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19 |
---|---|
한자 | 高靈金氏 |
영어의미역 | Goryeo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
집필자 | 위은숙 |
세거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
---|---|
입향시기/연도 | 고려 후기 |
성씨시조 | 김남득 |
[정의]
김남득(金南得)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
[연원]
고령김씨(高靈金氏) 시조 김남득은 경순왕의 11세손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장손으로 고려시대 전리좌랑(典理佐郎)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첫째 아들이다. 본명은 김기지(金麒芝)로, 충혜왕 복위 원년인 134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공민왕 대 상주목사, 감찰집의, 양광도안렴사를 역임하였다. 최유(崔濡)가 공민왕을 폐위시키려 한 음모 사건이 일어나자 접반시랑(接伴侍朗)이 되어 이의 무고함을 역설하고 공민왕의 왕위 보존에 공을 세웠다. 그 후 원나라에 사은사로 가서 예부상서를 명받고 환국하자, 왕이 익대공신고양부원군(翊戴功臣高陽府院君)에 봉하고 “득어영남지의(得於嶺南之意)”라고 이름을 하사하였다. 김기지는 여기에서 두 글자를 취하여 이름을 김남득으로 하였고, 후손들이 김남득을 시조로 삼고 경주김씨(慶州金氏)에서 분적한 뒤 고령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김남득의 아들은 고려 공양왕 대 사헌장령을 지낸 김무(金畝)이며, 김무의 아들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한 김사행(金士行), 사헌부집의를 지낸 김사문(金士文), 승지 김사충(金士忠), 합천군수를 지낸 김사신(金士信)이다. 후손으로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김면(金沔)이 있다.
고령김씨는 고산파(高山派), 신녕파(新寧派), 충주파(忠州派), 노성장선파(魯城長善派), 김제파(金堤派), 공주합천달성파(公州陜川達城派), 양천파(陽川派), 순천공파(順天公派), 고령파(高靈派), 노성죽헌파(魯城竹軒派), 합천묘성파(陜川妙城派)로 나누어져 있다.
[현황]
현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을 중심으로 고령김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4,279가구, 총 13,6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관련유적]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김면 신도비와 묘 등이 있는 유적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