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5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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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人 |
영어공식명칭 | men of letter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릉 |
시대 | 현대 |
집필자 | 이홍섭 |
[정의]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했거나 창작 활동을 한 인물, 그리고 강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발표한 인물.
[개설]
문학가는 문인, 문학인 등과 상통하는 말로, 일정한 등단 절차를 거쳐 문학 창작 활동을 하는 전문 문인을 말한다. 시, 소설, 아동 문학, 문학 평론 등의 장르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을 통칭한다. 이 글에서는 강릉 문단의 특성을 고려하여 시인과 아동 문학가는 동인지와 문학 단체 중심으로, 소설가와 문학 평론가는 등단지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강릉의 시인]
강릉 현대시의 출발을 알린 시인으로는 강릉 사천면 노동리에서 출생한 김동명[1900~1968],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언론계에 투신했던 박기원[1908~1978], 강릉 출신으로 중국 용정에서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심연수[1918~1945] 등을 꼽을 수 있다. 세기가 바뀌는 1900년에 태어난 김동명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비애를 시로 잘 표현해냈고, 박기원은 어려운 시대에 굴하지 않고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했다. 심연수는 윤동주, 이육사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빛낸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기인 1952~1953년, 강원도 최초의 시 동인지 『청포도(靑葡萄)』를 간행한 황금찬, 최인희, 이인수, 김유진, 함혜련 등은 강릉 현대 시단의 형성에 초석을 놓은 시인들이다. 낭만적 서정시를 쓴 황금찬, 불교사상이 가미된 동양적 서정시를 쓴 최인희, 시의 외형적 형태에 관심이 많았던 이인수, 자연의 신비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김유진, 거침없는 활달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한 함혜련 등은 각자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보이며 후배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강릉 학생 문단의 활동은 전국적으로도 두드러졌다. 1952년 강릉사범학교 학생과 동문들이 참여한 문예지 『보리밭』이 간행되었으며, 강릉사범학교의 『사도(師道)』를 비롯하여 강릉 농업 고등학교의 『영동(嶺東)』, 강릉 상업 고등학교의 『대관령(大關嶺)』, 강릉 여자 고등학교의 『화부산(花浮山)』 등 많은 교지가 만들어졌다. 이들 교지에서 활동한 학생 문사들은 훗날 강릉 시단의 주역들로 성장했다. 강릉사범학교에서 황금찬, 최인희의 영향을 받은 신봉승, 삼척에서 태어나 강릉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의 정서를 시로 노래한 이성교, 고향 주문진 정서를 육화한 강우식 등이 이때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1960~1970년대에는 '청포도' 동인들의 영향과 학생 문단의 성장에 힘입어 1959년 '관동 문학회'가 창립되었다. 윤명, 원영동, 신봉승, 이영섭, 최명길, 박명자, 이충희 등 20여 명의 문인들이 이 단체에서 활동했다. 학생 문단의 활동도 계속 이어져 강릉 사범 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던 시인 윤명과 강릉 사범 병설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인 원영동의 영향으로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는 박명자, 이충희, 최명길, 엄창섭 등을 꼽을 수 있다. 교육계에 투신해 훗날 서울에서 활동한 이영섭은 19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사라져 가는 고향의 가치를 재탐색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이후 강릉 시단은 많은 시인들이 직장을 찾아 서울을 비롯한 타지로 떠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맞게 된다.
1980~90년대 강릉 시단은 1980년 '해안 문학 동인회'가 결성되고,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된 '바다 시 낭송회'가 활동하면서 다시 활기를 띄었다. 강릉 문인 23명이 참여한 '해안 문학 동인회'는 동인지 『해안』을 내면서 꾸준하게 활동을 펼쳤고, 신승근, 이언빈, 박기동, 이종린, 장병훈, 심경애, 심재상 등이 활동한 '바다 시 낭송회'는 강릉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강릉, 원주, 춘천, 삼척 지역의 여성 시인들이 모여 1981년 창립한 여성 시인 모임 '산까치'는 여성 문인들의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이외에도 1987년 결성된 '강릉 오죽 문학회', 1988년 결성된 '우림 문학회', 1994년 『열린 시』 창간호를 펴낸 '열린 시 문학회', 동인지 『섬』을 펴낸 관동 대학교의 '현상 문학 동인회', 강릉 대학교 문학 동아리 '미르월'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980년대 이후 문학 단체에 적극 참여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한 시인으로 정순응, 심재교, 이구재, 조영수, 구영주, 김찬윤, 조봉규, 공계열, 김인기, 김완성, 박소희, 홍승자, 민경대, 김학주, 이복재, 김경미, 주재남, 박성규, 유금옥, 유지숙, 이진모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문단 전체가 활력을 잃은 가운데 강릉 시단도 침체기를 맞았다. 시적 지향과 감각이 맞는 시인들끼리 모여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던 '동인지 시대'가 가고, 아예 홀로 독자적인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문학 단체에 소속되어 소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시인들이 늘어났다. 한국 문인 협회 강원 지회와 한국 작가 회의 강원 지회는 각각 기관지 『강원 문학』과 『강원 작가』를, 한국 문인 협회 강릉 지부는 기관지 『강릉 문학』을 매년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매년 꾸준히 발간되어온 관동문학회의 기관지 『관동문학』을 더하면 2000년대는 기관지 중심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여성 시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져 강원여성문학인회, 강릉여성문인회 등이 잇달아 출범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또한 강릉사범학교와 강릉사범병설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시인 윤명과 원영동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1996년 '강릉 사랑'이란 모임을 결성하고, 이후 2012년 '강릉 사랑 문인회'로 개칭하여 회지 『강릉 가는 길』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한편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시집을 낸 강릉 출신의 출향 시인으로는 강우식, 박세현, 박기동, 강세환, 박용재, 박용하, 이홍섭, 심재휘, 권현형, 김선우 등을 꼽을 수 있다.
