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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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무수동,무시울,모시울,서낭당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승미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무수울 노해면 도봉리로 통합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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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지역 | 무수울 비정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 |
성격 | 옛 지명 |
관련 문헌 |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던 조선 시대 자연 마을.
[개설]
무수울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린벨트에 위치하여 도시화 바람에 손상되지 않고 옛 풍광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 서낭당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서낭당이라고도 하였는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명칭 유래]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寧海君)의 묘가 무수골에 있는데, 세종이 생전에 아들의 묘에 왔다가 원터[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578번지]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하였던 데서 무수울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무수울이라는 지명은 인근 서울특별시 노원구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공통점은 골짜기나 산 밑에 있는 마을로 물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수동·무시울·모시울이라고도 불렀다.
[형성 및 변천]
무수울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의 12개 리 가운데 하나이었다. 1914년 4월 1일 전국의 부(府)·군(郡)을 통·폐합할 때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 노해면을 만들면서 종래 해등촌면의 상누원리·무수울[무수동]·영국리와 도당리 일부를 합하여 도봉리라 하였다. 1963년 노해면이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도봉동이 되었다가, 1973년 도봉구가 분리되면서 이에 소속되었다. 1975년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서 방학동이 분리되었고, 1988년 도봉구에서 노원구로 분리되면서 이에 속하였다가, 1989년 다시 도봉구에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무수울은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104번지에 있던 마을이다. 현재도 옛 무수울을 포함한 주변의 무수골은 전원마을로서 친환경 주거단지 조성을 위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중이다. 주변에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과 노비 금동의 묘, 의령 옹주와 부마 계천위 이등의 묘가 있다.
[관련 기록]
1912년에 발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의하면 해등촌면에 무수동을 비롯하여 상누원리, 게성리, 도당리, 우이리, 마산리, 유만리, 영국리, 암회리, 원당리, 창동리, 소라리가 속해 있다. 1917년에 발행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는 노해면에 도봉리, 방학리, 쌍문리, 창동리, 월계리, 공덕리, 하계리, 중계리, 상계리가 속해 있다. 이 중 도봉리는 해등촌면의 상누원리, 영국리, 무수동, 도당리 일부가 합쳐져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