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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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廣州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우용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1920년대~30년대 민족해방운동은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두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이 두 흐름은 다시 민족해방운동의 이념, 방법, 주도세력 등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3.1운동 이후 일제의 민족분할통치는 민족해방운동 진영 내부의 분열을 한층 촉진하는 구실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2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참정권 청원 운동이나 자치운동을 모색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의 우경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연합하여 우경화한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배격하고 통일된 민족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 신간회였다. 전국적으로 150여 개의 지회가 조직되었으며 회원은 4만 여명에 달했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포괄하는 신간회 광주지회는 1927년 8월 24일에 설립되었는데, 회원의 총수는 알 수 없다.
[설립 목적]
민족해방운동 진영 내의 좌우대립을 극복하고 타협적 민족주의를 배격하여 통일된 민족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27년 8월 24일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남한산소년회관에서 설립대회를 개최하여 회장 한순회(韓順會), 부회장 석혜환(石惠煥), 총무간사 한철기(韓哲基), 유인목(兪仁穆), 허범(許範), 김상환(金尙煥), 한백호(韓百鎬) 등을 선출하였다. 1928년 12월에는 지회장을 석혜환(石惠煥)으로 개선하였으며, 1929년 12월에는 조직 개편에 따라 유인목(兪仁穆)이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30년 말부터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하자 이 해 1월 신간회를 고수하고자 하는 회원들이 광흥(廣興) 지회로 개편하고자 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금지되었고, 1931년 5월 신간회가 해소되면서 지회도 소멸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족단일당으로 결성된 신간회의 지방 지회들은 지역 주민의 생활상의 요구를 반일 민족운동으로 전환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지회마다 회원들의 이념 성향이나 조직화 수준이 달라 지회 운동은 큰 편차를 보였다. 광주지회의 경우 군민(郡民)에 대한 이원(吏員)의 빈번한 폭행과 부정행위에 대해 항의하거나 소비조합 설치, 미신 타파와 문맹 퇴치 운동 등의 지역 주민 계몽 운동 등에 주력하였다. 1929년에는 원산 총파업에 지지서한을 발송하고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등 다른 지회들과 비슷한 활동을 벌였으나 경찰은 지회장 석혜환(石惠煥)을 체포하고 후임 집행위원장 유인목(兪仁穆)의 가택을 수색하는 등으로 탄압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광주지회는 일제하 서울 강남구 지역의 민족운동 단체로서는 최대 규모였고,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인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