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문신 소세량의 문집. 『곤암집(困庵集)』은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사헌부지평,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문집이다. 소세량의 본관은 진주소씨(晋州蘇氏)로, 소세량의 부친인 소자파(蘇自坡) 이후 대대로 전라도 익산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소...
-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조선 후기 학자 소시만의 문집. 『국헌집(菊軒集)』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1694~1776]가 재위하던 시기에 짧게 살다 간 소시만(蘇時萬)[1734~1765]의 문집이다. 소시만은 1734년(영조 13)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지역에 있는 쌍봉(雙峯)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점복, 병법...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말 유학자 소승규의 문집. 『난곡유고(蘭谷遺稿)』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활동한 학자 소승규(蘇昇奎)[1844~1908]의 문집이다. 소승규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발산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고 글재주가 뛰어나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인산(仁山) 소휘...
-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특산품인 마를 이용해 만든 약밥. 참마는 전라북도 익산시의 지역 특산품으로, 저열량·저지방 식품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마가 “따뜻하고 맛이 달며 허약한 몸을 보하여 주고, 오장(五臟)을 채워 주며 근골(筋骨)을 강하게 한다. 정신을 편안하게 하여 지혜를 길러 준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예부터 영양과 약효가 훌륭한 식품으로 손꼽아 왔다...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후기 문신 소동도가 남긴 문집. 『면와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관료인 소동도(蘇東道)[1592~1671]의 문집이다. 소동도의 후손들이 1935년에 간행하였다. 저자인 소동도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고향인 익산 지역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으며, 특히 지방관으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면와집』은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
-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소순이 쓴 연행 일기. 『보진당연행일기(葆眞堂燕行日記)』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출신인 소순(蘇巡)[1499~?]의 연행 일기이다. 소순이 1533년 12월 명나라 세종(世宗)의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소세양(蘇世讓)이 연경[북경의 옛 이름]에 진하사(進賀使)로 파견되었는데, 이 때 소순은 자제군...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유학자 소건의 시집. 『사물재유고(四勿齋遺稿)』는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소건(蘇建)[1518~1582]의 한시를 모은 시집이다. 소건의 진주소씨(晋州蘇氏) 집안은 대대로 전라도 익산 땅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사물재유고』 역시 익산 지역 후손인 소진호(蘇鎭浩)·소상영(蘇祥永)·소...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한학자 소상열의 한시집. 『삼성재유고(三省齋遺稿)』는 조선 후기의 한학자인 소상열(蘇祥說)[1652~1694]의 문집이다. 소상열의 진주소씨(晋州蘇氏) 집안은 대대로 전라도 익산 땅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삼성재유고』는 소상열이 지은 한시와 상소문, 서간문 등을 엮어 1935년...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소광진의 묘비. 소광진(蘇光震)[1566~161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자는 자실(子實), 호는 후천(后泉)으로 대제학 소세양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소우이고, 아버지는 소성선이다. 1589년 진사가 되었고, 1597년 정시 문과에 병과 급제하였다. 1599년 승정원...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소국민(蘇國民)[1596~1677]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아버지는 소동준(蘇東俊)이다. 소국민은 1596년(선조 29)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 용양위부호군(龍讓衛副護軍)에 이르렀다. 아버지 소동준이 병들어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그 피를 먹이면서까지 극진히 간호하였...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효자. 소동헌(蘇東獻)[1581~1621]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호는 오봉(五峯)이다.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의 후손이다. 삼촌은 소동준(蘇東俊)이다. 소동헌은 1581년(선조 14) 익산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중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두 차례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피를 먹이기도 하였다. 어머...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두산(蘇斗山)[1627~169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망여(望汝), 호는 월주(月州) 또는 사구당(四九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건(蘇建)이고, 할아버지는 소억선(蘇億善)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소동명(蘇東鳴)이다. 부인은 권식(權植)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소두산은 1627년(인조 5) 익산에서 태어났다...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정치가. 소선규(蘇宣奎)[1903~196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계산(桂山)이다. 소선규는 1903년 11월 30일 지금의 익산시 팔봉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경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29년 후쿠시마[福島]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미군정하에서 서울시 부시장을 지냈으며, 1950년 5월에는 민국당(民...
-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원우(元佑), 호는 곤암(困菴) 또는 병암(屛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군사정을 지낸 소희(蘇禧)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 소효식(蘇效軾)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며, 어머니는 왕석주(碩珠)의 딸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부인은 양배(楊培)의 딸 남원양씨(...
