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에서 마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부곡리 마당바위」는 마당바위를 깨뜨려 버림으로써 요절이라는 재앙을 끌어들였다는 명당 훼손담이자, 도내기샘의 영험하다는 영천 유래담이다. 이를 「마당바위」라고도 한다. 노령산맥의 줄기인 고수면 부곡리 증산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져 내린 곳에 먼 옛날부터 높이 3m, 넓이 20m 가량의 널찍한 바위가 있었는데,...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근대 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 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세웅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김알지(金閼智)의 39대손 김시흥(金時興)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으로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해(金海)를 본관으로 하여 김수로왕계를 섬기고 김시흥계를 후김(後金)으로 여겨 오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혼돈이 초래되어 조선 현종 대에 이르러 시조는 달리하면서 본관은 같이하게 되었다. 조선 개국...
-
주권 상실기의 부호(富戶)[부잣집]들은 대체로 3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를 등에 업고 1900년대 초 이후 형성된 친일파 계통의 부호들이다. 둘째, 구한말 지방 지주들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대대로 부를 누리는 부호이다. 셋째, 국내의 자기 지방에서 부를 축적하고 근면과 성실로 일관하며 자신들에게는 구두쇠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던 부호이다. 이들은 인근의 주민들이...
-
주권 상실기의 부호(富戶)[부잣집]들은 대체로 3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제를 등에 업고 1900년대 초 이후 형성된 친일파 계통의 부호들이다. 둘째, 구한말 지방 지주들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대대로 부를 누리는 부호이다. 셋째, 국내의 자기 지방에서 부를 축적하고 근면과 성실로 일관하며 자신들에게는 구두쇠처럼 검소한 생활을 했던 부호이다. 이들은 인근의 주민들이...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역사학자·경제학자·정치가.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동암(東巖)이다. 1894년 2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반암마을 601번지[반암안길 33-9]에서 백낙규(白樂奎)[1866~1935]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경제에 관한 경제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한국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
-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불교 계통의 신종교. 원불교는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대각(大覺)으로 1916년 4월 창립된 한국의 신종교이다. 그 연원은 불법에 두되, 종교 개혁·인간 개혁·사회 개혁을 추구한다. 원불교의 기본 교리의 요체는 일원상(一圓相)·사은(四恩)·사요(四要)·삼학(三學)·팔조(八條)·사대 강령 등이다.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에 중앙총부를...
-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고부(古阜). 자는 대현(大顯). 문헌공(文獻公) 이경조(李敬祖)의 후손으로 판서를 지낸 이견의 5세손이다. 이대축(李大畜)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병이 깊어지자 변을 맛보고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했다. 상(喪)을 당해서는 3년간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시묘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진사시에 합격했...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군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제1차 침략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략이 정유년에 일어났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이때에 조국을 위기로부터 구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
-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군민의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과 체육 진흥에 관련된 모든 활동. 고창 지역의 체육도 다른 지방과 같이 학교 체육을 근간으로 하여 계승·발전해 왔다. 1919년 고창고등보통학교[고창고보]의 설립 이전에는 새끼줄을 똘똘 말거나, 돼지 오줌통에 공기를 넣어 만든 공으로 마을 주변 공터나 어귀에서 주민들이 편을 갈라 축구 경기를 하곤 하였다. 당시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