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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02
한자 慶北大學校 反獨裁民主救國鬪爭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운동
설립자 정화영|이강철|강동균|황철식|임규영

[정의]

1973년 11월 대구광역시의 경북대학교에서 전개된 반독재·반유신 시위를 위한 가상의 조직명.

[개설]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 선포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왔던 대학 내 이념 서클들을 반국가단체, 사회주의사상 단체 등으로 조작하여 많은 학생들을 구속하는 등 학생운동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철저한 학원 통제와 감시를 뚫고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에서 첫 반유신 시위가 열렸다. 반유신 시위는 곧바로 전국 곳곳의 대학으로 번져 갔다.

대구에서는 경북대학교가 반유신 시위의 포문을 열었다. 경북대학교의 시위는 10월 2일 서울대학교 시위 이후 지역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전개된 반유신 시위였다. 경북대학교 반유신 시위는 이념서클 한국풍속연구회[한풍회]를 중심으로 한국풍속연구회 전신 서클인 정진회 회원 정화영[정치학과 67] 등이 준비하였는데 반유신 시위의 의미와 영향을 더욱 확대하고자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慶北大學校反獨裁民主救國鬪爭委員會)’라는 실체가 없는 조직을 만들었다. 11월 5일 시위에서는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의 명의로 반독재민주구국선언문과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당시 반유신 시위를 전개하고 있던 전국의 대학에서는 시위 주동자의 신변 보장과 반유신 시위의 대외 영향력을 위하여 실체가 없는 시위 조직을 만들었다.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는 1973년 11월 5일 반유신 시위뿐만 아니라 1974년 3월 21일 반유시 시위에도 시위 주도 단체로 명기되었다.

[설립 목적]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박정희 정권에 학생들의 반유신 세력이 더 강력하게 보이도록 만든 가상의 조직명이었다.

[변천]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는 1973년 11월 5일과 1974년 3월 21일 시위의 대외 영향력을 위하여 만든 가상의 조직명이었다. 이후 이 가상의 조직명과 관련 있는 정화영·이강철과 한국풍속연구회 소속 회원들은 1974년 4월 경북대민청학련사건[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경북대학교 반독재민주구국투쟁위원회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과 유신체제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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