. 『임당유고』는 3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원평(原平), 호는 도진(桃津). 유치경(兪致敬)[1848~1901]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다. 장담에서 개최된 유중교의 강학에 참석하면서 문하에 출입하였다. 유중교의 시문집인 『성재집(省齋集)』 발간에 앞장섰다. 1895년(고종 32) 11월 단발령이 공포되자 신석원·조두...
-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학령기 전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 교육은 국가의 관심에 따라 1980년대 이후 비약적 성장을 하였다. 유치원 교육에서 공립, 사립의 지역적인 분포는 읍·면 지역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주로 공립 유치원이고 제천 시내 지역은 공립으로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있고, 사립 유치원도 12개가 있어 각기 특징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원기(元起), 호는 청수(廳水). 영의정 유척기(兪拓基)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유장환(兪章煥)이다. 유치희(兪致喜)[1820~?]는 1846년(헌종 12)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의빈부도사, 공조 좌랑, 한성부 주부 등을 거쳐 과천·황주·진주·광주 등의 목사를 지내고 공조 참의, 승정원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성품...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유해붕(柳海鵬)은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전직 관료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군기감, 또는 기계 감독을 맡아 기존의 각궁(角弓)을 소뇌[弩弓]로 개조하는 등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 힘쓴 결과 많은 성과를 올려 찬사를 들었다. 을미 의병 당시 호좌의진에서 활약하던 원용팔(元...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와 강원도 영월군 서면 쌍용리를 연결하는 터널. 주변에 느릅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름 붙은 느릅재를 지나는 터널이어서 느릅재 터널이라 이름 붙였다. 유현터널이라고도 한다.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상행선은 2차선으로 길이는 470m, 총 폭은 10.3m, 유효 폭은 7.3m, 높이는 6.6m이다. 하행선 또한 2...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 유홍렬(柳鴻烈)[1907~1966]은 본관이 문화(文化)로, 수원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제천군 재무 부서에서 근무한 뒤 청풍금융조합·주문진금융조합·문막금융조합에서 서기로 일하였고 해방 후에는 청풍면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5월 10일 정부 수립 이후에 시행된 최초 민의원 선거에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제...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효백(孝伯), 호는 외당(畏堂). 유인석(柳麟錫)의 육촌 형이다. 유홍석(柳弘錫)[1841~1913]은 단발령 이후인 1896년(고종 33) 초 춘천에서 이소응(李昭應)·유중락·유봉석 등과 봉기하여 가평과 춘천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춘천 의진이 무너진 후로는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세하여 유인석 휘하에서 서무를 관장하...
-
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유회(幼晦), 호는 초당(草堂). 증조할아버지는 권성원(權聖源)이고, 할아버지는 강릉 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추증된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권상하(權尙夏)이다. 어머니는 이세백(李世白)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며, 부인은 김진수(金震粹)의 딸이다. 권욱(權煜)[1658~171...
-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민족상잔의 전쟁인 6·25 전쟁에서 제천은 전황에 따라 몇 차례나 공산군과 국군 및 미군에 의해 점령되면서 많은 희생과 갈등을 겪었다. 6·25 전쟁 초기에 강원도와 충청북도 북부 지역 방어는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이...
-
조선 후기 제천 지역의 효녀. 윤개(允介)는 천남역에 속하여 있던 여종으로, 유(劉)씨 성을 가졌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생몰년 역시 미상이다. 청풍으로 시집가서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다음 날 달려와 보니 이미 염이 끝난 후였다. 하지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으면서 사지를 주무르니 하룻밤이 지나 깨어나 1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택(敬澤), 호는 무곡(茂谷). 아들로 윤지수(尹芝秀)가 있다. 윤기영(尹起榮)[1856~1907]은 원주의 호저면 무장리 출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잠시 말단 관료를 지냈으며, 귀향 후 동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원주 출신의 의병들을 이끌고 이강년(李康秊)의...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태지(泰之). 아버지는 홍문관 직제학 윤석보(尹碩輔)이다. 윤덕형(尹德亨)[1477~1549]은 1510년(중종 5)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관직에는 관심이 없어 산수를 찾아다니며 노닐었다. 묘소는 제천시 대랑동 호명산 아래에 있다.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었다....
-
개항기 만년에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위(性謂). 증조할아버지는 윤이현(尹彛鉉)이고, 할아버지는 윤태주(尹泰周)이며, 아버지는 윤병정(尹秉鼎)이다. 어머니는 서상옥(徐相沃)의 딸 대구 서씨(大丘徐氏)이고, 부인은 김영수(金永壽)의 딸 광산 김씨(光山金氏)이다. 윤명섭(尹命燮)[1851~?]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호조참...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자는 문우(文友), 호는 인재(認齋). 아버지는 윤하박(尹河博)이다. 윤병익(尹炳益)은 윤응선(尹膺善)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재주와 덕망을 고루 갖추어 칭찬이 높았다. 특히 행동이 돈독하고 효와 우애가 깊어 제천 유림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
조선 전기 제천과 관련한 시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고려의 시중 이춘부(李春富)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병조 판서에 증직된 이온(李蒕)이다. 이승소(李承召)[1422~1484]는 1458년(세조 4) 예조 참의가 되어 『초학자회언해본(初學字會諺解本)』을 찬정(撰定)하였고, 1459년(세조 5) 사은사(謝恩使)의 부사로...
-
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할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역임한 윤비경(尹飛卿)이고, 아버지는 윤명운(尹明運)이다. 윤봉구(尹鳳九)[1681~1767]는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1725년(영조 1) 청도 군수가 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윤성호(尹聖鎬)[?~1896]는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하였을 때 중군장 안승우(安承禹)의 막하에서 우익장으로 활약하였다. 선봉장이던 김백선(金伯善)이 군기 문란죄로 처형된 이후에 지평 출신의 포군 지도자 서석화, 선봉장 종사관 민의식 등이 반발하여 의진을 이탈하여 김백선의 아...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윤용구(尹容九)는 제천에 살았으며,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10월 영월 거석리에 의진이 주둔하였을 때 우선봉장인 백남규(白南奎)가 일시 휴가를 얻어 귀가하게 되어 부대 지휘부를 개편하였는데, 이때에 독전장(督戰將)에 임명되었다. 이후 단양·영춘 등 소백산...
-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1854~1924]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주역』를 공부하던 40세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만났다. 윤응선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
-
조선 후기 제천에 낙향하여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정평(正平), 호는 율원(栗園). 증조할아버지는 윤덕형(尹德亨)이고, 할아버지는 윤신(尹信)이며, 아버지는 윤창명(尹昌鳴)이다. 어머니는 금극인(琴克仁)의 딸이다. 윤조원(尹調元)[1572~1636]은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입격한 후 그해 다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05년(선조 38)...
-
조선 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시숙(時叔)·경시(景時), 호는 백암(白巖). 증조할아버지는 윤석보(尹碩輔)이고, 할아버지는 생원 윤덕형(尹德亨)이며, 아버지는 찰방 윤신(尹信)이다. 어머니는 유영백(劉榮伯)의 딸 청풍 유씨(淸風劉氏)이다. 부인은 금극인(琴克仁)의 딸 봉화 금씨(奉化琴氏)이다. 아들로 감사를 역임한 윤조원(尹調元)을 두었다....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춘경(春卿). 할아버지는 호조 판서 윤계(尹堦)이며, 아버지는 사옹원 첨정 윤세강(尹世綱)이다. 윤택(尹澤)[1665~1720]은 1687년(숙종 13) 23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1692년(숙종 18) 할아버지가 강진의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천리를 반장(返葬)하는 데 예의에 벗어나지 않았고 이후...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지일(漬一), 호는 연계(延溪). 윤하박(尹河博)[1864~?]은 1864년(고종 1) 6월 28일 제천 봉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와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1세 때인 1874년(고종 11)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하게 통곡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할머니가 병들었을 때 정성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이중(伊仲), 호는 단산(丹山). 감사 윤조원(尹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생국(尹生國)이다. 윤학신(尹學信)[1769~1830]은 단산(丹山)의 남쪽에 은거하면서 부모님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문집 9권이 있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거경(巨卿), 호는 소와(笑窩). 나재(懶齋) 윤광령(尹光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윤격(尹格)이고, 할아버지는 윤효술(尹孝述)이며, 아버지는 봉상시 정 윤형(尹珩)이다. 어머니는 이지원(李智遠)의 딸이다. 윤홍리(尹弘离)[1641~?]는 1666년(현종 7)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78년(숙종 4) 증...
