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5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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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耆老草書-李羣玉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죽헌동 20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호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월 4일 - 황기로 초서 - 이군옥시, 보물 제1625-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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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황기로 초서 - 이군옥시, 보물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죽헌동 201] |
성격 | 서예 |
작가 | 황기로 |
서체/기법 | 초서 |
소유자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 |
관리자 |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군옥의 시를 황기로가 초서로 쓴 서예 작품.
[개설]
황기로 초서 - 이군옥시는 황기로(黃耆老)[1525~1575]가 쓴 서예 작품으로 2010년 1월 14일 보물 제162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16세기를 대표하는 명필 황기로가 당나라 시인인 이군옥(李羣玉)의 오언 율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황기로는 조선 전기의 서예가로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鮐叟), 호는 고산(孤山)·매학정(梅鶴亭)이다.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한 뒤 고향에 은거하여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불렸다. 『근묵(槿墨)』 등에 진적이 전하며, 『동국 명필(東國 名筆)』·『대동 서법(大東 書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 이밖에 1549년 이백(李白)의 「초서가행(草書歌行)」을 쓴 초서 필적이 석각되어 전하는데, 당나라 회소(懷素)[725~785]의 『자서첩(自敍帖)』 중 광초(狂草)를 방불케 한다. 금석으로 충주의 이번 신도비(李蕃 神道碑)[1555]가 있다.
황기로는 조선 시대 서예사에서 초서로는 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제1인자라는 평을 받아왔으며,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풍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낙동강 지류 천보탄(天寶灘) 가에 매학정(梅鶴亭)을 짓고 살던 처사(處士)로서 회소의 방일한 초서를 애호하고 또 회소를 바탕으로 독특한 서풍을 보인 명나라 동해옹(東海翁) 장필(張弼)[1425~1487]을 따랐다.
황기로 초서 - 이군옥시는 황기로의 사위 덕수 이씨 옥산(玉山) 이우(李瑀)[1542~1609, 율곡 이이의 동생]의 후손인 이장희(李璋憙)[1909~1998]가 수집·보관하던 것으로, 2008년 9월 그의 장손 이창용이 율곡 관련 자료 566점을 강릉시 오죽헌 시립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함께 기증된 것이다.
[형태 및 구성]
규격은 전체 세로 120.0㎝, 가로 62.6㎝이고, 서면(書面) 세로 99.5㎝, 가로 52.6㎝이다. 재질은 종이에 먹[紙本墨書]이며, 판종과 형식은 필사본에 축장(軸裝)이다. 하단 부분의 몇 글자는 탈락되어 있다.
[특징]
황기로 초서 - 이군옥시는 회소와 장필을 배워 활달하고 운동세가 많은 획법과 변화로운 짜임을 잘 구사한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황기로의 묵적 가운데 대폭(大幅)이며 그의 필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매우 귀중하며, 16세기 서예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