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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93
한자 朴世成
이칭/별칭 만기(萬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1년연표보기 - 박세성 생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박세성 사마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71년연표보기 - 박세성 졸
부임|활동지 박세성 부임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반남(潘南)
대표 관직 양주 목사

[정의]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도봉산 기슭에 세거한 명문 반남 박씨 집안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서윤을 지낸 박응천(朴應川)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다. 아버지는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한 공으로 6품직인 장예원 사평에 특별히 제수된 박환(朴煥)이고, 어머니는 부호군 임선(林宣)의 딸인 부안 임씨(扶安林氏)이다. 부인은 관찰사 송시길(宋時吉)의 딸인 여산 송씨(礪山宋氏)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박태도(泰道), 박태적(泰迪), 박태규(泰逵), 박태원(泰遠)이며 둘째 사위는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한 유명뢰(兪命賚)이다.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한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을 저술한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와 당내 간 혈족이다.

[활동 사항]

박세성(朴世成)[1621~1671]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뽑히고 3년 뒤 알성 문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승문원 부정자에 보임되고, 이후 천거 받아 예문관 검열이 되었으며, 승진하여 봉교에 올랐다. 1653년(효종 4) 시강원 설서를 겸한 후 성균관 전적에 제수되고 사헌부 감찰, 사간원 정언으로 여러 번 옮기다가 사서, 지평, 장령, 필선, 군기시정, 보덕, 헌납을 두루 역임하였다.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오르고는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인 삭녕 군수를 지냈다.

1660년(현종 1) 자의 대비(慈懿大妃)의 복제 문제와 관련하여 훗날 도봉 서원에 배향된 송시열(宋時烈)과 대립적인 견해를 표출하다가 관작을 삭탈당하고 문외 출송(門外黜送)되기도 하였다. 이후 복직하여 1665년(현종 6)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남양 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우부승지, 호조참의 등을 지냈다. 1670년(현종 11)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속해 있던 경기도 양주목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박세성의 양주 목사 재임 시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다.

[학문과 저술]

1800년대 초반 박세성의 4세손인 돈암(敦巖) 박종경(朴宗慶)이 양주에 은거하면서 ‘전사자(全史字)[돈암인서체자(敦巖印書體字)]’라는 금속 활자 20만 자를 동으로 주조하고 일가의 유고집을 간행하였다. 그중 5대 이하의 유고를 모은 『반남 박씨 오세 유고(潘南朴氏五世遺稿)』가 있는데, 여기에 박세성의 시 180수를 비롯한 시문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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