-
조선 후기 제천에 낙향하여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정평(正平), 호는 율원(栗園). 증조할아버지는 윤덕형(尹德亨)이고, 할아버지는 윤신(尹信)이며, 아버지는 윤창명(尹昌鳴)이다. 어머니는 금극인(琴克仁)의 딸이다. 윤조원(尹調元)[1572~1636]은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입격한 후 그해 다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05년(선조 38)...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방갓골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중기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명산을 순례하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밤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방갓골은 동쪽에 봉우리가 방갓처럼 생긴 방갓산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 청풍군 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율지리가 되었다. 19...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부터 방갓골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중기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명산을 순례하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밤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방갓골은 동쪽에 봉우리가 방갓처럼 생긴 방갓산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조선 말 청풍군 근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수산면 율지리가 되었다. 19...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율지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율지리 동제는 제천시 수산면 율지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에 길일을 택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먼저 천지당골 산왕당(山王堂)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다음에 마을에 위치한 하당(下堂)에서 서낭제를 지냈다. 율지리 동제는 정월 초에 날을 받아서 지내는데, 대개...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윷놀이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세시 놀이. 윷점은 음력 정월에 마을 사람들을 두 패로 갈라 윷놀이를 하면서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시절윷’, ‘종군놀이’, ‘부종군놀이’ 등이라고도 한다. 음력 정월은 묵은해와 새해가 중첩되는 시간이면서 또한 진정한 새해가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마을과 가정의 화평을 기원하는 많은 의례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재(大哉), 호는 휘암(徽菴)·은구와(隱求窩). 명문가로 이름 있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동생으로 유인석(柳麟錫)의 종사로 활동한 이조승(李肇承)이 있다. 이주승(李胄承)[1870~1946]은 선공감 감역관을 지냈으며, 1895년(고종 32) 제천 을미의병 때 가문의 재력과 중앙 및...
-
조선 후기 제천의 남당서원(南塘書院)를 세운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임(士任), 호는 은암(隱庵). 할아버지는 강귀수(姜龜壽)이고, 아버지는 강신(姜信)이다. 셋째 아들 상곡(商谷) 강유(姜瑜)[1597~1668]는 정묘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으며, 1653년(효종 4) 함경남도 병마사로서 각 진의 성을 수축하고 국방 경비를 튼튼히 하며 북벌의 뜻을 지...
-
충청북도 제천시 남천동에서 발견된 고려 후기의 범종. 1966년에 제천에서 발견되어 백부영이 소장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동종이다. 중형에 가까운 큰 종으로 전형적인 고려 시대의 청동 범종이다. 을사명 동종은 높이에 비하여 풍만한 종신(鍾身)을 지니고 있는데, 용통과 용뉴, 유곽 등 전형적인 한국 범종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용정(甬頂)에 5개의 구슬...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가게. 제천시는 북으로는 치악산 국립공원, 남으로는 월악산 국립공원, 동으로는 소백산 국립공원, 그리고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태백산 국립공원 등 4개의 국립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청풍명월의 본향인 제천은 대구, 전주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약령시(藥令市) 중의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제천 지역은 해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소재로 박자·선율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 제천시는 과거 사군(四郡)이라 일컬어지던 청풍과 제천이 포함된 지역으로,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많은 시인·묵객들이 예술적 감성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신라 시대에는...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청풍 지역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여서 읍내 또는 읍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3년 12월 29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청풍군이 제천군에 통합되고 읍내면과 근서면이 합쳐져 비봉면으로 개칭되고 상리·중리·하리 등이 합쳐져 읍리로 개편됨으로써 제천군 비봉면 읍리가 되었다. 1918년 비봉면이 청풍면으...
-
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市). 제천시는 충청북도 동북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단양군 어상천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남쪽은 제천시 금성면, 서쪽은 제천시 봉양읍, 북쪽은 제천시 송학면과 접하고 있다. 제천시의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 방향,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 동남쪽에는 소백산맥이 북서~남서 방향으로 각각 뻗어 있다. 한편 남...
-
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市). 제천시는 충청북도 동북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단양군 어상천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남쪽은 제천시 금성면, 서쪽은 제천시 봉양읍, 북쪽은 제천시 송학면과 접하고 있다. 제천시의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 방향,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 동남쪽에는 소백산맥이 북서~남서 방향으로 각각 뻗어 있다. 한편 남...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디 청풍 지역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여서 읍내 또는 읍리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3년 12월 29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청풍군이 제천군에 통합되고 읍내면과 근서면이 합쳐져 비봉면으로 개칭되고 상리·중리·하리 등이 합쳐져 읍리로 개편됨으로써 제천군 비봉면 읍리가 되었다. 1918년 비봉면이 청풍면으...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읍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창(邑倉) 터. 남한강 상류의 청풍은 수운의 물물교역이 발전한 고을로 관내 읍창(邑倉), 남창(南倉), 북창(北倉), 서창(西倉) 등지에 세곡과 환곡을 조적(糶糴)하면서 뱃길로 수운하였다. 특히 청풍치소의 읍창과 남창에서는 관아에서 소용되는 각종 공물과 세곡 등을 다용도로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여...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문외리(東門外里)의 ‘동(東)’자와 입읍현(立泣峴)의 ‘현(峴)’자를 따서 동현동(東峴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가 되었고, 1946년 동문외리·입읍현·백야리(白夜里)를 통합하여 동현동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기리와 월악리에 걸쳐 있는 산. 산세가 매의 머리 형상이어서 매두막산이라 하였다. 달리 매두막봉 또는 응두봉이라고도 한다. 매를 산 채로 잡기 위한 움막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매를 이용하여 짐승을 잡는 매 사냥터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매두막산은 높이 1,115m로 북쪽에 평등산[336m]·저성산[333.3...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문세희(文世熺)[1891~?]는 본관이 남평(南平)으로, 아침저녁의 문안 인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자 밤낮으로 약을 정성껏 마련하여 드렸다.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병세가 좋아지지 않자 제단을 만들고 백 일 동안 기도를 드렸으며, 스물 살 때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9일이나 더 살게 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응삼(應三), 호는 학습재(學習齋). 아들로 신재교(辛在敎)가 있다. 신광묵(辛光默)[1872~1949]은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자작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 유인석(柳麟錫)의 제자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유인석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였을 때 참여하였고, 1907년(순종...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천(應天), 호는 석포(石浦). 아버지는 이규수(李圭壽)이다. 이종국(李鍾國)[1860~1939]은 박세화(朴世和)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이 친일 관료들을 척살하고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식량의...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 박세화의 문집. 박세화(朴世和)[1834~1910]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 출신으로 위정척사(衛正斥邪) 계열의 학문을 견지했다. 충청북도 음성의 충룡사(忠龍祠)와 제천의 용하영당(用夏影堂)[후에 屛山影堂]에 배향되었다. 1962년 건국...
-
조선 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의보(義甫), 호는 의두헌(倚斗軒). 문희공(文僖公) 유창(劉敞)의 현손이다. 유안례(劉安禮)[1426~1506]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이 되었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이...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각종 의례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의례복은 혼례나 제례 등 각종 통과 의례 시에 예를 갖추기 위해 입는 옷이다. 제천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의례 시에 입는 의복으로는 아기의 돌에 입는 돌복, 결혼 행사 때 입는 혼례복,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상례 때 입는 상례복,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제례복 등이 있다. 과거 집에서 길쌈을 통하여...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공립 여자 중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주인 정신을 기르는 애국인, 실천 중심의 인간성 교육으로 민주 정신을 기르는 도덕인, 체험 중심의 창의 교육으로 창조 정신을 기르는 창조인, 참여 중심 공동체 교육으로 더불어 사는 협동 정신을 기르는 협동인, 정서 순화와 건강한 심신을 통하여 조화로움을 기르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고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추며 고장의 문화를 전승, 발전시키는 진취적인 애국인,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배양하고 기초 기본 교육에 충실한 실력인, 기초 과학 교육을 통하여 창의성과 탐구 능력을 배양하는 과학인, 아끼고 절약하며 건전한 소비 생활 태도를 기르는 경제인, 규칙적인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증...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의림지(義林池)에서 따 왔으며 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이름이다. 개항기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邑部里)가 되었고, 1940년 제천읍 대화정(大和町)이 되었다. 1946년 의림동(義林洞)으로 개칭하였고,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시 의림동...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천주교 교회. 1962년 3월 10일 교황 요한 23세는 한국에 3개 관구를 설정하고 전국 각 대목구를 자치 교구로 승격시켜 그 관구에 소속하게 하는 규정을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 청주 교구장 파디 주교의 착좌식이 1962년 7월 25일에, 춘천 교구장 퀸란 주교의 착좌식이 7월 26일에 이루어졌다. 이로써 제천 지역은 청주 교구의 관할하에...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천주교 교회. 1962년 3월 10일 교황 요한 23세는 한국에 3개 관구를 설정하고 전국 각 대목구를 자치 교구로 승격시켜 그 관구에 소속하게 하는 규정을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 청주 교구장 파디 주교의 착좌식이 1962년 7월 25일에, 춘천 교구장 퀸란 주교의 착좌식이 7월 26일에 이루어졌다. 이로써 제천 지역은 청주 교구의 관할하에...
