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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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대구에서 노동자와 학생, 시민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쟁. 10월항쟁은 1946년 대구에서 9월총파업의 와중에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미군정의 실정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광복 후 최초 항쟁이다.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과제로 안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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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1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개최한 통일 궐기대회. 3·1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는 3·1절 제42주년을 맞아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고 대구 시민의 통일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민족통일경북도연맹이 개최한 통일 궐기 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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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통일운동가. 강신용(姜信用)[?~?]은 광복 후 언론인으로 종사하면서 평화와 자주의 민족 통일에 공감하여 경북민족통일연맹에 가입하여 교섭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3·1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를 개최하여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2대 악법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4·19혁명 시기에 언론 활동과 민족·민주운동을 전개한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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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전통적인 교통로를 대체한 근대 문명의 상징 경부선과 대구역.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에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니 우뢰와 번개처럼 달리고 바람과 비처럼 날뛰었다. 한 시간에 삼사백 리를 달린다고 하는데 차체는 안온해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다만 좌우에 산천, 초목, 가옥, 인물이 보이기는 하나 앞에 번쩍 뒤에 번쩍하므로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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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면서, 자주적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범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을 가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회의의 결성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벌인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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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중일전쟁 당시 소방, 방공, 치안 확보를 위하여 대구 지역에 조직되었던 단체. 경방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경방단 규칙」[1939. 7. 3.]에 의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개시 후 방공(防空)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치안을 강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방호단(防護團), 소방조(消防組), 수방단(水防團)을 전시체제로 재편성하여 1939년 경방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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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재래시장. 대구 동문시장(大邱東門市場)은 조선 후기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재래시장이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서시(西市)와 동시(東市)라는 두 개의 큰 시장이 있었다. 동시는 동문시장의 줄임말로 4일과 9일에 열리는 5일장이었다.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에 따르면, 서문시장을 읍시(邑市)라 하고, 동문시장을 신시(新市)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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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탄생한 문학작품과 대표 문학관. 대구광역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등에 뛰어난 문학가를 여럿 배출하였으며, 20세기 후반까지도 중견·신예 문학가들을 상당수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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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민주·민족운동. 대구광역시의 4·19혁명은 2·28민주운동에서 시작되어 3·15부정선거 시위를 거쳐 4·19로 이어지면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민족운동이 싹트게 하였다. 4·19혁명 시기 대구광역시에서 다양한 민주·민족운동이 봇물 터지듯 표출되어 한국의 민주·민족운동을 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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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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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혁명 시기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 민족통일연맹(民族統一聯盟)은 4·19혁명 시기 남북 교류,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안경근(安敬根), 안민생(安民生), 김성달(金星達)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경근은 일제강점기 김구를 보좌하면서 밀정 숙청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고 안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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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백규천(白奎千)[1915~?]은 1915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자주적 남북통일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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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성당. 삼덕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속하여 있으며, 수호성인[주보성인]은 ‘성녀 소화 데레사’이다. 일제강점기에 삼립정성당이란 이름으로 일본인들을 위한 본당의 역할을 하였다. 광복이 되면서 삼덕성당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지역민들을 위한 성당으로 전환되었다. 초대 주임신부는 양상 신부이며, 광복 후 부임한 첫 한국인 사제는 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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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할동한 민족통일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1896년 6월 10일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정의부(正義府)를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 대구에서 자주적 남북통일을 전개하였다. 호는 석천(石泉)이고, 이관오(李冠五)·안사준(安士俊)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안중근(安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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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민족통일운동가 안민생(安民生)[1911~?]은 1911년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한인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대구에 거주하며 자주적 남북통일운동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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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안잠(安潛)[1906~?]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1924년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를 중퇴하고,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평화통일운동을 벌였다. 남북학생회담을 지지하고 성원을 보내며 자주적 남북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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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역사를 대변하면서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공원들. 쉬며 놀며 걸으며 건강과 휴양까지 챙겨 주는 공공장소가 공원 이외에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공원이 많다는 것은 그 도시의 품위를 말해 줄 수 있다. 대구광역시민 누구나 즐겨 찾는 공원 여섯 곳은 하나같이 대구가 지나온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대구 사람들이 어릴 때 소풍을 간 곳도, 아이가 자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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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이정상(李正相)[1911~?]은 1911년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상대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사회대중당과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정당 활동과 자주적 남북통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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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수필가. 이화진(李華眞)[1920~2013]은 1920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보(眞寶)이다. 6·25전쟁 중 향촌동 피란 문단 시절 YMCA 옆에서 아루스다방과 청자다방, 대구 중앙동의 동문다실 등을 운영하면서 피란 온 여성 문인 최정희, 서정희, 장덕조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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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제가 방공 사상 및 국방 사상을 강화하기 위하여 대구에 조직한 전시체제기 친일 단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여 국가총동원 체제로 개편한 일제는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고 ‘일본 정신’을 앙양하며, 일상에서의 선전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1938년 8월 15일 조선방공협회를 조직하였다. 조선방공협회 조직 이후 각 지역 단위 조직이 빠른 속도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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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역에서 반월당까지 연결된 도로. 중앙통(中央通)은 일제강점기 대구역에서 반월당까지 연결된 도로이다....