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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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耆煥 |
영어음역 | Seong Gihwan |
이칭/별칭 | 경문(敬文),경은(耕隱)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자선사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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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
성별 | 남 |
생년 | 1873년 |
몰년 | 1951년 |
본관 | 창녕 |
대표경력 | 성균관박사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자선사업가.
[개설]
창령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23세손이고, 할아버지는 성덕후(成德厚)이며, 아버지는 성예하(成禮夏)이다. 부인으로는 밀양박씨인 박철진(朴喆鎭)의 딸과 곡산연씨[1907~1948]이다.
[활동사항]
성균관박사를 역임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손에 자랐다. 근검 절약 정신이 뛰어났는데, 밀양박씨 부인도 베를 짜며 내조하였다. 내외가 쌀 한 톨과 실 한 타래도 소중히 여겼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자선 사업에 힘써 지역 발전과 지역민들의 복리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선영의 묘를 보살피는데 힘썼고, 작은 집에 살면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곡(錢穀)과 토지를 나누어 주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1,000원이라는 거액을 내놓아 세금을 덜어 주었으며, 징수를 폐지하는 감조체세(減租替稅)까지 하였다. 1951년 향년 79세로 사망하였으며,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어래산(御來山)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성기환의 감조체세와 자선 사업에 감복한 향리 사람들이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국도변에 ‘사인성기환구휼불망비(士人成耆煥救恤不忘碑)’라는 자혜비(慈惠碑)를 세웠다. 비에는 “능히 저축하고 능히 풀어서 즐겁게, 착하게, 좋아하게, 올바르게 하였네. 전답을 나누어 주고, 농사를 짓게 하며, 세금을 덜어 주고, 징수를 폐지하여 한 지방에 복덕성이었네. 천 가구가 활불 받고, 이로써 비에 칭송하여, 오랜 세월 이끌리라(能積能散 樂善好義 分田制農 減租替稅 一方福星 千家活佛 碑以頌之 永世不汲)”는 글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