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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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라리는 무장읍내 고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로 칭하였다. 고라실 또는 고라라고 불린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정(安亭)·백양·온금·하거 각 일부, 일동면 원촌 일부, 와공면 송암(松岩)을 병합하여 고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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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3월 20일을 전후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가 열린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무장기포를 기념하는 행사로서, 올해[2009년]는 4월 25일에 기념제가 열렸다. 전날까지도 아주 따뜻한 봄날이었는데, 25일 오전부터 날씨가 굉장히 쌀쌀해져서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에 도착했을 때는 차가운 바람과 검은 구름이 하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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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에서 전승되어 온 공예품. 무장상자(茂長箱子)는 전통적인 색지 공예를 고장의 토산품으로 만든 대표적인 가내 수공업이다. 조선 말 고종 연간의 무장읍 내에 살았던 김영운(金永運), 김영휘, 김영보, 김열려 등의 형제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김영운의 고조인 김세홍(金世泓)은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무엇이든 잘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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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28일 고창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 일본은 1910년 국권을 강탈한 뒤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민족은 무단 통치 아래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교육과 종교도 탄압받았다. 또한 회사령으로 민족 자본가의 성장이 막히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도시의 노동자 또한 일본인 노동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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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185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송의호(宋義浩)와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찬은 1893년 동학 교단에서 신원 운동의 하나로 전개한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부터 무장 접주로 활약하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강경중(姜敬重)과 함께 1,300여 명의 동학 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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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신대리와 무장면 신촌리에 걸쳐 있는 개항기 동학 농민군의 숙영지.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3월 초에 해산하였으나, 고부 봉기의 조사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여 전봉준(全琫準) 등은 3월 20일경 무장에서 전라도 일대의 농민들을 모아 「무장포고문」을 발표하고 재봉기하였다. 이때 고부·태인·부안 등지를 점령한 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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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09년 사이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 청일전쟁 이후 중앙 정국의 동요 속에 국가 전체가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유생들이 중심이 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민중 봉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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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10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용욱(李庸郁)이다. 이용욱은 1919년 3월, 광무황제(光武皇帝)[고종]의 국장 참관 차 상경하여 서울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김영완(金永玩)을 만나 서울의 정황을 듣고, 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準求)·김진호(金辰鎬)·박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