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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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에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나섰다가 조총을 맞아 숨지자 갑옷과 칼을 바위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 3권 416-417쪽에 수록되어 있다. 정유재란 때 부모 형제가 왜적에 살해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의병장이 되어 왜적을 물리쳤다. 주로 밤에 적의 무기고나 막사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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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의 고택을 통해 살펴본 조선 시대 선비들의 주거 문화와 변천.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2개의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낄 개(介)’자의 형상을 보이는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14세기 경주김씨와 하동정씨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처음으로 형성되었고, 이후 15세기에 풍천노씨가 들어와 살면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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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전통 체험 마을. 개평한옥마을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인 ‘ 함양 일두고택’을 비롯하여 ‘함양 오담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함양 노참판댁 고가’ 등 60여 채의 전통 한옥들이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지은 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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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중앙부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경상남도에 속해 있다. 경상남도의 서북단에 위치한 함양군은 남동쪽으로 산청군, 북동쪽으로 거창군, 북서쪽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남쪽으로 하동군, 남서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와 접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은 소백산맥의 최고봉인 지리산을 남으로 하고, 덕유산을 북으로 둔 산악지대이다. 북부지역에는 지리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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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 전체, 수도면의 진목리·춘전리, 거창군 마리면·북상면·위천면에 걸쳐 있었다. 지도의 아래쪽은 경상남도 거창군[현재의 경상남도 산청군 일대] 및 함양, 위쪽은 전라도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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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7책 「함양군읍지(咸陽郡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의 지도이다. 지도 속 함양군은 안의면·서상면·서하면을 제외한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었다. 본 지도는 현재 함양군 함양읍 시내에 있었던 함양읍성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안의·산청계와 경계를 이루며,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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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군현 명칭의 변화상. 현재 함양군은 함양읍과 안의면 등 1읍 10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함양 지역은 함양군과 안의군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함양군의 고지명은 함양읍 권역(이하 함양읍)과 안의면 권역(이하 안의면)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읍격의 승격이나 강등과 서로 연계되어 있어 함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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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는 ‘예로부터 나라의 공신이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곤부 또는 공배(功倍) 라 불리고 있다. 본래 경상남도 함양군 지내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편입되면서 공배리라 하였다. 수원이 좋고 평야 지대라 조선 세조 때 하양허씨가 서울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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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음현 지도. 『광여도(廣輿圖)』는 18세기 관찬(官撰)으로 제작한 『해동지도(海東地圖)』 및 이와 유사한 지도들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집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그 윤곽이 『해동지도』와 유사하다. 그러나 『광여도』에는 『해동지도』에 빠져 있는 안음현(安陰縣)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테오리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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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광혜원(廣惠院)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성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광혜원은 함양군 치소(治所)에 가까이 있어 함양을 방문하는 주요 인사들이 머물렀다. 광혜원은 함양군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함양군의 민심 동향이나 함양군 인사들의 평판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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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국계리는 화장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굽이쳐 돌아 흐른다 하여 굽게 또는 굽개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이 제계서재를 짓고 학문을 닦은 곳이라 하여 제계(蹄溪)라 하였다고 한다. 제계라 불리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국계(菊溪)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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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금반리는 금바실 또는 금반동이라 하였는데 금이 나온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설이 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이 마을이 금소반(金小盤)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과 여인이 병목을 잡고 금반옥배(金盤玉盃)에다 술을 따르며 권주가를 부르고 춤추는 형국이라 하여 금반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석정동은 돌정지, 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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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가뭄이 지속되면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지냈던 제사 의식.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올리는 다양한 제사 의식을 기우제라 했다. 삼국 시대부터 기우제가 행해졌음을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는 조선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국왕이나 조정 주도로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지방이나 민간 차원에서도 시행되었다. 왕실의 시조묘,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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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임비를 시조로 하고 임유소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나주임씨(羅州林氏)는 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나주임씨 입향조(入鄕祖)는 도정(都正) 임유소(林有巢)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27만 7,699명, 함양군에는 896명이 거주하고 있다. 나주임씨 시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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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우평, 홍인손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남양홍씨 세보』의 구보(舊譜) 서문에서는 남양홍씨(南陽洪氏) 연원을 중국 당(唐)나라의 인물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전한다. 즉 당나라에서 재자(才子)[재주가 뛰어난 남자] 8명을 보내 고구려를 교화하게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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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우평, 홍인손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남양홍씨 세보』의 구보(舊譜) 서문에서는 남양홍씨(南陽洪氏) 연원을 중국 당(唐)나라의 인물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전한다. 