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골탕 먹은 소금장수」는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를 통해 속임수를 잘못 쓰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교훈담이다. 이를 「소금장수 골탕 먹인 이야기」라고도 한다. ‘소금장구’란 소금장수의 사투리이다. 담뱃잎을 공짜로 얻으려다가 도리어 소금장수에게 있는 것까지 빼앗긴 정평구가 이를 만회하고...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당산에 쓴 명당」은 김제 출신인 정평구(鄭平九)가 친구를 돕기 위해 거짓 봉분을 세우고 명당자리를 얻었다는 풍수담이다. 정평구는 청렴결백한 친구를 위해서 거사(居士)를 만나 당산의 명당자리를 얻었지만, 아무리 명당이라고 할지라도 당산에 묘를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평구가 거짓 봉분을...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서 제주방죽 물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주방죽은 부량면 소재지에서 동남쪽 약 2㎞ 지점 월승리 명금산 아래 있던 옛 연못으로, 1925년 논으로 바뀌었으나 주민들은 지금도 이에 대한 기억과 정평구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물오리를 팔아먹은 정평구」는 제주방죽의 물오리를 두 번이나 팔아먹은 사기성공담이자 지략담이다. 이를 「제주방죽...
-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서 임진왜란 때 정평구의 활약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보물상자 이야기」는 왜적이 전라도를 공격하여 무주·진안·장수 지역까지 공격해 왔을 때, 정평구가 지략으로 왜적을 물리친 지략담이다. 이를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정평구는 보물 상자로 가장한 벌통으로 왜적을 혼쭐내고, 또한 벌통으로 가장한 화약통으로 전원을 몰살시켰다...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고현에서 부설거사와 묘화 부인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부설거사와 묘화부인」은 삼생연분(三生緣分)의 부설(浮雪)을 만나서 말을 하게 된 묘화(妙花)의 부부 운명담이며, 속세를 떠나지 않고도 불법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 부설의 재가성도담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월명암에 현재 소장되어 있는 「부설전(浮雪傳)」[전라북도 유형...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름난 거짓말쟁이」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가 속임수로 시골 양반들을 속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줌으로써 거짓말의 묘미를 보여준 재치담이다. 이를 「시골양반 골탕 먹인 이야기」라고도 한다. 지금도 부량면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정평구 같은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별호가 전해지게 된 것은 당시...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정평구의 후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삿날 잠자다가 벌 받은 불효」는 부량면 명금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와 관련이 깊은 이야기이다. 정평구는 「하늘을 나는 비거」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성심성의껏 제사를 지내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난 정평구의 혼령이 어린 손자를 죽게 만든 이후로 정씨 일가는 제사를 정성...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서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연벽과 벽골룡」은 벽골제와 관련된 많은 설화 중 특별히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趙連璧)에 대한 씨족시조전설이다. 또한 벽골제 수호신인 벽골룡의 부탁을 받고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변산의 청룡을 활로 쏘아 쫓아 주었다는 괴물퇴치담이다. 이를 「쌍용추(雙龍湫)와 벽골룡」이라고도 일컫는다. 전라북도 김...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비거(飛車)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늘을 나는 비거」는 부량면 명금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의 활약상을 담은 인물전설이자 비거를 제작했다는 발명담이다. 정평구는 조선시대 선조(宣祖) 때의 인물로서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庵全書)』 책...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인물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 지역의 주요 역사 인물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2년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36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문화원장의 발간사, 김제시장·김제시의회 의장의 축간사를 시작으로, 제1편 학자, 제2편 정치인, 제3편 종교인, 제...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호는 송학(松鶴).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 20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9세 때에 대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동관국승을 지내다가 외직을 거쳐 내직인 나시랑·예시랑에 영전되었다. 이후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돌아와 태상예빈 등을 거쳐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그 후 신병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장흥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집에 돌아...
