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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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김경주가 모양성 답성놀이를 모티프로 하여 만든 춤. 우석대학교 무용학과 김경주 교수가 지역에 묻혀 있는 민속적 요소의 춤을 무대화한 창작 춤이다. 김경주 교수는 우석대학교 무용학과에 부임한 첫해에 전라북도 무용의 어제와 오늘을 깊이 연구하면서 마을에서 이어져 오는 전통 춤의 깊은 울림에 매료되어 1993년부터 전라북도 11개 시군을 답사하면서 근대화 물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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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전개됐던 갑오농민운동군을 진압한 관군 장위영(壯衛營)에서 남긴 군영 일지. 1894년 9월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은 물론이며 경기도 안성(安城)과 죽산(竹山)에서까지 기포하자 조선 정부는 9월 10일 1882년 임오군란 후 무과에 급제한 이두황(李斗璜)[1858~1916]을 죽산부사 겸 장위영 영관으로 임명해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게 하였다. 이에 이두황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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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침례교(Baptist), 감리교(Method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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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해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파조인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현손 김윤해(金潤海)가 연산군 대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왔다가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세장마을로 입향하였다. 파조의 7대손으로 당시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만골마을에서 태어난 김영량(金榮亮)[1650~1712]이 1692년(숙종 18)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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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高德鵬)은 41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를 규합한 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 고경명은 이미 순절한 뒤여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채홍국(蔡弘國)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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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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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었던 수리 조합. 수리조합은 1906년 대한제국 탁지부가 제정한 수리조합조례와 1908년에 공포된 수리조합설치요강 및 모범규약에 따라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 농민 수탈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농민을 위한 조합으로의 성장과 동시에 다수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주적인 운영 체제로 전환했다. 1960년대 초의 토지개량조합으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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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개신교가 고창군에 전해진 이래 이 지역에는 문헌상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신촌교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들이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교회는 개신교라는 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교파가 독자적인 교회 공동체를 형성해온 교단의 특성상 다양한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 고창군의 개신교 선교는 미국 남장로교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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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개신교가 고창군에 전해진 이래 이 지역에는 문헌상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신촌교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들이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교회는 개신교라는 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교파가 독자적인 교회 공동체를 형성해온 교단의 특성상 다양한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 고창군의 개신교 선교는 미국 남장로교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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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근대 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 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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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거짓 고변 희생자. 1733년(영조 9) 11월 4일 포도대장 신광하(申光夏)가 괘서사건에 대해 상소하였다. 신광하가 말하기를, “창원 사람 김계보(金繼寶)가 금년 8월 16일에 창평 땅에 갔는데, 태인 사람 홍구채(洪九采), 정읍 사람 김명신(金命信)·서정구(徐鼎九), 흥덕 사람 김팔기(金八起)·정제인(鄭齊仁), 부안 사람 김남역(金南繹) 등이 고만령(高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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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를 시조로 하고 윤임·윤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남원윤씨는 태사 윤신달의 8대손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를 시조로 한다. 고려 신종 때 복기남(卜奇男)의 난을 평정하고 남원백에 봉하여져 후손들이 남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창군에 있는 남원윤씨는 충간공파(忠簡公派), 문효공파(文孝公派)가 알려져 있다. 남원윤씨 고창군 입향조로 참봉을 지낸 윤임(尹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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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있는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등의 인물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덕천사는 1818년(순조 18)에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단종 폐위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3현만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복설하면서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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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있는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등의 인물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덕천사는 1818년(순조 18)에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단종 폐위 후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던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와 조윤옥(趙潤屋), 장조평(張肇平) 3현만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복설하면서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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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지역이 판소리사에서 매우 유서 깊은 고장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창은 전라도 지역의 보성, 남원, 구례, 순창, 전주, 광주 등과 같이 판소리사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기라성 같은 지역들과 나란히 놓았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판소리의 역사가 부여하는 특수한 의미 속에서 의연하게 판소리의 고향이자 성지로서 우뚝 서 있다. 