즉 당나라에서 재자(才子)[재주가 뛰어난 남자] 8명을 보내 고구려를 교화하게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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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양주운을 시조로 하고 양천지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남원양씨의 원래 시조는 탐라국 개국 신화의 삼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양을나(梁乙那)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우량(梁友諒)이 왕실에 큰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으로 책봉되어 남원을 관적으로 하여 시조가 됨으로써 양씨는 제주와 남원 두 관적(貫籍)[시조(始祖)가 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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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는 대표 마을인 한남마을(漢南洞)의 ‘남’과 동호마을(桐湖洞)의 ‘호’를 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가 되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엄천면에 속하던 원촌동, 동호동, 한남동을 병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가 되었다. 남호리의 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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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터를 잡은 풍천노씨 입향조이자 문신. 노숙동(盧叔仝)[1430~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30년 3월 임인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확목리 화목마을에서 3남 3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사랑(承仕郞) 용구현령(龍駒縣令) 노천계(盧天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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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선비들이 자연경관과 풍류를 즐길 목적으로 건축한 누각과 정자. 누정(樓亭)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경관을 즐기며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전통건축 형식의 공간이다. 사방을 널리 조망할 수 있게 높게 지은 누각(樓閣)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심성을 함양(涵養)[능력이나 품성 따위를 길러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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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한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산(中山)마을, 다곡(茶谷)마을, 대황(大篁)마을을 병합하며 대표 마을인 다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다곡리로 개칭하였다. 중산마을은 조선 숙종 때 전주이씨가 들어왔고 그 후 헌종 때 남평문씨가 들어와 화전민 생활을 하다가 정착하며 이루어진 마을로 지명은 산 중턱에 있다고 사여 붙은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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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각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단양우씨(丹陽禹氏)는 고려시대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낸 우현(禹玄)을 시조로 하여 우신(禹臣)-우인가(禹仁可)-우잉순(禹仍順)-우경절(禹慶節)-우중대(禹仲大) 등 외줄로 이어져 오다가 6세 우중대가 우천규(禹天珪), 우천계(禹天啓), 우천석(禹天錫), 우천우(禹天佑), 우천성(禹天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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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대궁리는 대표 마을인 대치동(大峙洞)과 재궁동(才宮洞)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대치마을은 사기소(沙器所)라는 작은 점촌마을이었으며 계곡에 터를 잡고 큰 재를 넘나든다 하여 대치(大峙)마을이라고 하였다. 또한 마을 뒷산의 모습이 물을 마시러 내려온 꿩의 모습을 닮아 대치 또는 한치(閑峙)라 하였다고 한다. 재궁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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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속한 법정리.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는 대표적 마을인 대로동(大蘆洞)과 오산동(梧山洞)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오산마을은 오무라고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오산(梧山)으로 개칭되었는데 마을에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노상(蘆上) 마을은 사기점이라고도 하는데, 대로마을 위쪽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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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대천리는 이 지역의 대표적 마을 대포동(大浦洞)과 미천동(薇川洞)을 합하면서 대포동의 ‘대’자와 미천동의 ‘천’자를 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대천리가 되었다. 대천리에 속한 대포마을은 덕바대·덕바다라 불리던 지명의 ‘덕’을 ‘대(大)’로, 바다를 ‘포(浦)’로 한자화하여 대포라 부르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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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덕신원은 함양읍성에서 서쪽으로 8㎞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덕신원은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함양군·전라북도 남원시·경상남도 하동군 등지를 순행할 때 숙식을 해결하거나 마필을 교체하였을 것이다. 또한 함양·남원·하동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함양과 그 주변 지역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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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도현원(桃峴院)은 함양군의 사근역에서 동쪽 산청군을 넘나드는 도현 아래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도현원은 경상도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함양·산청 지역을 순행할 때 숙식을 해결하거나 마필을 교체한 곳이었을 것이다. 도현원은 함양군과 산청군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함양군·산청군 등지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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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제강점기 일제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여 민족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일제는 1910년부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을 막고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 지배하에 두기 위해 무단통치를 하였다. 일제는 조선 지역 전체를 수탈하고 착취하였으며 조선인들은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쟁하였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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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을 한 사람.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난 시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함양 지역 내에서 의병운동·독립만세운동 등에 참여하여 정부로부터 공훈을 받았던 사람은 총 29명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의하면, 함양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투쟁은 의병 활동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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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는 대표 마을인 동강(棟江)마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동강마을은 강물 북쪽 언덕에 큰 바위들이 높이 솟아 있고 높은 집들의 모양을 하고 있어 동토라 불리어진 것에서 유래 되었으며, ‘동(桐)’ 자가 목동(木同) 자로 이곳에 오동나무들이 있어 지어진 지명이라 전한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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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에 있는 마정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마정립(馬挻立)의 자는 달지(達之)이고, 호는 한남(漢南)이며, 본관은 장흥이다. 마정립은 조선 태종 때 좌명공신이었던 마천목(馬天牧)의 7대손이다. 마정립이 함경도 삼수진(三水鎭)의 병마첨절제사로 있을 때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났다. 고을을 지키던 수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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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목현리는 목동, 나무골, 취암(鷲岩) 등으로 불리었는데 나무가 많은 곳이라 나무 목(木)과 골 현(峴)을 붙여 목현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것이라 전한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는 조선 연산군 때 명현 금재(琴齋) 강한(姜漢)[1454~?]이 어머니의 강보에 싸여 이곳에 와서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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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과 관련한 한문학, 국문학 작가와 작품. 