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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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喜笑舘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위경혜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20년대 초반 - 희소관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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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희소관 - 군산시 개복동 44번지 |
주소 변경 이력 | 남도극장~국도극장 - 군산시 개복동 44번지 |
현 소재지 | 국도 극장 - 군산시 개복동 44번지 |
성격 | 영화관 |
전화 | 없음 |
홈페이지 | 없음 |
[정의]
일제 강점기 군산 개복동에 세워진 극장.
[개설]
희소관은 전북 도내 최초 상설 영화관으로 1920년대 초반 군산시 개복동에서 개관하였다. 희소관은 일본인 중심 상권이 형성된 도심과 근접하였으며, 100여m 거리에 1930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군산 극장[군산좌 후신]과 함께 일제 강점기 지역의 양대 극장으로 기능하였다.
[건립 경위]
1899년 개항한 군산은 1906년에 이르러 인구수가 5,000여 명에 이르렀다. 군산은 우편국, 병원, 은행, 경찰서, 언론사, 학교 등 기반 시설을 모두 갖춘 근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군산은 1914년까지 6개의 여관과 5개의 요리점 그리고 군산 공원(群山公園)까지 일본인을 위한 대중 오락 시설을 갖추게 된다. 희소관 역시 식민지 사업 투자처이자 근대 도시 문화 제도로서 1920년대 개관하게 된다.
[변천]
희소관은 1927년 현재 관객 정원 700석에 가와카미[河上好蔵]가 경영하는 활동 사진 상설관이었다. 희소관은 일본 마키노 영화사 작품을 상영하였는데, 마키노 영화사는 1930년대 초반 일본 최초 발성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이다. 희소관은 해방 이후 남도 극장을 거쳐 국도 극장으로 개명하고 운영되었다.
[구성]
희소관은 일본의 가무(歌舞)를 공연하고 일본인 변사를 고용하여 일본인 대상 영화를 상영하였다. 희소관은 일본인 극장이었으나 조선인을 위한 행사 역시 개최하였다. 즉, 1928년 3월 군산 영신 여학원 및 구암 유치원(龜岩幼稚園)이 조선 일보 군산 지국 후원을 받아 군산 구암 연합(群山龜岩聯合) 음악 가극 대회(音樂歌劇大會)를 열었다. 또한 군산 연예회(群山硏藝會) 주최 전국 규모 신구 독창 대회(新舊獨唱大會)와 군산 부인 교육회의 성악가 차재익(車載鎰)의 독창회 개최 등 조선인 식자층을 위한 행사를 벌였다.
[현황]
해방 이후 희소관은 조선인 극장 직원들에 의해 공동 관리되다가 적산 관리국으로 넘어갔다. 적산 관리국을 거친 희소관은 여러 한국인 관주(館主)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66년부터 박주일의 운영 아래 맡겨졌다. 희소관은 해방 이후 남도 극장으로 개칭하였다가 1971년 건물 전면 증개축을 마치고 국도 극장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국도 극장은 2014년 현재 폐관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