-
1857년(철종 8) 제천 출신의 문신 임호 박수검을 기리는 의림사(義林祠)를 중건하고 6명의 후손 및 후학이 모여 지은 6편의 한시. 1827년(순조 27) 의림지(義林池)를 즐겨 찾던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1629~1698]을 기리기 위하여 그 주변에 의림사를 창건하여 제향하였다. 이후 30년 만인 1857년(철종 8)에 의림사를 중수하였는데, 당시의 감회를 6명의 후손...
-
충청북도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공립 여자 중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주인 정신을 기르는 애국인, 실천 중심의 인간성 교육으로 민주 정신을 기르는 도덕인, 체험 중심의 창의 교육으로 창조 정신을 기르는 창조인, 참여 중심 공동체 교육으로 더불어 사는 협동 정신을 기르는 협동인, 정서 순화와 건강한 심신을 통하여 조화로움을 기르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의림지 안쪽에 있어 못안이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모산이 되었다. 안모산과 바깥모산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말 제천군 현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북면 신담리(新潭里) 일부를 편입하여 제천군 읍내면 모산리가 되었고, 1940년 제천군 제천읍 모산리가 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시 모...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의 농업 관개용 저수지. 영호저수지는 의림지(義林池)의 다른 이름으로 서류상 관리 이름이다. 해방 이후 17세기부터 불리던 영호라는 이름을 따서 저수지 이름을 붙였으나 아직까지도 일반적으로는 의림지라 불린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농업용수 주수원을 위한 저수지로서, 영호저수지와 제천 시가지 사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
-
개항기 박세화(朴世和)가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제천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의병장이자 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일찍부터 화서학파의 유중교와 교유를 가졌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고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다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05년...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서 거북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의림지 거북바위」는 예전 의림지 근처에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손님 접대에 불평이 많았던 며느리가 시주승의 말만 듣고 거북바위의 방향을 돌려놓은 결과 명당 지혈이 끊어져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는 풍수담이다.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근처에 거북바위가 있었으나 지금은 저수지 축대 공사로 인하여 없...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매년 1월 중순 개최되는 겨울 축제. 의림지 겨울 축제는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은 제천 지역의 특성을 살린 겨울 축제로, 의림지(義林池)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지역의 우수한 관광 자원을 축제화 하여 비수기 관광객 유치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2004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제천시 축제위원회 주관으로 2008년까지...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에 서식하는 바다잉엇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10~15㎝에 이르고, 가늘고 길며 측편(側偏)되어 있다. 몸 빛깔은 연한 회색 바탕에 등 쪽이 담회색에 누런 빛깔을 조금 띤다. 옆구리는 검은색과 은백색의 줄무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길고 매끈한 반투명의 모양을 하고 있다. 주둥이 길이는 두 눈 사이의 간격보다 길고, 위턱의 뒤끝은 동공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에 서식하는 바다잉엇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10~15㎝에 이르고, 가늘고 길며 측편(側偏)되어 있다. 몸 빛깔은 연한 회색 바탕에 등 쪽이 담회색에 누런 빛깔을 조금 띤다. 옆구리는 검은색과 은백색의 줄무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길고 매끈한 반투명의 모양을 하고 있다. 주둥이 길이는 두 눈 사이의 간격보다 길고, 위턱의 뒤끝은 동공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를 소재로 하여 방정현이 작사하고 김욱이 작곡한 향토 가요. 「의림지 사랑」은 제천 지역의 제1경인 의림지(義林池)를 노래한 가요이다. 의림지에 대한 애정과 지역에 대한 애착이 크게 느껴진다. 방정현 작사, 김욱 작곡으로 노래는 방정현이 불렀다.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있게 되어 많은 제천 시민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물풀.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어 가면서 길게 자라 물속에 잠겨 있다. 잎은 길이 6~10㎝, 지름 4~6㎝로 타원 모양의 방패와 같고 어긋나며 잎자루가 길고 물 위에 떠 있다. 윗면은 녹색, 아랫면은 자색을 띤다. 잎이 자랄 때는 어린 줄기와 더불어 우무 같은 껍질에 둘러싸이고 잎과 줄기에...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유원지. 의림지(義林池)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명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于勒)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 가야금을 타던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물인 우륵정이 남아 있다. 의림지 파크랜드는 의림지 관광지 개발의 일환으로 조성된 레저스포츠 시설로서,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일반 유원 시...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 습관을 형성하고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추며 고장의 문화를 전승, 발전시키는 진취적인 애국인,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배양하고 기초 기본 교육에 충실한 실력인, 기초 과학 교육을 통하여 창의성과 탐구 능력을 배양하는 과학인, 아끼고 절약하며 건전한 소비 생활 태도를 기르는 경제인, 규칙적인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증...
-
조선 후기 박수검(朴守儉)이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의 한가로운 정경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임호(林湖) 박수검[1629~1699]은 44세 때인 1673년(현종 14) 별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중간에 귀양을 가거나 퇴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줄곧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이 시기는 바로 사환기...
-
조선 전기 제천 수령을 지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의백(毅伯), 호는 풍천(楓川). 아버지는 고려 말 예조 판서를 지낸 정가종(鄭可宗)이다. 정수홍(鄭守弘)은 하륜(河崙)이 지은 「한벽루 중수기(寒碧樓重修記)」를 통하여 1406년(태종 6)을 전후한 시기에 제천 수령으로 활동하였던 사실이 확인된다.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는 1397년(태조 6) 중수한...
-
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
조선 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의보(義甫), 호는 의두헌(倚斗軒). 문희공(文僖公) 유창(劉敞)의 현손이다. 유안례(劉安禮)[1426~1506]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참군(訓練院參軍)이 되었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이 되었고, 1450년(세종 32)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이...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의생활은 생활 문화의 한 요소로서 제천 사람이 일상생활이나 의례 시에 착용하였고 지금도 착용하고 있는 복식을 의미한다. 제천 지역의 경우 사계절의 변화가 분명하여 상대적으로 계절에 따라 의복 문화가 발전하였다. 제천 지역의 산간 내륙 마을과 남한강 수변 마을에서는 계절감에 따라 일상복 중심으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다. 14세에 종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柳麟錫)[1842~1915]은 춘천의 가정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 등 화서학파 거유들에게 차례로 배웠다. 스승인 유중교가 말년에 강학하던...
-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의 문집.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유중교(柳重敎)에게 수학하였다. 1962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티고개의 이름을 따서 오티, 오현 또는 의티라 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웃을 오티라 하는 바 이를 마을 이름에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달리 우티라고도 한다. 한편 마을에 봉화재[일명 봉수티, 오티, 의티, 오현, 봉의재], 하너물재[일명 한천티, 287m], 흰티재, 구실재[일명 구곡재], 구리재 등 다섯 개의 고개가...
-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의 한의학 서적. 『의학입문』은 중국 명(明)나라 이천(李梴)이 1575년에 지은 한의학 서적으로, 내집(內集) 9책과 외집(外集) 10책으로 구성된 의학 입문서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저자가 병에 걸려 여러 의서를 살펴보았으나 책은 많은데 일목요연하게 요령을 삼을 만한 책이 없어 의학에 입문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말...
-
조선 후기 박수검(朴守儉)이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서 썰매 타는 모습을 그린 칠언 율시의 한시. 임호(林湖) 박수검[1629~1699]은 44세 때인 1673년(현종 14) 별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중간에 귀양을 가거나 퇴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줄곧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이 시기는 바로 사환...
-
박을규를 시조로 하고 박수검의 후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의흥 박씨의 관향조인 박을규(朴乙規)의 본성은 왕씨로 고려 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화(禍)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春城)[현재 단양군 영춘면] 거의동(車衣洞)에 둔거하였다가 조선 태종(太宗) 때 외가(外家)의 성(姓)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
-
조선 후기 제천의 황강영당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추월헌(秋月軒).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이태정(李泰貞)이며, 부호군 이태형(李泰亨)에게 입적되었다. 이간(李柬)[1677~1727]은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팔학사(八學士) 중 한 사람이다. 1710년(숙종 36) 천거되어 장릉 참봉(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아이들이 다리를 세어 가면서 노는 놀이. 다리 세기는 아이들이 마주 앉아 서로 다리를 엇갈리게 뻗고 노래에 맞추어 다리를 세어 가며 노는 경합쟁취형 민속놀이이다. 일반적으로는 ‘다리 헤기’라고 부르며 지역에 따라 ‘다리 셈 하기’, ‘발 헤기’, ‘이거리 저거리 갓거리’ 등이라고도 한다. 다리 세기는 주로 겨울철이나 명절에 아이들이 방안에 앉아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경기(李敬器)는 제천의 장담에 살았다. 삼화부사를 지냈으며, 무관의 후예로 병서에 능통하고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분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삼수 군수를 끝으로 퇴임하고 향리에 머물다가 단발령이 내려진 뒤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봉기하자 참여하였다. 친일 군수들을 처단하고 기세를 올린 호좌의진이 관찰부...