함양군에는 신라의 최치원부터 고려·조선의 뛰어난 문인들이 관리로 부임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의 함양군에서도 여러 문인들에 의해 왕성한 문학 창작 활동으로 계승되고 있다. 함양군의 최고(最高) 문인은 최치원(崔致遠)[857~?]이며, 최고(最古) 문인도 최치원일 것이다. 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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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농작물 경작 체험 마을. 봉전마을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정선 유배지에서 사망한 채미헌 전오륜(全五倫)의 후손들이 개척한 곳이다. 조선 인조 때 거창군 마리면에서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당시에는 마을 이름을 ‘새들’이라고 불렀다. 300여 년 동안 전씨들의 집성촌으로 생활하였다. 조선 말기에 화림동 신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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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민간에 전해오는 여러 신앙. 민간신앙은 인간의 기원과 함께 시작된 원시종교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족국가에서 연중행사로 행하던 제천의식(祭天儀式)[하늘을 숭배하고 제사하는 의식]이 그것이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마한·변한·진한에 천신제 등이 있었다. 예(濊)에서는 무천(舞天)이라고 하여 10월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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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박맹지(朴孟智)의 호는 춘당(春塘)이며,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박안경(朴安敬)이다. 1426년(세종 8)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나 1492년(성종 23) 67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출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찍이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454년(단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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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무신.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무장으로 왜구를 막고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박자안(朴子安)[?~1408]의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부인은 안동권씨 권렴(權廉)[1302~1340]의 아들 권현(權鉉)의 딸이다. 아들은 박실(朴實)[?~1431]과 박유(朴牖)이다. 1360~1370년대 박자안의 관직은 보마배행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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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던 관영 숙박시설. 반락원(半落院)은 안의현 치소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반락원은 안의 지역에서 경상남도 거창군을 왕래한 관료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반락원은 안의현 치소(治所)에 인접하고 있어 거창군에서 남하한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안의현 치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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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화과원을 기반으로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고 실천한 승려. 용성선사, 용성대종사로도 불리는 백용성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밀양손씨이다. 백용성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출가 전 이름은 백상규(白相奎)이다. 처음 출가하였을 때 법명으로 진종(震鍾), 법호로 용성(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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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양백리에 있는 강문필의 사당. 함양군 백전면 양백리에서 백운리로 가는 지방도1001호선변에서 약 100m 동쪽인 양백리 동백마을 입구 백운산 끝자락에 있다. 백운정사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자 시인인 송정(松亭) 강문필(姜文弼)의 학문을 기리고 제향을 지내는 곳이며, 백운산 아래 자락에 있어 백운정사로 이름하였다고 한다. 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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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해인사 말사.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절 뒤쪽에 현존하는 석탑을 통하여 대략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창건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1520년에 벽송(碧松) 지엄(智儼)[1464~1534]이 이곳을 중창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일정 시간 동안 폐사 상태로 있은 것으로 추측된다. 1704년부터 환성(喚惺)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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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대봉산에서 1945년 3월에 만들어진 항일 결사체. 일제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고 연합군이 조선에 상륙할 경우 호응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사체인 보광당을 설립하였다. 보광당이 설립될 당시 지리산에는 징병과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청년 약 300명이 숨어 있었으며, 청년들 가운데 일명 남도부(南道富)라고 불리던 하준수(河準洙)[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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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鳳田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곳의 대표 마을인 봉평동(鳳坪洞)과 우전동(于田洞)의 이름을 따서 봉전리라 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우전동과 내오동·봉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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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주관한 제1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한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함양군과 출판사 ‘천년의 시작’의 공동 주관으로 2011년에 개최된 제1회 연암문학상 공모전에서 당선된 장편소설이다. 작가 표성흠은 1970년에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 번째 겨울」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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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던 관영 숙박시설. 사근원(沙斤院)은 사근역을 지나가는 관료를 비롯한 여행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역원조에는 “사근원은 사근역 동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지도서』에는 “사근원은 역의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라고 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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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요충지인 경상남도 함양의 사근산성에서 발생한 신라와 백제의 전쟁, 왜구의 침탈 등에 대한 역사. “함양 작은 현에 많은 산이 깊다. 깎아지른 벼랑은 다시 만 길이나 되는구나.” 이는 목은 이색의 시에 담긴 함양이다. 경상남도 함양은 험한 산지로 둘러싸인 산간 분지다. 서편으로는 산이 높고 동편으로는 지대가 낮은 지역으로 동서가 25㎞, 남북이 50㎞인 산간 지대이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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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에 있는 공원. 경상남도 함양군 위천 연안에 조성된 함양 상림은 신라 때 최치원이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을의 중심부를 흐르던 위천의 물길을 바꾸며 쌓은 둑 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함양 상림은 오랜 기간 홍수피해를 막는 역할을 하며 잘 보존되어 왔는데 거주 구역의 확대 등으로 중간부가 파괴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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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상백마을의 이름을 따서 상백리로 개설되었다. 상백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함양군 백토면 백평(웃잣들)마을을 상백리라 개칭하고 함양군 수동면에 편입되었다. 상백리는 함양군 안의면과의 경계지역으로 고분군이 발견되고 유물이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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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는 서주마을에서 따온 이름인데, 서주마을은 동천강 서쪽에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서주마을 북쪽에 있는 회동마을은 그믐골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뒷산에 금조탁시(金鳥琢尸)라는 명당이 있다고 하여 금명동(金鳴洞)이라 하다가 그믐골로 불리고 있다. 