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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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泗川睦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집필자 | 이현욱 |
[정의]
목효기를 시조로 하고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묘역이 있는 성씨.
[개설]
사천목씨(泗川睦氏)는 641년 당나라 출신 목충(睦沖)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목효기(睦孝基)를 시조로 한다. 고려 시대에는 목충, 목인길(睦仁吉), 목자안(睦子安) 등이 왜구 평정에 공을 세웠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선조 대에 대사간·도승지를 지낸 목첨(睦詹)과 그 아들들인 효종 대 지중추부사를 지낸 목서흠(睦敍欽), 호조참판과 도승지를 지낸 목장흠(睦長欽), 예조참의를 지낸 목대흠(睦大欽) 형제가 있고, 또 숙종 대 좌의정을 지낸 목내선(睦來善) 등이 고관으로 현달하였다.
[현황]
조선 시대 사천목씨의 명성에 비하여 인구가 적다.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2000년 현재 도봉구에 거주하는 사천 목씨는 76명이다. 그러나 이 인구가 도봉구의 사천목씨 묘역과 관련되어 있거나 세거해 온 것은 아니다. 도봉구 지역에는 사천목씨의 집성촌이 없다. 그러나 경기도 용인 등지에는 일부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관련 유적]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일대에 사천목씨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 선대(先代)인 목진공(睦進恭)의 묘를 현재의 위치에 쓰고 목진공의 6세손인 목서흠과 그 이하 여러 후손들의 묘를 쓰면서 지금과 같은 묘역이 조성되었다. 목진공 묘표의 ‘선덕 병오 사월 일(宣德丙午四月日)’ 명문으로 보아 1426년(세종 8)경부터 방학동 지역에 묘를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성 판윤을 지낸 목진공, 목진공의 6세손인 목서흠과 그의 두 손자 목임기·목임일, 목임일의 아들 목천현 등의 묘가 있다. 묘역 서쪽으로는 사천목씨 영단(靈壇)이 마련되어 6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묘역의 인근에 사천목씨의 재실(齋室)인 모현재(慕賢齋)가 있다.
묘역의 초입에 세워진 영단에는 시조 목효기 이래 6세의 단을 세웠는데, 묘가 모두 북한 지역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좌측부터 요무장군 신호위 정용낭장(耀武將軍神號衛精勇郎將) 목손검(睦孫儉)과 의인(宜人) 창원 박씨, 중현대부 흥위위 대장군(中顯大夫興威衛大將軍) 목군경(睦君慶)과 숙인(淑人) 영월 신씨, 금자광록대부 영주수 합문지후(金紫光祿大夫靈州守閤門祗侯) 목덕창(睦德昌), 요무장군 낭장 동정(耀武將軍郎將同正) 목효기, 정순대부 보문각 직제학(正順大夫寶文閣直提學) 목준평(睦俊平)과 숙인 복흥 송씨, 성균관 진사 목충달(睦忠達)과 유인(孺人) 김해 김씨의 단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