-
조선 전기의 문신. 이경윤(李憬胤)[1526~1578]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소(君紹)이다. 공민왕 때 정승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닦은 이제현(李齊賢)의 9세손이며, 할아버지는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를 입은 이원(李黿)[?~1504]이지만, 후일 그 아우인 이타(李鼉)의 양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를 지낸 이발(李渤)이다...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직(公直), 호는 단애(丹崖). 증조할아버지는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이며, 할아버지는 희안 군수(喜安郡守) 이집(李輯)이고, 아버지는 금천 군수(錦川郡守) 이감(李瑊)이다. 어머니는 김윤장(金允章)의 딸로 서흥 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조언충(趙彦忠)의 딸로 배천 조씨(白川趙氏)이다. 이경중(李敬中)[1...
-
개항기 제천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철견(李鐵堅)[1435~1496]의 12세손이다. 이철견의 자는 연부(鍊夫)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의 딸이고,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동생이다. 문음으로 헌릉직(獻陵直)을 거쳐 한성부 판관으로 있을 때인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였다. 1471년(성종...
-
제천에 영당이 있는 조선 후기 의관.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 이색의 6세손이며, 문열공 이계전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영(李泠)이며, 어머니는 김근(金瑾)의 딸 흥양 김씨(興陽金氏)이다. 부인은 조서린(趙瑞鱗)의 딸 직산 조씨(稷山趙氏)이다. 아들로 한풍군(韓豊君) 이영남(李英男)이 있다. 이공기(李公沂)는 16세기 말엽에 살았던 사람으로, 외과 처치술에...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제이(濟而)·제경(濟卿), 호는 우헌(愚軒). 증조할아버지는 이장영(李長英)이며, 할아버지는 이구성(李九成)이고, 아버지는 이문정(李聞政)이다. 어머니는 김하석(金夏錫)의 딸 상주 김씨(尙州金氏)이다. 부인은 유덕옥(柳德玉)의 딸 전주 유씨(全州柳氏)와 최후진(崔後進)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이광세(...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이광우(李光雨)는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병을 얻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지금의 제천시 덕산면 와룡소에 있는 대학자 윤응선(尹膺善)의 집까지 달려가서 약을 구해다가 병을 낫게 하여 이웃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열일곱 살에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너무 애통해 하여 몇 차례나 기절한 나머지 남의 등에 업혀서 간신히 장례를 치렀...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노촌(老村).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집안의 후손이다. 이구영(李九榮)[1920~2006]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신학문을 접하였다. YMCA 청년회 학교 중등부에서 수학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잠시 다녔다. 황한의학원에 입학하여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주의를 접한 뒤 항일 활동을...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문(于文)·명오(明五), 호는 광암(廣菴)·광거재(廣居齋). 이규현(李奎顯)[1874~1951]은 단양 품달마을에 살았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숙부이면서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인 이필희(李弼熙)에게 배웠고, 후에 장담에 출입하면서 유중교와 유인석(柳麟錫)에게도 배웠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이근백(李根伯)[?~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의 명암리에 거주하면서 권영선(權永先)·김윤학(金潤學)·이동인 등과 의병의 무기를 감추고 있었는데, 이 일이 영천 수비대에 발각되는 바람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운학동[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제천은 군대 해산 후 제천 의병의 주력 부대가 1907년(순종...
-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조(公造), 호는 연봉(蓮峯).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이계장(李繼長)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이언침(李彥忱)이며, 아버지는 영응선생(永膺先生) 이지남(李至男)이다. 어머니는 승지 정원(鄭源)의 딸이다. 이기설(李基卨)[1556~1622]은 박지화(朴枝華)[1513~1592]...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여(翰汝)·효백(孝伯), 호는 명와(明窩). 이기진(李起振)[1869~1908]은 충주의 하곡[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에게 배웠으며, 을미 의병 당시 홍선표(洪選杓)·정화용 등과 함께 유인석의 종사로 활약하였다. 충주성 전투와 제천에서 패한 후 서행할 때...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하(李起夏)[1897~?]는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권종필(權鍾弼), 전필현(全弼鉉) 등과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는데, 중간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塾)이고, 어머니는 군수 송현(宋鉉)의 딸이다. 반남 박씨 박세훈의 딸과 혼인하였다. 첫째 아들은 현감을 지낸 이시현(李蓍顯)이고, 둘째 아들은 이시선(李蓍先), 셋째 아들은 이시정(李蓍定), 넷째 아들은 이시성(李蓍聖)이다. 딸은...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浩). 할아버지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이고,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이다. 외할아버지는 박동량(朴東亮)이며,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지촌(芝村) 이희조(李喜朝)가 아들이다. 이단상(李端相)[1628~1...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이달(李達)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봉기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포수로 종군하여 수많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같은 해 겨울 이강년 부대는 탄환이 고갈되고 일진회원들을 앞세운 일본군의 집중적인 공세에 시달리고, 12월 중순에는 단양의 복상골[단양군 어상천면...
-
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임중(任重), 호는 설학(雪壑). 문의공(文義公) 운재(芸齋) 이언충(李彦沖)[1273~1338]의 1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공보(李公輔)이고, 아버지는 이득분(李得芬)이다. 어머니는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의 딸인 합천 이씨(陜川李氏)이다. 이대기(李大期)[1551~1628]는 최영경(崔永...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금산(錦山). 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고, 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이다. 아들로 통덕랑 이시진(李時振)이 있고, 동생으로 사마시에 입격한 이대건(李大建)과 이대적(李大迪)이 있다. 이대수(李大遂)[1547~1603]는 제천시 진야리(陳夜里)[현 신월동]에서 태어나 제천시 장락동에서 세상...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강천사를 세운 승려. 이대휘(李大徽)[1907~1992]는 법명이 대휘(大徽)이며, 법호는 노노(老老)이다. 선산 도리사에서 하정광 선사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사교(四敎) 및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고 통도사 백련암, 묘향산 상원사 등지에서 안거하였다. 1937~1942년 중국 천녕사·금산사, 일...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겸(用謙), 호는 국포(菊圃). 경창군(慶昌君)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다. 아들로 충민공 이도철이 있다. 이덕초(李悳初)[1803~1885]는 음사로 진잠 현감과 금구 현감, 보성 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관직은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경창군(慶昌君)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우(李堣)이다. 충민공 이도철(李道徹)이 형이다. 이도영(李道榮)은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펴 약을 드렸으며, 병세가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회생시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모명(冒名)은 이도희(李道熹), 자는 성관(聖寬), 호는 두남(斗南). 경창군(慶昌君)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며, 아버지는 이덕초(李悳初)이다. 이도철(李道徹)[1852~1895]은 제천시 천남동 출신이다. 행장에는 1853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천에서 생활하다 제천향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1893년...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모명(冒名)은 이도희(李道熹), 자는 성관(聖寬), 호는 두남(斗南). 경창군(慶昌君)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며, 아버지는 이덕초(李悳初)이다. 이도철(李道徹)[1852~1895]은 제천시 천남동 출신이다. 행장에는 1853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천에서 생활하다 제천향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1893년...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룡(元龍). 증조할아버지는 이응복(李應福)이고, 할아버지는 이동열(李東說)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시욱(李時煜)이다. 어머니는 이행(李荇)의 후손으로 덕수 이씨(德水李氏)이다. 이동로(李東老)[1628~1683]는 1654년(효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로 출사하였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증조할아버지는 호성공신 이공기(李公沂)이고,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 이빈(李霦)이다. 어머니는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부인은 신윤극(辛贇克)의 딸 영월 신씨(寧越辛氏)이다. 아들로 이만휘(李萬輝)가 있다. 이두용(李斗龍)은 1723년(경종 3) 용양위 부호군, 한천군(韓川君)에 봉하여졌다. 묘소는 제천시에 있다. 아들인 이만...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아이들이 단어를 말하며 노는 언어놀이. 이름 대기 놀이는 주로 아이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글자 하나를 말하면 그 글자로 끝나는 단어를 생각해 내어 말하는 모의재현형 민속놀이이다. 언어 자체에서 놀이성을 즐기는 언어놀이로서 지금의 ‘끝말잇기’와 유사하다. 별도의 놀이 도구와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많을수록 놀이는 어려워지고 금세 끝...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 아버지는 이부의(李孚儀)이다. 이만원(李萬源)[1867~1943]은 박세화(朴世和)에게 배웠는데, 국운이 기울자 월악산에 들어가 병서를 읽으며 의병 봉기의 뜻을 품었다. 단발령 이후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이강년...
-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맹삼(李孟三)[1867~1919]은 일명 이희민(李喜敏)이라고도 한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군 제천면 장날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거...