또한 마을의 서산이 서쪽 반달과 같은 모양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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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던 장수사에서 복각된 언해 불서.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諺解)』은 당나라 영가(永嘉)대사 현각(玄覺)[665~713]이 선 수행 방법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불서이다. 『선종영가집』은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석하였고, 다시 정원(淨源)이 과문(科文)[경론의 뜻을 알기 쉽게 해석하기 위하여 내용에 따라 나눈 문단]으로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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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억년, 이지활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성주이씨(星州李氏)는 신라 말 인물 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삼는다. 이순유 이후 2·3·4대는 누락되었다. 5대부터 이범(李凡), 이정거(李廷居), 이충경(李冲京), 이영(李瑩), 이효삼(李孝參), 이돈문(李敦文), 이득희(李得喜), 이장경(李長庚)으로 내려오면서 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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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고 있는 성씨. 고려의 후삼국 통일 후, 940년(태조 23)경에 3가지 주요 정책이 실행되었다. 역분전(役分田)의 지급, 군현 개편, 토성(土姓)의 분정(分定)이 그것이다. 이들 정책은 궁극적으로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을 통제하고 중앙집권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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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송계리(松溪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계(松溪)마을과 거기(居起)마을을 병합하면서 대표 마을인 송계의 이름을 따서 송계리가 되었다. 송계마을은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송정’이라는 정각을 지으면서 양송정(兩松亭), 양송징이, 송정(松亭), 송계(松溪)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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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세워진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 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경상남도 함양 지역 학교들도 흡수되었다. 1909년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설립된 사립 학교 동명의숙을 폐교하고 1920년 3월 1일에 허가를 받아 4월 1일에 수동공립보통학교로 강제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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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수원(藪院)은 안의현 치소에서 남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조선시대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수원은 안의현 치소에 인접하고 있어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안의현 치소(治所)에 들어가기에 앞서 머물렀던 곳일 가능성이 높다. 수원에서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안의현의 민심 동향을 파악하거나 안의현 관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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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속한 법정리. 함양군 지곡면 시목리는 ‘옛날 감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시목징이 또는 시목(枾木)’ 이라 불린다. 그러나 감나무가 없어지고 시묘골이 변해 시목이 되었다고도 하며 두동(斗洞)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함양군 덕곡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방동, 봉곡동, 독좌동을 합하여 함양군 지곡면에 편입시키면서 시목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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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표인려를 1세조로 하고 표계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1915년에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쓴 『신창표씨족보(新昌表氏族譜)』 서문에서는 신창표씨가 상서(尙書) 표대박(表大圤)을 동일한 조상으로 하는데 5~6대가 지나는 동안 전하기도 하고 전하지 않기도 하다가 합문지후(閤門祗侯) 표인려(表仁呂)에 이르러 보계(譜系)[조상 때부터 내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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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세경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안동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은 930년(태조 13)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식읍(食邑)[왕족,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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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세워진 근대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 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1912년 3월 4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세워진 의명의숙이 폐교되고, 안의공립보통학교가 인가받아 4월 4일 4년제 보통학교로 정식로 개교하여 초등 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생 수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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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상남도 안의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서 편찬한 향토지. 안의군은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에 해당한다.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교북리 일대에 읍지가 있었다. 안의군은 본래 신라의 마리현(馬利縣)이었다. 경덕왕 때 이안현(利安縣)으로 고쳐 천령군(天嶺郡)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태종 때 안음으로 개칭되었다가 영조대에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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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31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안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1918년 1차대전 종결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와 갑작스러운 고종 황제의 붕어 등을 계기로 조선 민중들이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3.1만세운동의 영향은 경상남도 함양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전병창(全炳昌)·임채상(林采尙)·정순완(鄭淳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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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경에 편찬한 『여지도』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보물 제1592호로 지정된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輿地圖)』는 3책 33장의 지도첩이다. 경상남도 함양군은 1729년(영조 5)에 군(郡)에서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788년(정조 12)에 다시 군으로 강등된다. 따라서 함양군의 명칭만으로 볼 때 『해동지도』는 1729년 이전에, 『여지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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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 함양 지역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왔다. 현재까지 함양군에는 구석기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접한 거창읍 장정리에서 후기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었고, 거창 임불리에서도 중기 구석기 유적이 조사되었으므로 함양군에서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남아 있는 함양군 유적으로 볼 때, 신석기 시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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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지정학적 요충지로 일찍부터 역원이 설치되었다. 함양지역의 역과 원은 고려·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역원은 『고려사』에서 사근역만 전해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사근역·제한역·임수역 등 3개 역과 사근원·광혜원·도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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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목숨을 바쳐 자신의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과 시댁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바친 부녀자. 