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427 |
---|---|
한자 | 李郁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나각순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58년 - 이욱 출생 |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19년 - 이욱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33년 - 묘비 세움 |
조성 시기/일시 | 1681년 - 묘표 세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2월 5일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지정 |
현 소재지 | 이욱 묘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 |
성격 | 능묘 |
양식 | 쌍분(雙墳) |
관련 인물 | 이욱|인인건|이한손 |
소유자 | 광평대군파 종중 |
관리자 | 광평대군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욱(李郁)의 무덤.
[개설]
이욱[1558~1619]의 자는 질부(質夫), 호는 팔계(八戒)로 아버지는 현감 이인건(李仁健), 할아버지는 군수 이한손(李漢孫)이며, 정안부정(定安副正) 이천수(李千壽)의 증손으로, 어머니는 청송심씨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천거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이 되었고, 돈녕부에 전직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도에 있다가 이듬해 분호조좌랑이 되어 가산(嘉山)의 병량보급을 관할하였다. 함흥통판을 거쳐 1604년 안음현감을 지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대동법 실시를 위하여 선혜청(宣惠廳)이 설치되자 낭관이 되었고, 1610년 봉산군수가 되었다. 1611년(광해군 3년)에 체직되어 돌아왔으며, 1613년 이후로는 문을 닫아 찾아오는 손을 거절하고, 광주(廣州)의 선영 아래에 은거하면서 서울에는 발길을 끊어버렸다. 1619년(광해군 11) 7월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향년 62세였다. 뒤에 아들 이후원이 재상이 됨에 따라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진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
[위치]
광평대군파 묘역 내 남동단 태화복지관과 접한 곳에 있다. 북측으로 이천수(李千壽) 묘와 접해 있다.
[형태]
묘는 쌍분(雙墳)이고, 좌향(坐向)은 서남향이다. 묘표·묘갈·혼유석·상석·향로석·망주석·문석인 등을 갖추고 있으며, 묘표는 원수형(圓首形) 3면비이다. 묘갈은 옥개형 1면비이다.
[금석문]
묘표의 앞면에 ‘유명조선국증영의정완산부원군행봉산군수이공휘욱지묘 증정부인장수황씨부좌(有明朝鮮國贈領議政完山府院君行鳳山郡守李公諱郁之墓 贈貞夫人長水黃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입석연대는 ‘숭정신유(崇禎辛酉)’로 1681년에 세워졌다. 묘표 크기는 비신 56×124×23.5㎝, 비좌 110×65×35㎝이다.
묘갈은 비신 상단에 전서로 ‘증판서완산군이공묘비명(贈判書完山君李公墓碑銘)’이라고 새겼다. 비문은 신흠(申欽)이 짓고,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김상용(金尙容)이 두전(頭篆)하였다. 입석연대는 ‘숭정육년계유월일(崇禎六年癸酉月日)’로 1633년에 세워졌다. 묘갈 크기는 옥개석 137×74×42㎝, 비신 92×179×25㎝, 비좌 143×84×54㎝이다. 그리고 그의 묘지명(墓誌銘)이 『국조인물고』 권51에 전하여 행적과 가족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묘역과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묘표와 묘갈이 갖추어져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묘제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