-
강원 춘천군에서 일어난 을미의병 이소응의진 및 개항기 제천 호좌의진에서 활동했던 의병. 이면수(李勉洙)[1833-1898]는 사람됨이 강직하고 의(義)를 중하게 여겨 주위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을미의병의 주역이었던 습재 이소응 장군의 종조부(從祖父)로서 1896년 1월경 강원 춘천군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통문을 돌려 독려하고 이소응 의진에서 군사장으로 활동하였고...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명로(李明魯)는 주천 사람으로 진사에 오른 선비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이어질 때 제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충주성까지 나아가서 기세를 올리던 호좌의진이 일본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이후, 유인석은 의병...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명상(李明相)[?~1909]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출신이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에 의병을 일으켜 단양·청풍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청단장의장(淸丹仗義將)을 자처하였다. 이때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군사(軍師) 이진하(李晋夏), 중군장 김규철(金奎喆), 좌군장 민영팔(閔泳八), 우군장 이영승, 서기 이치정...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주윤(李柱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이명하(李命夏)[1878~1921]는 경기도 광주에서 왕실의 후예로 태어났다. 위정척사론(衞正斥邪論)을 견지하던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근대 교육 기관으로 변신 중이던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학...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필(君弼), 호는 농수(農叟). 증조할아버지는 호조 판서 이경직(李景稷)이고, 아버지는 감찰(監察) 이구성(李九成)이다. 아들로 이광세(李匡世)가 있다. 이문정(李聞政)[1656~1726]은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종제인 이진유(李眞儒)가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을 숙청하자 이에 절교하고 충주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문흠(李文欽)은 언양 현감, 상주 영장, 장진부사 등을 역임한 전직 관료로서 제천시 한수면 서운에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이 충주성을 공략할 때 민병 130여 명을 모집하여 호좌의진을 후원하였다. 민병은 일반 농민으로 실질적인 전투력을 가진 포군과는 달랐지만 농기구를 무기로 삼...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섭(士攝), 호는 택옥(澤玉).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후손이다. 호좌의진에서 전군장·중군장으로 활약한 안승우(安承禹)가 사위이다. 이민정(李敏政)[1845~?]은 제천의 신월리에 살던 진사로, 단발령 이후 의병 운동에 적극 나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을 시종 도왔다. 의병 운동...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현(景賢). 이범규(李範圭)[1874~?]는 민영기가 설립한 중교의숙(中橋義塾)에서 영어·일어 등을 공부하였다. 29세 때에 음직으로 관직에 나가 내부주사가 되었다. 덕수궁 의효전(懿孝殿) 사승(祀丞)을 역임하던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자 이를 반대하는 동우회를 조직하여 군중집회를 주도하였다...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범우(李範雨)[1892~1969]는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부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 잠업계 조수로 근무하였다. 1919년 봄 제천군 대표로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려고 서울에 갔다가 평소에 사숙하던 최린(崔麟)을 만나 만세 운동을 권유받았다. 최린은 3·1 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계열의 인사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卿), 호는 조은(釣隱).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간부로 활동하다가 순국한 ‘육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대로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유중교(柳重敎)의 제자가 되었다. 을미 왜변 이후, 강원...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병선(李秉善)[?~1896]은 글 읽던 선비 출신으로, 본관이나 생년은 알 수 없다. 단발령이 내린 후 전국적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서 활약하였다.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등 기세를 올리던 호좌의진이 관군의 공세 앞에 무너져 근거지로 삼던 제천마저 빼앗긴...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시호는 문충(文忠). 증조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할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 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蕃)이다. 작은아버지가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 이지함(李之菡)이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제천...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정묵재(靜默齋)·용암(龍巖). 증조할아버지는 이유번(李有蕃)이며, 할아버지는 이석명(李碩明)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민선(李敏善)이다. 어머니는 노사성(盧思聖)의 딸이다. 부인은 신달(愼達)의 딸 거창 신씨(居昌愼氏)와 이의(李檥)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다. 이상일(李尙逸)[16...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시인이자 교육자. 이상필(李相弼)[1924~1975]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정학부에서 수학하였으며 1937년 약관의 나이에 시집 『잔몽(殘夢)』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어상천국민학교에서 근무하였다. 해방 후에는 고향인 제천에서 유학생 출신 청년들로 꾸려진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 선전대에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성구(李晟九)[1924~1978]는 일제가 대륙 침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조선인을 전쟁터로 끌어내던 1943년 10월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산시성[山西省] 안읍지구(安邑地區)에 주둔하던 일본군 3541부대에 배속되었다. 이때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11월...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광국(光國). 이세영(李世榮)[1869~1951]은 지금의 제천시 두학동에 살았다. 단발령 이후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정운경(鄭雲慶)이 봉기할 때도 협조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에는 이강년(李康秊)이 재건한 호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
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초(善初), 호는 화암(花巖).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우춘(李遇春)이다. 이숙(李俶)[1568~1645)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음서로 찰방에 이르렀다. 인목대비 서궁 유폐 등 광해군이 패륜을 저지른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고...
-
조선 전기 제천과 관련한 시문을 남긴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고려의 시중 이춘부(李春富)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병조 판서에 증직된 이온(李蒕)이다. 이승소(李承召)[1422~1484]는 1458년(세조 4) 예조 참의가 되어 『초학자회언해본(初學字會諺解本)』을 찬정(撰定)하였고, 1459년(세조 5) 사은사(謝恩使)의 부사로...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좌경(佐卿), 호는 창주(蒼洲). 아버지는 이강년(李康秊)이다. 이승재(李承宰)[1881~1917]는 문경에서 태어났다. 단발령 이후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부친을 좇아 의병에 가담하여 서상업(徐相業) 등과 부친을 보좌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의병...
-
조선 후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아버지는 진사 이대건(李大建)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아들로 이경억(李慶億)이 있다. 이시발(李時發)[1569~1626]은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사마시와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
조선 시대 제천 출신의 효자와 그의 처. 이시진(李時振)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군수(郡守) 이대수(李大遂)이며, 그의 처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의 외손녀로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윤면(尹勉)의 딸이다. 이시진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12세 때 부친이 병석에 눕자 연약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약(文若)·명칠(命七), 호는 소산(小山). 이완하(李完夏)는 단양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 장의장에서 활동하였다. 장의장은 단양 지역의 의병으로 조직된 의병 부대를 일컫는데, 장림(長林)에 주둔하여 적을 방어하였다. 호좌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의진을 이...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이용업(李龍業)[1860~1909]은 영춘 어상천 사기막에 살던 농민으로,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봉기한 수많은 의병 부대 중에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영춘·제천·충주·단양 등 소백산 자락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고...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준(李容俊)[1907~1946]은 본관이 광주(廣州)이며, 1925년 3월 제천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청에 근무하다가 신간회에 가담하는 등 민족 운동을 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 봉천지국(奉天支局) 보급원으로 만주에 갔다. 이듬해 원심창(元心昌)의 권유에 따라 베이징(北京)으로 옮겨 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종사할 것을 결심하...
-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용태(李容兌)[1890~1964]는 호는 단암(檀菴)이며, 충주시 산척면 광동 출신으로 어려서 봉양으로 이사하였다. 임의상(林宜常)·이소응(李昭應) 등 화서학파 학자들에게 배웠으나 나라가 망한 후로는 구학문으로 나라를 건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개혁에 뜻을 두었다. 24세 때 근좌면 면서기로 공직에 나섰으며, 1920년...
-
조선 후기 제천 지역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사빈(士彬). 경창군(慶昌君)의 5세손이다. 이우(李堣)는 한겨울에 병든 아버지가 싱싱한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구할 수 없어 하늘에 호소하면서 얼음을 뚫은 끝에 물고기 두 마리가 뛰어 올라와 공양할 수 있었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찾자 눈 덮인 산에 올라 애를 태우자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내려앉아 날지...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문세희(文世熺)[1891~?]는 본관이 남평(南平)으로, 아침저녁의 문안 인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병이 들자 밤낮으로 약을 정성껏 마련하여 드렸다.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의 병세가 좋아지지 않자 제단을 만들고 백 일 동안 기도를 드렸으며, 스물 살 때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9일이나 더 살게 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이자 작가. 이우태(李愚兌)[1922~1997]는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이석영(李錫永)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운보통학교,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옥천국민학교에서 촉탁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일본군에 징발되어 남양 군도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단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귀국 후 국학대학[현 고려대학...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공민왕 때 정승이고 당대의 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닦은 이제현(李齊賢)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창평 현령(昌平縣令)을 지낸 이공린(李公麟)이고, 어머니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타(李鼉)가 있다. 이원(李黿)[?~1504]은 김종직(金...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원하(李元廈)는 자는 치택(致澤)이며,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일찍이 오위의 사과(司果)를 거친 전직 관료로, 총을 잘 쏘았고 동학 농민 운동에도 가담한 적이 있으며 향중에 중망이 높았다고 한다. 단발령 이후 지평 출신의 포군을 기반으로 봉기한 제천의진의 지도자 안승우(安承禹)의 권유를 받고 의병 운동에 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음력 2월의 계절풍을 인격화한 바람을 관장하는 신. 영등할미는 음력 2월 초하루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모시는 가정의 화평과 농사를 살피고 돌아가는 신령이다. 이를 영등할머니, 이월할머니, 이월지석, 이월손님, 이월풍신 등이라고도 한다. 영등할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인 강원도,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내륙 지역에 집중되어 나타...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자는 직청(直淸). 개국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시중 이정공(李靖恭)이다. 형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숙(李璹)이 있고,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인종의 비(妃) 공예 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이위(李瑋)[1049~1133]는 문과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거쳐, 1087년(선종 4) 상서병부...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문중(文仲), 호는 오정(梧亭). 이의병(李宜炳)은 숙종 때 적성 현감을 지냈으며,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
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우랑(又閬)·우염(又髥)·번상촌장(樊上村庄)·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권상하(權尙夏)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양성(權養性)이고, 할아버지는 권제응(權濟應)이며, 아버지는 청풍 군수를 지낸 권중집(權中緝)이다. 어머니는 김재균(金載均)의 딸이고, 부인은 송수연(宋守淵)의 딸이다. 권돈...