위기 상황에서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고난 속에서도 오랜 세월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주로 일컫는 말이며 넓게는 남편과 시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을 말한다. 열부(烈婦)와 절부(節婦)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쓰인다. 조선은 초기부터 이른바 정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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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6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출신의 무장 오희남이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했던 사건. 오희남은 경상남도 안음현 모동리 무월 출신[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으로, 함양오씨 성재공(誠齋公)의 현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953년 6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수문장으로 항전하다가 진주성 함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선무원종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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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출신인 옥계 노진의 문집. 노진(盧禛)[1518~1578]의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우재(迂齋)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배우고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식(曺植)[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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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고승인 용성 선사의 불교혁신과 자주성의 실천 현장이었던 화과원을 추적한다. 조선 500년의 숭유억불 정책은 불교계의 전반적인 쇠퇴를 가져왔고, 민초들의 기복 종교로서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사찰은 점차 깊은 산중으로 물러나고, 승려들은 사대부의 멸시를 받으며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결과 조선불교의 법맥은 단절되거나 혹은 깊은 산속의 일부 승려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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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牛鳴里)는 대표 마을인 효리마을의 지형이 소가 우는 형국이라 하여 ‘소울이’라고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우명(牛鳴)이라 하게 되었다. 우명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라, 가성, 효리 3개 마을을 병합하여 우명리로 개칭하고 함양군 모간면에서 함양군 수동면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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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한 법정리.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雲谷里)는 해평(海坪)마을, 은행(銀杏)마을, 운곡마을(雲谷)[마조동], 옥환(玉環)[옥고리터]마을을 병합하면서 백운산 동쪽 골짜기에 있고, 대표적 마을인 운곡마을의 이름을 따서 운곡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안의군 서하면에서 함양군 서하면에 편입되면서 해평·은행·운곡·옥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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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 및 활동 제반. 함양군의 유교 내지 유학은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사상적인 토대로서 정치와 교육 등 사회 모든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리학의 보급 및 발전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왕조가 교체되는 여말선초 시기 함양군에는 박충좌(朴充佐), 조승숙(趙承肅)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둔하며 교육에 종사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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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유평리의 판문(板門)마을은 마을을 형성할 때 동리 밖에 판자로 울타리를 치고 동쪽으로 문을 내었다고 하여 판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화암(花岩)마을은 배름바구 또는 위문이라고도 하였다. 화암마을 남쪽의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에 이곳에 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산(玉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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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육십령 명칭의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설은 함양군의 안의면과 전라북도 장수군의 읍치에서 고개까지 거리가 60리[약 23㎞]라는 설이고, 두 번째설은 60개의 작은 굽이를 넘어와야 육십령에 이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세 번째설은 밤낮으로 화적 떼가 들끓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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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육십령 명칭의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설은 함양군의 안의면과 전라북도 장수군의 읍치에서 고개까지 거리가 60리[약 23㎞]라는 설이고, 두 번째설은 60개의 작은 굽이를 넘어와야 육십령에 이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세 번째설은 밤낮으로 화적 떼가 들끓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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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는 용추계곡의 은신암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2012년 간행된 『함양군사』 3권 413-414쪽에 수록되어 있다. 용추계곡에 있는 은신암은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성계의 총애를 받던 무학대사는 조선이 건국 될 때 도읍을 물색하고 있었다. 무학은 계룡산과 왕십리를, 정도전이 한양을 후보지로 주장하였는데, 결국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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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유배 생활을 한 문신. 이숙번(李叔蕃)[1373~1440]의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藝亭), 작호는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이다. 본관은 안성(安城)이다. 조선 태종의 복심으로 정사공신·좌명공신에 책봉되었으나 태종 말년에 경상남도 함양으로 유배되었다. 할아버지는 이사정(李思正), 아버지는 이경(李坰)이다.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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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유배 온 왕족. 자는 군옥(羣玉), 군호는 한남군(漢南君), 호는 정도(貞悼)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어(李𤥽)[1429~1459]의 어머니는 혜빈양씨(惠嬪楊氏)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현감 양경(楊景)의 딸이다. 부인은 양원군부인(梁源郡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예빈녹사(禮賓錄事) 권격(權格)의 딸이다. 자녀로는 장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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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수옹(睡翁)이다. 본관은 하동이다.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시강원설서를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로 인하여 함경도 종성(鍾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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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역사.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피탈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35년 동안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도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의 정신과 문화가 빠르게 말살되었다. 하지만 경상남도 함양 지역민들은 일본에 저항하고 각종 조직들을 만들어 조선의 정신과 함양을 지켜나갔다. 1914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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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어난 농민운동. 일제는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을 통해서 조선의 농촌을 일본의 식량 원료 공급지로 재편성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소작농들은 50~60%의 높은 소작료를 낼 뿐만 아니라 소작 계약도 매년 갱신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조건에 놓여 있었다. 자작농도 각종 지세와 수리조합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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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제강점기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 민족운동을 고취시키기 위해 진행한 일련의 운동. 