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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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弘福 |
영어공식명칭 | I Hongb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이홍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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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이홍복 북면 만세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2월 20일 - 이홍복 사망 |
출생지 | 이홍복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75 |
거주|이주지 | 이홍복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
활동지 | 북면 만세시위 전개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이홍복(李弘福)[1881~1945]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 275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을 인쇄해 거리에 붙이고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이홍복은 이에 찬성하여, 북면 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홍복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가평 읍내와 학교, 면사무소, 가평군청 등에서 만세시위를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 저녁 일본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가평경찰서에서 20여 일간 취조를 받았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가 4월 26일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홍복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