-
청풍부원군에 봉해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정(以定). 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김육(金堉)이고, 딸은 현종 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김우명(金佑明)[1619~1675]은 1642년(인조 20) 진사시에 합격하여, 강릉 참봉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세마(洗馬) 등을 역임하였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
-
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치심(致心), 호는 항재(恒齋)·옥산(玉山). 이정규(李正奎)[1865~1945]는 본래 소론 집안인 탓에 송시열의 학문을 대단하지 않게 보았는데, 우연히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보고 감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는 화서학파에 입문하게 되었다. 안승우(安承禹)와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이정의(李正義)[1851~1933]는 본관이 전주(全州)로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선달이었는데,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발표되자 송지영(宋之永)과 더불어 장충식의 집에서 의병 통문을 작성하였다. 후에 단양 포군 30여 명을 데리고 충주성의 유인석(柳麟錫)을 지원...
-
조선 후기 제천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수(大叟), 호는 파서(坡西). 이경중(李敬中)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명식(李命式)이며, 할아버지는 이진오(李震五)이고, 아버지는 이송령(李松齡)이다. 어머니는 윤상림(尹商霖)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허념(許恬)의 딸 양천 허씨(陽川許氏)와 백상덕(白尙德)의 딸 수원 백씨(水原白氏)이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단양(端陽). 자는 이존(而尊). 우기정(禹冀鼎)은 제천의 백평(柏坪)[현 제천시 동현동 백배미]에서 살았다. 무과에 급제한 후 무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여 제천을 장악하고 충주를 공략하러 나섰을 때 제천의 민군 3...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천(應天), 호는 석포(石浦). 아버지는 이규수(李圭壽)이다. 이종국(李鍾國)[1860~1939]은 박세화(朴世和)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이 친일 관료들을 척살하고 충주성을 장악하였을 때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식량의...
-
개항기 제천에서 말년을 보낸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총선(總仙). 아버지는 병조 판서 이규철(李圭徹)이며, 이규남(李圭男)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은 군부 대신 이종건(李鍾健)이다. 이종승(李鍾承)[1828~?]은 1858년(철종 9) 황해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에 의해 황해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군권을 종실이 장악하여 기...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시조 시인. 이종훈(李鐘塤)[1931~2003]은 호는 월정(月汀)이며, 제천시 한수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사관으로 참전하였다. 1958년 공무원에 임용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6년 제천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제천 문학에 성심을 기울였다. 198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입선하고, 『시...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면(李柱冕)[1900~1947]은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내의 역량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이주면은 1919년 12월 서울 인사동에 거주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재(大哉), 호는 휘암(徽菴)·은구와(隱求窩). 명문가로 이름 있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동생으로 유인석(柳麟錫)의 종사로 활동한 이조승(李肇承)이 있다. 이주승(李胄承)[1870~1946]은 선공감 감역관을 지냈으며, 1895년(고종 32) 제천 을미의병 때 가문의 재력과 중앙 및...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주윤(李柱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이명하(李命夏)[1878~1921]는 경기도 광주에서 왕실의 후예로 태어났다. 위정척사론(衞正斥邪論)을 견지하던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근대 교육 기관으로 변신 중이던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학...
-
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이중(伊仲), 호는 단산(丹山). 감사 윤조원(尹調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생국(尹生國)이다. 윤학신(尹學信)[1769~1830]은 단산(丹山)의 남쪽에 은거하면서 부모님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문집 9권이 있다....
-
제천의 봉강서원(鳳岡書院)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성균관 대사성 김식(金湜)이고, 아버지는 참봉 김덕무(金德懋)이며,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윤인(尹麟)의 딸이다. 김권(金權)[1549~1622]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 문...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장. 이중봉(李重鳳)[1871~1896]은 본관이 달성(達成)으로, 청풍 도화동(桃花洞)에서 살았다.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에 분노하여 수많은 의병 부대가 봉기할 때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천에서 의병을 주도하였던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 참여하여 후군장 및 중군장의 소임을 맡았으며, 이후...
-
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佰), 호는 성암(省菴)·사정(思亭)·구옹(龜翁). 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다. 어머니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판관 김맹권의 딸이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인 이지함(李之菡)의 형이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아버지이다. 이지번...
-
조선 전기 제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 시호는 문강(文康). 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다. 어머니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판관 김맹권의 딸이다. 이지번(李之藩)의 동생이자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이지함(李之菡)[1517~1...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
개항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화좌(華佐). 아은(啞隱) 이정악(李挺岳)의 후손이다. 이직현(李稷鉉)은 헌종 때에 음사로 관직에 들어가 여러 차례 승진하여 공조 참판에 이르렀다.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부여 영강정(映江亭)을 건립하였고, 1870년(고종 7) 청풍 부사로 재직할 때에는 제천 청풍 한벽루, 제천 금남...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조(海朝), 호는 동애(東涯). 이강년(李康秊) 의진에서 활동한 이만원(李萬源)이 동생이다. 이진원(李進源)[1856~1935]은 제천시 덕산면 억수동에 살았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순종 1) 봄 제천 지역을 중심으로 재차 의...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오(明五), 호는 백농(白農). 이진하(李晋夏)는 단양에 살던 선비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단발령 이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은 친일 군수들을 처단하고 충주성을 공략하는 한편, 주변의 여러 고을을 해방구로 확보하였다. 이때 호좌의진 대장 유인석(柳麟錫)은 장악하고 있던 고을마다 수성장을 임명...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회(景晦)·회부(晦夫), 호는 평천재(平泉齋). 세종의 아홉째 서자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塘)의 후손이며, 묵전당(黙全堂) 이시만(李時萬)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참봉을 지낸 이태제(李泰躋)이다. 이창현(李昌顯)[1723~?]은 1750년(영조 26)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세자익위사의 세마(洗馬)를...
-
제천 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보숙(保叔), 호는 지암(止庵).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이정신(李正臣)이며, 어머니는 유이진(柳以震)의 딸로 전주 유씨(全州柳氏)이다. 형 이길보(李吉輔), 아들 이복원(李福源), 손자 이시수(李時秀)가 있다. 이철보(李喆輔)[1691~1775]는 1723년(경종 3)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1724...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한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신(子信), 호는 신와(信窩). 할아버지는 이직신(李直愼)[이소응]이고, 아버지는 이배인이다. 이초용(李超鎔)[1909~1992]은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해방 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정착하여 40년여 동안 화서학파(華西學派)와 의병론자들의 정신적 귀의처인 자양영당(紫陽影堂)을 수호하는 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해수(海叟), 호는 모산(茅山). 공민왕 때 정승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로 정주학(程朱學)의 기초를 닦은 이제현(李齊賢)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창평 현령(昌平縣令)을 지낸 이공린(李公麟)이고, 어머니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형으로 재사당(再思堂) 이원(李黿)이 있다. 이타(李鼉)는 1498년...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이자 작가. 이우태(李愚兌)[1922~1997]는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이석영(李錫永)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운보통학교,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옥천국민학교에서 촉탁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일본군에 징발되어 남양 군도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단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귀국 후 국학대학[현 고려대학...
-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인. 본관은 전주(全州). 일본식 이름은 송택태용(松澤泰鎔), 송택성선(松澤成宣)이다. 이태용(李泰鎔)[1909~1968]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 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1935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임정과에 임명되면서 관계에 입문한 후, 1937년 양구 군수와 1939년 평강 군수 등...
