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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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山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봉학길 63[용두동 산8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9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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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2016년 - 봉산사 폭우로 망실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4년![]() |
원소재지 | 봉산사 -
광주광역시 서구 봉학길 63[용두동 산80]![]() |
성격 | 사우 |
양식 | 골기와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던 개항기 사우.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였던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신 사우였다. 고광선은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북촌에서 태어났으며, 기정진(奇正鎭)[1798~1879]과 나도규(羅燾圭)[1826~1885]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며,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길 원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의 봉화산으로 들어가 1906년 띠집을 만들고, 그 이름을 어지러운 세상에 귀를 닫아버리겠다는 의미로 '엄이재(掩耳齋)'로 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1934년 고광선이 죽자, 제자들이 1936년 엄이재 옆에 영당인 봉산정사를 짓고 고광선을 기리다가 1964년 봉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6년 여름 폭우로 망실되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봉학길 63[용두동 산80]에 자리하고 있었다.
1936년 봉산정사로 건립, 1964년 봉산사로 개칭하였다. 이후 관리가 안 되어 훼손되고 허물어지다가 2016년 여름 폭우로 망실되었다.
2016년 이전 조사 때에는 정면은 단청으로 단장하고 건물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고, 맞배지붕이었다.
봉산사 주변에 엄이재가 있는데, 엄이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현재 보살이 운영하는 절로 바뀌었다.
봉산사는 한말 유학자인 고광선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나, 관리가 안 되어 사우는 망실되고, 엄이재는 성격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