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이리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장터에는 미리 약속된 3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주동자는 군산 영명학교의 교사 문용기(文鏞祺)[1878~1919]였다. 영명학교가 있던 군산에서 고향인 익산으로 건너온 문용기는 기독교 계열 인사들과 몰래 만났고 3월 26일의 이리 만세 시위에 이어 4월 4일에 다시 시위를 전개...
일제강점기 활동한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문(朴永文)[1904~1919]은 1904년 10월 12일 지금의 익산시 오산면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영문은 3.1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금마면 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4일에는 문용기(文容基)·장경춘(張京春)·박도현(朴道玄) 등이 주도한 이리 장날의 만세 시위에...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 당시 익산에서는 천도교 조직을 활용하여 만세 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기독교계와도 연계하여 천도교와 기독교 두 종교계가 함께 하였다. 특히 1919년 4월 4일 시위는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시가행진을 벌였고 일본 헌병대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현장...
전라북도 익산의 남성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운제(芸齊)이다. 윤제술은 1904년 1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전주에 살고 있던 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으로부터 2년 동안 서예를 배웠다. 1919년부터는 계화도(繼華島)에 은거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규(林圭)[1867~194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형여(亨如), 호는 우정(偶丁)이다. 임규는 1863년 9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 무렵 당시 익산군수이던 정기우(鄭基雨)의 잔심부름을 하는 통인으로 지내다가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895년 게이...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장준석(張準錫)[1903~1962]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천운(天圓)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장치명(張致明)이다. 장준석은 1903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한 후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평민대학(平民大學)...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정환(黃廷煥)[1905~1948]은 1905년 1월 28일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5월 16일 순종황제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중앙고등보통학교의 이동환(李東煥)·박용규(朴龍圭), 중동중학(中東中學)의 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裁文)·황정환(黃廷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