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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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洋染織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15년 - 동양염직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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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17년 - 동양염직소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으로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1920년대 중반 무렵 - 동양염직소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으로 이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5년 2월 - 동양염직소 경상남도 진주 지점 설립 |
이전 시기/일시 | 1925년 12월 - 동양염직소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으로 이전 |
최초 설립지 | 동양염직소 -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
주소 변경 이력 | 동양염직소 - 대구광역시 중구 수동 |
주소 변경 이력 | 동양염직소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
주소 변경 이력 | 동양염직소 -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
성격 | 기업체 |
설립자 | 추인호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한국 최초의 방직공장.
[개설]
1915년 설립된 동양염직소(東洋染織所)는 일제가 세운 조선방직보다 2년 앞서 설립된 한국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동양염직소가 설립되면서 수공업 위주의 대구 섬유공업이 공장제 섬유공업 시대를 맞이하였다. 동양염직소의 설립은 한국 섬유공업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변천]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지묘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서 수직기 1대로 베를 짜던 추인호가 1915년 대구시 인교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족답기 20대로 동양염직소를 설립하였다. 동양염직소는 1917년 중구 인교동에서 중구 수동으로 공장을 확대 이전하였다. 이후 경영이 성과를 내면서 1920년대 중반 무렵에는 중구 수동에서 중구 달성동으로 확대 이전하였다. 동양염직소가 달성동으로 이전하면서 달성동과 비산동 일대의 방직공장 설립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1920년대 달성공원 부근에 20여 개의 방직공장이 생겨나 당시 달성동 일대에는 베틀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1925년 2월 경상남도 진주에 지점을 설립한 동양염직소의 연 수입은 3만 원에 달하였다. 1925년 12월 동양염직소는 중구 달성동에서 중구 대신동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1928년 동양염직소는 대구의 자본가 이상무(李相武)가 자본을 투자하여 공동경영으로 전환하면서 생산 규모가 확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양염직소가 생산한 품목은 동양직, 동양주, 동양단 등 5~6종이었고 부업으로 동양염색소를 운영하였다. 1926년 무렵 동양염직소의 생산 규모는 연 1만 5000필이었으며 수입은 연 8만 3790원에 이를 정도로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 최초의 방직공장인 동양염직소는 수공업 위주의 대구 섬유공업을 공장제 섬유공업 시대로 이끌었으며 한국 섬유공업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