사회운동이 일정한 이념을 갖춘 항구적인 조직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사회가 성립된 이후부터이다. 산업사회에서 야기된 제반 모순에 저항하여 사회를 개량하거나 사회개조를 도모하려는 근대적 사회운동은 서구에서 19세기 중엽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내재적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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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일제강점기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일제는 전통적인 조선의 교육 제도를 공립화하는 데 매진하였고, 이로 인해 서당 등 향촌 자치적인 교육기관이 모두 철폐되면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 수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민족실력양성운동이 전개되면서 전국 각 지역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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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3월에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발생한 반정부 농민 항쟁. 경상남도 함양의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1862년(철종 13) 3월 16일에 발생하였다. 농민봉기의 주된 원인은 삼정(三政)의 문란을 비롯해 환곡의 폐단에 대한 시정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과 지역 관리들의 탐학 때문이었다. 19세기는 조선의 역사에서 격변의 연속이었다. 그 전반기 60여 년은 이른바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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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는 장항마을에서 따온 이름으로 노루목, 노리목, 장항리, 장항동 등으로 불렸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는 지형이 노루 새끼가 어미를 돌아보는 형국이며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 와서 보니 마을이 노루의 목 부분에 입지하고 있어 노루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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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존재하는 전통건축 형식으로 건립된 가옥. 경상남도 함양군은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 출신인 일두 정여창[1450~1504]과 옥계 노진[1518~1578]이 있는데, 모두 함양군 개평리 출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전통가옥은 개평마을의 고택들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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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창건되었다가 소실된 절터. 경상남도 함양군은 북쪽으로 남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라는 명산이 있어 수행자들이 즐겨 찾았고, 일찍부터 산골짜기 곳곳에 수행처가 마련되었다. 1254년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서는 “지리산 중에 70여 곳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선의 숭유억불정책과 한국전쟁을 포함한 수차례의 전쟁으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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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신. 정복주(鄭復周)[1367~?]의 자는 사고(師古), 호는 죽당(竹堂)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아버지는 정지의(鄭之義), 아들은 정육을(鄭六乙)[?~1467], 손자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다. 태종 이방원(李芳遠)[1367~1422]이 정복주를 자신의 동년(同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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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남도 합주의 속현 감음현 사람인 자화와 의장이 정서의 처를 무고한 사건. 정서(鄭敍)의 처 임씨는 정안임씨 임원후(任元厚)[1089~1156]의 딸이며, 인종 비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의 여동생이다. 정안임씨는 당대 문벌가문으로서, 임원후는 문하시중을 역임했고 임유(任濡)[1149~1212] 등 임원후의 다섯 아들도 평장사를 비롯한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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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정여창의 생애와 정치활동, 학문과 사상 그리고 당시 영남 사림의 동향을 고찰. 정여창은 1450년(세종 32) 경상도 함양의 덕곡리(德谷里) 개평촌(介坪村)[지금의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자택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정지의(鄭之義)로 판종부시정(判宗簿寺正)을 역임했으며, 할아버지 정복주(鄭復周)는 고려 말 판전농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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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唐谷)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1488년(성종 19)에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나주박씨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정희보는 조선 성종 때부터 명종 때까지 교육에 전념한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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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문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덕곡(德谷),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문인으로, 두문동 72현(杜門洞七十二賢) 가운데 한 명이다. 조승숙(趙承肅)[1357~1417]의 아버지는 조경(趙璥)이다. 부인은 보성선씨 선양좌(宣良佐)의 딸이다. 아들은 직제학을 지낸 조종례(趙從禮)[137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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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세워진 공립 보통학교. 일제가 식민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서 신식교육을 하던 사립학교들을 강제로 폐교하고 공립학교로 흡수해 식민지 교육 체제로 바꾸었다. 식민지 교육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던 사립함덕학교가 1920년 7월 30일 폐교되고 1921년 7월 28일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1일 4학급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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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벽송사를 중창한 승려. 지엄(智嚴)[1464~1534]은 전라북도 부안 출신이다. 지엄은 법명이고 당호는 벽송(碧松)이다. 본관은 여산송씨(礪山宋氏)이며, 본명은 미대(彌臺)이다. 호는 야로(埜老)이다. 아버지 송복생(宋福生)과 어머니 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엄의 어머니는 인도의 범승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지엄을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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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정예·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 등을 시조로 하고 정희보(鄭希輔)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양정씨(晉陽鄭氏)는 진주정씨(晉州鄭氏)라 일컫기도 한다. 계파가 복잡하여 동성동본이면서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 또는 중시조로 하는 네 계열이 존재한다. 정예를 시조로 하는 충장공파(忠莊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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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한 등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진주강씨는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본관을 진양(晉陽)[지금의 진주(晉州)]로 하는 토성(土姓)을 하사받았다.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삼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6세손 강도(姜度)에 이르기까지 가계가 외줄로 내려오다가 강도 이후 강희경(姜希經)과 강종일(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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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부계 혈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서 ‘동성마을’, ‘동족촌’, ‘동족집단’, ‘동족부락’이라고도 한다. 집성촌은 우리나라 전통 농경 사회에서 생성된 촌락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시대 혹은 고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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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간행한 전오륜의 실기. 