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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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전통적인 교통로를 대체한 근대 문명의 상징 경부선과 대구역.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니 우뢰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해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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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서 삼한시대는 위만조선의 멸망[기원전 108년]에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다. 위만조선의 멸망을 전후하여 다수의 유이민이 남하하였고, 진한(辰韓)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낙동강 이서 지역에서는 변진(弁辰) 혹은 변한(弁韓)이 성립하였다. 3세기 중엽의 모습을 전하는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진한·변한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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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은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주민의 수가 늘어나고 사회 분화가 진행되면서 몇 개의 지역 집단으로 나누어졌으며, 점차 소국[성읍 국가] 단계로 성장하여 삼한 시대에는 변한에 속하였다. 현재 그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탁순국(卓淳國)을 화원 일대에 비정하는 설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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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 시기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후삼국시대는 889년(진성여왕 3)의 이른바 ‘도적 봉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지방 지배 체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각지에서 자위적인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도 여러 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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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현재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달성군의 행정 구역은 화원읍·논공읍·다사읍·옥포읍·현풍읍·유가읍등 6읍과 가창면·하빈면·구지면의 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달성 지역은 동경 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읍인 수성군(壽城郡)·해안현(解顔縣)과 밀성군의 속현인 현풍현(玄豊縣), 상주목 관내인 경산부(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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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대구의 위상과 수창군 호국성의 장소 추정에 필요한 최치원의 기문. 최치원(崔致遠)[857~?]은 강수(强首), 설총(薛聰)과 더불어 ‘신라 3문장(三文章)’의 한 명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주도 세력인 진골 출신이 아닌 6두품 출신이다. 868년(경문왕 8)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경문왕 14)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할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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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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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대구 도시 철도 2호선의 역. 다사역(多斯驛)이라는 역명은 역이 위치한 지역인 다사읍에서 따온 것이고, 다사라는 지명은 하빈현(河濱縣)의 옛 이름인 다사지에서 따온 것이다. 다사는 신라어로 물[水]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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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읍. 다사라는 지명은 하빈현(河濱縣)의 옛 이름인 다사지(多斯只)에서 유래된 것으로, 다사는 신라어로 물[水]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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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파사 이사금 시기에 음즙벌국을 취해 현(縣)을 설치하였다는 예로 보아 다사지현(多斯只縣)은 108년(파사 이사금 29) 다벌국을 병합함에 따라 109년에 다사지현을 설치하였다고 짐작된다. 반면에 무열왕 이전의 중고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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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대구 지역과 신라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시도.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신문왕 9년[689] 조에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未果]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달구벌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말하며, 경덕왕 때 대구현(大丘縣)으로 고쳐진 현재의 대구 지역을 뜻한다. 기존에는 달구벌 천도 계획에 대하여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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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군. 달성군은 대구광역시의 군 지역이다. 동쪽으로 경상북도 경산시, 북동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서구·남구·수성구와 경계하며,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북도 성주군 및 고령군과 마주보고 있다. 남쪽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창녕군 그리고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칠곡군과 접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의 동부 지역은 북구·서구와도 접해 있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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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역제. 조선은 건국 초기 고려의 역제(驛制)를 답습하였으나 역(驛)의 관리 체제 개혁, 역원(驛員)의 보충, 역로(驛路)의 보수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완성으로 새로운 조선의 역제를 확립하였다. 역을 관할하는 최고 기관은 병조(兵曹)였으며, 지방의 각 도(道)에는 찰방(察訪)과 역승(驛丞)을 파견하여 도내(道內)의 역 업무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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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호구 상황. 조선 조정의 국가 통치에 있어 역(役)의 동원 및 조세의 수취 등 재정 확보를 위한 자국민의 인구수 파악과 현황을 조사하여 관리하는 일은 중요한 업무였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호구 즉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거주지, 인구수, 연령, 성별 등을 파악하여 행정에 반영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은 한 지역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하여 관리 운영에 적합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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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조선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1466년(세조 12) 대구군은 대구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01년(선조 34)부터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산현·하양현·화원현을 속현으로 추가하였으나, 1607년(선조 40) 분리되었다. 1601년 설치되었던 경상감사의 유영(留營)[감영]은 1656년(효종 7) 폐지되었다가, 12년 뒤인 1668년(현종 9) 다시 감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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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동부에 위치하는 광역자치단체로서 영남의 지리적 중심지. 