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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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전라북도 고창군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며, 고인돌·판소리·농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고창갯벌은 2020년 8월 현재 세계자연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 중에 있다. 고창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 고창군은 유형·무형·자연 등의 모든 세계유산을 가진 한국 유일의 생태·문화·관광 도시가 된다. 또한 고창군은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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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고창군 관할 행정 기관. 1914년 3월 1일 부군(府郡) 폐합령에 따라 무장군과 흥덕군을 병합하였고, 비능률적인 행정 단위를 통폐합하여 천북면·천남면·오동면·산내면·고사면 일부를 병합하여 고창면, 고사면·수곡면을 병합하여 고수면, 오동면·오서면을 병합하여 오산면, 대아면·산내면을 병합하여 아산면, 일동면·이동면을 병합하여 무장면, 와공면·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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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읍. 고창이라는 명칭은 높고 넓은 들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고창면이라 하였고, 1955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고창면이 고창읍으로 승격되었다. 본래 삼한 시대에는 마한 땅의 모로비리국의 모이부곡(牟伊部曲)에 속하였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모량부리현에 딸렸으며, 통일 신라 시대인 757년(경덕왕 16)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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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고창읍 관할 행정 기관. 고창읍사무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과 관련된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시 천남면(川南面)과 천북면(川北面) 지역을 합쳐 12개 법정리의 고창면이 되었다. 면사무소가 설치된 시기는 대한 뚜렷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지만, 그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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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1600년대 초 고창향교(高敞鄕校)가 이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교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하여 ‘생교(生校)라고 불렀다. 그 외에는 ‘상교’·‘생교(生校)’ 로 불리다가, 조선 후기에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교촌(校村)’이라 하였다. 고창향교가 월곡리 학당동에서 1589년(선조 22)에 교촌리로 옮겨 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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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김수학은 1896년 5월 2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은행 목포지부장, 상공부 차관, 대한무진금융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고창군 갑구[고창면, 고수면, 무장면, 공음면, 상하면, 성송면, 대산면]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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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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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본래 ‘내고(內古)’라 불렸지만, 1950년대 후반 행정구역 조정 때 ‘내동(內洞)’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이후 1620년경 김홍우(金弘宇)의 셋째아들 김여진(金汝辰)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남면(川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내동(內洞)·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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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노동리에 갈대를 물고 나는 기러기[飛雁含蘆] 형상의 명당이 있어 노동(蘆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497년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이종(朴李宗)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남면(川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노동·등선리(登仙里)·성동리(城東里)·대양리(大暘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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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산리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선비 엄사안(嚴思安)이 유교의 가르침 중 사덕[四德: 言德功容]을 상징하는 ‘덕(德)’자를 따 ‘덕뫼’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또 마을 뒷산 서남쪽 언덕 너머에 불무혈이 있다고 해서 ‘불무골’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곳의 불기운처럼 마을에 덕이 넘쳐나기를 소망해서 지었다고도 한다. 고려 말기에 마을이 이루어졌다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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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덕정리에 큰 우물이 있어 ‘덕우물’ 또는 ‘덕정(德井)’이라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이 마을에 우물이 세군데 있었는데, 이 우물의 물을 마시면 덕인(德人)이 난다고 하여 ‘덕우물’이라 부른다. 1530년대에 여양진씨(驪陽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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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보도산(普道山) 아래 마을이 있어서, 그 산의 이름을 따서 ‘도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1554년대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이후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폐촌되었다가 1730년 경 예조참판 정택신(鄭宅臣)이 정착하면서 새롭게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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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교리에 돌로 된 다리가 있어 ‘독다리’ 또는 ‘석교(石橋)’라고 하였다 한다. 마을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임진왜란 전·후에 타지의 빈민들이 숨어 살던 곳이었으나, 차츰 조선 후기에 안정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교동(校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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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정리는 조선 전기에 ‘승산(昇山)’으로 불렸다가, 입상석불(立像石佛)이 웅덩이 아래 ‘추하(湫下)’에 묻혀있다고 해서 ‘석정(石汀)’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산간 마을로서 돌과 물이 많다고 하여 ‘석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뚜렷한 시기가 확인되지 않으나, 조선 중기에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침(曺琛)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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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의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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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성두리는 ‘성머리[城頭村]’로 불렸으나, 풍수 형국상 북두칠성의 중성공두(衆星拱斗) 형국이라 하여 ‘성두(星斗)’라고 이름을 바꿨다 한다. 