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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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潤彦夫婦墓碑 |
이칭/별칭 | 조선 가선대부 용양위 호군 최공 휘 윤언지묘(朝鮮嘉善大夫龍讓衛護軍崔公諱潤彦之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 외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혜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3월 9일 - 서울 초안산 분묘군 사적 제44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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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서울 초안산 분묘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 외~노원구 월계동 산8-3 외 |
성격 | 묘비 |
양식 |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
관련 인물 | 최윤언(崔潤彦)|최경식|유한지(兪漢芝)|백홍규(白弘圭) |
재질 | 오석(烏石) |
높이 | 62㎝ |
너비 | 68㎝ |
두께 | 29㎝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서울 초안산 분묘군]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있는 조선 시대의 문신 최윤언과 부인의 묘비.
[개설]
최윤언(崔潤彦)의 가계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다만 최윤언 부부 묘비에 의하면 최윤언이 용양위 호군(龍讓衛護軍)을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진주 강씨(晉州姜氏)로서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다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치]
최윤언 부부 묘비는 묘소 앞에 세워져 있다. 최윤언 부부 묘소가 위치한 서울 초안산 분묘군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202-1 일대와 노원구 월계동 산8-3 일대에 걸쳐 있다. 구체적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의 극동 월계 아파트가 뒤쪽으로 약 100m 정도 올라간 곳에 최숙동(崔淑仝)의 묘소가 있으며, 그 북서쪽으로 능선을 넘어가면 홍응하(洪應夏)의 묘가 있고 그 위쪽이 최윤언 부부의 묘이다.
[형태]
묘비의 형태는 비두(碑頭)가 없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으로 비신(碑身)과 비대(碑臺)가 분리되는 형태이다. 비신은 너비 51㎝, 높이 125㎝, 두께 29㎝이며, 비대는 가로 68㎝, 높이 62㎝, 폭 29㎝로 특별한 문양(紋樣)은 없다. 묘비의 재질로는 품질이 좋은 오석(烏石)이 사용되었다.
[금석문]
묘비의 찬자(撰者)는 최경식이며, 전면은 유한지(兪漢芝)[1760~?]가 팔분(八分)으로 썼고 비음(碑陰)은 백홍규(白弘圭)가 썼다. 유한지는 조선 후기 문인으로서 본관은 기계(杞溪), 자(字)는 덕휘(德輝), 호(號)는 기원(綺園)이다. 영춘 현감(永春縣監)을 지냈으며, 전서(篆書)와 팔분을 특히 잘 썼다. 백홍규는 최윤언의 조카사위라고 알려져 있다. 묘비의 전면에는 예서(隸書)로 ‘조선 가선대부 용양위 호군 최공 휘 윤언지묘 정부인 진주 강씨 부좌(朝鮮嘉善大夫龍讓衛護軍崔公諱潤彦之墓 貞夫人晉州姜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서울 초안산 분묘군은 2002년 3월 9일 사적 제44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