전오륜(全五倫)의 자는 중지(仲至), 호는 채미헌(採薇軒)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72현 가운데 한 명이다. 1357년 국자감 생원, 이듬해 음직(蔭職)[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모와 조부모의 공으로 하는 벼슬]으로 봉선고판관(奉先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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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이후백의 청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청련 이후백에게 자리를 구하러 온 친척이 오히려 찾아와서 관직에 발탁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함양군사』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 청련 이후백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옥계(玉溪) 노진(盧禛), 구졸(九拙) 양희(梁喜)와 교류하였고 대단히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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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정배걸을 시조로 하고 정전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시조 정배걸(鄭倍傑)은 1017년(고려 현종 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예부상서·중추사(中樞使)를 역임하였으며, 사학인 홍문공도(弘文公徒)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사망 후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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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희맹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무위자(無爲子)·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1395~1459],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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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전해오는 이야기. 고을 동헌을 옮기려고 하자 뒷산 바위가 쪼개지면서 나온 파랑새가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여 동리 한가운데 정자를 지어 파랑새를 달래주었다는 이야기. 1983년 함양군에서 발간한 『(우리고장 전통 가꾸기)천령의 맥』 169쪽과,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93쪽에 수록되어 있으며, 2012년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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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을 바친 신하. 전근대 함양과 안의 지역의 충신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와 『천령지(天嶺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충신에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킨 인물,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인물, 1467년 이시애의 반란을 진압한 인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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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정도정을 시조로 하고 정지의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양군의 하동정씨(河東鄭氏)는 고려 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지낸 정지의(鄭之義)가 오늘날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세거가 시작되었고, 조선 시대에도 하동정씨의 함양 입향은 몇 차례 더 이루어졌다.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1607~1683]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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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한 문신. 하천단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해당하는 경상도 천령군(天嶺郡) 이안현(利安縣)에서 태어났다. 하천단의 이름 가운데 ‘단’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휘와 같다 하여 『고려사』에는 ‘단(旦)’자가 ‘조(朝)’자로 대체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안음현 인물조와 『안의향교지』 등에는 ‘하천(河千)’으로 표기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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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고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한문으로 이루어진 학문 및 문학 전반을 일컫는 말.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한문학은 통일신라 시대 말기의 고운 최치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최치원은 당시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고,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관아 옆 누각을 후인들이 학사루(學士樓)라 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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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정을 시조로 하고 조경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안조씨(咸安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조에서 원윤(元尹) 벼슬을 하였다. 조정의 후손이 함안에 정착하여 대대로 세거하면서 본관을 함안으로 삼았다. 조정 이후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는 조간(趙幹)-조단석(趙丹碩)으로 이어지고, 조단석은 아들 조시우(趙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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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덕암마을로 진입하는 국도24호선 변에 인접해 있다. 조승숙은 함안조씨로 고려개국공신이었던 시조 조정(趙鼎)의 11세 손이다. 1381년(우왕 7) 문과에 급제하 부여감무로 있던 중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고향인 함양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조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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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금대암에 있는 신중탱화. 신중탱화(神衆幀畵)는 불법을 보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것으로, 주로 조선 후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다른 불화들에 비하여 한국의 재래 신들이 많이 묘사되고 있어 토착신앙과 불교의 조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금대암은 지리산에 있는 경상남도의 전통사찰 84호로, 656년(태종 무열왕 3)에 행호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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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함양군 안의 지역 방짜징. 함양군 안의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방짜유기 제작 공장이 있었다. 이 가운데 방짜징의 전통적 제작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함양군 안의면의 이용구가 계승하고 있는 전통 방짜징 제작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되어 함양군 안의 지역 방짜징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동기 시대 이래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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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재직 중에 조성된 상림과 현재 상림의 모습. 상림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라 하여 호안림(護岸林)이라 한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된 숲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다. 또한 홍수피해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기도 하다. 이러한 숲을 만든 조상들의 지혜는 상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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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위치한 하륜의 부조묘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하륜 부조묘에 소장된 고문서 중 「회맹록(會盟錄)」과 「입안록(立案錄)」은 총 2책 3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회맹록」은 크기가 108.5×81㎝이며, 상하 2단으로 구성된 목판본 문서이다. 문서에는 본래 제목이 없지만 다른 자료들을 참조한 결과 「(삼공신) 회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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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워진 함양군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1911년 5월 6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워진 사립함명학교를 강제 폐지하고 함양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11년 6월 1일 4년제 보통학교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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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99년에 편찬된 향토지. 19세기 후반에는 지리지를 많이 편찬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지리지가 군사 목적이 강조되었다면 1895년에 제작된 지리지는 각지의 재정을 파악할 수 있는 항목들이 강조되어 제작되었다. 