지명을 개명하면서 웃뜸을 상성(上星), 중뜸을 중성(中星), 아랫뜸을 하성(下星)이라 하였다. 마을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 전기 고흥유씨(高興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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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이라 하면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첫 번째로 시장은 오일장이나 상설시장, 백화점처럼 구체적으로 상품을 사고파는 곳이다. 두 번째로 시장은 가격이 형성되는 추상적인 시장이다. 증권 시장, 노동 시장, 금융 시장 등이 여기에 속하며 주로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장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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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는 마을 형국이 ‘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신월’이라 부르고 있다. 애초에 ‘경방(京坊)’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려 중기에 고창오씨(高敞吳氏)의 시조 오학린(吳學麟)이 말년에 내려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흥리(新興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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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고창군의 역사. 고창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6, 잡지 제5 무량군편에서 “백제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을 신라 경덕왕 때 고창현(高敞縣)으로 고쳐 불렀다.”는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현재의 고창군은 신라 때에 고창현으로 무령군이 관할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창현이 되었고,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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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곡리는 방등산 서남향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산에 둥근 달이 솟아오르듯 큰 인물이 나오라는 기대를 갖고 ‘달실[月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700년대에 고흥유씨(高興柳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월리(新月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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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 하여, ‘월산’이라 부르고 있다. 뚜렷한 시기를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 후기에 창녕조씨(昌寧曺氏)와 김해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산정리(山亭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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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암리는 달밤에 바위 모양을 이루었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전에는 ‘정산(鼎山)’·‘검암(儉岩)’ 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마을 터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조선 중기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여흠(曺汝欽)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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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율계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과 밤나무가 많아 ‘밤계’·‘방계’ 또는 ‘율계(栗溪)’라고 하였다 한다. 조선 후기 동래정씨(東萊鄭氏)와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반리(新半里)·발막리(鉢幕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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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는 고창의 읍내가 되므로 읍내리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의 형성에 대한 뚜렷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백제 때에 모양성(牟陽城)이 축조된 이후 자연 발생적으로 여러 곳에서 이미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백제 때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양성의 형태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 고창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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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주곡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거미 형국이라하여 ‘거미(무)실’ 또는 ‘거미[蛛]’를 써 ‘주곡(蛛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562년 고흥유씨(高興柳氏) 석탄(石灘) 유운(柳澐)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평리(上坪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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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죽림리는 ‘대’[나무]가 많이 있어 ‘대산’ 또는 ‘죽림(竹林)’이라고 하였다 한다. 옛날, 마을에 ‘대’와 ‘삼’이 유명하여 ‘대삼마을’이라고도 불렀다. 1450년 경에 광산김씨(光山金氏) 김남협(金南浹)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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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의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과 상호 작용.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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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 역사.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1910년에 강탈당한 국가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진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완전한 주권 회복은 힘들게 되었다. 이후 1948년 8월과 9월 남북에서 별도의 정치 세력들이 각각의 단독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결국 한민족은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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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산리 앞에 꽃봉재가 있다. 꽃봉재 ‘화’자를 따서 ‘화산’이라 불렀는데, 처음에는 ‘화(花)’로 부르다가 ‘화(化)’가 좋다고 하여 ‘화산(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전에는 ‘놋점[놋새·鍮店]’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전에 놋점[놋새]으로 유명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촌된 이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