동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서쪽은 경상북도 성주군·고령군, 남쪽은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창녕군, 북쪽은 경상북도 칠곡군·군위군·영천시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38'~127°00', 북위 35°03'~35°15'이다. 면적은 883.54㎢이고, 2021년 현재 인구는 239만 721명이다. 행정구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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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1419년부터 1466년까지 그리고 1895년부터 1910년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대구가 대구군(大丘郡, 大邱郡)이었던 시기는 1419년(세종 1)부터 1466년(세조 12)까지와 1895년부터 1910년까지이다. 1018년(현종 9)부터 125년간 경상도 상주목 경산부[지금의 성주군]의 속현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승격하여 지방관인 현령이 파견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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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 대구현(大丘縣)은 757년부터 1419년까지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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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여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이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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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휴숙(休叔), 호는 죽헌(竹軒). 증조할아버지는 경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며, 할아버지는 증한성 우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 여흥 이씨(驪興李氏)이다. 부인은 정기(鄭錡)의 딸 숙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형은 지암(止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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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에 제작된 복합 군현도이자, 역사 지도로서 달성군 구역에 포함된 대구·현풍·하빈·화원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도. 동여비고(東輿備考)는 32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한 지도책이다. 이 지도책의 앞부분은 역사 지도이고, 그 뒤에 도성도(都城圖) 등의 특수 지역도가 있고 그리고 대부분은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도별 총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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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정광천이 대구 출신 문신 전경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만사」[정광천] 저자 정광천(鄭光天)[1553~1594]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1530~1593],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호연(李浩然)의 딸이다. 대구부 하빈현 동곡리[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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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군석(君錫), 호는 도곡(陶谷)·하빈조수(河濱釣叟). 증조할아버지는 증사복시 정(贈司僕寺正) 박일산(朴一珊)이고, 증조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낸 김백형(金伯亨)의 딸 증숙인(贈淑人) 고령 김씨(高靈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을 지낸 박계창(朴繼昌)이며, 할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건(李謇)의 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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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언술(彦述). 고조할아버지는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박순(朴珣), 증조할머니는 군수(郡守)를 지낸 이철근(李鐵根)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司僕寺) 정(正) 박일산(朴一珊), 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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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봉수.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의해 국경 지대의 군정(軍情)을 신속하게 중앙에 보고하던 군사 통신 수단이다.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정례화되었다. 조선 전기에 다섯 개 노선의 봉수망이 정비되면서 전국적으로 700여 개소에 이르는 봉수대가 설치·운영되었다. 봉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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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대구 지역 유학자 낙재 서사원의 묘소.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은 1550년(명종 5) 6월 4일 출생하여 1615년(광해군 7) 4월 9일 66세로 사망하였다.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은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때 두 차례 조문을 하였고, 관찰사 심돈(沈惇)은 부의(賻儀)를 보내 왔다. 9월 4일 대구 하빈현(河濱縣) 파산(巴山) 중턱 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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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는 다양하지만, 조선시대에 주(州)·군(郡)·현(縣)으로 구별된 행정지역에 세거한 성씨는 향안(鄕案)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일정한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향교의 운영에 인원과 재정 등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서원·사당·서당·정자 등 문중 단위의 유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읍지(邑誌)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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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이 기록된 이후 이전의 문서에서 빠진 대구광역시의 성씨. 조선 초에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씨(姓氏)를 토성(土姓), 속성(續姓), 내성(來姓)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은 그 지역을 본관으로 하거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이며, 속성은 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후에 다시 기록한 성씨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속성은 문서, 즉 장적(帳籍) 등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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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각종 시설, 저수지, 제언(堤堰). 조선시대 주요 수리시설은 물을 가둘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이며, 제언(堤堰), 방축(防築), 제, 언 등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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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역과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940년(태조 23) 태조 왕건은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는 개편을 단행하면서, 이때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시기 만들어진 수창군(壽昌郡)을 수성군(壽城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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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수성현(壽城縣)은 조선 전기 대구 지역의 행정구역이다. 