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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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基弘 |
영어공식명칭 | Choe Gih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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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최기홍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최기홍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거주|이주지 | 최기홍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활동지 | 최기홍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북면 만세시위 참여자.
[가계]
최기홍(崔基弘)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할아버지는 최구현(崔九鉉), 아버지는 최덕순(崔悳淳)이며,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최기홍(崔基弘)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을 지휘하며 가평 읍내를 행진하였다. 3월 16일에는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주민들을 이끌고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가평경찰서에서 1차 신문을 마친 후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으며, 1919년 4월 26일 징역 8개월을 언도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 당하였고, 고등법원에서도 상고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