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17
한자 完南府院君李厚源墓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산39-1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598년 - 완남부원군 이후원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60년 - 완남부원군 이후원 사망
이장 시기/일시 1685년연표보기 - 광주 세촌(細村) 금성산(金星山)
조성 시기/일시 18세기
이장 시기/일시 1714년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산39-3번지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서울특별시 기념물 재지정
현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산39-3 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이후원
봉분 크기/묘역 면적 15,291㎡
소유자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완남부원군 종회
관리자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완남부원군 종회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기념물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있는 완남부원군 이후원(李厚源)의 무덤.

[개설]

광수산 앞 언덕 너머 대모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은 토지면적 15,291㎡ 가운데 2,039.6㎡와 분묘 1기, 석물 8기를 포함하여 2009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완남부원군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완남부원군 이후원과 증정경부인 광주 김씨 및 정경부인 영월 신씨의 묘역, 이후원의 장증손인 이섭(李涉)과 증정부인 안동 김씨 및 증정부인 파평 윤씨의 묘역, 이후원의 장현손인 이현록(李顯祿)과 정부인 안동 권씨의 묘역, 이후원의 차현손인 이현복(李顯福)과 숙부인 남원 윤씨의 묘역이 같이 있다. 이후원의 묘역은 현종 1년(1660) 조성된 초장지 경기도 금천(衿川) 일직촌(一直村) 삼석산(三石山)에서 1685년 광주 세촌(細村) 금성산(金星山)을 거쳐, 숙종 40년(1714) 현재의 위치인 광주 지곡자(池谷子)로 이장되었다.

4기 모두 봉분을 중심으로 상석·향로석·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후원 묘역에는 신도비·묘갈·주준석(酒樽石)·해치석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봉분 주변으로 호석을 두르고, 해치상이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신도비는 1682년 송준길이 비문, 송시열이 추기를 짓고, 당대의 명필인 행돈녕부사 이정영(李正英)이 글씨를 썼으며, ‘우재상국이충정공묘표(迂齋相國李忠貞公墓表)’라고 쓴 두전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비는 1685년 이장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당대 이름난 학자와 명필들의 글과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후원[1598~1660]은 광평대군의 7세손으로,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이며, 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며, 어머니는 판서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오늘날 강남구 수서동 일대인 광주군 대왕면 궁촌에 살았다.

인조반정 때 정사공신 3등으로 완남군에 봉해졌으며, 태인현감을 지냈다. 이괄의 난 수습에 기여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 총융사가 되어 포로를 다수 포획하였고, 단양·태안 군수를 거쳐 한성부서윤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청에 결사항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1644년 심기원의 역모를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1650년 효종의 북벌계획에 전함 200척을 준비하는 등 적극 참여하였다. 한성부 판윤·이조판서·우의정·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송시열·송준길 등을 발굴하여 중앙 정계에 중용하는 등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668년(현종 9)에 시호 충정(忠貞)이 내려지고, 1685년(숙종 11)에 광주 수곡서원에 제향되었다.

[위치]

이후원의 묘는 강남구 자곡동 산39-3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남쪽 대모산 기슭을 넘어 보금자리주택 부지에 있다. 서울도시철도3호선 수서역에서 세곡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못골마을 진입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주택이 끝나는 지점에서 북측으로 나 있는 소로가 있는데, 그 북쪽 산기슭에 묘가 있다.

[형태]

묘는 단분합장(單墳合葬)으로 봉분에는 호석이 둘려져 있다. 묘표·혼유석·상석·향로석·준석(樽石)·망주석·해치석·신도비 등의 상설을 갖추었다.

[금석문]

상설 중 묘표는 옥개형 3면비로, 비신의 전면에 ‘유명조선우재상국완남부원군충정이공휘후원지묘(有明朝鮮迂齋相國完南府院君忠貞李公諱厚源之墓)’라고 새겨져있으며, 좌측면에는 ‘증정경부인광주김씨부좌(贈貞敬夫人光州金氏祔左)’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은 이후원의 차남 이선(李選)이 썼는데, 이후원의 가계와 역임한 관직 및 그의 활약상과 묘표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인적사항과 건립연대 등이 새겨져 있다. 묘표의 크기는 옥개석 90×70×31㎝, 비신 46×138×29㎝, 비좌 93×70×35㎝이다. 상석 아래에 있는 향로석 정면에는 ‘完南李忠貞公墓(완남이충정공묘)’라고 새겨져 있고, 우측면에는 이후원의 조상인 무안 대군·광평대군·영순군 등의 묘가 광수산 헌릉 뒷 기슭에 위치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좌측면에는 이후원과 광주 김씨의 생몰년과 이장 경위 등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묘역과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왕실 묘역의 형태를 살필 수 있으며 1685년 이장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신도비에는 당대 이름난 학자와 명필들의 글과 글씨를 확인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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