-
조선 전기 신천강씨 김제 입향조. 본관은 신천(信川). 호는 봉호(鳳湖).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도첨의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右政丞)을 지낸 강숙(康叔)이고, 할아버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를 지낸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강윤(康允)이다. 강원기(康元紀)는 1348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의 본관은 현풍(玄風)으로, 1901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서 태어났다. 곽봉수(郭奉守)로도 불렸다. 곽경렬은 1915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에서 조직한 혁명...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동학농민운동가.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초명은 준상(峻相), 호는 용계(龍溪)이다. 동학교문에서는 김필상(金弼相)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김한기(金漢驥)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며, 동생은 김인상(金寅相)이다. 장남은 김홍구(金洪九)이며 손자는 김병욱(金炳旭)이다.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다. 김덕명은 금구대...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행정가. 김일식(金一植)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났다. 8·15해방 후 초대 광활면장을 역임하였다. 김일식은 1923년 일본인 재벌 아부방차랑(阿部房次朗)이 지금의 광활면을 간척지로 만드는 공사를 벌일 때 아버지를 따라 광활면으로 이사를 왔다. 광활면은 당시 동진강 하류의 개펄이었는데, 아부방차랑이...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5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서 태어난 김종철(金宗喆)은 1927년 음력 9월 말 자신의 집에서 조인현(趙仁賢)의 권유로 통의부(統義府)에 가입하였다. 통의부는 남만주에 본거지를 둔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서, 조인현은 당시 은행과 관공서를 파괴하여 부호들을 각성시키면서 군자금을 모금할 계획을 세우고 걸인으로 변장하여 폭탄과 권총을 갖...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자선가. 김천석(金千石)은 순조 때 지금의 김제시 백학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계에 대해서 밝혀진 기록은 없다. 그는 찰방(察房) 고씨의 머슴으로 있으면서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모아 이웃들이 가뭄이나 재난을 당할 때마다 식량을 고루 나누어 주는 등 인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손이 없던 김천석은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고잔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는...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 김홍섭(金洪燮)은 1915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태어나 196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죄수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인(囚人)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 ‘사도법관(使徒法官)’ 등의 칭호를 얻었다. 김홍섭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20세가 되던 1935년 전주로...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국화가. 나상목(羅相沐)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벽천(碧川)이다. 1924년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하는 등 산수화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나상목은 1939년 이리농림학교에 진학한 뒤 그림에 대한 재능을 나타내면서 독학으로 동양화 기법을 스스로 익혀 나갔다. 1945년 8·15해방...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농업 개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월암(月庵). 아버지는 나창일(羅昌一)이다. 나휘소(羅徽素)는 174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김제시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벽골제 내에 위치한 표박평(瓢朴坪)은 남쪽으로는 정읍시 감곡면 삼평리, 동쪽으로는 봉남면과 황산면, 북쪽으로는 김제시에 접하는 넓은 평야지만 용배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던 시절, 조금만 비...
-
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의승장(義僧將). 법명은 처영(處英)이고, 호가 뇌묵(雷默)이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이다. 뇌묵은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휴정은 팔도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승(義僧)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뇌묵은 김제 금산사를 중심으로 1천여 명의 승...
-
조선 후기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두릉(杜陵). 자는 경원(慶源), 호는 초당(草堂). 두만형은 1759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시사천리에서 태어나, 34세 되던 1792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향리 유생들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해박한 지식과 문장이 정조에게 알려져 어전시재(御前試才)를 하...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김제는 옛날부터 학문 대도를 걷는 많은 선비들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 문맥(文脈)은 오늘날에도 역량 있는 다수의 작가들이 배출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만경평야를 배경으로 향토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어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김제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대학자들이 많이 배...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춘보(春甫). 이조판서를 지낸 박초(朴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參奉) 박효량(朴孝亮)이다. 박영란(朴英蘭)은 지금의 김제시 검산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지냈으며,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장으로 의주 용만관까지 국왕을 호종하였다. 의...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화(孝華), 호는 신촌(薪村).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이(朴頤)이다. 박정영(朴廷榮)[1559~1592]은 지금의 김제시 흥사동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재종숙인 굴지당(屈指堂) 박석정(朴石精)에게 글을 배워 11살 때 『주역(周易)』을 알고 경전(經傳...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
조선 전기 김제 벽골제를 수축한 문신. 본관은 진원(珍原). 초명은 희종(熙宗), 자는 자인(子仁), 호는 위남(葦南).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박온(朴溫)이다. 박희중(朴熙中)은 생원으로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05년 이조좌랑이 되었다. 1406년(태종 6) 군자감승(軍資監丞)으로 전라도경차관(全羅道敬差官)에 임명되었다. 이어 세자부좌정자(世子傅左...
