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인우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 장차 있을 국난을 예감하고 전라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일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12대손 김인우(金仁雨)는 양간공 김연(金璉)의 현손으로 1329년(충숙왕 16) 송도에서 태어나 공민왕 대에 홍건적을 물리쳐 호종...
-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용회(用晦), 호는 노계(蘆溪). 아버지는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낸 돈목재(敦睦齋) 김기서(金麒瑞)이다. 김경희(金景憙)는 1515년 지금의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 호동마을에서 태어났다. 1534년(중종 29) 식년시에 생원 3등 34위로 합격하였다. 이어서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김안로(金安老) 등의 농간으로 낙방하자 중종이...
-
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경삼(敬三), 호는 죽강(竹岡)이다. 1835년(헌종 1)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태윤(金泰潤)이다. 1854년 청도김씨와 결혼하였으며, 큰아들이 김재헌이다. 김기풍(金箕豊)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웠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언(君言), 호는 의촌(義村). 종종 조의 명필로 알려진 김경희(金景熹)가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정묘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한 김여성(金汝聲)이다. 김남식(金南式)은 어려서 가학(家學)으로 공부를 하다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9세 때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도호소사...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916년 6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349번지에서 김영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방수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잠시 연극을 했다가, 1942년 6월부터 다음 해 8월경까지 연극배우로 활동하였다. 당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극(民族劇)을 준비하였으며, 전라도의 고창과 장성 일대에서 독립운동...
-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매산(梅山). 증조할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김인우(金仁雨)이고, 아버지는 매은(梅隱) 김오행(金五行)이다. 김석원(金錫元)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1469년(예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녹사(錄事)와 통사랑(通仕郞)이 되었다. 계공랑(啓功郞)에 올랐을 때 예종이 승하하자 정희왕후의 명으로 익대순성명량훈(翼戴純誠明亮勳)을...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지(遠之), 호는 국재(菊齋). 집현전 학자 김양원(金暘元)이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참봉 김한련(金漢璉)이다. 김성진(金聲振)은 어려서부터 강개한 지기(志氣)가 넘치고 효행이 지극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고, 몰래 허벅지살을 떼어내 탕으로 달여 먹임으로써 주변의 찬사가 끊이...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이(遠而). 명필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창의의 일원으로서 정유왜란 소사 전투에 명장의 전공을 세운 좌랑 홍우(弘宇)이다. 김여성은 1564년(명종 19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건주(建州)의 오랑캐가 침입하자 사계(沙溪) 김장생...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96년 7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219번지에서 김양현(金亮鉉)의 2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완은 1919년 고종의 국장일을 앞두고 인산(因山)에 참여하고자 서울에 올라갔다가 3·1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하였다. 이후 뜻을 같이한 이용욱(李用郁), 김용표(金容杓), 김상수(金相洙),...
-
고려 후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김양감(金良鑑)의 11세손으로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의 현손이다. 김인우는 4남 중 맏아들이다. 매은공 김오행(金五行)이 김인우의 손자로, 고려가 망하자 선대의 유훈을 좇아 의리를 지키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김인우(金仁雨)는 전리판서(典理判書)와 왕명의 출납, 궁궐의 경...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순명(舜命), 호는 후석(後石)이다. 1882년 5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김기락(金箕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재관은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동문인 정휴직(鄭休直)·정건도(鄭建燾)·정휴익(鄭休益)·이병중(李秉重) 등과 함께 기삼...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서(公瑞), 호는 남계(南溪).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의 후예로, 이조판서 김호(金湖)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김중겸(金仲謙)이고, 어머니는 장흥임씨(長興任氏)이다. 김정(金珽)은 29세 때인 1555년(명종 10) 진사시 3등으로 합격하였다. 당대에 문장과 절효로 이름이 났으며, 충암(冲庵) 김정(...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용(伯容), 호는 백곡(白谷). 증조할아버지는 김명원(金命元)이고, 할아버지는 김기서(金麒瑞)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경희(金景熹)이다. 김홍우(金弘宇)는 일찍이 윤두수(尹斗壽)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행(文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1593년(선조 26) 전주에서 치러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경...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에 있는 김기성을 기리는 영당. 김기성은 현대 지사로, 호는 은암(隱巖),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석원(金錫元)의 후예 김상학(金相學)의 아들이다. 무장(茂長)의 주부(主簿) 여의(麗義)의 후예이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안빈호학(安貧好學)하여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던 성리학자 김수익(金秀益)과 고석진(高石鎭)을 스승으로 수학하였...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에 있는 김기성을 기리는 영당. 김기성은 현대 지사로, 호는 은암(隱巖),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김석원(金錫元)의 후예 김상학(金相學)의 아들이다. 무장(茂長)의 주부(主簿) 여의(麗義)의 후예이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안빈호학(安貧好學)하여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던 성리학자 김수익(金秀益)과 고석진(高石鎭)을 스승으로 수학하였...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창에서의 한문학은 고려 초에 본이 흥덕인 장연우(張延祐)에서 부터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시 중앙에 고창 인맥층이 두터워지면서 오세재(吳世才) 등 한문학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에 오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이 약해졌으나 유학이 진보를 거듭하여 김경희(金景熹), 김질(金質), 오희길(吳希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