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002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선사/석기,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송영진

[정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문자 기록이 없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를 통칭하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선사 시대는 사람이 살던 시대 중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한다. 따라서 거창 지역의 선사 시대는 거창 지역의 구석기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를 말한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는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 등을 통해 밝혀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밝혀진 거창 지역의 선사 시대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대개 높은 산과 큰 강을 끼고 있는 나지막한 언덕이나 넓은 모래땅 위에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는 하천을 따라 큰 마을을 이루며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거창 지역에서는 역사 시대로 전개되기 직전에 해당하는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어 이 시대에 대한 역사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구석기 시대]

거창 지역의 구석기 시대는 1988년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이 알려진 이래 3차례에 걸쳐 조사된 거창 정장리 유적에 의해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먼저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은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며,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세형 돌날 문화’의 석기 제작 전통을 보여 주고 있다.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으로부터 황강을 따라 북쪽으로 7㎞ 지점에 거창 정장리 유적이 있다. 거창 정장리 유적은 나지막한 하나의 구릉 위에 입지하고 있다. 거창 정장리 유적은 유사한 형태의 유물을 출토하고 있어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과 동일 시기의 문화로 파악되고 있다. 거창 정장리 유적에서 출토된 자료를 통해 보면 다양한 석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갈돌 석기 전통을 가진 석기 제작 기술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거창 지역의 신석기 시대를 보여 주는 자료는 주로 황강을 따라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적은 황강 중류에 해당하는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황강의 최상류에 속하는 거창 신원 예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먼저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황강 변의 모래땅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저장 구덩이로 생각되는 유구와 여러 점의 빗살무늬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대야리 일대는 황강에서 가장 넓은 충적 대지에 해당하고, 뒤쪽으로는 높은 산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지형은 선사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이곳 일대에는 많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거창 대야리 집자리 유적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거창 임불리 선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집자리 4동과 저장 구덩이 6기가 발견되었는데, 집자리는 지름이 2~4m 정도에 불과한 소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토기는 ‘침선, 점열, 압인, 압날’ 등의 방법으로 새긴 늦은 시기의 문양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거창 신원 예동 유적의 예에서 보면 큰 강뿐만 아니라 지류를 따라 깊은 골짜기까지도 진출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볼때 거창 지역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 늦은 시기에 큰 강의 모래땅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내륙의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가 되면 거창 지역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 역시 신석기 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황강을 따라 충적 대지 위에 주로 살았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 유적과 복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거창 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은 양평리·임불리·대야리 유적과 산포·무릉리·내오리 지석묘 등이 있다. 이 중 양평리 유적은 거창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시대 유구가 확인된 곳이며, 돌로 만든 화덕이 설치된 1호 집자리에서 청동기 시대 초기 사람들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또 양평리·임불리·산포·대야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좁고 긴 네모 모양의 집자리와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네모 모양과 둥근 모양의 집자리가 각각 확인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 갔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들이 남긴 무덤인 고인돌이 거창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거창 산포 유적에서 보이는 묘역을 갖춘 고인돌이 열(列)을 지어 축조된 대규모 고인돌군은 거창 지역 청동기 시대의 마을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한편 거창 지역에는 내오리 유적에서 보듯이 탁자식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거창 지역이 한반도 북쪽 지역의 청동기 문화와 남쪽 지역의 청동기 문화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지역임을 보여 주고 있다.

[초기 철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는 우리나라에서 기원전 400년 무렵부터 기원전 100년경에 해당한다. 철기가 도입되고, 청동기 생산이 고도화되며, 구연부에 점토대를 덧붙인 점토대 토기와 표면을 검게 간 검은색 간 토기가 사용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거창 지역에서는 아직 이 시대에 해당하는 분명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징]

거창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 사람들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살았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나지막한 구릉을 따라 살면서 다양한 기술 체계를 가지고 동일 지역에서 반복적인 석기 제작을 진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황강에 진출하여 살기 시작했으며, 강을 따라 형성된 모래땅 위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큰 강가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고지대까지 진출하여 살았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초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동일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살았으며, 고인돌과 토기 등을 통해 볼 때 북쪽과 남쪽의 청동기 시대 문화, 남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가 서로 공존하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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