이것은 김수영(金壽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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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183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수금리에서 태어난 뒤, 남원의 운봉과 경상도 안의(安義)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명창 최승학(崔昇鶴)과 동서간이다. 박만순(朴萬順)은 신재효(申在孝) 문하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배웠다. 당시 8명창으로 꼽히던 주덕기(朱德基)에게 판소리를 잠깐 배우다가, 당대의 명창 가운데 제일의 가왕(歌王)으로 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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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농악 상쇠 명인. 박성근은 190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태어났다. 쇠잽이 강성옥에게서 주로 쇠를 배웠고, 김성대에게 굿하는 법을 배웠다. 박성근은 특히 부포놀음에 매우 뛰어났고, 쇠가락뿐만 아니라 상쇠로서 굿판을 통솔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1900년대 이후 출생한 영무장[영광·무장·장성·함평 등의 지역] 지역 예인들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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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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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은 고부 농민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 고부에는 조선 후기부터 왕실 소유의 토지가 몰려 있었는데, 이를 관리하는 관리의 비리와 조세 운반을 맡은 전운사 조필영의 강제적인 세금 징수, 그리고 지역 관리의 비리 등으로 이 지역 농민들은 관리들에 대한 불만과 국가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1892년 4월 부임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악하고 가혹한 정치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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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암치리 선각석불좌상은 암치리 마을 앞산에 있는 석산 바로 옆에 우림정(友林亭)이 있었는데, 그 뒤의 암벽 아래에 높이 약 3m의 타원형 석판에 선각으로 조각한 것이다. 현재 우림정은 없어지고 담장 일부만 남아 있다. 암치리 선각석불좌상은 두께가 약 20㎝ 정도이고, 그 안에 원형의 두광을 지닌 석불좌상을 얼굴에서부터 신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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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척·이여상·이유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연안이씨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를 시조로 한다. 이무는 660년(무열왕 7)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안이씨 고창군 입향조인 이탕(李湯)은 좌의정을 지낸 이원발(李元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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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충효비. 의병장 일광(一狂) 정시해[1872~1906]는 면암 최익현의 휘하에서 활동하다 1906년(고종 10) 6월 총탄에 맞아 순국하여 1990년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정시해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부친은 정종택(鄭鍾澤)이며, 모친은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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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 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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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절사는 고려의 충신인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우이다. 장연우는 고려 현종 때의 대신으로,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흥성(興城)이며, 장유(張儒)의 아들로 영매(英邁)한 천품(天品)에 지략이 있고, 문학 또한 대성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 문과에 합격해 여러 요직을 거쳤다. 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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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절사는 고려의 충신인 장연우(張延佑)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우이다. 장연우는 고려 현종 때의 대신으로,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흥성(興城)이며, 장유(張儒)의 아들로 영매(英邁)한 천품(天品)에 지략이 있고, 문학 또한 대성하였다. 고려 성종 때에 문과에 합격해 여러 요직을 거쳤다. 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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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휘를 시조로 하고 오세영·오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함양오씨는 함양부원군 오광휘(吳光輝)를 시조로 한다. 입향조인 오세영(吳世英)의 손자 오익창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전공을 세워 임난공신으로 녹훈(錄勳)되었고, 오익창(吳益昌)의 아들 오전(吳晪)은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지냈으며, 이괄(李适)의 난과 병자호란(丙子胡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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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제가 고창 지역을 비롯한 호남 지역 의병을 토벌한 사건. 1909년 일본군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화에 반대하는 항일 의병 투쟁을 철저하게 진압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작전명 ‘남한폭도 대토벌 작전[호남 의병 대학살 사건]’ 이름으로 전라도와 그 외곽 지대에서 항일 의병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당시 순사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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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실재(實齋)·서명산인(西溟散人)·운포주인(雲浦主人)·산뢰노인(山雷老人)·월송외사(越松外史).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취은(醉隱) 황세기(黃世基)이고, 할아버지는 산촌(山邨) 황재만(黃載萬)이며, 아버지는 만은(晩隱) 황전(黃廛)이다. 황윤석(黃胤錫)은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