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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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居昌彰忠祠 |
영어공식명칭 | Changchoongsa Shrine |
이칭/별칭 | 오충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창동로 167-11[대동리 14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종한 |
건립 시기/일시 | 1788년 - 거창 창충사가 사우로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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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2년 - 창충 사우로 사액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7년 - 거창 객사의 문루 이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거창 창충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거창 창충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거창 창충사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 142-3 |
성격 | 사당|사우 |
양식 | 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3칸[사당]|4칸[성암 서당] |
측면 칸수 | 1.5칸[사당]|1.5칸[성암 서당] |
소유자 | 거창 신씨 문중 |
관리자 | 거창 신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대동리에 있는 이인좌 난 때 다섯 충신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사당.
[개설]
거창 창충사는 1728년(영조4) 이인좌의 난[무신란(戊申亂)] 때 창의하여 반군을 무찌르는 데 힘을 쓴 이른바 오충신의 충의심을 추앙하고 오충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으로 오충사(五忠祠)라고도 한다. 오충신은 당시 향리였던 신극종(愼克終), 신석현(愼錫顯), 신덕현(愼德顯), 신치근(愼致勤), 신광세(愼光世) 등이다.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뒤 1788년(정조 12)에 사우를 세우도록 하였고, 1892년(고종 29)에 창충 사우의 사액을 내렸다. 이들 오충신은 후에 공조 좌랑(工曹 佐郞)으로 추증되었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창동로 167-11[대동리 142-3]에 있다. 거창군청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으며 김천으로 나가는 도로를 타고 창동로에 이르면 개봉 3교를 만나게 된다. 이 개봉 3교를 건너면 바로 좌측에 거창 창충사가 있다.
[변천]
1788년에 사액을 받고 건립하였고, 1917년에는 거창 객사의 문루를 이건하여 거창 창충사의 문루인 앙진루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 보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형태]
거창 창충사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 건물로는 사당인 거창 창충사와 강학 공간인 성암 서당, 그리고 누형식의 출입문인 앙진루가 있다. 건물의 배치는 직교하는 2개의 축선상에 3개의 주요 건물을 배치하였다. 대지의 가장 북쪽 중앙에 성암 서당을, 그 축선의 연장선상에 앙진루를 배치하였고 앙신루와 성암 서당의 중간쯤의 위치에서 직교하도록 축선을 두고 동쪽으로 거창 창충사를 위치시켰다. 서쪽에는 오충비를 세웠다. 거창 창충사는 사당으로서의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따로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을 설치하였다. 거창 창충사는 앙진루에서부터 담장을 둘러 경내를 확정하였으나 담장을 연장하여 외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경외 구역에는 효녀비, 창충사 신도비, 그리고 관리사가 있다. 모두 앙신루의 전면에 있으며 특히 오른쪽의 담장은 연장되어 관리사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구성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박공지붕이며, 내부는 3칸 모두 통칸으로 하여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이익공 양식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세 개인 삼량 구조이다. 성암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박공지붕이다. 평면은 좌측 2칸에 마루를, 우측 2칸에 방을 들인 구성이며 민도리 양식, 장여 수장집이다. 문루인 앙진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초익공 형식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으로 가구하였으며, 거창 객사의 문루를 이전한 것인 만큼 부재의 규격이 크다.
[현황]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거창 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서 공을 세운 이 지역 향리들의 역할과 성과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건축적으로도 조선 후기에 건립되는 서원과 사우의 건축 기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