조선 후기 수성현은 수현내·수북·수동·상수서·하수서·상수남·하수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대체로 현재의 신천 동남쪽의 달성군 가창면, 남구, 시지 지역을 제외한 수성구와 중구 대봉동 및 동구 효목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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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수창군(壽昌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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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상동 및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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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지금의 대구 지역인 수창군 호국성 남령에 세워진 팔각등루의 기문.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는 통일신라 수창군(壽昌郡) 호국성(護國城) 남령(南嶺)에 세워진 팔각등루(八角登樓)의 기문(記文)이다. 수창군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원이다. 군치(郡治)와 대구현(大丘縣),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화원현(花園縣) 등 4현으로 구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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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구광역시 역사. 대구는 지형적으로 영남의 중심부이며, 지리적으로 경상도 상변에서 뻗쳐 나온 소백산맥에 연이어 팔공연령이 병립하고 남쪽에는 구조곡이 나란히 발달한 가운데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낙동강 중류에 합류하는 금호강과 금호강 지류인 신천이 퍼져 흐르는 분지에 속한다. 대구시 가로의 주요부는 대구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신천의 범람원으로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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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구 월성동 유적(月城洞遺蹟)을 통해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성군의 역사는 대체로 대구의 역사와 함께 살펴보아야 하며, 대구에서 분리되었던 시기[1914~1995년]는 독립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대구는 예로부터 달구벌(達句伐), 달구불[達句火], 달성(達城)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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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와 문화. 1.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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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 국가의 공적인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던 역과 원. 국가의 공적인 도로망인 역(驛)은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외국 사신과 공무 여행자들의 편의 제공, 공공 물자의 운송 등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다. 대구광역시 영역에는 조선 초기 5곳의 역이 있었다. 대구부 관아에서 동으로 9리 수성현 범어역, 하빈현의 서쪽 1리 신역(新驛)인 금천역(琴川驛),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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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읍. 옥포읍(玉浦邑)은 달성군의 중앙에 위치하며 화원읍과 논공읍의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옥포읍은 본리리(本里里), 신당리(新塘里), 교항리(橋項里), 강림리(江林里), 송촌리(松村里), 간경리(干京里), 기세리(奇世里), 반송리(盤松里), 김흥리(金興里)의 총 9개 법정리와 21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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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위화군(喟火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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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중동 일대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 지역은 신라 중고 때 주군을 설치하면서 위화군(喟火郡)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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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옥(大玉), 호는 은와(隱窩). 고조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지낸 이필(李佖)로 처음 하빈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거주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음사로 부장을 역임한 이경두(李慶斗)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창의하여 군공을 세웠으며 병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할아버지는 사마시에 합격한 낙포(洛浦) 이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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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빈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洛浦). 고려 개국 공신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17세손으로 대대로 대관(大官)을 지냈다. 고조할아버지는 사복시 정 이세분(李世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이다. 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역임한 이필(李佖)이다. 이필에 이르러 하빈(河濱)에 거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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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공산의진군 하빈현 대장을 맡은 의병장. 이종문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학가(學可), 호는 낙포(洛浦)이다.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윤광(李允光), 할아버지는 이필(李佖), 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황(尹滉)의 딸이다. 부인은 옥산전씨(玉山全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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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실(子實), 호는 수월당(水月堂). 증조할아버지는 이필(李佖)이고, 할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이다. 아버지는 전 현감 낙포 이종문(李宗文)이며, 어머니는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이다. 부인은 김치삼(金致三)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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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 터. 이천리 마천산 봉수(伊川里馬川山烽燧)는 동래에서 한양을 잇는 제2로의 간봉으로서 남쪽으로 화원 성산 봉수, 북쪽으로 성주 각산 봉수로 각기 대응하였던 직봉 노선상에 있었던 연대 봉화이다. 이천리 마천산 봉수와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인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에 따르면 "마천산 봉화는 하빈현(河濱縣)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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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 터. 이천리 마천산 봉수(伊川里馬川山烽燧)는 동래에서 한양을 잇는 제2로의 간봉으로서 남쪽으로 화원 성산 봉수, 북쪽으로 성주 각산 봉수로 각기 대응하였던 직봉 노선상에 있었던 연대 봉화이다. 이천리 마천산 봉수와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인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에 따르면 "마천산 봉화는 하빈현(河濱縣)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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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의 이씨달성 입향조. 달성 지역의 전의 이씨(全義李氏)는 이필(李佖)[1521~?]이 경기도 부평에서 처음 하빈현(河濱縣)[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입향하면서 형성되었다. 