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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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振民 |
영어음역 | Ha Jinmin |
이칭/별칭 | 지비당(知非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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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569년 |
몰년 | 1619년 |
본관 | 진양 |
대표관직 | 훈련원주부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지비당(知非堂). 5대조는 동지중추부사 하우명(河友明), 고조부는 옥과현감 하철행(河哲行), 증조부는 통덕랑 하영담(河永淡), 할아버지는 하승세(河承世), 아버지는 전라도수군절도사 하덕록(河德祿)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로 이덕승(李德承)의 딸이다. 아들은 셋으로 첨지중추부사 하변(河汴), 하흡(河潝), 첨지중추부사 하윤(河胤)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병이 음성을 침입하여 생극면까지 들어왔다. 이때 김선경(金善慶)의 부인 성주이씨가 딸을 데리고 생극면의 수리산으로 피난을 하였는데, 왜적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부인을 희롱하였다. 무장(武將)이던 하진민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분개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이씨 부인은 하진민에게 백배 사례하고 딸을 아내로 삼아주기를 간청한 후 자결하였다. 하진민은 자결한 부인을 안장한 후 송곡(松谷)에 있는 본가에 알렸다. 조정에서 그 충의를 가상히 여겨 음직으로 훈련원주부의 벼슬을 내렸다. 1619년(광해군 11)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무장골에 묘소가 있다. 이곳에 이름이 없었는데 무장이 묻힌 골짜기라 하여 이때부터 무장골[武將谷]로 불린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비내 뒷산 오장산(吾將山) 밑에 지천당(知川堂)이라는 사우가 지어졌다. 매년 음력 10월 16일에 향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