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광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48
한자 卓光茂
영어공식명칭 Tak Kwangmoo
이칭/별칭 겸부(謙夫),경렴정(景濂亭),문정(文正),졸은(拙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31년 - 탁광무 국자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65년 - 탁광무 내서사인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366년 - 탁광무 좌사의대부 제수
추모 시기/일시 1699년 - 탁광무 안동세덕사에 배향
사당|배향지 안동세덕사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박실골길8[구수리 695]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관직 내서사인|우사의대부|예의판서|간의대부

[정의]

고려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내서사인, 우사의대부, 예의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탁광무(卓光茂)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탁광무의 증조할아버지는 탁종성(卓宗成), 할아버지는 평장사 탁영(卓英), 아버지는 제학(提學) 탁문신(卓文信)이고, 아들은 탁신(卓愼)이다. 아내의 아버지는 박지연(朴之衍)이며 본관은 문의(文義)이다. 다른 부인의 아버지는 김인검(金仁儉)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활동 사항]

탁광무는 1331년(충혜왕 1)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고, 1365년(공민왕 14) 내서사인(內書舍人)이 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제수되었고, 뒤에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로서 신돈(辛旽)에게 아부하고 간관(諫官)을 능욕한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가산을 몰수할 것을 주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에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탁광무는 만년에 고향인 광주로 낙향하여 정자를 지었는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정자에 ‘경렴정(景濂亭)’의 편액을 지어 주니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학문과 저술]

탁광무의 저서로는 시문집인 『경렴정집(景濂亭集)』이 있다. 총 5권 2책의 활자본이며, 1827년(순조 27) 후손 탁유문(卓有文)이 처음 간행하였고, 1850년(철종 1) 탁운한(卓雲翰)이 개간(改刊)하였다.

[상훈과 추모]

탁광무의 시호는 문정(文正)이며, 성균관제학과 동지춘추관사에 추증되었고, 성주(星州)의 오계사(梧溪祠)[현재 위치는 불분명]에 제향되었다. 1699년(숙종 25)에는 탁순창이 세운 경상북도의 안동 세덕사(安東世德祠)에 아들 탁신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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