이필의 아들과 손자들은 대구부와 그 주변 고을 사족들과 혼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빈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이필이 처음 정착하였던 하산리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번성하였는데,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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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과 싸운 전쟁 가운데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치뤄진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일본군[왜적(倭賊)]이 1592년(선조 25) 5월 23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부산포(釜山浦)[지금 부산광역시]에 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북상하였다. 선조는 1592년 6월 9일에 한양[지금 서울특별시]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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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3국의 7년 전쟁.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100년이 넘는 내전을 이기고 통일한 일본은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의 조선왕조 평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든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의 전력은 매우 막강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을 함락하고 이어 함경도 일대뿐만 아니라 평양까지 함락하였다. 이렇게 되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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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 증조할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전순손(全順孫)이고, 증조할머니는 장양공(莊襄公) 홍사석(洪師錫)의 딸 정부인(貞夫人)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여도 만호(呂島萬戶)를 지낸 전복견(全復堅)이며, 할머니는 생원 장자원(蔣自元)의 딸 숙부인 아산 장씨(牙山蔣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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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의 공산의진군에 참여하여 하빈현 남면장의 역할을 수행한 문인 학자. 정광천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회(子晦), 호는 낙애(洛涯)·송파(松坡)이다.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정목(鄭穆)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적개공신으로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진 정종(鄭種)이고, 할아버지는 정세검(鄭世儉), 아버지는 정사철(鄭師哲), 어머니는 성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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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97년까지 대구 지역에 조선왕조가 있던 시대. 고려시대에 대구는 1143년(인종 21) 대구현이 현령관으로 승격하면서 화원현과 하빈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그러나 1401년(태종 1) 경산부에 어태를 안치하고 성주목으로 승격되면서 화원현은 성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에는 종래의 하빈현에 수성현과 해안현을 새로이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대구현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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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초기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를 읍의 규모와 군사적 지휘체계를 고려하여 부·목·군·현이라 나눈 것 가운데 제일 낮은 격이었다. 1403년(태조 3) 3월에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과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봉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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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현존하는 조선시대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온 문중의 큰집. 종가(宗家)의 사전적 의미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이지만, 종가는 전체 부계친족(父系親族) 집단의 맏이 집안을 가리키는 대종가(大宗家)와 대종가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종가를 이룬 소종가(小宗家)가 있다. 『예기(禮記)』「대전(大傳)」 편에서 유래한 종법(宗法)에 따르면 부계친족의 맏이는 대대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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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전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또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부는 본부(本府)와 속현인 수성현(壽城縣)·하빈현(河濱縣)·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대구부의 토성(土姓)으로 백(白)·하(夏)·배(裵)·서(徐)·이(李)를 들고 있다. 수성현에는 빈(賓)·라(羅)·조(曺)·혜(嵇), 하빈현에는 신(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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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결성되어 조선을 지킨 의병들. 1598년(선조 31)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으면서 1592년(선조 25)부터 시작된 7년 동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였다. 기근·전염병·포로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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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속하는 면. 하빈면(河濱面)은 옛 지명인 하빈현(河濱縣)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하빈은 한자로 강가를 뜻하므로, 낙동강(洛東江) 변의 고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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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치며 지방 제도를 고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다. 이때 다사지현(多斯只縣)을 하빈현(河濱縣)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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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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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속하는 법정리. 현내리(縣內里)는 통일 신라 시대 행정 구역인 하빈현(河濱縣)에 있던 지역에서 유래되어 이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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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집과 사람, 또는 집과 사람의 수. 호구(戶口)는 국가가 공물(貢物)과 부역(賦役)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호구 수의 파악이 매우 중요하였다. 1414년(태종 14) 대구현은 이전부터 관할하던 하빈현과 함께 수성현과 해안현을 관할하였다. 1419년(세종 1)에는 1,000호 이상이 되어 군으로 승격하였는데 1,300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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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 호국성(護國城)은 후삼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이다. 908년(신라 효공왕 12) 10월,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수창군 호국성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고 병란을 없애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작성한 등루기(燈樓記)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