-
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군사정 소희(蘇禧)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 소효식(蘇效軾)이다. 아버지는 의빈도사를 지낸 소자파(蘇自坡)이며, 어머니는 왕석주(王碩珠)의 딸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형은 남원부사 소세량(蘇...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비석. 소세양(蘇世讓)[1486~1562]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고, 어머니는 개성왕씨(開城王氏) 왕석주(王碩珠)의 딸이다. 1504년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학자. 소영복(蘇永福)[1555~161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수중(綏重), 호는 사은(四隱) 또는 반구당(返求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도사를 지낸 소자파(蘇自坡)이고, 할아버지는 남원부사 소세량(蘇世良)이다. 아버지는 감찰 소민선(蘇敏善)이며, 어머니는 현령 신언숙(申彦淑)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큰삼촌인 한성서윤 소응선(蘇...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인 소응천(蘇凝天)[1704~176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일혼(一渾), 호는 춘암(春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이인(蘇爾寅)이고, 할아버지는 소경의(蘇景誼)이다. 아버지는 소태겸(蘇泰謙)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郞) 윤우한(尹遇漢)의 딸 칠원윤씨(漆原尹氏)이다. 부인은 고만구(高萬九)의 딸 장택고씨(長澤高氏)이다. 소응천은...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소자파의 묘소에 세운 신도비. 소자파 묘비(蘇自坡墓碑)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소자파(蘇自坡)[1451~1524]의 묘소에 1526년 건립된 신도비이다. 소자파는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미수(眉叟)이다. 한성부윤을 역임하고 병조참판에 추증된 소효식(蘇效軾)의 아들이다. 1483년 사마...
-
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의병장. 소행진(蘇行震)[?~1592]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세득(蘇世得), 아버지는 소종선(蘇宗善)이다. 아들은 소계(蘇繼)와 소동(蘇同)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행진은 같은 금마면 출신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家資)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錦山)에...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소세검의 문집. 『쌍봉유고(雙峰遺稿)』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소세검(蘇世儉)[1483~1573]의 문집이다. 소세검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출신으로,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동지중추부사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소세검이 지은 글들은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188수만 전해지지만, 시의 품격이 높다. 1...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문장가 소세양의 시문집. 『양곡집(陽谷集)』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도천마을 출신으로,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시문집이다. 소세양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와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한 이후 지은 시가 많다. 비문과 제문, 기문과 서문, 발문, 사직을 청한 글도...
-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조선 후기 유학자 소두산의 문집. 『월주집(月州集)』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소두산(蘇斗山)[1627~1693]이 남긴 글들을 모아 펴낸 문집이다. 소두산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당색(黨色)은 노론(老論)이며, 강직한 성격에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후손인 소수헌(蘇洙憲), 소휘면(蘇輝冕)...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개화기 유학자 소진석의 문집. 『일암유고(一菴遺稿)』는 개화기 유학자 소진석(蘇鎭碩)[1869~1910]이 남긴 문집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소진석은 과거 공부에는 매달리지 않고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의 문하에서 경학과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소진석은 세상을 뜰 때까지 『강설(講說)』 두 권과 여러 유고들을 남겼는데,...
-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전하여지는 임천조씨 지족당공파에 관한 이야기. 「임천조씨 지족당공파가 함라에 살게 된 연유」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지역에 임천조씨(林川趙氏) 지족당공파(知足堂公派)가 살게 된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천조씨 지족당공파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후손들이다. 조지서가 연산군(燕山君)[1476~1506]...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기 한학자 소진덕의 문집. 『지산유고(遲山遺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촌리에서 태어난 근대 시기의 한학자 소진덕(蘇鎭德)[1869~1943]의 문집이다. 3권 1책의 석판본으로, 1947년 1월에 간행하였다. 서문은 1935년 3월 소학규(蘇學奎)가 지었으며 발문은 1946년 조영래(曺榮來), 한익교(韓翊敎), 아들 소화...
-
소알천을 시조로 하고, 소세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세거성씨. 진주소씨(晋州蘇氏)는 조선 시대 익산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이다. 1500년대에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익산으로 입향한 이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일대에서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익산에서 익산소씨(益山蘇氏)로도 불리며 익산의 대표 성씨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는 진주소씨의 주요 세거지. 진주소씨(晋州蘇氏)는 소알천(蘇閼川)[1486~1562]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1500년대에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익산에 입향한 후 후손들이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일대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익산시 왕궁면 지역은 고려 시...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소응천의 문집. 『춘암유고(春庵遺稿)』는 조선 후기 영조(英祖)[1694~1776] 때의 학자인 소응천(蘇凝天)[1704~1760]의 문집이다. 소응천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출신으로,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갖춘 인물이다. 윤증과 윤동수, 윤동원으로 이어지는 소론 학맥을 계승하였으며...
-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언론인. 하경덕은 1897년 지금의 익산시 춘포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913년 전주 신흥학교(新興學校)와 1915년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25년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28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9년에 귀국한 하경덕은 조선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