[강릉의 소설가]
강릉은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깊은 관련이 있는 소설의 고장이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시의 고장으로 더 널리 인식되어 왔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런 인식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 초기 강릉은 소설의 고장답게 한국 소설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최근 '최초의 신소설'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서 노블[강릉 중앙 감리교회 제3대 목사, 1866~1945]은 강릉과 연관이 있다. 1909년 3월 1일자로 강릉 중앙 감리교회에 부임하여 1912년 3월 3일까지 근무했던 아서 노블은 단편 소설 「순이」[1902년]와 장편 소설 「이화」[1906년]를 썼다. 이인직의 「은세계」는 강릉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1908년에 쓰인 이 소설은 경금 마을[현 금산]의 최병도가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실전하는 판소리 「최병도 타령」의 대본이었으며, 1908년 11월 원각사에서 공연이 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연극 대본용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대 강릉 문단에서 소설가로는 서근배[1928~2007]가 있었다. 전라남도 목포 출신인 서근배는 1950년 『문예』를 통해 단편 소설로 등단했으며, 훗날 강릉 상업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강릉 문단에 영향을 끼쳤다. 서근배는 1975년 첫 단편집 『대관령』을 펴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강릉은 문인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학생 문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이때 활동을 기반으로 훗날 소설가가 된 학생으로는 196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학섭, 197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세준, 1978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한 정종명, 1980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한 홍성암 등이 있다.
197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박문구, 1980년 같은 신문 신춘문예로 최규익이 각각 등단했다. 또한 1987년 『예술계』로 이광식, 1997년 『문학 세계』로 류동희가 각각 등단했다. 강릉 출신의 출향 작가로는 서영은, 윤후명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강릉 사범 학교 출신인 서영은은 『사상계』[1968] 와 『월간 문학』[1969]]을 통해, 시인으로 활동하던 윤후명은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각각 등단했다. 1970~80년대는 강릉 출신의 많은 소설가들이 쏟아져 나와 문단의 주목받았다. 최성각이 『강원일보』 신춘문예[1976]와 『동아일보』 신춘문예[1986, 중편]에 당선되었고, 1983년 『문예 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던 김형경이 1985년 『문학 사상』에 중편이 당선되면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순원이 『강원일보』 신춘문예[1985]와 『문학 사상』[1988], 심상대가 1990년 『세계의 문학』, 김별아가 1993년 『실천문학』으로 각각 등단했다.
[강릉의 아동 문학가]
강릉의 아동 문학 열기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높다. 초창기 강릉 아동 문학계의 형성에는 김원기, 엄기원, 엄성기의 역할이 컸다. 김원기는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엄기원은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엄성기는 1970년 『월간 문학』에 동시가 당선되어 각각 등단했다. 1960년 아동 문학 단체로는 강원도 내에서 처음으로 '조악돌 아동 문학회'가 강릉에서 창립되었는데 초대 회장이 김원기, 2대 회장이 엄성기였다. '조약돌 아동 문학회' 회원은 이들 외에 권석순, 권영상, 김종영, 김철기, 남진원, 마석규, 박영규, 심복수, 심윤명, 이원수, 장영철, 전세준, 조영주, 최상헌, 최승학, 김완성, 김진광, 엄기원, 조무근, 최도규, 함영상, 홍광균 등 이었다. 이들은 강릉 아동 문학계뿐만이 아니라 강원 아동 문학 전체를 이끈 주역들이었다. 1984년 강릉시 교사 16명이 모여 창립한 '솔바람 동요 문학회'는 '조약돌 아동 문학회'와 함께 강릉 아동 문학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김원기, 엄성기, 김교현, 김진광, 심윤명, 이원수, 김병규, 김옥순, 김옥주, 김윤희, 박순정, 안미숙, 이규희, 이상진, 이향숙, 전정순 등이 창립 회원이었다. 1998년 회지 『솔바람』 축쇄 영인본이 발간되었는데 이때 활동 중인 회원은 공병호, 김교현, 김종영, 남진원, 박성규, 박순정, 박영규, 손석배, 엄성기, 유인자, 이원수, 이호성, 장영철, 전세준, 정태모, 조무근, 최갑규, 최정애, 이계자, 최운희 등 이었다. 이들 단체에 들지 않고 활동한 아동 문학가로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2001년 『월간 문학』에 동시가 각각 당선된 김동산과, 1921년 『동아일보』에 동시 「피꽃」을 발표하며 일찍이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나 1989년에야 첫시집 『다래 아가씨』, 1991년 두번째 시집 『염근수 시집』을 펴낸 염근수 등이 있다.
[강릉의 문학 평론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역 문단인 강릉에서는 문학 평론가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1956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추천된 김종후, 1958년 『현대 문학』에 평론이 추천된 김운학은 모두 탄허 스님이 만든 '오대산 수도원' 출신으로 당시 지역에서는 드문 문학 평론가였다. 김종후는 교통사고로 일찍 운명했고, 승려였던 김운학은 '관동 문학회' 창립에 참여하는 등 강릉 문단에 영향을 끼쳤다. 훗날 일본 고마자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운학은 불교 문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1980년대 이후 강릉 문단은 지역 대학에 재직한 교수들에 의해 평론이 어느 정도 활성화 되었다. 가톨릭 관동 대학교 교수로 시 창작과 평론 활동을 겸한 엄창섭,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강릉 원주 대학교 박호영, 가톨릭 관동 대학교 교수로 시 창작과 평론 활동을 겸한 심재상 등을 꼽을 수 있다. 강릉 출신으로 강원 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서준섭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이홍섭, 심은섭, 김정남 등이 평론들을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