-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공후(公厚). 이필근(李弼根)[1844~?]은 유인석(柳麟錫)이 춘천에서 제천으로 이주한 후 거처하였던 구곡마을에 살았다. 선공감 감역을 역임한 전직 관료로 장담에서 이루어지는 강회에 세 아들을 보내 배우게 하고, 자신도 향음례나 강회에 참석할 만큼 화서학파 선비들과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다. 1895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본명을 숨기고 춘삼(春三)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필익(李弼翼)[?~1896]은 단양 평동 출신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진압에 앞장섰다. 을미의병 당시 서상렬(徐相烈)을 따라 영남으로 나아가 병력을 소모하였고, 단양 영춘 지역에서도 모병 활동을 하였다. 풍기의 백천에서 모병 활동을 하던 중 소모장...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만여(萬汝), 호는 실곡(實谷). 이필희(李弼熙)[1857~1900]는 단양의 품달과 여주에 살았다. 무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유중교(柳重敎)를 만난 후 유학에 전념하였다. 을미년(1895)에 단발령 조치가 내려진 후 장담에서 처신을 두고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대제학 이일상(李一相)이다. 청풍 북노리의 세거 성씨인 연안 이씨 명암파(鳴巖派)의 파조이다. 할아버지 이래 3대가 대제학을 지냈다. 이해조(李海朝)[1660~1771]는 1681년(숙종 7...
-
조선 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이헌국(李憲國)[1525~1602]과 관련하여 보물 제1617호 「호성공신교서(李憲國扈聖功臣敎書)」가 전한다. 이는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왕과 세자를 끝까지 호종(扈從)한 신하들에게 1604년(선조 37) 내린 교서로, 가로 155㎝, 세로 36.5㎝이다. 호성공신은 3등으로 나누어 이항복(李恒福) 등 1등 2명, 이원익(李元翼) 등...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游齋). 시호는 문목(文穆). 증조할아버지는 이수광(李睟光)이고, 아버지는 퇴촌(退村) 이당규(李堂揆)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현석(李玄錫)[1647~1703]은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1675년(숙종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문(敬文), 호는 청사(晴史).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후손이다. 이형구(李馨久)는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봉기하였을 때 충주의 하곡에 살던 이기진(李起振)의 추천으로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충주성을 장악하였던 호좌의진이 다시 제천으로 돌아와 방어 전선을 펼칠...
-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우(李亨雨)[1890~1958]는 광복단(光復團)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다. 3·1 운동 후 창립된 광복단은 원래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祺中)·유창순(庾昌淳)·한훈(韓焄) 등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서 비롯한 것으로, 박상진(朴尙鎭)·양제안(梁濟安)·우재룡(禹在龍)·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이 가담하여 1...
-
청풍에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회(而晦). 아버지는 빙고 별검(氷庫別檢) 김전(金㙉)이다. 김중명(金重明)[1614~1685]은 1645년(인조 23) 무과에 급제하고, 송시열(宋時烈)의 천거로 효종의 북벌 계획에 참여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다. 1671년(현종 12) 영흥 대도호부사로 재직 중 관내 사노(私奴)가 주인을 죽인 사건으로...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이희두(李熙斗)는 단발령이 내려진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천에서 봉기한 김하락 의진에서 좌군장을 맡았다. 후에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활동한 호좌의진에서 분의장·좌군장·호위장 등 전투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4월 이후 장기렴이 이끄는 관군이 청풍의 서창까지 이르자 홍대석(...
-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맹삼(李孟三)[1867~1919]은 일명 이희민(李喜敏)이라고도 한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군 제천면 장날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거...
-
청풍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이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이희조(李喜朝)[1655~1724]는 허적(許積)이 권세를 잡고 송준길을 배척하는 소를 올렸을 때 조정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
개항기 제천 출신의 교육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현(景賢), 호는 덕헌(悳軒). 아버지는 이교채이다. 이희직(李熙直)[1866~1922]은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천성이 강직하고 인덕을 겸하여 물려받은 재산을 기울여 사회사업에 힘썼다. 신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여겨 1906년 여름부터 계몽 운동가들이 활발히 전개한 여러 학회를 적극적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에 거주하는 시민 집단. 2008년 현재 제천시 가구 수와 인구는 5만 3291가구, 13만 7229명이다. 가구당 인구는 2.6명이며 통계적 인구 밀도는 1만 9051명/㎢이다. 읍·면·동별 가구 수는 청전동이 전체 가구 수의 15.3%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교동[12.3%], 용두동[12.2%] 순이며 이들 세 개 동이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인문 지리는 인간 활동에 의한 모든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인간이 자연의 요소를 활용하여 생겨나는 것들을 말한다. 제천은 예부터 강원도와 경상북도, 충청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중앙선, 충북선, 태백선의 교차 지역으로서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국도의 활성화와 더불어 도로 교통의 중심지 역할도 해내고...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인보(仁甫),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부호군 조충(趙冲)이며, 조응(趙凝)에게 입양되었다. 아들로 대제학 조석윤(趙錫胤)이 있다. 조정호(趙廷虎)[1572~1647]는 1590년(선조 23) 사마시를 거쳐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제수되었다. 아버지 간호를 위하여 관직을 사퇴하였다...
-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표옹(瓢翁)·모귀(暮歸)·일표(一瓢)·백련거사(白蓮居士). 아버지는 송령(宋翎)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晉州河氏) 하세준(河世濬)의 딸이다. 부인은 해평 윤씨(海平尹氏)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며, 슬하에 자식이 없어 후에 재종형의 아들인 송흥시(宋興詩)를 양자로 들였다. 송영구(宋英耈)[...
-
개항기 제천 출신의 효자. 자는 문우(文友), 호는 인재(認齋). 아버지는 윤하박(尹河博)이다. 윤병익(尹炳益)은 윤응선(尹膺善)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재주와 덕망을 고루 갖추어 칭찬이 높았다. 특히 행동이 돈독하고 효와 우애가 깊어 제천 유림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오산리에서 금성면 대장리를 거쳐 충주시 동량면과 단양군 어상천면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기존의 청풍강 변의 도로가 수몰되면서 충주시 동량면 용교리를 기점으로 청풍호반에 이설 도로를 개설하게 되었다. 이설 도로의 개설과 함께 제천시 금성면 대장리에서 단양으로 연결되는 지방도를 개통하였으며, 이로써 수몰 지역의 취락 지...
-
충청북도 제천시를 거쳐 괴산군 장연면과 강원도 평창군을 연결하는 지방도. 지방도 597호선은 ‘장연~평창선’으로 충주 수안보를 거쳐 제천의 송계계곡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 중 일부는 국가지원지방도 82호선 ‘평택~평창선’과 중복된다. 현재 지방도 597호선은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를 기점으로 제천시 한수면 복평리 탄지삼거리에서 국도 36호선의 분기점을 종점으로...
-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단양군 영춘면 하리를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 522호선 제천~영춘 간 총연장은 35.4㎞이며 2차로 31.7㎞와 4차로 3.7㎞의 포장도로로 되어 있다. 제천시에서 단양군과 경계로 삼은 갑산재까지의 연장 10.1㎞는 2차로 6.4㎞와 4차로 3.7㎞로 개설하였다. 제천 동부 지역 갑산과 가창산 등지의 석회석 채석장 산재로...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 534호선은 총연장 29㎞에 2차로 17.6㎞와 미개통도는 11.4㎞로 되어 있다.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서 모녀재 도경계까지의 미개통도[2.6㎞]를 포함하고 있다.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성천 변에 2차선으로 도기리까지 개통하면서 북동쪽으로 수산면 대전리로 향하는 군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의 경승지인 송계팔경의 하나. 송계계곡은 신 제천십경 가운데 제7경으로서 학소대를 위시하여 월악영봉, 자연대, 월광폭포, 수경대, 망폭대, 와룡대, 팔랑소 등 소위 송계팔경이라는 아름다운 8개의 경승지가 있는 곳이다. 동문거리 근처의 학소대는 학의 둥지라는 뜻으로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고 하여 붙은...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옷. 일상복은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이나 작업할 때 입는 복식이다. 이를 평상복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일상복은 대부분 서양식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복과 양복이 혼용을 이루었다. 그러나 점차 한복은 주로 결혼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옷이 되었고, 서양식 옷이 일상복을 대신하게...
-
충청북도 제천 지역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의 의례, 그리고 사후(死後)에 산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평생 의례는 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로 통칭되어 오다가 최근 그동안 간과해 오던 출산 의례에 대한...
-
충청북도 제천 지역 주민들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 또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시기의 의례, 그리고 사후(死後)에 산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평생 의례는 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로 통칭되어 오다가 최근 그동안 간과해 오던 출산 의례에 대한...
