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고대 정경운의 필사본 일기. 정경운(鄭慶雲)[1556-?]의 자는 덕옹(德顒), 호는 고대(孤臺)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서 살았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손자이다. 박여량(朴汝樑)[1554~1611], 박손(朴𧂍), 노사상(盧士尙)[1559~1598], 정경룡(鄭景龍)...
-
1928년 가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수형의 문집. 강수형(姜壽馨)[1862~1890]의 자는 백윤(伯潤), 호는 귤암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1840~1908]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하대련(河大連)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文正里)에서 태어났다. 문정리는 문헌공(文憲公) 정여창(鄭...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당곡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이다. 본관은 진양이다. 정희보의 선조는 남해현 사람이며, 정희보부터 함양에 이사하여 살았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을 소임으로 여겨 노진(盧禛)[1518~1578], 이후백(李後白)[1520~1578], 양희(梁喜)[1515~1580], 강익(姜翼)[1...
-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무산 강용하의 문집. 강용하(姜龍夏)[1840~1908]의 자는 덕일(德一), 호는 무산(武山)이다. 본관은 진양이며,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양이다. 미산(薇山) 정환주(鄭煥周)[1833~1899]와 종유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문망(文望)[학문으로...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강응황의 문집. 윤석(尹晳)이 지은 묘지(墓誌)에 따르면 강응황(姜應璜)의 생년은 가정(嘉靖) 신미년(1571), 졸년은 숭정(崇禎) 갑신년(1644)이다. 자는 위서(渭瑞), 호는 백천(白川)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사복시 판관을 지낸 강칭(姜偁)[1544~1597]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별검 하춘년(河春年)...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희맹의 시문집.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운송거사(雲松居士)·무위자(無爲子) 등,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다. 어릴 때...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명세의 문집. 강명세(姜命世)[1632~1708]의 자는 덕수(德秀), 호는 소치재(笑癡齋)·소치자(笑癡子)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문재(姜文載)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영남(尹英男)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에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마산리[당시 마안(馬鞍)] 서쪽 산기슭 아래에 작은 집...
-
임진왜란 전후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문필의 문집. 강문필(姜文弼)의 자는 희로(姬老), 호는 송정(松亭)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여중(姜汝仲)다.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진(盧禛)[1518~1578]과 임훈(林薰)[1500~1584)에게 수학한 것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암(梅庵) 조식(曺湜), 죽헌...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소리의 최소 단위인 음소와 운소. 음운은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소리의 최소 단위로서 음소와 운소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분절 음운에 해당하는 음소는 크게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지고, 비분절 음운에 해당하는 운소에는 소리의 고저·장단·강세·성조 등이 있다. 한글의 음소 체계를 살펴보면 자음 19개와 모음 21개로 이루어져 있다....
-
경상남도 함양군에 존재하는 전통건축 형식으로 건립된 가옥. 경상남도 함양군은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 출신인 일두 정여창[1450~1504]과 옥계 노진[1518~1578]이 있는데, 모두 함양군 개평리 출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전통가옥은 개평마을의 고택들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唐谷)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1488년(성종 19)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나주박씨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희보는 조선 성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교육에 전념한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한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주강씨는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본관을 진양(晉陽)[지금의 진주(晉州)]로 하는 토성(土姓)을 하사받았다.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6세손 강도(姜度)에 이르기까지 가계가 외줄로 내려오다가 강도 이후 강희경(姜希經)과 강종일(姜...
-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하원순의 문집. 하원순(河元淳)[1858~1924]의 자는 치경(致敬), 호는 청봉(晴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석간(河錫幹)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우(盧光禹)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당시 우동(愚洞)]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남원 뇌...
-
조선 전기 강희맹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무위자(無爲子)·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1395~1459],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하맹보(河孟寶)[1531~1593]의 자는 대재(大哉), 호는 우계(愚溪)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하맹보의 아버지는 양암(陽庵) 하활(河活)이다.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동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하맹보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란에 아들과 손자를 보내어 따르게 한 공으로 1592년(선조 25)에 공신녹권을...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승현(河升鉉)[1895~1919]은 1895년 7월 21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이다. 부친은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 숙부는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보다 앞서...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인. 하재구(河在九)[1832~1911]는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백(致伯), 호는 위수(渭叟)이다. 고조부는 하한윤(河漢潤), 증조부는 하성원(河聖源), 조부는 하필명(河必明)[1783~1841], 부친은 진사(進士) 하석문(河錫文)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효맹(鄭孝...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의 본관은 진양이다. 아들은 독립운동가 하승현(河升鉉)[1895~1919], 동생은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1866년 11월 29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하재연은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재익(河在翼)[1883~1922]은 1883년 9월 15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79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이다. 형은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 조카는 하승현(河升鉉)[1895~1919]이다. 1919년 3월 28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
-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빨치산 토벌이 마무리될 때까지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함양 지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쳐, 1954년 빨치산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함양군은 남쪽의 지리산과 북쪽의 덕유산 사이에 있어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의 거점이 되어온 지역이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