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임천(金任天)은 1872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敦), 제2차 의거에는...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태안(朴泰安)은 1898년 6월 14일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小舍)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은 황금정교회 장로 최용수(崔龍洙), 같은 교회 소사 한명수(韓明洙)와 함께 김...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현식(申鉉式)은 1873년 2월 2일[대구지방법원에서 발간한 재소자 신분 카드에는 1874년 2월 2일생으로 되어 있음] 김천시 양천동[당시 금릉군 감천면 양천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신현식은 5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1920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배일(排日) 지사를 모아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주로 하였던...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군명(李君明)은 1888년 2월 18일 김천시 남산동 17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군명은 1920년 음력 8월 10일 김천에서 차경석(車京石)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지역은 김천군 지례면 교동[현 김천시 지례면 교리],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충청도 계룡...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경갑(林敬甲)은 1891년 6월 28일 김천시 남산동 72-16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보여이다. 임경갑은 1920년 11월 김천에서 차경석(車京石)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지역은 김천군 지례면 교동[현 김천시 지례면 교리],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춘일(林春一)은 1882년 8월 6일 김천시 남산동 74-7번지에서 태어났다. 임춘일은 1920년 음력 11월 김천에서 차경석(車京石)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지역은 김천군 지례면 교동[현 김천시 지례면 교리],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충청도 계룡산,...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삼조(張三兆)는 1914년 1월 16일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 789번지에서 태어났다. 장삼조는 1931년 12월 12일 당시 김천군 아포면 국사동(國士洞)[현 김천시 아포읍 국사리]에서 김일조(金壹兆), 박갑천(朴甲天) 등과 일본군 수송을 방해할 목적으로 아포면을 통과하는 경부선 철도의 전선을 절단하고 신호대(信號臺)를 도로 위에...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응수(崔應洙)는 1901년 9월 28일 김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1월 제1차 김천면 시장 독립 만세 시위가 사전 발각되어 실패로 끝난 후, 3월 24일 오후 11시경 제2차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김천의 애국 청년 최응수를 비롯하여 김인수(金仁守)·김윤상(金允祥)·김영훈(金泳勳) 등이 김천면 욱정(旭町) 길거리...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명수(韓明洙)는 1893년 1월 1일 김천시 황금동 18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천면 황금정교회(黃金町敎會) 소사로 있던 27세의 한명수는 평양, 서울 등지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같은 교회 조사 김충한(金忠漢)과 대구에서 3·8 만세 운동에 참여한 계성학교[현 계성고등학교] 학생 김수길(金秀吉), 같은 교회 장로 최...
-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도석(黃道石)은 1899년 4월 25일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당시 개령면 동부동 동민들은 동부동 뒷산에서 3월 24일과 4월 3일·4일·6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제1차 의거에는 김태연(金泰淵)·허철(許喆)·전종수(全琮洙)·최영돈(崔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