-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지역에서는 항일적인 색깔이 분명한 이범우(李範雨) 등이 주도한 3·1 운동,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 김학간·김정호 등이 주도한 제천청년회...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에 있는 기계 장비 제조업체인 일진글로벌의 공장. 산업용 베어링 사업 진출을 통한 ‘세계 일류 베어링 전문기업’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1978년 단조 사업을 시작으로 컨테이너 부품, 자동차 섀시 부품을 거쳐 1994년 자동차 휠 베어링 사업에 진출한 일진글로벌 그룹이 사업 확장 및 생산 공장의 필요에 따라 2004년 제천지방산업단지 내에 공장 조...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에 있는 기계 장비 제조업체인 일진글로벌의 공장. 산업용 베어링 사업 진출을 통한 ‘세계 일류 베어링 전문기업’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1978년 단조 사업을 시작으로 컨테이너 부품, 자동차 섀시 부품을 거쳐 1994년 자동차 휠 베어링 사업에 진출한 일진글로벌 그룹이 사업 확장 및 생산 공장의 필요에 따라 2004년 제천지방산업단지 내에 공장 조...
-
조선 후기 제천 지역의 효녀. 일춘(一春)은 관청에 소속된 종이었다. 어머니가 병들어 죽음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어머니의 입안에 흘려 넣음으로써 얼마 후에 회생하게 하였다. 이에 천한 신분임에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 1625년(인조 3)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
조선 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표옹(瓢翁)·모귀(暮歸)·일표(一瓢)·백련거사(白蓮居士). 아버지는 송령(宋翎)이며, 어머니는 진주 하씨(晉州河氏) 하세준(河世濬)의 딸이다. 부인은 해평 윤씨(海平尹氏) 윤승경(尹承慶)의 딸이며, 슬하에 자식이 없어 후에 재종형의 아들인 송흥시(宋興詩)를 양자로 들였다. 송영구(宋英耈)[...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이성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드러낸 유희요. 「임 그리는 소리」는 독수공방을 하는 아내가 정든 임을 그리워하면서 간절히 보고 싶다는 심정을 노래한 여흥요이다.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낸 화자가 임이 없는 처지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임과 이별 없이 함께 살고픈 심정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제천 지역에서는 두 종류의 「임...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원을 그린 땅이나 묘소에 가서 노는 놀이. 임금 놀이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놀던 도둑잡기와 유사한 민속놀이이며, 무리 중에서 한 명이 임금이 되어 왕의 행세를 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역할놀이이다. 놀이의 형태는 2007년 제천시에서 간행한 『봉양 파대놀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묘소에서 하던 임금 놀이가 추가로 조사되었다....
-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춘혁(柳春赫), 자는 우양(禹陽)·홍일(弘一), 호는 임당(任堂). 유흥이(柳興彛)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유의혁(柳毅赫)[1863~1905]은 의당 박세화(朴世和)의 문인으로, 박세화의 명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정사를 지어 일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다. 문집으로 『임당유고(任堂遺稿)』가 있다. 『임당유고』는 3권...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동일(東一). 족보에는 임도수(林道洙)라고 기재되었다. 임도봉(林道鳳)[1868~1896]은 제천시 수산면 도기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일본군에게 피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에서 봉기하였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동일(東一). 족보에는 임도수(林道洙)라고 기재되었다. 임도봉(林道鳳)[1868~1896]은 제천시 수산면 도기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일본군에게 피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에서 봉기하였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
조선 전기 제천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임보(任甫), 호는 사담(沙潭). 증조할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 충무위(忠武衛) 부사직(副司直) 김예강(金禮剛)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김윤검(金允儉)이며, 아버지는 옥과 현감(玉果縣監) 김범(金範)이다.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계공랑(啓功郞) 조한신(曺漢臣)의 딸이다. 아우인 김홍미(金弘微)는 조식...
-
청풍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공보(公輔), 호는 염헌(恬軒).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증직된 임중(任重)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이갱생(李更生)의 딸이다. 임상원(任相元)[1638~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5년(현종 6)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평안도 도사를 지냈으며, 1671년(현종 12) 사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증약(曾若), 호는 순초(筍樵). 아버지는 임백헌이다. 이름의 한자 표기가 족보에는 석준(晳準),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에는 석준(奭準)으로 나오는데,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과정에서 철준(哲準)으로 표기되었다. 임석준(任晳準)[1851~1907]은 지금의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을...
-
조선 전기 제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희운(希雲). 임응룡(任應龍)[1523~1586]은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에서 태어났다. 1556년(명종 11) 무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병마절도사,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제주도에서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다가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심고 팔송정(八松亭)을 창건하였다. 팔송정은 오래되어...
-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이(道以), 호는 건재(健齋)·임정(林汀). 정양(鄭瀁)[1600~1668]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택현(鄭澤鉉)이고, 아버지는 정해기(鄭海箕)이다. 아들로 의병에 참여한 정운호(鄭雲灝)[1862-1930]가 있다. 정일원(鄭一源)[1827~1889]은 1870년(고종 7)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숭릉 령(崇陵...
-
청풍 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임중(任重), 호는 설학(雪壑). 문의공(文義公) 운재(芸齋) 이언충(李彦沖)[1273~1338]의 1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공보(李公輔)이고, 아버지는 이득분(李得芬)이다. 어머니는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의 딸인 합천 이씨(陜川李氏)이다. 이대기(李大期)[1551~1628]는 최영경(崔永...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저수지와 버드나무 숲.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湖西) 지방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의림지는 용두산[874m]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저수지와 버드나무 숲.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湖西) 지방이라고도 불렀는데,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의림지는 용두산[874m] 남쪽 기슭 아래쪽에 자리 잡...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북도 제천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합을 공고히 하고 지방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 진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부산포 침입으로 개시된 임진왜란은 초기...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흥(義興).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 증조할아버지는 박승종(朴承宗)이며, 할아버지는 박문헌(朴文獻)이고, 아버지는 박경심(朴景諶)이다. 어머니는 김난언(金蘭彦)의 딸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박수검(朴守儉)[1629~1698)은 조석윤(趙錫胤)의 문인이며, 뒤에 송시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만지곡(晩知谷)[현 제천시...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호반의 관광지. 의림지 호반 관광지는 제천십경 가운데 제1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 주변에 건립된 관광지를 말한다. 아름다운 의림지를 배경으로 영호정(暎湖亭), 경호루(鏡湖樓)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의림지 파크랜드, 보트 선착장 등의 위락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의 문인 박수검의 문집. 박수검(朴守儉)[1629~1698]의 본관은 의흥(義興)이며,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이다. 아버지는 박경심(朴景諶)이다. 조석윤(趙錫胤)의 문인이며, 뒤에 송시열(宋時烈)을 사사하였다. 만지곡(晩知谷)[지금의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출신이다. 1812년(순조 12) 현손인 박상순(朴尙淳)·박문순(朴文淳)...
-
조선 후기 청풍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술지(述之), 호는 명농재(明農齋). 아버지는 임홍정(任弘正)이며, 어머니는 박호원(朴好元)의 딸이다. 임효달(任孝達)[1584~1646]은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한관(文翰官)에 배속되었다가 1615년(광해군 7) 병조 정랑에 올랐다. 이...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보건 안전에 대한 습관을 길러 몸과 마음이 튼튼한 건강인, 자기 주도적 학습 방법을 익혀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자주인, 다양한 사고력에 의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인, 개성을 살리고 재능을 익혀서 보람 있게 생활하는 기능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7...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선돌이 있으므로 선돌, 선돌배기 또는 입석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당곡리(堂谷里)를 통합하여 제천군 송학면 입석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송학면 입석리가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송학면 입...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태백선의 기차역. 입석리역은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태백선의 화물차를 수송하는 착발역으로서 1953년 9월 21일 역원을 배치하지 않은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이용 승객은 주로 입석리와 시곡리, 영월군 주천면 용석리와 서면 신천리 등의 주민들이었다. 입석리역은 소재지인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서 따온 역명이...
-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보건 안전에 대한 습관을 길러 몸과 마음이 튼튼한 건강인, 자기 주도적 학습 방법을 익혀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자주인, 다양한 사고력에 의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인, 개성을 살리고 재능을 익혀서 보람 있게 생활하는 기능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47...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 아들로 주현구(朱鉉九)와 주현삼(朱鉉三)을 두었다. 주용규(朱庸奎)[1845~1896]는 1845년(헌종 11) 함흥에서 출생하였으며,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이다. 스승이 장담으로 이주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제천으로 이주하여 장담의 선비들을 이끌었다.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
한말 제천 의병에 참가하였던 의병장 주용규의 시문집. 주용규(朱庸奎)[1845~1896]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여중(汝中), 호는 입암(立菴)이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생부는 주기섭(朱箕燮)이며, 백부인 주종섭(朱宗燮)에게 입양되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 1991년에는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손자인 주윤문(朱允文)이 유고를 수습하여 1931년에 간행...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와 도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 갓고개는 충주댐 수몰 전 평등산 서남쪽으로 위치한 고갯마루였다. 청풍에서 수산으로 왕래하는 지름길로 행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여기에는 성황당과 성황목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오가면서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도 있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제천시 청풍면 도리의 강변 길이 수몰되자 지금의 물태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