특히 1896년 전국의 23부 체제가 13도 체제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지방제도 개혁 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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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 계곡의 다볕자연연수원 앞쪽 남강변에 있다. 1802년에 서강(西岡) 전세걸(全世杰)과 전세택(全世澤)이 조선의 5현이라 불린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함양 군자정은 정여창의 처가가 있던 곳으로, 해동의 군자가 머무른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하였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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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박언신을 시조, 박선을 중시조로 하는 세거 성씨. 함양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을 시조로 하고, 고려 시대에 예부상서를 지내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해진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한다. 함양박씨는 고려조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69명을 배출할 정도로 가세가 번성하였다. 2000년 기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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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하고 여어매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 함양여씨(咸陽呂氏)의 시조는 중국 내주(萊州) 사람인 여어매(呂御梅)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역임한 여어매는 황소의 난을 피하여 877년(헌강왕 3) 신라에 귀화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여어매는 여임청(呂林淸)과 여광유(呂光有) 두 아들을 두었다. 여임청의 후손인 여자장(呂子章), 여존혁(呂存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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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하며, 오광휘를 시조로 하는 성씨. 조선 선조 초 이조정랑을 지내고 『명종실록』 수찬에 참여한 바 있는 덕계(德溪) 오건(吳健)[1521~1574]의 행장(行狀)[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는 함양오씨 시조를 고려시대 좌복야(左僕射)·상장군을 역임한 오광휘(吳光輝)라고 쓰고 있다. 함양오씨 족보에 따르면 오광휘의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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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함양장터에서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항거하여 일어난 만세운동. 1918년 제1차 대전 종전 후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의 원칙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고종 황제의 갑작스러운 붕어는 민심을 크게 동요치게 하였다. 전국적인 단위로 만세운동이 벌어진 배경이 되었고 경상남도 함양군도 만세운동에 가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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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화림동천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세워진 누정과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한 선비 문화 이야기.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대개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건축물이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강조된 공간이다. 원래 방이 없이 마루만 있고 사방이 두루 보이도록 막힘없이 탁 트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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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국주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운 비. 개항기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경계하고자 전국 주요 도로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임오군란과 일제강점 이후 대부분의 척화비는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함양 상림 근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함양 척화비는 원형을 갖추고 있다. 경상남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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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는 산두동(山斗洞), 임호동(林湖洞), 신기동(新基洞)마을을 병합하면서 ‘임호’와 ‘산두’의 이름을 따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호산리라 하였다. 산두마을은 마을 뒷동산이 말 두(斗)와 같이 생겨 지어진 지명이다. 산두마을에 전해 오는 설화에 따르면 조선 선조 때 정옥(鄭沃)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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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서부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에 있는 계곡. 화림동계곡은 하천의 침식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농월정에 이르면 넓은 화강암의 반석에 다양한 돌개구멍이 파인 소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강바닥 암반의 작은 틈에 모래나 자갈이 들어와 물과 함께 빙빙 돌면서 깎여 나가면 그 틈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움푹 파인 돌개구멍과 같은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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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서부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에 있는 계곡. 화림동계곡은 하천의 침식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농월정에 이르면 넓은 화강암의 반석에 다양한 돌개구멍이 파인 소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강바닥 암반의 작은 틈에 모래나 자갈이 들어와 물과 함께 빙빙 돌면서 깎여 나가면 그 틈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움푹 파인 돌개구멍과 같은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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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는 사근역과 사근산성의 이름을 따서 사근(沙斤)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연화산(蓮花山)의 이름을 따서 화산리로 개칭한 것이다. 화산리는 고려 시대부터 개경과 한양 등 북부지역으로 올라가는 주요 도로로, 영남과 호남의 역들을 관할하는 사근역이 있었던 곳이다. 이 역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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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에 속한 법정리.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花村里)는 우동과 화촌을 병합하면서 대표 마을인 화촌(花村)의 이름을 딴 것이다. 화촌은 지형이 꽃처럼 아름답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촌은 별음계라고도 불리었는데, 별음을 한자로 꽃 화(花)자를 쓰면서 화촌이 된 것이라 한다. 또한 옛날 지관(地官)이 뒷산에 화심(花心)이라는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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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속한 법정리.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黃山里)는 황석산의 아래에 있으며 대표 마을인 황산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지명이다. 황산리는 호성동(虎城洞)과 초현동(招賢洞)[황산]을 병합하여 개설되었다. 호성(虎城)마을은 마을 앞의 산 모양이 호랑이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지명이라 한다. 초현(招賢)마을은 명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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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왜적의 공격으로 발생한 전투. 함양 황석산성은 석성으로 둘레는 2,924척[877.2m]이었다. 성 안에는 한 줄기 물줄기와 군창(軍倉)이 있었는데, 18세기경에 군창은 없어졌다.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왜군이 음력 8월 16일부터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8월 18일까지 3일간 지속된 공방전이다.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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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의 황석산성을 둘러싼 의병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 의병항쟁은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희생과 구국정신으로 침략군인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 활약이 컸던 의병장으로는 곽재우·고경명·조헌·김천일·김면·정인홍·정문부·최경회·김덕령·조종도 등을 들 수 있으며, 경상우도 지역에서 먼저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