-
삼국시대 김제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부설은 경주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인내하는 사찰 생활과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등 수도 생활에 정진하여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 전라북도 김제시 및 김제시 외곽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역의 특성상 주로 전설적인 요소들이 강한 설화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벽골제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특이하게 비거를 만들었다고 하는 정평구와 관련된 설화가 채취되어 회자되고 있다. 김제 지역에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이 깊은 설화들이 많이 전해지고...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정치가. 윤제술(尹濟述)의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운재(芸齋)이다. 1904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앙청에서 태어났다. ‘일이관지(一以貫之)’와 ‘유성(惟誠)’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처럼 6선의 오랜 의정활동에서도 문교위원으로만 일관했고, 철저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몰두해 온 지조로 일생을 바쳤다. 윤제술은 7세 무렵 동네 서당에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은 1927년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이상운은 급우인 김구(金丘), 김봉수(金鳳洙), 장이규(張二圭), 박기춘(朴基春), 강동석(姜東錫), 김진수(金眞洙) 등을 규합하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상운은 화랑회 회원들과 함께 김제군 모악산에 있는 일본군...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희(李鍾熙)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66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희란 이름 외에도 이집중(李集中), 이인홍(李仁洪) 등의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조선의열단에 가입하고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1922년 3월 김익상(金益狀)·오성륜(吳成崙)과 함께 상해 황포탄(黃浦灘)에서 일본 육군대장 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도근(田道根)은 1880년 4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3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원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구월리에 살던 배세동(裵世彤)은 3월 13일 전주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도명(田道明)은 1872년 4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8번지[원평1길 205-5]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원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구월리에 살던 배세동(裵世彤)이 3월 13일 전주시장 독립 만세 운동에 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한조(鄭瀚朝)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거유 석정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향학열로 18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다. 구(舊) 학문만을 배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배워서 나라의 동량이 되어야 한다는 이정직의 가르침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공업전수학원에 입...
-
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壁)이다. 조기(趙岐)는 1255년(고종 42)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인 1273년(원종 13) 무과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강직한데다 무인답게 내유외강하여, 안으로는 부모에 지극한 효를 행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몽고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자 용감하게 참전하여 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서화가. 조기석(趙沂錫)의 본관은 김제(金堤), 호는 심농(心農)이다. 아버지는 당대 명필로 알려진 조주승(趙周昇)이다.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에 뛰어났으며 사군자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죽(竹)」이라는 제명으로 입선하였다. 묵죽도(墨竹圖)는 당시 김제를 중심으로 하여 석...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경안(景安), 호는 유천(瑜泉)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 사직단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돈(趙在敦)은 188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남의 귀감이 되었으며, 효성도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화숙(和叔), 호는 춘강(春岡)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농업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식(趙在軾)은 1898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한결같이 성의와 예...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서예가. 조주승(趙周昇)의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장일(章日), 호는 벽하(碧下)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이름난 조기석(趙沂錫)이다. 조주승은 어려서부터 예능에 대한 재주가 출중하였으며, 해서(楷書)와 사군자가 뛰어났다. 진(秦)·당(唐)·송(宋) 등 여러 나라 대가들의 글씨를 보고 수...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정치인. 조한백(趙漢栢)의 본관은 김제(金堤), 호는 월촌(月村)이다. 1908년 3월 30일 전라북도 김제시 명덕동에서 아버지 조두현(趙斗鉉)과 어머니 부령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조한백은 어려서부터 강직하고 영민하였다. 교직에 있을 때는 일제의 조선어 교육 폐지 사건에 항거하여 교사직을 사퇴하였다. 조국 광복 후 『대동신문』 전북지사장을 거쳐 초대...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국명(國明), 호는 운정(篔亭)이다. 고려 충숙왕조에 평장사를 지낸 문성공(文成公) 완산군(完山君) 최아(崔阿)가 비조(鼻祖)이다. 고려조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특진함경감사겸병마수군절도사(特進咸鏡監司兼兵馬水軍節度使), 순찰사(巡察使), 함흥부윤(咸興府尹) 등을 지낸 최진손(崔震孫)이 그 현조(顯祖)이다. 아버...
-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이자 독립운동가·정치가. 함태영(咸台永)의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이다. 1873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다. 1889년에 아버지 함우택(咸遇澤)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관(宣略將軍行龍讓衛副司官)에 제수되자 함께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조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