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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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相烈 |
영어공식명칭 | O Sangryeol |
이칭/별칭 | 오인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효선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3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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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오상렬 김태원 의병진에서 도통장으로 항일 무장 투쟁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오상렬 무등산 전투 참전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오상렬 석문산 전투 참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오상렬 용진산 사호치 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907년 12월 23일![]()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전라도 나주목 적량면 명도리 |
활동지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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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석문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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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사호치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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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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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김태원 의진 도통장 |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의병.
오상렬(吳相烈)[1879~1907]은 1879년(고종 16) 3월 4일 전라남도 나주목 적량면 명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인섭(吳寅燮)이다. 1906년 김태원(金泰元) 의병진에서 도통장(道統將)이 되어 전라남도 광주·함평·나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1907년에는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서 활동하며 용진산에서 45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일본군에 타격을 주었으나 적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1906년 오상렬은 김태원, 전해산, 김율(金聿)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김태원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뒤 도통장(道統將)이 되었다. 오상렬은 전라남도 함평군 본량면 명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영사재(永思齋)에서 무기 제작을 주도하였다. 오상렬은 김태원 의병진에 속하여 전라남도 광주 무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펼친 끝에 200여 명을 사살하였다. 이어 전라남도 나주 석문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서 일본군과 대적하여 100여 명을 사살하였다. 그 뒤 광주 무등산, 창평 무동촌(茂洞村), 나주 풍치(風峙) 등지에서도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며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07년에는 전해산 의병진에서 활동하며 전라남도 광산군 용진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사호치(沙湖峙)에서 일본군 대부대와 45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23일 격전 중 적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영사재 주변에 오상렬 의병장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137-7 가마마을에는 1985년에 개축한 의사오공순절기적비(義士吳公殉節紀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